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9장: 영향력 없는 믿음

해설:

아브라함의 장막에서 머물렀던 세 사람 중 두 사람이 소돔을 찾아갑니다. 18장에서는 그들을 “사람”이라고 불렀는데, 19장에서는 “천사”(1절)라고 부릅니다. 우리는 천사를 생각할 때 성화에서 보는 것처럼 날개 달린 신비한 존재로 상상하지만, 실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도록 보냄 받은 사람을 가리킵니다. 해 질 무렵에 그들은 롯의 장막을 지나게 되었는데, 롯은 그들이 특별한 존재들인 것을 알아채고 집안으로 모셔 들입니다. 아브라함은 송아지를 잡고 12되나 되는 많은 양의 빵을 만들어 대접한 반면, 롯은 “누룩을 넣지 않은 빵”(3절)을 구워 대접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정성에 있어서 아브라함과 롯은 크게 달랐습니다. 

그들이 잠자리에 들려 할 때 소돔 성의 각 마을에서 여러 남자들이 롯의 집에 몰려 옵니다. 그들은 롯에게 두 손님을 자신들에게 내어 달라고 위협합니다. “상관하다”(5절)는 성행위를 의미합니다. 고대 사회에서는 이방인들에게 집단적인 폭행을 가함으로서 우위를 점하려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소돔 성 사람들은 롯을 찾아온 두 사람에게 집단적인 성폭행을 행함으로써 그들을 제압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문제를 일으킨 사람들은 타고난 성향 때문에 혹은 성장하면서 만들어진 고칠 수 없는 성향 때문에 성소수자가 된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쾌락을 극대화시키기 위해서라면 어떤 형태의 성행위도 마다하지 않는 타락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소돔 성 사람들은 그 정도로 심하게 부패했던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소돔과 고모라에 대해 하나님이 심판하실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확인합니다.

이 사태를 맞아 롯은 아직 처녀인 두 딸을 내어 줄 테니 손님들에게는 아무 일도 하지 말아 달라고 간청합니다(8절). 하나님의 사람들을 보호하려는 롯의 열심은 가상하지만, 딸들에게는 해서는 안 될 일을 하겠다고 나선 것입니다. 하지만 소돔 사람들은 그 제안을 거부합니다. 그들의 목적은 이방인들에게 폭행을 가하면서 쾌락을 맛보는 데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들에게는 남녀간의 정상적인 성행위로는 성에 차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두 천사가 롯을 잡아 집안으로 끌어 들이고는 행패를 부리는 사람들의 눈을 어둡게 하여 사태를 잠재웁니다. 

두 천사는 롯에게, 이제 곧 재앙이 닥칠 터이니 모든 가족을 모으라고 일러 줍니다. 롯은 두 딸과 약혼한 사위들을 찾아가 그 사실을 알립니다만, 그들은 롯의 말을 곧이듣지 않습니다. 날이 밝아 올 무렵에 두 천사는 롯에게 서두르라고 이릅니다만, 롯은 결단하지 못하고 미적거립니다. 결국 두 사람은 롯과 그 식구들의 손을 잡아 끌어내어 소돔 성 바깥 안전한 곳에 피신시킵니다. 안전한 곳에 이르자 두 사람은 롯과 가족에게 “뒤를 돌아 보지 말고”(17절) 멀리 있는 산으로 피하라고 명령합니다. 하지만 롯이 가까운 동네로 피하게 해 달라고 간청합니다. 두 사람은 롯의 간청을 받아들여 근처에 있던 작은 성으로 피하게 만듭니다. 그들이 소알이라는 성에 안전하게 피신한 후에 소돔과 고모라에는 엄청난 재앙이 내립니다. 롯의 아내는 천사의 말을 무시하고 그 모습을 보려고 뒤를 돌아 보았다가 소금 기둥이 되고 맙니다. 

