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4장: 두 거인의 만남

해설:

아브람이 헤브론의 마므레 즉 상수리나무 숲에 자리 잡고 산지 몇 년 후의 일이 여기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곳에 정착한 후 몇 년 사이에 아브람은 거대한 부를 일구고 318명이나 되는 사병을 둘 정도로 세력을 키웁니다. 당시에는 국가가 형성되기 이전이었기에 지방 호족들이 사병을 두고 자신의 가족과 재산을 지켰습니다. 여기서 “왕”이라는 말은 부족 국가의 수장인 호족을 가리키는 말로 보아야 합니다.  

그 즈음에 지방 호족들이 두 패로 나뉘어 전쟁을 하게 됩니다. 그 전쟁에 참여한 부족 국가들의 이름과 전쟁이 일어나게 된 경위가 14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1-7절). 이 전쟁에 소돔 왕이 참전하였는데 불행하게도 패배하여 소돔과 고모라 전체가 약탈을 당합니다(8-11절). 이 과정에서 소돔에 정착했던 롯도 전쟁 포로가 되고 재산도 모두 빼앗기고 맙니다(12절). 그 소식이 아브람에게 전했졌고, 그는 조카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사병을 데리고 추적하여 조카 롯을 구하고 재산까지 되찾아 옵니다. 그뿐 아니라 잡혀 간 다른 포로들까지 되찾아 옵니다. 이름 없는 유목민 아브람이 전사로 변신한 모습을 여기서 보게 됩니다. 

아브람이 롯과 다른 포로들을 데리고 돌아오자 살렘 왕 멜기세덱이 “빵과 포도주를 가지고”(18절) 아브람을 맞습니다. 그는 “가장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고 소개 되어 있습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멜기세덱을 ‘원형 제사장’으로 이해합니다. 즉 레위 가문의 제사장 제도가 시작되기 이전에 하나님께서 직접 택한 제사장이라는 뜻입니다. 모세의 율법에 의하면 유다 지파 자손인 예수님은 제사장이 될 수 없습니다만, 그분은 레위가 아니라 멜기세덱의 계통에서 나온 제사장이라는 뜻입니다(히 7장). 멜기세덱은 아브람에게 축복을 해 주면서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권합니다(19-20절). 그러자 아브람은 가지고 있던 모든 소유에서 열에 하나를 멜기세덱에게 줍니다(20절). 그것은 멜기세덱의 영적 권위를 인정한다는 뜻입니다. 

그 때 소돔 왕은 아브람에게 “사람들은 나아게 돌려 주시고, 물건은 그대가 가지시오”(21절)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아브람은 자신의 것이 아닌 것은 실오라기 하나도 가지지 않겠노라고 선언합니다. 자신이 전쟁에 참여한 것은 물질에 탐이 나서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 준 것입니다. 다만, 전쟁에 참여한 젊은이들의 몫만은 기억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묵상:

멜기세덱은 신비에 쌓인 인물입니다. 제사장 제도는 모세가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으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이스라엘 최초의 제사장은 아론인데, 멜기세덱은 그보다 몇백 년 앞선 사람입니다. 당시에는 그를 제사장으로 세울만한 종교적 제도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말하자면 멜기세덱은 ‘자칭’ 제사장이었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직접적으로 제사장으로 부름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가 제사장인 것을 인정하느냐 마느냐는 전적으로 각자의 판단에 따라 정할 일입니다. 

아브람은 그가 진짜임을 인정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축복을 받아들였고 또한 그에게 자신의 소유의 십분의 일을 주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두 거인의 만남을 봅니다. 진짜가 진짜를 알아 보는 만남이었습니다. 아브람은 지금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얼마든지 기고만장할 수 있는 시점에서 그는 멜기세덱의 영적 권위를 알아 보고 그 앞에 고개 숙입니다. 그것이 아브람의 위대함의 또 다른 면입니다. 

아, 진짜가 되고 싶습니다. 아브람처럼, 멜기세덱처럼 진짜를 알아 보고 진짜 앞에 겸손히 고개 숙이는 그런 사람이기를 고개 숙여 기도합니다

4 thoughts on “창세기 14장: 두 거인의 만남

  1. 영웅이 영웅을 알아본다는 말처럼 아브람이 멜기세덱이 하나님의 제사장임을 인지하고 그의 축복을 받고 전리품의 십에 일을 바치는 장면이 눈에 선합니다.
    살면서 때로는 천사들을 만나는 일들이 있지만 눈에 욕심이 씨워져 인지하지 못하고 자기 욕심을 쫓는 일들이 생각납니다, 물질에 눈이 어두어지는 일이 없도록 분별력을 주시고 주님을 옳게 섬기는 믿음을 주시기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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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상수리 나무밑은 주님과 소통하고 영적훈련하는 장소인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다나엘 에게 하신 말씀이 생각납니다.
    전쟁에서 승리는 하나님이 영적훈련이 잘된 아브람 에게 주시는 선물
    이며, 빵과 포도주를 가져온 멜기세댁은 예수님의 마지막 만찬을 연상
    하게합니다. 주님 항상 상수리 나무밑에 머물어 항상 훈련을 받기를 원
    합니다, 모든것을 받쳐 이웃을 구출하는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도록
    도와 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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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진실된 신앙의 사람이 되자

