창세기 5장: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

해설:

하나님의 창조, 아담과 하와 그리고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로써 창세기의 1막은 끝이 납니다. 이제 6장부터는 창세기의 제 2막이 시작됩니다. 창세기 5장은 제 1막과 제 2막을 연결짓는 다리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형에게 살해 당한 아벨 대신으로 얻은 셋으로부터 노아에 이르는 장구한 역사의 이야기들을 성경 저자는 족보로 대신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5장의 족보와 11장의 족보를 결합하여 인류의 연대기를 추산합니다. 그렇게 계산하면 아담으로부터 우리 시대까지의 연대가 6천년이 조금 넘는 것으로 계산이 됩니다. 하지만 그러한 연대 계산에 대해 반대하는 학자들도 적지 않습니다. 

창세기 저자는 연대기를 계산하도록 이 족보를 적은 것이 아닙니다. 경건한 자손 셋을 통해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1:28)는 하나님의 축복이 실현되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독자는 4장에 나오는 가인의 가계와 비교하여 셋의 족보를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어긴 가인의 가계에는 하나님의 축복이 보이지 않지만, 셋의 가계는 다산과 장수의 축복이 넘쳐납니다. 이 족보에는 “몇 세에 누구를 낳고 몇년 동안 아들딸을 낳은 뒤에 몇년을 살고 죽었다”는 문구가 반복됩니다. 이 문구를 통해 전하고자 한 것은 다산의 축복이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5장에 나오는 아담의 자손들은 365년을 산 에녹 외에는 적게는 5백년, 많게는 천년 가까이 살았습니다. 이것도 역시 거룩한 가계에게 부어진 하나님의 축복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과 동행”(22절)하면서 365년을 산 에녹에 대해 창세기 저자는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신 것이다”(24절)라고 적어 놓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에 비하면 에녹은 3분의 1도 못 살고 간 것입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그가 죽음을 겪지 않고 들려 올림을 받았다고 해석합니다(11:5). 중요한 것은 이 땅에서 얼마나 오래 사느냐에 있지 않습니다. 인생의 목적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에녹은 이 땅에 사는 동안 하나님과 동행 하기를 힘썼고 결국 하나님과의 완전한 동행으로 옮겨져 간 것입니다. 

이 족보는 결국 노아에 이릅니다. ‘노아’라는 이름은 ‘위로’라는 뜻입니다(29절). 그의 아버지 라멕은 “주님께서 저주하신 땅 때문에, 우리가 수고하고 고통을 겪어야 하는데, 이 아들이 우리를 위로할 것이다”(29절)라고 말합니다. 라멕은 장차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지도 못한 채 장차 일어날 일을 예언한 것입니다. 

묵상:

믿음의 삶이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입니다. 히브리서 저자가 모세에 대해 말한 것처럼 “보이지 않는 분을 마치 보는 듯이 바라보면서”(11:27)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 점에 있어서 에녹은 다른 누구보다 뛰어났던 것 같습니다. 그랬기에 유독 에녹에 대해서만 “하나님과 동행하면서”라고 적었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보다 훨씬 이른 나이에 인생을 마쳤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수명에 비하면 요절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손해 본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아니, 오히려 그는 다른 사람과는 비교할 수 없는 복을 누린 것입니다. 그가 이 땅에 살면서 추구했던 하나님과의 동행이 완전하게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이 아침, 하나님과의 동행을 구합니다. 내가 그분 안에, 그분이 내 안에 계신다면, 죽는 것도 내게 유익일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목적은 결국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5 thoughts on “창세기 5장: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

  1. 아담의 족보를 보니 에녹과 노아로 연결되면서 하나님의 사람이 누구인가를 알려주는 듯 합니다, 끝내는 누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사느냐인데 내 하루 하루의 일상이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이 어떤 때는 너무 멀리있고 무관심한 것 같이 보일 때도 있지만 바로 내 믿음이 그렇게 느끼는 건데 내 안에 있는 하나님을 늘 느끼며 함께하는 삶으로 이끌어 주실 것을 이 아침 기도드립니다, 주님 늘 함께 동해해 주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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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는 주 예수 안에서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 안에서 하나님과 사랑을 나누는 관계로 살도록 부르심을 받았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고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우리 속에 새로운 영적인 DNA를 받고 하나님의 사랑 안에 살도록 부르심을 받았다는 사실이야 말로 영원한 삶을 선물로 받은 것입니다. 이로써 우리는 항상 기뻐하라는 바울의 말씀을 이해 할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내 육신의 질병과 이땅의 삶이 힘들고 어려워도 이 사실을 생각하면서 위로 받고 소망중에 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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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사실은 주님이 함께하시는데 모든시선과 모든생각을 눈에보이는 세상에만 두고사는 저희들을
    일깨워 주심시오. 사랑이신 임마누엘 하나님께만 초점을 두고 귀하고 깊은 사귐을 갖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 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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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지난 일년동안 이 시간을 함께 하면서 느낀 것 가운데 가장 큰 것은 말씀을 읽고 묵상을 하는 것 자체가 복이고 기쁨이라는 것입니다. 묵상 중에 듣는 하나님의 음성이나 깨달음으로 받는 지혜는 나의 수준과 안목에서 해석한 만큼 얻은 결과물입니다. 캘리포니아 골드러쉬 역사를 공부할 때 초등학교 아이들이 수학여행을 가 금광근처 강물에서 “금”을 찾는 활동을 하는 것과 흡사 합니다. 채를 흔들어 사금파리 같은 금 조각을 골라내는 것처럼 내가 건져내는 하나님의 지혜는 금으로서의 무게와 가치는 미미할지라도 발견할 때의 기쁨과 내것이라는 만족감만큼은 고스란히 내 것입니다. 창세기를 여기까지 읽으면서 창세기를 눈에 보이는 글자 그대로, 읽어지는 내용 그대로를 하나님의 지혜라고 볼 것인가, 아니면 사람과 사람을 둘러싼 모든 것의 근원에 대한 한 가지 해석으로 볼 것인가 스스로 묻게됩니다. 성경에 “신화”를 붙이기만해도 얼굴을 찡그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경을 다양한 색과 향기를 가진 책들의 집합이라고 보는 것도 불편해합니다. 하나님이 불러주시는대로 받아 적은 책이라고 상상할 때 비로소 안심이 되나봅니다. 저는 성경을 읽으면서 계속 갸우뚱하고 싶습니다. 계속 묻고 답하면서, 때로는 괴로워하고 (계시록!!!) 질문이 질문을 낳으며 더 많은 궁금하게 되더라도 오래오래 되새김질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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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주님이 함께 하심 을 믿지못하고 등을 돌려 세상에만 모든 신경을 쏟는 저희들을 용서하시고, 오늘부터라도 주님과
    이웃에게 귀하고 깊은 사랑을 나누도록 도와 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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