그 일이 있은 후에 롯은 심한 정신적 충격을 받습니다. 요즘 말로 하면 ‘외상후증후군'(PTSD)에 시달린 것입니다. 그는 소알에 사는 것이 두려워 두 딸과 함께 산 속 동굴로 숨어 듭니다. 그곳에서 생활하는 기간이 길어지자 두 딸에게는 자손을 이어가지 못할 것이라는 염려가 들었습니다. 당시 문화에서는 여성에게 가장 큰 힘은 자녀였고 자손을 잇는 것이 가장 큰 과제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두 딸은 결국 아버지를 통해 대를 잇기로 하고 아버지를 술에 취하게 만들어 차례로 동침을 합니다. 이렇게 하여 큰 딸의 아들에게서 모압 백성이 나왔고, 둘째 딸의 아들에게서는 암몬 백성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롯의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그의 가문은 결국 이토록 참담하게 무너지게 되었습니다.

묵상:

롯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잘못된 가치관과 그에 근거한 잘못된 선택이 얼마나 참담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를 확인하게 됩니다. 그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대한 그의 믿음은 그의 생각과 가치관과 행동 방식에 깊이 스며 들지 못했습니다. 그랬기에 그는 척박한 산악지대 보다는 비옥하고 번영했던 소돔을 주거지로 택했습니다. 

소돔을 택하는 데서 드러난 그의 사고방식과 행동 패턴은 끝까지 변하지 않습니다. 천사들이 소돔을 떠나라고 할 때 그는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미적거립니다. 먼 산으로 피신 하라고 하자 가까운 동네로 피하게 해 달라고 청합니다. 그의 사위들은 장인의 말을 곧이 듣지 않습니다. 그가 영적인 사람으로서 감화력이 있었다면 그렇게 무시 당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의 아내는 뒤를 돌아 보지 말라는 천사의 말을 어기고 돌아 봄으로써 소금 기둥이 되고 말았습니다. 결국 그는 그 모든 사태로 인해 받은 정신적인 충격으로 인해 분별력을 잃어 버리고 심한 피해망상증에 빠져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의 두 딸은 해서는 안 될 선택을 합니다. 만일 롯이 믿음의 사람으로서 제대로 살았더라면 두 딸이 그런 선택을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모든 책임을 롯에게 떠안기려는 것은 아닙니다. 각자의 죄는 각자의 책임입니다. 하지만 믿음의 사람은 적어도 자신의 가족들에게는 거룩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어야 합니다. 믿음의 사람으로서 살아온 모든 순간들은 가족들에게 교훈이 되고 지침이 되어 그 전통이 전승되는 법입니다. 그뿐 아니라 믿음의 사람은 가족을 넘어 자신이 사는 사회에 영향력을 미치게 되어 있습니다. 롯은 그 점에서 처절하게 실패했습니다. 그는 믿음의 사람이었다고는 할 지언정 그에게서는 믿음의 영향력이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그로 인해 위기가 닥쳤을 때 바닥으로 떨어진 것입니다.

아, 두렵습니다. 믿음의 사람으로서 나는 어떤 사람인지를 생각하며 두렵고 떨림으로 기도 올립니다. 나로 하여금 참된 믿음의 사람으로 살게 하시고, 그 믿음의 유산이 이어져 나가게 하소서!

7 thoughts on “창세기 19장: 영향력 없는 믿음

  1. 오늘은 롯의 믿음과 생각과 행실을 통해 어떻게 하님의 뜻이 이루어 지나를 생각해 보는 아침입니다, 롯의 뜨뜨 미지근 한 믿음때문에 사위들을 설득 못하고 또 부인까지도 소금 기둥이 될뿐아니라 처녀였던 두 딸의 부정한 행실을 보며 내 어설픈 믿음 때문에 내 자녀들의 열악한 믿음을 회개하는 아침입니다.
    내 믿음이 더 성숙해서 주변사람들과 내 친족들에게도 본이 되는 믿음으로 성장하기를 기도합니다.
    성숙한 믿음의 하루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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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적당히 믿는 척 사는 사람 아니라
    다하여 일상이 예배인 진실한 사람되길
    그래서 제 아이들과 신랑에게 증인되길 기도합니다.
    좋은 말씀 고맙습니다.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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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기본기에 충실하자

