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7장: 축복을 나누는 삶

해설:

이삭이 시력을 잃을 정도로 나이 들었을 때 맏아들 에서를 부릅니다. 세상을 떠날 날이 멀지 않았다고 생각했기에 정신이 아직 온전할 때 큰 아들 에서에게 축복을 해 주어야겠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가장이 죽기 전에 자녀들에게 주는 축복의 기도는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이삭은 에서에게 그런 뜻을 전하고 별미를 만들어 오라고 지시합니다. 

그 이야기를 리브가가 엿듣습니다. 25장 28절에서 밝힌 대로, 이삭은 당시 전통대로 큰 아들 에서를 편애했고 리브가는 태몽을 통해 받은 계시로 인해 야곱을 편애했습니다. 에서가 사냥을 나간 사이에 리브가는 급히 별미를 만듭니다. 리브가는 야곱을 에서로 변장시키고 별미를 가지고 아버지 앞에 가게 합니다. 이삭은 그가 에서인지를 확신하지 못하고 재차 확인합니다. 어떻게 이렇게 빨리 사냥을 할 수 있었느냐고 묻자 야곱은 “아버지께서 섬기시는 주 하나님이, 일이 잘 되게 저를 도와 주셨습니다”(20절)라고 답합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하나님까지 끌어 대어 거짓말을 한 것입니다. 이삭은 다시금 에서인지를 확인한 후에 별미를 맛있게 먹고는 마음 다해 장자로서의 축복을 빌어 줍니다.

야곱이 아버지의 축복기도를 받고 나올 때 에서가 사냥에서 돌아옵니다. 그는 별미를 만들어 아버지에게 가서야 야곱이 자신이 받을 축복을 가로챘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삭도 야곱에게 속은 사실을 알고 부들부들 떨 정도로 충격을 받습니다. 이삭은 에서에게, 이미 뱉은 축복의 말을 회수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에서는 남은 축복이라도 자신에게 빌어 달라고 부탁했지만, 이삭은 이미 모든 축복을 야곱에게 빌어 주었다고 답합니다. 에서가 강권하자 이삭은 입을 열어 축복의 말을 하려 했으나 그의 입에서 나온 것은 축복의 말이 아니라 저주의 말이었습니다(39절). 

이 일로 인해 에서는 야곱에게 원한을 품습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는 날이 곧 야곱의 제삿날이라고 말하면서 별렀습니다. 리브가가 그 낌새를 알아채고는 야곱에게 하란에 있는 오빠 라반의 집으로 피신해 있으라고 지시합니다. 그런 다음 리브가는 이삭에게 에서의 아내들에 대한 불평을 쏟아 놓습니다. 그러면서 야곱을 하란으로 보내어 친족 중에서 아내감을 찾게 하자고 제안합니다. 

이 이야기에서도 이삭은 무력하게 당하는 사람으로 나옵니다. 리브가는 결혼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것처럼 지혜롭고 민첩하고 결단성 있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그는 야곱을 위해 이 모든 것을 계획하고 실행합니다. 리브가는 태몽에서 들은 하나님의 계시를 이루기 위해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것이 일을 더 꼬이게 만듭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인간의 술수와 속임수와 폭행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리브가는 에서와 야곱을 동일하게 사랑하면서 신실하고 진실하게 하루 하루 살았더라면 하나님의 계획이 아름답게 이루어지는 것을 보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자신의 술수로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려고 함으로 인해 가족을 원수로 만들고 두 아들을 고생시키고 하나님의 계획이 지연되게 만들었습니다.

묵상:

현대 독자들은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여러 가지 의문을 가질 것입니다. 세상을 떠나기 전에 자녀를 위해 마음껏 축복해 주고 싶은 것은 믿는 부모라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바램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가로채기 위해 리브가와 야곱이 벌이는 사기극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렇게까지 하면서 축복기도를 가로채야 했을까 싶습니다. 또한 속아서 야곱에게 축복 기도를 해 준 다음에 에서가 소리치며 울면서 자신에게도 축복해 달라고 할 때 이삭이 “이미 축복을 다 해 주었기에 남은 것이 없다”고 답하는 장면에서는 더 의아스럽습니다. 우리 같으면 야곱에게 준 축복기도를 무효라고 선언하고 다시 기도해 주었을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축복기도에 대한 지나친 혹은 빗나간 믿음 때문이라고 치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앞에서 드린 축복기도에 대한 경외감과 무거운 신뢰를 여기서 봅니다. 축복기도가 단순한 예식이나 형식이 아니라 그들의 삶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실체라는 믿음이 그들에게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함부로 해서도 안 되고, 일단 발설하고 나면 회수할 수도 없다고 믿은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축복기도를 두고 벌이는 가족들의 싸움이 유치해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행한 일에 대한 묵직한 믿음을 여기서 봅니다. 

