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8장: 우리 곁으로 오신 하나님

해설:

중동 지방에서 “한 창 더운 대낮”(1절)은 모두가 행동을 멈추는 시간입니다. 아브라함도 자신의 장막에서 쉬고 있는데, 낯선 사람 셋이 자신의 장막 앞에 서 있습니다. 순간, 아브라함은 그 사람들에게서 뭔가 특별한 것을 감지하고 그들 앞에 절을 합니다. 한 부족의 족장으로서 이것은 아주 이례적인 행동입니다. 그는 손님들을 초청해 들이고 빵을 굽고 송아지를 잡아 성찬을 대접합니다. “고운 밀가루 세 스아”(6절)는 우리 식으로 하자면 12되 정도 되는 많은 양입니다. 

음식을 다 먹고 나서 세 사람 중 하나 즉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난 주님께서, 얼마 후 사라에게서 아들을 얻을 것이라고 예고하십니다(10절). 사라가 장막 안에서 이 말을 듣습니다. 그의 나이 89세이고 남편의 나이는 99세입니다. 생리가 끊긴 지도 오래 되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예고를 듣고 사라는 속으로 웃어 넘깁니다. 주님께서는 그 사실을 아시고 “나 주가 할 수 없는 일이 있느냐?”(14절)고 아브라함에게 묻습니다. 그러자 사라가 당황하여 장막에서 나와 주님께 웃지 않았다고 둘러댑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아니다, 너는 웃었다”(15절)고 답하십니다. 

일을 다 마치고 세 사람은 소돔 쪽으로 향합니다. 아브라함도 그 길에 얼마 쯤 동행합니다. 그 길에서 주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두 가지를 알려 주십니다. 하나는 아브라함의 자손을 번성하게 해 주실 것이고 모든 민족이 그의 자손을 통해 복을 받게 하겠다는 약속입니다. 다만, “그가 자식들과 자손들을 잘 가르쳐서, 나에게 순종하게 하고, 옳고 바른 일을 하도록”(19절) 지도해야 합니다. 그렇게 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일을 반드시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 하시겠다는 계획입니다(20-31절). 소돔에는 아브라함의 조카 롯과 그 가족이 살고 있었습니다.

셋 중에 두 사람은 소돔으로 떠나고 주님만 아브라함과 함께 남았습니다. 그 때 아브라함이 주님께 “그 성 안에 의인이 쉰 명이 있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래도 주님께서는 그 성을 기어이 쓸어 버리시렵니까?”(24절)라고 여쭙니다. 조카 롯을 생각하고 제안한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의인 오십 명을 찾을 수 있으면 심판하지 않겠다고 답하십니다. 아브라함은 그 대답을 듣고 용기를 내어 사십오 명만 있어도 심판하시겠느냐고 다시 여쭙니다. 주님께서 그것을 허락 하시자 그 다음에는 마흔 명, 그 다음에는 서른 명, 그 다음에는 스무 명, 그 다음에는 열 명으로 수를 줄여 갑니다. 결국 아브라함은 열 명의 의인만 있어도 그 성을 심판하지 않겠다고 답을 얻어냅니다. 그런 다음 주님은 떠나가시고 아브라함도 자신의 집으로 돌아갑니다.

묵상:

우리는 하나님을 너무도 단면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고정된 사물이 아니라 인격이십니다. 인격체로서의 인간은 다양한 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사물과 인격체의 차이입니다. 사물은 언제나 같은 모습, 언제나 같은 반응만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반면, 인격체는 상황과 관계의 성격에 따라 다르게 행동하고 반응합니다. 때로는 울고 때로는 웃습니다. 때로는 분노하고, 때로는 기뻐합니다. 때로는 마음을 단단히 하여 비정해지지만 때로는 마음을 누그러뜨려 자비와 관용을 드러냅니다. 하나님이 인격이시라는 말은 그분도 역시 상황과 관계에 따라 다르게 반응하시고 행하신다는 뜻입니다. 다만, 인간은 공정하지 못하고 예측 불가능하며 부조리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반응과 행동은 언제나 옳습니다. 

18장에 기록된 아브라함과 주님과의 대화는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하나님의 모습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그분은 초월자로 멀리 계신 분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에 손님으로 변장하고 찾아 오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은 사라의 회의와 불신을 혹독하게 책망하시지 않습니다. 어린 조카의 잘못을 알고도 꾸짖지 않는 삼촌처럼 사라의 잘못을 보고도 애정으로 대하십니다. 그분은 매정하게 심판을 행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심판은 그분의 본뜻이 아니기에 어떻게든 그 상황을 면하고 싶어하십니다. 그분은 아브라함의 속마음을 알면서 그의 꼼수에 넘어가 주십니다. 아브라함이 바라듯 하나님은 열 명의 의인이라도 찾을 수 있어서 심판을 행하지 않기를 바라십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이런 하나님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그분을 “아빠!”라고 부르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사라를 대하듯 우리에게 친밀하게 다가 오셔서 함께 웃고 함께 울기 원하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연약함을 사랑으로 고쳐 주시고 때로 우리의 얄팍한 수에 넘어가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의 친절한 팔에 안기세”라고 찬송하는 것입니다

