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5장: 맏아들의 권리

해설:

사라가 죽은 이후에도 아브라함은 40여 년을 더 살았습니다. 그는 그두라라는 여인을 후처로 맞아서 여러 아들을 얻습니다(1절). 그들의 자손들은 각각 번성하여 여러 민족의 조상이 됩니다. 그는 세상을 떠나기 전에 후처의 아들들에게 재산을 나누어 주고 분가시킵니다. 그리고는 175세에 파란만장한 생을 마감합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하란을 떠난 지 100년이 되는 해에 세상을 떠난 것입니다. 이삭과 이스마엘은 사라를 매장한 막벨라 굴에 아버지 아브라함을 안장합니다. 아브라함이 세상을 떠난 후에도 하나님은 이삭과 이스마엘에게 축복을 해 주십니다. 

이제 성경 저자는 이야기의 초점을 아브라함에게서 이삭에게로 돌립니다. 이삭이 40세 되던 해(즉 아브라함이 140세 되던 해)에 결혼을 합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리브가에게 아기가 들어서지 않습니다. 이삭은 그 문제를 두고 하나님께 기도했고(21절) 결혼한 지 20년이 되어 응답을 받습니다. 리브가의 태에 들어선 아이는 쌍둥이였습니다(22절). 리브가는 태동이 너무 심하여 하나님께 호소합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그의 태중에 두 민족이 들어 있으며 형이 동생을 섬길 것이라고 계시해 주십니다(23절). 리브가는 이 말씀을 마음에 깊이 새겨 두었을 것입니다.

때가 되어 해산을 했는데, 먼저 나온 아이는 “살결이 붉은데다다 온몸이 털투성이어서”(25절) ‘털’이라는 의미로 ‘에서’라고 이름 짓습니다. 첫째에 이어 둘째가 나오는데 마치 에서의 발꿈치를 잡고 있는 듯했습니다. 리브가는 두 아이가 먼저 나오려고 싸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둘째 아이의 이름을 ‘발꿈치를 잡다’ 혹은 ‘속이다’라는 의미로 ‘야곱’이라고 지었습니다. 리브가는 두 아이를 키우면서 하나님께로부터 들은 예언의 말씀을 마음에 두고 곰곰이 지켜 보았을 것입니다. 어른으로 자랐을 때 큰 아들 에서는 날쌘 사냥꾼이 되어 들사람으로 살았고, 둘째 야곱은 농사를 지으며 집에서 지냈습니다. 아버지 이삭은 에서를 좋아했고, 어머니 리브가는 야곱을 좋아했습니다(27-28절).

성경 저자는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후의 일 하나를 전해 줍니다. 어느 날 에서가 사냥을 나갔다가 허기가 져서 돌아 옵니다. 그 때 야곱은 집에서 죽(렌틸 스프)을 끓이고 있었습니다. 에서가 야곱에게 한 그릇 먹게 해 달라고 요구하자 야곱은 “형은 먼저, 형이 가진 맏아들의 권리를 나에게 파시오”(31절)라고 흥정을 합니다. 그러자 에서는 “이것 봐라, 나는 지금 죽을 지경이다. 지금 나에게 맏아들의 권리가 뭐 그리 대단한 거냐?”(32절)라고 답합니다. 야곱은 형에게 맹세하라고 요구했고, 에서는 동생에게 맹세한 후 죽 한 그릇을 전해 받습니다. 성경 저자는 여기서 “에서는 이와 같이 맏아들의 권리를 가볍게 여겼다”(34절)고 적어 놓습니다.

묵상:

맏아들의 권리를 두고 야곱과 에서 사이에서 이루어진 흥정은 두 사람의 사고 방식과 행동 방식의 패턴을 보여 주는 하나의 사례입니다. 그 한 가지 이야기로 두 사람이 어떤 인물로 자랐는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고대 사회에서 큰 아들에게 주어지는 유형, 무형의 특권이 얼마나 컸는지를 고려하면 쌍둥이의 둘째로 태어난 야곱이 겪었을 억울한 심정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불과 몇 분 차이로 둘째가 되었는데, 그로 인해 자신에게 주어진 손실은 너무도 컸습니다. 그는 어떻게든 자신에게 덧씌워진 한계를 벗고 싶었습니다. 그런 간절함이 형의 허기를 볼모로 잡아 맏아들의 권리를 빼앗는 비열한 행동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에서는 어찌 보면 아주 대범하고 통큰 사람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 저자는 맏아들로서의 권리를 가볍게 여긴 것이 그의 큰 불찰이었다고 지적합니다. 야곱의 행동도 옳다 할 수 없지만, 에서의 행동에 더 큰 문제가 있었던 것입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결함을 채우려는 야곱의 태도에도 문제가 있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천부적인 권리를 가볍게 여기는 태도에는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앞으로 보겠지만 야곱은 자신의 수단으로 결함을 채우기 위해 노력하다가 벽에 부딪히고 마침내 하나님께 항복합니다. 그로 인해 야곱은 하나님의 축복을 경험합니다. 반면, 에서는 이러한 태도로 인해 받았던 축복까지 다 잃어 버립니다.

