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1장: 하나님의 빅 픽처

해설:

노아의 자손들이 여러 민족을 이루고 다양한 언어를 발전시키기 이전의 이야기 하나가 11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직 언어가 하나일 때 사람들이 시날 광야에 모여서 거대한 왕국을 건설합니다. 그들은 돌 대신에 벽돌을 썼고 흙 대신에 역청을 써서 견고한 건축물을 세웁니다. 그리고 그 도시 안에 거대한 탑을 쌓았습니다. 그 탑의 목적은 그들의 이름을 알리고 힘을 과시 하려는 데 있었습니다(4절). 

이것이 우리의 죄성이 늘 향하는 방향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 먹었듯이, 우리 인간의 마음 안에는 신이 되고 싶어하는 욕망이 잠재 되어 있습니다. 인간에게 어떤 힘이 주어지면 신이 되고 싶은 욕망은 더욱 강력해집니다. 시날 광야에 세워졌던 거대한 도시와 탑은 지난 인류 역사에서 거듭 나타났다 사라졌습니다. 이집트가 그랬고, 앗시리아가 그랬으며, 바빌로니아가 그랬고, 알렉산더 왕국이 그랬으며, 로마 왕국이 그랬습니다. 현대에 와서도 그 역사는 거듭 반복되었습니다. 지금도 자신의 권력을 항구적이고 절대적인 것으로 만들어 신이 되고 싶어하는 권력자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들이 하는 일을 보시고 하나님은 “이제 그들은, 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하지 못할 일이 없을 것이다”(6절)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인류의 미래에 대한 무서운 예언처럼 들립니다. 요즈음 과학 문명이 만들어 내는 일들을 보면 정말 인류에게는 못할 일이 없어 보입니다. 그 능력을 옳게 사용하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막으실 리가 없습니다. 하지만 지난 역사가 증명하듯 인류에게는 자신에게 주어진 능력을 선하게 사용할 능력이 없습니다. 능력은 제한이 없는 것 같은데, 그것을 선하게 사용할 능력은 모자랍니다. 그렇기에 인간의 무한한 능력은 결국 무한한 불행을 만들어 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도시 건설을 위해 모인 인류를 흩어 버리십니다. 

이어서 저자는 셈의 후손의 족보를 기록합니다. 이번에는 셈의 여러 자손 중에서 아브람(나중에 하나님께서 그의 이름을 ‘아브라함’이라고 고쳐 주십니다)에 이르는 가문을 따라 족보를 기록합니다. 12장부터 기록할 아브람의 이야기를 위한 준비 작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자는 아브람의 아버지 데라에게 이르기까지 속도감 있게 족보를 이어 오다가 데라에게 이르러 갑자기 템포를 늦춥니다. 

바빌로니아의 우르 지방에 살고 있던 데라에게는 세 아들이 있었는데, 그 중 하란은 아들 롯을 남기고 일찍 세상을 떠납니다. 당시에는 혈통을 유지하는 것이 최고의 가치였기에 근친 간에 결혼하는 것이 당연한 일로 간주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람은 이복 누이인 사래와 결혼을 했고, 나홀은 조카딸인 밀가와 결혼을 합니다. 

어느 날 데라는 가나안 땅으로 이민 가기로 마음 먹습니다. 그것은 상식에 맞지 않는 결정이었습니다. 당시 바빌로니아의 우르는 중근동 지방에서 가장 문명이 발전한 곳이었고 가나안 땅은 불모의 개척지였기 때문입니다. 이민을 간다면 더 잘 사는 곳, 더 편한 곳, 더 많은 기회가 있는 곳으로 가는 것이 정상입니다. 그런데 데라는 반대 방향으로 가기로 마음 먹습니다. 자세한 사정은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이것은 필경 그의 신앙적인 결단이었거나 하나님의 지시로 인한 것이었을 것입니다. 둘째 아들 나홀이 아버지를 따라가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 그는 우르를 떠나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데라의 여정은 우르와 가나안 땅의 중간에 있는 하란에서 멈추었습니다. 무엇 때문에 그곳에서 멈추었는지 기록된 바가 없어서 자세히 알지 못합니다. 그는 마치 가나안을 잊은 사람처럼 하란에서 살다가 죽었습니다. 그리고 둘째 아들 가족도 나중에 하란으로 이주하여 그곳에 정착하게 됩니다.