5 thoughts on “창세기 18장: 우리 곁으로 오신 하나님

  1. 주님은 무한한 자비와 은총의 하나님이 십니다. 그러나 동시에 당신이 사랑하시는 아브라함의 자리에 내려오셔서 친구처럼 대화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십니다. 다만 이러한 하나님을 신뢰하고 대화에 응답하는 자들을 찾으시는 것을 믿습니다. 그 구체적인 증거를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보여주셨습니다. 주여 이 신비를 늘 기억하게 하옵소서. 오늘 아브라함이 지나가는 손님을 접대하는 이야기를 읽으며 헨리 나우엔이 그의 책 Reaching Out에서 말했던 Hospitality and Hostility에 대한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물론 이 말씀은 히브리서 저자가 권면했던 “손님 재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에 근가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상대방을 환대하고 마음을 열고 대화할때 상대방을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비밀을 알게 된다는 이야기 입니다. 우리 한국 사람들은 유단히도 모르는사람들에 대해서는 적대감을 가지는 것 같습니다. 서양 사람들은 모르는 사람이 지나가도 하이 하고 인사하기를 잘합니다. 이로써 적대감을 해소시키느 것을 봅니다. 우리 한국 사람들은 손님을 대접할 때 어떤때는 지나치게 환대를 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낯선 사람도 친절하게 환대를 한다면 얼마나 우리의 관계가 넓어질까 생각해 봅니다. 여기서 나는 문화적인 차이를 느낍니다. 감리교 감독 중에 한분이 Radical Hospitality에 대해서 쓴 책을 보았습니다. 그것을 하나님의 성품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성품을 닮기를 원합니다. 상대방에 대해서 마음을 열고 내 안에 상대방을 초대하고 대화를 나누는 깊고도 아름다운 모습, 그 속에 하나님의 비밀이 있는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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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모르는 나그네를 귀한 재료로 만든 음식으로 대접하는것이 이삭과 같은
    의인을 낳게하는 비결 이네요.
    교회와 각 가정이 이웃을 주님의 사랑으로 섬겨 많은 의인을 배출해
    가정과 교회와 이웃과 세상을 살리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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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아브라함은 왜 하나님께 “소돔에 조카 롯이 사는데 구해주시면 안될까요? 그 성을 멸망시키시면 제 피붙이들도 다 죽는데요?” 라고 하지 않았을까요. 살려주실 “의인”의 기준에 롯이 들어간다고 확신한걸까요. 하나님 앞에 서서 값을 깎듯이 살려줄 사람 숫자를 협상하는 아브라함은 노아 때의 모습과는 다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청을 계속해서 들어 주십니다. 아브라함의 마음 속에 있는 롯을 향한 긍휼한 마음이 하나님의 긍휼한 마음을 움직였겠지요. 콕 집어 롯을 살려달라고 하지 않는 이유가 뭔지 모르지만, 몇 사람 만이라도 살아남기를 바라는 마음을 읽으셨겠지요. 소돔과 고모라는 모든 악한 도시의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멸망을 당하고 대신 영원한 오명을 얻은셈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묵상하고 싶은 주제가 여러가지입니다. 낯선 이들을 극진하게 환대하는 아브라함, 당신의 계획을 아브라함에게 숨기지 않으시는 하나님, 사라의 웃음, 아브라함의 간청…아브라함과 사라 노부부는 오늘 참으로 특별한 일을 경험합니다. 기다리다 지친 두 사람에게 일년 뒤에는 갓난아기가 있을 것이라는 기쁜 소식과, 조카가 사는 도시가 완전히 망하게 될 것이라는 무서운 소식 두 가지를 듣는 날입니다. 하나님의 자비하심에 기대어 내 마음의 두려움과 싸우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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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아부라함을 찾아 오시는 주님, 즉 내 곁에 찾아와 나하고 대화하기를 즐기시는 하나님, 난 정신없이 세상일에 빠져 조용히 곁에 와 계시는 하나님 음성을 못 듣는 나.
    늘 좋은 것으로 주시겠다고 약속하시는 하나님이지만 내가 원하는 것만을 달라고 기도하는 내 모습.
    아브라함같이 소돔과 고모라를 위해 하나님과 Deal을 하면서 끝까지 줄다리기를 하는 아브라함, 열명만 있어도 멸망시키지 않겠다는 하나님의 사랑을 통해 주님을 경배합니다, 더 귀를 열고 주님의 소근소근 하시는 말씀을 알아들을 수 있게 은총 내려주십시요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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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출근길에 성경한장읽고 묵상글을 읽으니 너무 은혜롭습니다..배경지식과 더불어 깊은묵상이 은혜로 다가옵니다..인격적이신 하나님,지나치게 묻고 또 묻는 노아에게 계속 답하시는 하나님..내 마음과 감정까지 다 이해하신다고 생각하니 가깝게 느껴지면서도 너무 인격적이라 더욱 조심스러워지기도 합니다.
    또한, 늙은 사라일지라도 능치못함 없다는 하나님의 전능하심의 말씀이 소망이 됩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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