잠잠히 눈 감고 나에게 이미 주어진 ‘맏아들의 권리’는 무엇인지 생각해 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은혜와 약속을 의미한다 할 수 있습니다. 혹시나 세상적이고 물질적인 것들에 대한 유혹 때문이 하나님의 은혜와 약속을 하찮케 여기는 일은 없었는지 돌아 보며 기도 올립니다.     

4 thoughts on “창세기 25장: 맏아들의 권리

  1. 골고다의 수모와 고통까지 기꺼이 허락하시는 주님의 사랑을
    머리로 이해할수록 없지만 믿습니다. 그 믿음 세상의 유혹과
    바꾸지 않도록 붙잡아 주십시오.
    자손 대대로 이 귀한 유산을 전하도록 도와 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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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을 들은 뒤에도 이삭을 얻기까지 25년 정도 걸렸습니다. 이삭 역시 20여년 동안 자식이 태어나기를 기다립니다. 하늘의 별만큼 셀 수 없이 많은 자손을 약속 받지만 정작 자기의 품에 아기를 안아볼 때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린 것을 봅니다. 귀하디 귀한 선물을 받기까지 인내와 고통, 기다림과 자기부정의 시간이 따라야만 진정 그 귀함을 알 수 있나 봅니다. 오늘의 스토리는 둘 사이에 여러번 있었을 법한 스토립니다. 바깥에서 뛰어놀다 들어온 에서는 배가 고파 허겁지겁 먹을 것을 찾습니다. 밖에 잘 안 나가는 야곱은 엄마와 더 친하지만 늘 아버지의 인정이 고픕니다. 간발의 차이로 뒤에 나온 운명이 참 야속합니다. 평소 쌍동이끼리 주고받는 대화를 상상해 봅니다. “형은 좋겠다, 맏이라서” “좋긴 뭐가 좋아 아버지 하라는대로 다 해야하고 내 맘대로 못사는데” “내가 먼저 나왔으면 형이 나한테 굽신거려야 하는데” “그래도 너한테 굽신거리진 않았을걸” 평소에도 이런 대화를 주고 받는데 렌틸 숩 사건이 일어난 오늘은 배도 몹시 고픈 참에, 야곱이 “오늘 만이라도 내가 맏이었으면 좋겠다” 하는 소리에 에서가 답합니다. “바꿔줘? 너가 나 할래? 뭘 줄건데? 배고파 죽겠는데 그 숩 나부터 먹자” 독자로서 우리는 오늘의 일 때문에 맏이의 권리가 야곱한테로 간 것이 아니라 이삭이 장자를 축복할 때 야곱이 에서인 척하고 받는 사기 도둑질 때문인 것을 압니다. 하지만 에서가 맏이의 특권과 책임을 귀하게 여기지 않았음은 분명합니다. 그런만큼 야곱의 결핍과 욕망이 컸던 것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타고난 성정과 은사는 우리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가 생각하게 됩니다. 태중에 있을 때에 이미 운명이 결정지어졌다해도 오늘 감리교 독자의 눈에는 예정론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읽혀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 안에도 맞서는 두 형제가 있음을 묵상하게 됩니다. 이미 있는 것을 하찮게 여기는 교만과 굳이 없는 것을 가지려는 욕망 사이를 왔다갔다 하는 나 자신을 봅니다. 예수님의 스토리 중에도 맏이와 둘째의 유명한 이야기가 있지요…맏이의 본분을 다하고 산다고 자부하는데도 오히려 아버지는 집 나갔다 돌아온 못된 아우를 반기다 못해 잔치까지 엽니다. 뚜껑이 열리고 맙니다. 아버지와 늘 있을 때는 아버지 귀한 줄 모르다 동생한테 뺏겼다 싶으니 견딜 수 없어진걸까요. 내게 있는 복을 세어보는 아침입니다. 맏이냐 아니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라는 은혜가 그저 감사한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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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오늘 아침 유대인들의 민족 신화같은 이 스토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로 구원을 얻고 영생의 축복을 약속 받은 새 이스라엘로 부르심을 받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이 공평하지 못한 야곱의 스토리로 인하여 잠시 당황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에서의 처사와 행보를 보고 영생의 특권을 부여받은 이 놀라운 축복의 약속을 세상의 어느것과도 바꿀 수 없는 생명이라는 사실을 늘 생각하며 어떠한 위기에서도 소홀히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명심하게 됩니다. 그러나 주여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시옵소서. 믿음의 반석위에 굳게 굳게 서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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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아브라함이 후에 얻은 자식들과 이삭을 떨어져 살게 구별을 하며 또 훗날 이스마엘의 12후손도 이삭과 떨어져 살면서 각자가 주어진 곳에서 살면서 한 민족을 이루어 나가고, 이삭이 르브가와 낳은 쌍둥이 에서와 아곱의 다툼을 통해 우리 인간의 한계를 말씀해 주시는 하나님, 하나님이 태 속에서 이미 야곱을 선택했기에 필연적으로 에서가 야곱을 섬기는 아이로니를 보며 하나님의 의중이 무엇인지 기도하며 기도의 내용과 관계없이 주님의 결정을 따르는 믿음을 간구합니다, 이 세상이 내 뜻대로 되지 않을 때도 주님의 의를 구하며 그 결과를 받아들이는 믿음으로 나가기를 기원합니다, 조용히 주님의 말씀을 듣는 하루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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