    멜기세덱의 등장은 신비 자체인 것 같습니다. 멜기세덱이 예수님과 같은 사람인지 아닌지 알 수는 없지만 히브리서 7장 3절에 멜기세덱은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의 아들과 닮아서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고 말씀하신 것을 보며 멜기세덱을 예수님과 같이 생각하는 것도 문제가 없을 듯 합니다. 이런 난해한 구절을 읽을 때는 평신도의 입장에서 마음대로 상상할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한 것 같습니다.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오는 아브람에게 멜기세덱은 빵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아브람을 축복했습니다. 인류 최초의 성찬식이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또한 멜기세덱의 등장이 왜 이 때에 이루어졌는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아브람에게 318명의 사병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318명으로 네 왕이 이끌었던 군사들과 전쟁을 했다는 것은 동서사방을 보여 주시며 티끌같이 많은 자손을 약속하신 하나님을 믿지 않고 시도할 수 없었던 전쟁이었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했던 아브람은 죽음을 무릎쓰고 전쟁에 임했고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승리했습니다. 믿음의 행위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 같습니다(히 11:6). 하나님의 기쁨이 된 아브람을 축복하시려 하나님께서는 제사장 멜기세덱을 보내셨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받은 자들이 행하는 예식을 믿음의 조상인 아브람에게 허락하시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아브람이 멜기세덱에게 얻은 것에서 십분의 일을 드리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여기에서 아브람의 진 면목을 보는 것 같습니다. 아브람이 멜기세덱에게 드렸던 예물은 하나님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었을 뿐아니라 자신의 소유는 하나님의 것이라는 표현이었던 것 같습니다. 무리의 삶과 제자의 삶이 달라야 하는 것을 아브람의 행동을 통해 배우게 됩니다. 물붓듯이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한 마음에만 머무는 것이 아닌 소유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보여 드릴 수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많이 버는 것에 관심을 가지지만 하나님의 사람은 어떻게 쓰는 것에 관심을 가져야 함을 배우게 됩니다. 내 것이라고 내 마음대로 쓰는 자라면 아브람과는 다른 믿음일 것 같습니다. 예수님을 천국가는 보험정도로 생각한다면 믿음을 행동으로 옮길 수 없으며 감사를 행위로 나타낼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목회자도 가짜가 많고 교인도 가짜가 많은 세상인 것 같습니다. 믿음의 본질이 무엇인가요. 진실된 신앙이 없다면 무의미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주님, 말만 잘하는 자가 아닌 진실된 신앙인이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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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여기까지 읽어오는 동안 하나님께 제단을 쌓았다거나 예배했다는 기록이 몇 군데 있긴 합니다만 하나님을 어떻게 불렀는지, 하나님을 어떻게 이해했는지는 알 수 없었는데 멜기세덱이 아브람에게 하나님을 가르쳐 준 것을 보게 됩니다. 빵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다는 기록도 제사장적으로 보이고, 아브람을 축복하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모습도 제사장처럼 보입니다. 십일조가 여기서 시작되었다는 해석도 어색해보이지 않는 상황입니다. 아브람이 소돔 왕에게 말할 때 멜기세덱이 하나님을 표현하던 그대로 배워 표현하는 것을 보면서 멜기세덱의 존재와 역할이 더욱 확실해집니다. 창세기 인물들은 우리가 나이먹는 것과 아주 다르게 나이를 먹었습니다. 상상할 수 없이 오래 장수하기도 했고 80세가 넘어도 끄떡없이 전쟁에 나가 승리하는 일이 다반사입니다. 아브람이 뒤를 이을 아들이 없는 신세를 한탄했는지 알 수 없지만 롯과 헤어진 뒤에도 그를 위해서 서슴지않고 나가 싸운 것을 봅니다. 그리고 소돔 왕에게 속한 것을 다 돌려주면서 소돔 왕이 자기를 부자가 되게 했다는 소리가 나오지 않게 하겠다고 말합니다. 사라를 앞세워 이집트 왕에게서 큰 재산을 받고 떠난 일이 마음에 짐이 되거나 평생토록 따라다니는 수치가 되었는지 얼핏 생각해봅니다. 내가 아브람이라면…하는 눈으로 읽기 때문입니다. 죽을 뻔한 왕을 구하면서 받는 대가라고 치면 되는데도 한사코 거절하는 모습에서 재물보다 명예를 택하는 아브람을 봅니다. 의식이 진보했습니다. 멜기세덱을 만나 십분의 일을 주는 모습에서는 아브람의 영성을 보았는데 소돔 왕 앞에서 하는 선언에서 그의 가치관이 보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이해가 생김으로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지고 인생의 가치를 새로 정리하는 지혜가 생기기를 바랍니다. 매일 하나님을 새롭게 배워가고, 새로운 언어로 하나님을 부르기를 원합니다. 전쟁에서 이긴 전리품을 취하는 것보다 하나님의 이름을 배우는 것이 더 좋다고 깨달은 아브람에게 박수를 보내는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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