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7장: 한 몸으로 지어진 세상

해설:

드디어 방주가 완성되고 노아는 가족과 함께 방주로 들어갑니다. 또한 정결한 짐승은 암수 일곱 쌍씩, 부정한 짐승은 암수 두 쌍씩,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생명도 방주로 들어갑니다. 정결한 짐승 일곱 쌍을 데리고 들어가도록 허락한 이유는 방주 안에 있는 동안에 생존을 위해 먹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방주 안에 들어가자 일 주일만에 홍수가 땅을 뒤덮었습니다. 그 때 노아는 육백살이었습니다(11절). 이 홍수는 이례적인 것이었습니다. 하늘에서는 장대같은 비가 쏟아졌고, 땅에 고여 있던 지하수가 터져 올랐기 때문입니다(11절). 그렇게 40일 동안 밤낮으로 비가 내리고 물이 터져 올랐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의 둘째 날과 셋째 날에 하신 일이 잠시 동안 해체 되었던 것입니다. 

두 세 시간 폭우가 쏟아져도 홍수가 나는데, 이렇게 40일 동안 지속되었으니 이 땅은 물 속에 완전히 잠기게 되었습니다. 가장 높은 산까지 다 잠기게 되었고, 그로 인해 지상에서 살고 있던 모든 생명체는 죽음을 당했습니다. 물고기의 생사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습니다. 방주에 물고기를 실으라는 명령이 없었던 것으로 보아 물고기를 심판에서 제외되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하나님의 관심사는 “땅 위에 사는 모든 생물”(23절)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죄에 대한 징벌을 땅과 땅에 속한 모든 생명이 함께 당해야 했습니다.

묵상:

오늘 우리는 물질주의적 세계관과 개인주의적 가치관으로 인해 하나님이 피조 세계 안에 존재하는 깊은 연대성을 자각하지 못하고 삽니다. 물리적으로 나뉘어 있으면 상관 없다고 생각하고, 나의 운명은 너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인간과 모든 생명과 우주를 한 몸으로 지으셨습니다. 우리 눈에는 서로 다르고 서로 별개처럼 보이지만 깊은 차원에서 우리는 하나의 운명 안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렇기에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었을 때 땅이 함께 저주를 받았던 것이고, 그로 인해 땅에 속한 생명들이 그 운명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그 운명적 연대성은 노아의 홍수에서 가장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인간들의 죄로 인해 죄 없는 수 많은 생명들이 희생 당해야 했습니다. 

이 사실을 두고 “하나님의 처사를 이해할 수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인간의 죄에 대한 징벌에 죄 없는 다른 생명까지 포함시키는 것은 하나님 답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성경을 오독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대목을 읽으면서 모든 생명이 공유하고 있는 깊은 연대성을 보아야 합니다. 인간의 죄가 인간만의 문제가 아님을 깨닫고 끔찍하게 여겨야 합니다.

지금 우리는 또 다른 차원에서 그와 같은 연대성 혹은 공동 운명성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무분별한 탐욕과 훼손으로 인해 지구 환경이 심각하게 망가지고 있고, 그로 인한 고통을 인간보다 식물과 동물들이 더 먼저 당하고 있습니다. 지구 온난화로 인해 녹아 없어지는 빙하 위에 홀로 서서 갈 곳을 찾지 못하고 파리하게 야위어 가는 북극곰을 보면서 우리는 인간의 죄의 끔찍한 결과를 봅니다.

반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주어진 구원은 인간만이 아니라 온 피조 세계의 구원으로 이어집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모든 피조물이 완전한 구원을 날을 기다리며 신음하고 있다(롬 8:22)고 말합니다. 또한 사도 요한이 본 환상에서는 마지막 날에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하고 모든 생명이 구원을 누립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만의 구원자가 아니라 모든 생명의 구원자이시며 또한 온 우주의 구원자이십니다. 만일 외계 생명이 존재한다면, 그 생명까지도 예수님의 구원에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이 아침, 겸손히 고개 숙여 우리 자신의 죄를 돌아 봅니다. 나의 죄는 나 하나가 아니라 온 우주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 그렇기에 나의 의는 나 하나가 아니라 온 우주에 선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오늘도 거룩하고 신실하게 살기를 다짐하며 기도합니다. 