이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믿음이 너무 세속화되고 인본주의화된 것은 아닌지 자문해 봅니다. 부모로서 자녀를 위해 마음 다해 축복기도를 해 주는 것은 참으로 거룩한 일입니다. 믿는 사람으로서 다른 사람들을 축복하는 것은 아주 귀한 일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 축복의 기도는 실제입니다. 그 기도가 내 입을 떠나는 순간 하나님의 손에 옮겨지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 또한 다른 사람 앞에 겸손히 고개 숙이고 축복의 기도를 받을 줄 알아야 합니다. 많은 이들이 보여주는 ‘축복집착증’에 대한 거부감으로 인해 하나님의 축복을 배제하고 살아가는 인본주의에 빠지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4 thoughts on “창세기 27장: 축복을 나누는 삶

  1. 예정 된 것이 이루어 지는 과정을 보며 왜 그런 과정을 통해 야곱이 축복을 받을까 ? 이해는 안 되지만 그런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내 이해를넘어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부모님들이 하는 기도가 곧 하나님의 축복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받아들여 우리 자녀들을 위해 기도할 때 온정성을 다해 신실한 기도를 해야겠다고 다짐합니다.
    편애하는 리브가를 통해 인간의 허약점을 느끼며 그런 것들을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더 열심히 기도하며 정도의 길을 걷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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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세상의 유산을 더 받으려고 서로 싸우는 형제들을 흔히 봄이다.
    예수님을 통해 믿는 하나님은 남에게 속는 주님이 아님을 깨우쳐
    주시는 성령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자녀들에게 골고루 하늘의 은혜를 축복하는 부부가 되기를 원합니다.
    이웃에게도 축복이 되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 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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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오늘 아침 야곱이 그 어머니와 합작하여 형 에서가 받을 축복을 앞 못보는 아버지를 속여서 가로 채는 사악한 행위를 봅니다. 이것이 욕망을 따르는 인간들의 길이라는 것을 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축복이 무엇인지 모르고 자신들의 우상을 따르는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먼 훗날 창37:9에서 요셉이 아버지 야곱을 바로왕에게 소개할때 야곱이 대답하는 말이 생각 납니다.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실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이러한 인생이 야곱이 바라던 하나님의 축복이었떤가? 그러나 하나님의 손에서 야곱은 지극히 낮아져서 하나님의 은혜로 잃었던 아들 요셉을 만나게 되고 바로 앞에 서게 되며 그 온 가문이 구원을 받습니다. 우리의 축복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에 붙잡히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50여년 전에 읽었던 중국의 영성가 워치만 리의 “주의 형상을 닮아”라는 책이 생각납니다. 그는 여기서 바로 야곱의 고백을 인용하며 주의 손에 잡혀서 모든것을 주님의 은혜로 고백하고 있는 모습을 이야기 합니다. 우리가 바라는 하나님의 축복이 무엇인가? 그러나 우리가 바라는 하나님의 축복은 우리의 상상을 넘어 영원한 복을 주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깨닫고 찬양과 경배를 주님께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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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복은 무엇일까요. 아들을 주신다고 약속하신 뒤 25년이 지나서야 사라는 이삭을 낳습니다. 기다리는 사이에 자기 식으로 약속을 해석하여 하갈에게서 이스마엘을 얻습니다. 이삭의 아내 리브가도 오랫동안 불임이다가 어려운 임신기간을 지나 쌍동이를 낳습니다. 기도 속에 형이 아우를 섬긴다는 음성을 듣습니다. 그 음성이 없었어도 야곱을 편애 했을까요. 남편과는 그 꿈을 의논하지 않았나봅니다. “저주는 이 어미가 받으마”라고까지 하며 늙은 아버지를 속이게 합니다. 리브가도 사라처럼 자기식으로 야곱의 복을 해석합니다. 긴가민가하는 이삭, 음성은 아닌데 만져보니 에서 같기도 한데…조마조마한 드라마 장면을 보는 것 같습니다. 정작 집에 들어온 에서 앞에는 무엇이 기다리나요. 실망과 증오만 남습니다. 이삭이 이쯤에서 심장마비로 죽지 않은게 이상할 정도입니다. 리브가는 이 일을 수습하려다 사랑하는 아들과 생이별을 합니다. 야곱은 축복의 기도를 받음과 동시에 죽음의 위협을 받습니다. 형이 살아 있는 한 자기 목숨은 안전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안온하고 따뜻한 엄마 아버지 집에서 도망을 가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복이 무엇이길래…우리 역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과정에서 내 식대로 해석하는 일이 많습니다.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일도 결국은 나에게 의미있는 해석, 내가 이해하기 쉬운 쪽으로 흘러가게 됩니다. 어디 여행을 가든, 영화를 보든 “아는대로 보인다”는 말을 합니다. 성경이 살아있는 능력의 말씀으로 다가오려면 내 마음을 두드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하고, 그 음성은 내 이해와 경험의 수준 안에서 들립니다. 물론 상상할 수 없이 크고 놀라운 차원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기적이나 기적 같은 일을 경험할 때도 있습니다. 복은 무엇일까요. 내 마음을 편하게 하지도, 기쁘게 하지도 않는 일을 만나도 하나님을 생각하나요. 작년에는 가게에 도둑이 들어 금고를 통째로 들고 나간 일이 있었습니다. 두 주일 전에는 은행에서 나오는 남편을 뒤따라와서 과일 장을 보러 들어간 사이에 차 유리창을 깨고 가방을 훔쳐간 사건을 당했습니다. 가게에서 쓸 동전이라 무겁기만 할 뿐 큰 돈은 되지도 않는데 대낮에 마켓 주차장에서 유리창을 깨고 훔쳐간겁니다. 우선 기분부터 나쁩니다. 경찰에 신고하는 일, 유리창 새로 끼우는 일, 신분도용이나 카드 남용은 없는지 체크 하는 일…등등으로 마음이 바쁘고 어수선합니다. 그 날 저녁에 선명하게 깨달았습니다. “하나님 은혜 아니면 한 순간도 위험하지 않은 때가 없구나!” 하나님이 안 보이니 하나님 없이 살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는 우리의 한계가 복의 “쌍동이” 해석입니다. 하나님 없으면 나도 없다는 깨달음이 복입니다. 장자라서, 남자라서, 유대인이라서 복을 받았다 라는 것은 복음이 아닙니다.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왔음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이 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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