    아브라함은 소돔에 최소한 10명의 의인을 기대했지만 그의 생각과 현실은 달랐던 것 같습니다. 만일 아브라함이 10명에서 다섯을 다시 물었다 해도 하나님의 대답은 마찮가지였을 것 같습니다.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롬 3:10)

    하나님의 천사가 롯에게 묻기를 “이 외에 너에게 속한자가 또 있는냐”(12절) 한 것을 볼 때 롯의 구원은 하나님의 긍휼하심 때문이었지 롯의 의로움 때문은 아닌 것 같습니다. 나의 구원도 내가 특별해서 얻은 것이 아닌 온전한 하나님의 은혜임을 생각할 때 이아침 주님께 마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롯이 만일 자신의 선택이 이처럼 비참한 결과로 이어질 것을 미리 알았다면 번영과 풍요가 있어 보이는 소돔을 택하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세기를 통해 아브라함과 롯과의 관계를 비교적 자세히 기록하게 하신 것을 보면 롯의 잘못된 선택은 수천 년이 지난 이 시대에도 그대로 재현될 수 있음을 알리려 하신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물질적 축복이 믿음의 잣대가 되어있는 잘못된 신앙에서 벗어나야 함을 가르쳐 주신 것으로 마음에 교훈을 삼게 됩니다.

    마므레를 찾았던 아브라함과 소돔을 찾았던 롯의 삶은 똑같은 곳에서 시작되었지만 정반대의 결과로 나타난 것을 봅니다. 다시 표현 한다면 지금 한 교회를 다니고 있다 해도 마므레의 삶을 살기로 작정하고 예배 중심의 삶, 말씀과 기도의 삶을 사는 자와 번영과 축복의 말씀만 붙잡고 본질을 망각한 삶을 사는 자와는 먼 훗날 아브라함과 롯의 차이와 같이 극명한 차이로 나타날 것을 말씀해 주시는 것 같습니다.

    우리 교회에서 새로운 각오로 시작하는 속회 모임은 작은 공동체가 건강할 수 있는 더없는 기회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내가 비록 아브라함의 신앙에는 미치지 못할지라도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의 사람과 함께 한다면 아브라함의 복을 받을 것이겠지만 신앙의 공동체를 통해 각오하고 신앙에 올인하지 않고 번영신앙에 머물러 있다면 롯의 삶과 같이 무의미한 인생으로 마감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롯은 천사를 알아 볼 수 있는 눈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그의 믿음은 무기력했던 것을 보게 됩니다. 아브라함과 함께 우르를 떠났지만 예배가 없었고 하나님과의 사귐도 없었던 그의 삶은 어려움이 처했을 때 주변에 아무런 영향력을 줄 수 없었던 껍데기만 남은 믿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믿음의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는 공동체는 너무나 중요한 것 같습니다. 좋은 목회자를 섬기며 좋은 믿음의 동역자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며 말씀을 나누고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귀한 축복인가요.