5 thoughts on “창세기 7장: 한 몸으로 지어진 세상

  1. 하나님의 창조의 섭리와 그 섭리에 대항해서 생기는 인류와 자연의 파멸을 생각하며 내 개인의 생활을 점검해 보는 아침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를 틈만 나면 오남용하려는 원죄에서 못 벗어나고 노아의 때나 지금이나 비슷한 현세를 보며 이러한 부조리 중에도 하나님의 사랑으로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의 손길을 내 밀어 주신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홍수가 계속 되는 동안 노아는 두려움에 떨고 있었을까 ? 아니면 새로운 세상에 대한 희망으로 부풀어 있었을 까? 궁금하지만 그 가족을 통해 고듭나는 세상을 더 이상 오염하는 일이 없도록 매사에 주목하는 오늘 하루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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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서로 다 연결되어 있는 세상인데 그렇지 않은 것처럼 생각하고 사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남의 일”이란 없습니다. 조금 뒤에 겪거나 약간 다른 정도로 겪을 뿐입니다. 자연재해가 일어나면 그 자리에서 직접 당하지 않더라도 여파는 같이 겪습니다. 모든 것이 그렇습니다. 지구상에 사는 한 어디서나 그럴 것입니다. 깊은 산속에 들어가 혼자 산다고 해도 완전히 나 혼자는 아닐것입니다. 비가 사십 일 동안 밤낮으로 쏟아져 지구 위의 모든 생물이 다 죽고 백오십 일 동안 땅을 덮고 있습니다. 그 많은 물이 빠지고 마르려면 앞으로 오래 오래 시간이 가야 하겠지요. 방주 안을 상상해보지만 즐거운 웃음소리가 있는 곳으로 생각되지 않습니다. 살아있는 것이 감사하고 앞날에 대한 희망이 생기려면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새로운 땅을 보기 까지 방주 안에서 기다리는 시간을 상상하며 오늘도 눈에 보이는, 보이지 않는 세상의 모든 것과 함께 숨쉬게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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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므두셀라의 이름의 뜻이 창을 던지는 자라 합니다. 그 당시 부족사회에서 창지기가 죽으면 부족이 멸망한다는 뜻으로 인류의 멸망을 예고한 이름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므두셀라가 969세의 나이로 죽었을 때 홍수로 인류의 종말이 왔다는 것은 하나님과 동행했던 에녹을 통해 그 아들 므두셀라의 이름이 예사롭게 지어지지는 않았을 것 같다는 추측을 하게 됩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5절)

    아담이 죄를 짓고 난 후 사람들은 양심을 통해 죄를 알았고 그 후 율법을 통해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신앙생활은 죄와의 끊임없는 다툼인 것 같습니다. 우리의 육신은 죄를 사랑하고 우리의 영은 의를 사모하기에 영과 육이 동시에 존재하는 삶에는 늘 죄와의 갈등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5절 말씀에는 사람의 생각과 모든 계획이 악했다고 했습니다. 완전타락의 모습을 보는 것 같습니다. 죄를 죄로 느끼지 못할 때가 그런 상태가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 세상이 악할 때 세상을 거스려 산다는 것이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끊임없는 노력과 다짐이 필요합니다. 또한 신앙생활은 내가 잘하고 싶다고 잘할 수 있는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지 않으시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죄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인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죄를 알면서도 회개하지 않거나 반복해서 죄를 범하는 것은 지혜롭지 못한 행동일 것입니다. 반복해서 죄를 짓는 행동은 회개할 수 없게 하고 회개가 사라진 상태가 지속될 때 죄가 관영하는 삶이될 것 같습니다. 결국 마음의 생각과 모든 계획이 악해질 것이고 심판을 피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를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사람 에녹을 통해 므두셀라 라는 이름을 주셨습니다. 죄가 관영하는 세상에 하나님께서는 므두셀라의 경고를 보내셨습니다. 그 경고를 외면했던 모든 사람들은 심판을 피하지 못했던 것을 봅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는 노아의 방주를 대신해서 오셨습니다. 노아가 방주를 지으며 죄가 관영했던 세상에 구원을 호소했던 것 같이 우리도 구원자 되시는 예수님을 전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 같습니다.

    교회 밖에서 교회를 걱정하는 세상에서 신앙인들의 모습이 죄를 그져 느끼는 정도의 것이라면 세상은 결코 변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이 시대의 므두셀라는 누구일까요. 남을 탓하는 내가 아닌 그리스도 안에서 진실로 변화된 내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고민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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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하나님의 구원의 방주 안을 들여다 보면 온갖 짐승들이 다 들어와 있는 것을 봅니다. 어떻게 서로 견딜 수 없는 냄새들을 견디며 50일을 버텨내었을가? 어떤분은 그래도 세상의 죄악의 추악함 보다는 훨신 낳았을거 아니겠느냐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의 방주 안에 들어와 있는 그리스도의 교회 안에도 이렇게 때로는 견디기 힘든 다양성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인정해야 할 줄 압니다. 그곳에서 서로 사랑하라는 그리스도의 명령을 받았습니다. 자신을 배반할 제자를 뻔히 알면서도 마지막 만찬까지 초대하시고 발을 씻겨주시며 주께서 자기 제자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고 한 말을 기억합니다. 성령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이 아니고는 불가능한 일이겠죠. 주님을 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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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아름답고 정결한 땅이 죄와 욕심으로 인해 계속해서 오염되어 갑니다.
    보호 무역을 통해 우리만 잘 살겠다고 발버둥 칩니다.
    심판의 날이 멀지 않다고 느껴집니다. 교회가 구원의 방주가 되도록
    도와 주십시오. 가족과 이웃을 살리는 복음 증인이되는 오늘이 되도록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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