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6장: 보시는 하나님, 들으시는 하나님

해설: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아들을 약속해 주신 일이 있은 지 얼마 지나 사래가 아브람에게 자손을 이어갈 묘안을 제시합니다. 자신의 몸종이 하갈을 첩으로 삼아 대를 이어 가자는 제안이었습니다. 당시 관습은 이러한 일을 당연하게 여겼습니다. 이것을 사래의 불신앙으로 해석하지만, 사실 사래로서는 희생적인 결단을 한 것입니다. 사래가 볼 때는 그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어 보였습니다. 아브람은 묵묵히 사래의 말을 따릅니다. 그가 보기에도 그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어 보였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그런 방법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닌가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아브람의 나이 85세였지만 사래의 기대대로 하갈이 임신을 합니다. 그런데 임신을 하고 나자 하갈의 태도가 점점 달라집니다. 당시에 자식은 여성에게 있어서 가장 큰 힘이었습니다. 몸종으로 죽은 듯이 살던 사람에게 주인의 아이가 태어나게 되었으니 태도가 달라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갈의 도를 넘는 언행은 점점 심해졌고, 사래는 여족장으로서의 자신의 위치가 위협 받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 갈등은 점점 심해졌고, 사래는 아브람에게 문제를 해결하도록 요청합니다. 아브람은 사래에게 알아서 처리하도록 허락했고, 사래는 하갈을 드러내 놓고 학대하기 시작합니다. 그 학대를 견디지 못하고 하갈은 집을 뛰쳐 나갑니다.

헤브론에서 이집트로 가는 길 중간에서 하갈은 멈추었습니다. 그곳은 사막이었습니다. 하갈은 고향으로 돌아갈 수도 없고 집으로 돌아갈 수도 없는 처지에 몰렸습니다. 사막 중간에 있는 샘물에서 목을 축이고 쉬는 동안에 하나님의 천사가 그를 방문합니다. 천사는 하갈에게 주인의 집으로 돌아가 참고 살라고 권면합니다. 그렇게 하면 결국 하나님께서 그의 자손을 크게 번창하게 해 주실 것이라고 약속해 주십니다. 천사는 아들의 이름을 이스마엘이라고 지어 주면서 “네가 고통 가운데서 부르짖는 소리를 주님께서 들으셨기 때문이다”(11절)라고 말합니다. 그 천사는 그 아들이 강인한 사람이 될 것이라고 예언해 주십니다. 

하갈은 아브람과 사래가 섬기는 그 하나님이 자신에게도 관심을 가지고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광야에서 하나님을 처음 만나고 그분을 “보시는 하나님”(13절)이라고 불렀습니다. 그 하나님께서 자신의 삶을 하나도 빠짐없이 보고 계시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하나님을 만났던 그 샘의 이름을 “브엘라해로이”(14절)라고 지었습니다. 그 뜻은 “나를 보시는 살아 있는 하나님의 샘”이라는 뜻입니다. 

그 만남 이후에 하갈은 사래의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성경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하나님을 만난 이후의 하갈의 삶의 태도는 과거와 달라졌을 것입니다. 이제는 하나님이 그의 뒷배가 되어 주셨기 때문에 어떤 일도 참을 수 있었습니다. 아마도 사래는 하갈의 달라진 모습에 놀랐을 것입니다. 더 이상 주인을 깔보지도 않고 함부로 행동하지도 않았습니다. 겸손히 고개 숙여 순종하며 살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아들을 낳고 천사가 말한 대로 이스마엘이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묵상:

하갈은 아브람과 사래의 집에서 주인이 드리는 예배를 자주 보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주인이 섬기는 하나님이 자신과는 상관 없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고향을 떠나 타국에서 몸종으로 살아야 했던 하갈로서는 그 무엇에도 희망을 둘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주인의 첩이 되어 아들을 낳아 달라는 부탁을 받습니다. 아브람이 비록 늙었지만 그의 대를 이을 수 있는 아들을 낳는다면 인생 역전의 꿈을 이룰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의 바램대로 얼마 후에 그의 태중에 아기가 생겼습니다. 하갈은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기뻤을 것입니다. 커져가는 배를 쓰다듬으면서 “너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 생각이 그 자신도 모르게 언행을 달라지게 만들었습니다. 그로 인해 그는 사래의 혹독한 학대를 받아야 했고, 결국 견딜 수 없어서 가출을 결행합니다. 