    우리의 삶은 늘 갈림길을 만나는 것 같습니다. 롯의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겠다는 보장이 어디 있을까요. 그렇지만 늘 믿음의 기본기에 충실할 때 하나님께서 선한 길로 인도해 주실 것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시며 곧 믿음의 삶을 살기고 작정한 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주님, 예배중심, 말씀중심, 기도중심의 믿음의 기본기에 늘 충실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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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가진 모든것, 생명까지도 기쁘게 바치는 믿음을 원합니다.
    좁고 험한 길로 가는 먼 산 이지만 끝까지 순종하는 믿음입니다.
    Mercy on me! Mercy on me! LORD. A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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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창세기를 읽는 요즘 부쩍 여성신학자들의 생각을 들어보고 싶어집니다. 어제처럼 오늘도 묵상해볼 것들이 참 많은데 끝에 나오는 롯의 딸들을 보니 더욱 여성의 입장으로 성경을 해석하는 것은 어떠할까 궁금합니다. 남자와 여자의 관점 차이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고 그분을 배운다는 것이 중요하겠지요. 롯의 사람됨이 더 잘 보이는 본문입니다. 아브라함과 살 때 롯이 어땠는지 막연하게 생각해봤다면 오늘 보여지는 롯은 여러 면에서 안 된 사람입니다. 손님 대접이 아브라함만 못한 것은 물론이지만, 손님 대신 처녀 딸들을 내주겠다는 생각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요. 그쪽 동네 풍습이었을까요…악하고 저급한 행동을 서로 묵인하고 “다들 그러고 살아”하면서 넘어가는 풍조는 누군가의 희생 없이는 고치기 힘든 병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롯은 매사를 자기식으로 해결해 보려고 합니다. 피해서 가라는 데로 가다가 죽으면 어떡할까 싶어 자기 생각에 괜찮아 보이는 곳으로 가겠다고 합니다. 막상 가서는, 그곳도 무서워서 동굴로 피합니다. 부인이 소금기둥이 된 것을 목격하지는 않았겠지요, 부인이 앞서 뛰지 않은 한 그걸 보려고 뒤돌아섰으면 그도 멸망했겠지요. 후사를 이으려는 뜻은 이해하지만 동굴에서 나와 삶을 개척하려 하지 않고 아버지를 통해 이루려고 한 딸들도 롯의 안목을 넘어서지 못합니다. 하갈을 통해 아들을 얻으려고한 사라와도 오버랩 됩니다. 다 자기 생각대로 해봤지만 잘 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큰 사고를 만났지만 극적으로 피해 살아남은 사람들은 대개 그 순간을 전환점으로 새롭게 살게 됩니다. 충격으로 망가지는 사람도 있지만 덤으로 얻은 인생이라 여기고 예전보다 성실하게 살려고 애씁니다. 롯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멸망하는 도시에서 살아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멸망의 시간을 만들어갑니다. 어리석은 판단을 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묵상하는 아침입니다. 내 방식대로 살려고 하는 마음을 다스려 주소서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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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오늘 아침 롯의 이야기를 다시 묵상하면서 하나님과 개인적인, 인격적인 관계를 맺고 친밀하게 대화하는 관계 안에 있지 않고 형식적인 이름뿐인 믿음의 생활의 결과가 끝까지 아브라함의 기도를 따라 롯의 가문을 구하려고 하시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에도 불구하고 어떠한지를 다시 한번 드라마틱하게 발견하게 됩니다. 내가 일생을 목회하여 왔지만 얼마나 치열하게 이 문제를 깨닫고 최선을 다했는가를 돌이켜 봅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고 그와 동행하며 주님의 영원한 언약(berit olam 창 17:7,13,19) 안에 거하는 아블함과 그의 후손이 그 오랜 고난과 멸종의 위기 속에서도얼마나 놀랍고 엉청난 먼 미래의 약속을 믿고 살아남은 민족으로 살고 있는가를 봅니다. 본래 롯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영원한 언약을 맺기 전에 이미 눈에 보이는 풍요를 따라 자기 욕망을 추구하는 삶을 선택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언약의 피로 구속함을 받고 그 언약 안에 성령으로 인침을 받은 자녀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의의 나라 사랑의 나라를 상속받은 상속자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이제 우리의 과제는 바울이 말한대고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이 구원을 끝까지 이루기 위하여 언약에 합당한 삶을 살도록 최선을 다하며 달려가는 것입니다. 주여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나를 도와 주시옵소서 이 영원한 언약을 늘 기억하고 감사와 기쁨과 산 소망 안에서 살게 하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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