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3장: 아브라함의 영적 도약

해설:

이야기는 또 다시 20여 년의 시간을 뛰어 넘어 이어집니다. 사라는 127세에 세상을 떠납니다. 이삭을 낳은 지 37년 후의 일이요, 모리아 산 사건이 있은 지 20여 년 후의 일입니다. 아내가 세상을 떠나자 아브라함은 헷 사람에게로 가서 무덤으로 사용할 땅을 사게 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나는 여러분 가운데서 나그네로, 떠돌이로 살고 있습니다”(4절)라는 말에서 보듯, 아브라함은 그 때까지 땅 한 뙈기도 자신의 소유로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의 요청에 대해 헷 사람들은 아무 곳이든 마음대로 사용 하라고 대답합니다. “어른은,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세우신 지도자이십니다”(6절)라는 말에서 보듯, 그들은 아브라함을 영적인 인물로 존경하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은 그들의 선의에 감사하는 뜻으로 일어나 그들에게 절을 하고는 다시 요청합니다. 그는 이미 막벨라 굴을 아내의 묘지로 점 찍어 두고 있었습니다. 팔레스틴 지역에는 돌산이 많기 때문에 자연 동굴이나 인조 동굴을 무덤으로 사용했습니다. 그 굴은 에브론이라는 헷 사람의 소유였습니다. 아브라함은 헷 사람들에게, 에브론을 설득하여 막벨라 굴을 자신에게 팔게 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런데 에브론이 그들 중에 있었습니다. 그는 이 말을 듣고 나서서 아브라함에게, 그 굴과 굴에 딸린 밭을 모두 무상으로 주겠다고 제안합니다. 그 말을 듣고 아브라함은 또 한 번 큰 절을 한 후에 정당한 값을 치루게 해 달라고 사정합니다. 에브론은 다시 한 번 그냥 그 땅과 굴을 가지라고 청합니다만, 아브라함은 결국 은 4백 세겔을 주고 그 땅과 굴을 매입합니다. 

이렇게 하여 가나안 땅에 첫 번째로 아브라함 소유의 땅이 생깁니다. 나중에 아브라함도 죽어서 이곳에 묻힙니다. 이 무덤은 아브라함 자손들에게 있어서 하나의 이정표가 됩니다. 야곱은 흉년을 피하여 이집트로 이사한 후에 세상을 떠날 때 자식들에게 자신의 시신을 막벨라 굴에 묻으라고 유언을 남깁니다(49:29). 낯선 땅에서 조상이 묻힌 무덤은 자손들에게 이정표가 되어 준다는 사실을 여기서 봅니다.

묵상:

 여기서 우리는 영적으로 완숙함의 경지에 오른 아브라함을 만납니다. 아마도 모리아 산에서의 체험이 그를 전혀 다른 사람으로 만들었을 것입니다. 아들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시험은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었지만, 그렇기에 그 시험은 그의 영성과 인격을 새로운 차원으로 옮겨 놓았을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모리아 산 이후의 아브라함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보여 주는 하나의 샘플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이방 민족들에게조차 하나님께서 세우신 지도자로 인정 받았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그 인정과 존경을 누리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끝내 고집을 부려 에브론에게 제 값을 치루고 밭과 굴을 사려는 태도에서 그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가나안 땅에 도착한 이후 60년이 넘도록 땅 한 뙈기도 소유할 생각 없이 정처 없이 떠돌아 다녔다는 사실도 놀랍습니다. 이민자들에게 가장 안정감을 주는 것은 토지입니다. 그렇기에 이민자들은 어떻게든 집을 사려하는 것입니다. 고향으로부터 뿌리 잘린 불안감을 토지 소유로 달래 보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우리와 다르지 않았을 터인데, 그는 사라가 죽을 때까지 무덤으로 쓸만한 땅조차 마련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모리아 산에서 아들 이삭에게 매어 있던 희망의 줄을 끊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만 믿고 고향을 떠난 아브라함은 이삭을 낳은 이후로 하나님이 아니라 이삭을 믿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삭에 대한 믿음의 줄을 끊도록 이 시험을 주셨던 것입니다. 그런 시험을 통해 영적으로 도약했기에 그는 땅 소유에 목을 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나그네처럼, 유랑민처럼 살 수 있었습니다. 그랬기에 그는 막벨라 굴을 거저 가지라는데도 극구 사양할 수 있었습니다. 