묵상:

셈으로부터 아브람에게 이르는 족보를 읽으면서 세대를 거쳐가며 당신의 계획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빅 픽처를 봅니다. 우리는 기껏해야 위로 두 세 세대, 아래로 두 세대 정도를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내 인생은 나의 것이라고 생각하고, 자녀들의 인생은 그들의 인생이라고 생각하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긴 역사 속에서 한 개인을 보십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내가 태어났을 때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까마득히 먼 조상 때로부터 하나님은 뜻을 세우시고 당신의 계획을 이루어 오신 것입니다. 그 빅 픽처 안에 내가 있습니다. 그분의 계획은 나에게서 끝나지 않습니다. 내 후손들을 통해 그 계획을 이어 가실 것입니다. 셈에게서 시작된 한 가문의 역사를 통해 하나님은 결국 아브람을 세우시고, 그를 세우신 뜻을 그의 후손들을 통해 이루어 가십니다. 이와 같은 빅 픽처에서 데라는 그에게 맡겨진 일을 마치고 역사 뒷편으로 사라집니다.

아침 안개처럼 없는 듯 있다가 사라질 내가 하나님의 빅 픽처 안에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니 거룩한 전율이 마음과 몸을 감싸 안습니다. 데라처럼 미완성의 삶을 산다 해도 주인은 하나님이시기에 그분이 완성해 가실 것입니다. 내 앞 세대를 통해 일을 이루어 오신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일을 이어 가시고 또한 내 후 세대를 통해 이어 가실 것을 생각하며 우주와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 앞에 고개 숙여 찬양 올립니다. 

6 thoughts on “창세기 11장: 하나님의 빅 픽처

  1. 인간의 지혜가 죄의 기본 틀 안에서 발전하며 하나님을 능가하려는 욕심에서 세워지는 도시와 바벨탑을 통해 우리의 죄성을 다시한번 깨닭게 됩니다, 하나님이 허락 한 모든 자유를 만끽하데 금도는 넘지 말라야 한다는 주님의 계명을 가슴속에 간직하며 내 자신이 누구인가를 생각해 봅니다.
    노아로 시작하여 아브람에 이르는 족보를 통해 주님의 계획을 읽으며 내 자신도 주님의 계획속에 이루어 지리라 믿고 떨리는 마음으로 감사하며 주님으 자녀로 살면서 늘 감사하기를 잊지않게 깨어 있기를 원합니다.
    오늘 하루도 감사하며 주어진 일을 잘 감당하게 이끌어 주십시요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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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세상과 세월이 주님의 계흭에 따라 달리는 열차라고 느껴집니다,
    점점 더 빨라집니다.
    중간에 내리지않고 종점 가나안땅에서 내리고 싶습니다.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데도 가족과 이웃에 소통이 되지않습니다.
    삶과 행동이 주님의 향기가 되어 만나는 모두가 승차하는데
    도움이되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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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언어가 달라 대화를 주고 받을 수 없을 때 답답한건 물론이요 같은 말을 쓰는데도 대화가 되지 않으면 답답하다 못해 화까지 납니다. “말이 안 통하는” 것은 원인일까요 결과일까요. 이기심과 교만의 죄가 말이 안 통하는 상태를 만들어냈다는 것이 오늘 본문을 읽을 때 들어오는 생각입니다. 바벨탑을 짓다가 서로 말을 알아들을 수 없게 되자 짓는 일이 흐지부지 되었습니다. 죄의 결과로 사람 사이에 말이 안 통하게 된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언어를 쓰고 모든 것을 같이 경험하던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는 순간을 정지화면처럼 만들어놓고 생각해보면 “죄”는 언어를 통해 들어왔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알아 들을 수 있는 그럴싸한 말로 뱀이 하와를 흔듭니다. 말이 잘 통하는 것이 꼭 좋은 것은 아닌가보다 하는 생각도 잠시 듭니다. 말로 사람을 조종하고 사건도 조작하는 것을 흔히 보는 세상입니다. 바벨탑 이야기가 11장에 어색하게 서 있습니다. 노아의 족보가 내려오다 다 지어지지 못한 바벨탑이 중간에 서 있고 다시 노아의 아들 셈의 자손 이름이 계속되는데 이번에는 몇 살에 누구를 낳고 몇 살까지 살았는지도 덧붙습니다. 아브람의 아버지 데라가 등장합니다. 아브람의 집안 배경이 이어집니다. 바벨탑 묵상을 계속 하려는데 아브람이 등장해 초점이 옮겨진 것 같은 느낍입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사람의 대사는 아주 적습니다. 오늘 도 여러 말을 하고 또 듣게 될텐데 나는 언어라는 값진 선물을 어떻게 쓰고 사는지 살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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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오래 전에 읽었던 본헤퍼의 말씀 묵상에 대한 책에서 만났던 글이 생각납니다. 한꺼번에 많은 양의 성경을 읽는 것 보다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를 여행하듯 하나님의 구름이 이동하면 따라서 이동하고 멈추면 멈추었듯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며 묵상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라는 말입니다. 오늘은 창세기 11:4-5의 말씀이 저에게 말씀을 걸어옵니다.”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여호와께서 사람들이 건설하는 그 성읍과 탑을 보려고 내려오셨더라” 사람들은 하늘 꼭대기에 닿게 탑을 쌓자고 하는데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내려오셔서 사람들의 탑 쌓는 모양을 보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오래전에 No Man’s Island라고 하는 시를 써서 유명해진 죤 던이라고 하는 17세기 영국시인이 말한 우화를 읽은 일이 있는데 그 우화가 생각납니다. “사람들이 높은 산 꼭대기를 올라가서 하나님을 찾아 하나님의 집에 도착했는데 다음과 같은 문패가 걸려 있더라는 것입니다.”하나님은 지금 저아래 땅으로 외출중이십니다” 우리 가운에 사람의 모양으로 내려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생각하며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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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내 마음의 성읍과 바벨탑