한 발자국도 뗄 수 없는 막다른 골목, 인생의 바닥에 지쳐 쓰러져 있을 때 주님의 천사가 그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자신과는 전혀 상관 없다고 여겼던 아브람과 사래의 하나님이 자신에게도 나타나신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그 하나님이 자신의 고통을 보셨고 그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의 미래를 책임 지겠다고 약속해 주십니다. 그 만남은 하갈의 인생 궤도를 바꾸었습니다. 그는 모든 것을 “보고 들으시는 하나님”을 믿고 주인의 집으로 돌아갑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도 “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눈물도 보시고 우리의 고민도 보시고 우리의 죄악도 보십니다. 또한 우리의 하나님도 “들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의 찬양도 들으십니다. 우리가 이웃에게 하는 모든 말도 들으십니다. 그 하나님을 진실로 믿는다면 우리의 삶의 방식이 달라지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3 thoughts on “창세기 16장: 보시는 하나님, 들으시는 하나님

  1. 깔보며 멸시하다가 오히려 학대를 받고 가출하지만 사막에서 하나님의 천사를 만나서 신세타령을 할 때 들어주시는 하나님을 통해 제 2의 삶을 살며 축복을 받는 하갈의 믿음을 숙고해 봅니다, 혹 사라가 이스라엘의 상징이고 하갈은 이방인의 상징이 안닌지 비교해 보며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며 하나님을 찾을 때 들어주시고 만나주시는 하나님을 배웁니다.
    일상의 어려움이 있을 때 주님을 찾는 믿음을 주시고 그 믿음을 통해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믿음으로 승화하는 삶이 되기를 간구합니다.
    오늘도 주님만을 의지하는 하루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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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저희들의 하나님은 이방인도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주님의 약속을 끝까지 믿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이스마엘 후손을 이삭의 후손으로 이적하시는 주님의 계획
    에 동참하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 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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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톨스토이의 책 제목으로도 유명하지만 누구나 생각해보는 질문입니다. 사람은 왜 땅에 집착하는가…하는 질문도 심심찮게 나옵니다. 땅을 정복하려면 자기 명령을 따르는 부하가 필요하고, 땅을 가진 뒤에는 그 땅을 일궈 재산으로 만드는 하인이 필요하고, 재산이 많아지면 재산을 관리할 자식이 필요하고…톨스토이의 책은 사람에게 사랑이 필요하고 사랑은 하나님께로부터 온다는 기독교적인 가치관을 확인시키지만 창세기를 여기까지 읽는 동안에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사랑으로 만족하며 평화롭게 살다 죽었다라는 예는 찾지 못했습니다. 아들을 낳아 만사가 형통할 줄 알았던 사래의 입장에서 십년의 세월은 너무 길고 힘든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오죽하면 종을 통해 아들을 받으려 했을까요. 하갈의 입장에서 임신은 기회였을 것입니다. 여종이 주인의 아기를 임신하는 경우는 처음 있는 일이 아니었을텐데, 하갈이 사래를 깔본 것은 이 아기가 아브람의 대를 이을 아기라고 다들 믿었기 때문이지요. 하갈에게는 고생 끝 행복 시작을 보장하는 기회였겠지요. 이 스토리가 사랑과 평화의 스토리가 될 수는 없었을까요. “사람은 사랑으로 산다”는 답을 내주는 한 예가 될 수는 없었을까요… 하갈은 사래 밑으로 다시 가지만 자기를 보시는 하나님, 죽음에서 건지신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하갈이 오늘 이후 어떻게 살다 죽었는지는 모르지만 사래의 종이라는 사회적 신분은 바뀌지 않았지만 인생의 의미와 자신의 가치를 마음에 품고 살았다고 믿고 싶습니다. 이스마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살았다고 상상해봅니다. 사래 또한 집으로 돌아온 하갈을 같은 여자로, 아들을 내세우지 않으면 아무런 값을 지니지 못한 똑같은 여자로 연민을 갖고 대했을거라고 상상해봅니다. 하지만 자식에게 매인 여자나 땅에 매인 남자나 지금과 크게 달라진 것은 없구나…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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