이 아침, 나는 어디에 희망을 두고 사는지 스스로에게 물어 봅니다. 아직도 물질에 대한 욕심에 매어 있고 눈에 보이는 것으로 불안감을 달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 봅니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 대한 든든한 믿음을 구합니다.  

4 thoughts on “창세기 23장: 아브라함의 영적 도약

  1. 유목민으로 떠돌이 하는 아브라함이지만 떠돌아 다니는 각각의 지역에서 존경을 받는 아브라함을 통해 상매매의 진수를 생각해 봅니다, 그가 가장 사랑했던 아내 사라의 마지막 순간까지 지극 정성을 다해 가장 좋은 무덤 자리를 법적으로 마련하는 아부라함의 정성, 훗날 본인도 같은 장소에 묻히는 수구초심을 통해 우리 이민자들의 처지와 비교를 해 봅니다, 떠돌이 생활을 통해 성숙해 가는 아부라함의 믿음을 보며 내 이민 실생활속에서 내 믿음이 성숙되기를 기도합니다, 주일 날 교회에 있을 때만이 아니라 삶의 현장에서 더 신실 한 믿음으로 성숙해 나가기를 기도하며 다짐해 보는 아침입니다, 주님 곁에서 보호해 주시고 지켜주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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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아브라함이 사라를 장례할 땅의 값을 제대로 치루는 것을 봅니다. 멋집니다. 부동산 거래에 명예와 긍지가 들어 있습니다.
    일생을 같이 한 아내에 대한 예우로도 멋지고, 성공한 “타지인”으로서 토착민들과 화친하는 모습도 보기 좋습니다. 공짜로 땅을 준다니 웬 횡재냐 하지 않고 확실하게 소유권을 이전함으로써 하나님의 약속을 성실하게 받드는 결과가 됩니다. 사라를 누이라고 소개했다 이집트에서 나올 때와 두번째 아비멜렉과 헤어져 나올 때에 큰 재산을 얻었던 일이 이번 장면에 겹쳐집니다. 사라와 자신이 영면할 땅을 사는 데 아낌없이 돈을 쓰는 아브라함의 마음이 짠하기도 합니다. 이방의 땅에서 성공한 삶을 살았다고 칭송 받는 그의 일생이 근심 없는 매일이 아니었음을 알기에 그가 자신을 나그네요 외국인이라고 표현할 때 타향살이의 아픔이 전달됩니다. 나 또한 타향에서 살기에 그럴까요…한국에서 살아도 타향살이 같은 외로움을 맛 볼 때가 있지 않나요. 세상살이는 어디에서 살든 떠돌이처럼 느낄 때도 있는가하면 그 어디나 하늘나라라고 말할 때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어디에 사는지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확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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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100세에 얻은 아들 이삭을 바치려는 아브라함의 믿음의 행위와 그 이삭을 다시 선물로 주시고 하나님의 축복의 언약을 다시한번 확인해 주시고 공고히 하시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순종과 부활의 원형을 보는 것 같습니다. 어떤 신하자는 아브라함을 이삭을 부활의 형태로 다시 받은 것이라고 말했던 것이 생각납니다. 이러한 믿음의 체험과 확신을 가진 아브라함의 믿음의 행보는 이방인 중에 나그네로 거하는 그의 믿음이 얼마나 완숙하였는가를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이 믿음은 그를 세상에서 믿음의 지혜로 행하는 영적인 지혜의 사람으로 존경받게 됩니다. 나는 아브라함의 부활신앙은 바로 우리들의 믿음의 원형원리라고 생각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러한 믿음으로 말미암는 소망을 영혼의 닻이라고 하였습니다.
    주님, 아브라함을 통하여 보여주신 이 믿음의 아름다운 생명의 원리를 늘 생각하며 모든 면에서 그리스도의 빛과 향기를 나타내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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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현실을 보고 불안해하지 않고 아브라함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임을 믿고 의지하며 살아가기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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