    노아의 홍수 후 사람들에게 홍수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긴 것 같습니다. 시날 평지로 이동한 노아의 후손들은 함께 성읍과 탑을 쌓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도 그들의 하고자 하는 일을 막을 수 없다고 하신 것을 보면 그들이 건설했던 성읍과 높은 탑은 뉴욕의 스카이 라인 보다 높고 견고하게 지어지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그들이 건설하려 했던 성읍과 탑을 중지시켜려 했을까요. 인간이 아무리 하나님을 대적하려 한들 하나님과 같아질 수 없고 탑을 아무리 높이 올린다 한들 하늘에 닿을 일도 없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중지하시려 했던 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신 목적을 거스리는 행동이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홍수의 심판은 나타났던 죄를 멸할 수 있었지만 인간 마음속에 잠재되어 있었던 죄를 제거하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창세기 11장은 바벨의 사건에서 갑자기 아브라함의 족보로 조명이 옮겨지는 것을 봅니다. 하나님께서 의로운 노아를 택하시고 홍수의 심판 후 그의 후손으로 새롭게 시작하시려 했던 인류의 역사는 시날 평지에서 다시 하나님을 실망시켰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사랑하시기에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 원하시지만 하나님의 그 구원의 은혜를 받아드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대적하는 사람이 있는 것 같습니다.

    가나안으로 향했던 데라의 움직임은 성경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믿음의 반응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하나님께서 데라의 아들 아브람을 택하셔서 아브라함이 되게 하시고 믿음을 통해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신 것도 죽지 않으면 없어지지 않는 인간 내면에 깊이 잠재되어 있는 죄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예수가 필요없다는 말처럼 어리석은 생각은 없을 것 같습니다. 또한 예수를 믿는다고 하지만 아직도 자신이 주인된 삶을 사는 것도 어리석은 생각일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아직도 자신이 다스리는 성읍을 원하고 자신을 높이는 바벨탑을 쌓고 사는 것 같습니다. 제한된 시간을 사는 것도 잊은 채 말입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며 넓고 화려한 시날에서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하는 삶이 되기를 주님께 기도 드립니다. 나의 기득권을 포기해야 하고 평안한 안주함에서 벗어나야 하지만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삶은 내 마음대로 사는 삶이 아닌 주님 뜻대로 사는 삶이기 때문일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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