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32장: 야곱에서 이스라엘로!

해설:

야곱이 드디어 개운한 마음으로 고향 땅을 향해 갑니다. 그 때 하나님의 천사들이 야곱 앞에 나타납니다. 하란 땅으로 향할 때 나타나셨던 하나님이 그 땅을 떠날 때 다시 나타나신 것입니다. 어떤 방식으로 나타나셨는지에 대해서는 자세한 언급이 없습니다. 야곱은 벧엘에서 그랬던 것처럼 “이 곳은 하나님의 진이구나!”라고 하면서 그곳의 이름을 ‘마하나임’이라고 짓습니다(1-2절).

야곱은 선발대를 보내어 형 에서에게 자신이 고향으로 돌아가고 있음을 알립니다. 그 말을 듣고 에서는 사백 명의 부하를 데리고 야곱을 맞으러 나옵니다. 그 말을 듣고 야곱은 두려움에 질려 하나님께 기도를 올립니다(9-12절). 에서가 자신을 해치려 오는 줄로 알았던 것입니다. 과거에 야곱은 자신의 꾀로 문제를 해결해 보려 했으나 이제는 하나님께 먼저 문제를 아뢰고 도움을 구합니다. 

그런 다음 그는 형 에서에게 선물로 줄 많은 수의 짐승을 구별합니다. 야곱은 선물 부대를 여럿으로 나누어 보냄으로써 형의 마음을 누그러뜨리려 했습니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긴다는 말은 자신은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야곱은 자신에게 있는 지혜를 모두 동원하여 형의 마음을 풀어 주려 했습니다. 

야곱은 맨 뒤에서 두 아내와 두 여종과 열 한 아들을 데리고 얍복 나루를 건넙니다. 그는 식구들을 모두 건너가게 한 다음 뒤에 홀로 남았는데, 누군가가 나타나 그의 길을 막습니다. 야곱은 그를 제치고 나아가려 했지만 그가 비켜 주지 않습니다. 그의 힘이 어찌나 강했던지 밤이 새도록 야곱은 그와 씨름을 벌여야 했습니다. 날이 밝아오려 하자 그 사람은 야곱을 당할 수 없다고 느끼고는 그의 엉덩이뼈를 칩니다. 부상을 당하고도 야곱은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는 그가 하나님의 천사인 줄 알고는 축복을 해 주기 전에는 놓아주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립니다. 

그 천사는 야곱에게 ‘이스라엘'(‘하나님과 겨루다’)이라고 새 이름을 주십니다. 야곱은 천사에게 이름이 무엇이냐고 묻습니다만, 천사는 대답하지 않고 그에게 축복을 베풀어 줍니다. 아침이 되자 야곱은 그곳의 이름을 ‘브니엘'(‘하나님의 얼굴’)이라고 짓습니다. 그가 브니엘을 지날 때에 아침 해가 떠올랐습니다. 야곱에게 새로운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비록 그는 엉덩이뼈에 부상 당하여 평생토록 장애를 입고 살았지만 그의 삶에 새로운 장이 열렸습니다.

묵상:

살다 보면 절체절명의 때가 있습니다. 피할 수도 없고 대면할 수도 없는 갈림길에 설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도움이 아니고는 달리 수가 없을 때가 있습니다. 야곱은 지금 그러한 갈림길에 놓여 있습니다. 하란으로 돌아갈 수도 없고 사백의 군사를 대동하고 자신을 치러 오고 있는 형을 대면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한 절박한 심정으로 얍복 나루를 건널 때 야곱은 하나님의 천사를 만납니다. 그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내지 않고는 그곳을 떠날 수가 없었습니다. 그로 인해 그는 사생결단을 합니다. 실제로 그 씨름으로 인해 그는 평생 장애를 겪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 씨름을 통해 그는 하나님의 축복을 얻어냈습니다. 다음 날 얍복 나루를 떠날 때 야곱에게는 새로운 태양이 비쳤습니다. 그의 삶에 새로운 장이 열린 것입니다. 이제 그는 야곱이 아니라 이스라엘로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비록 그는 한쪽 다리를 저는 장애를 얻었지만, 그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모되었습니다. 그렇기에 야곱에게 장애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4 thoughts on “창세기 32장: 야곱에서 이스라엘로!

  1. 야곱의 가는 길에 나타나신 하나님, 야곱의 두려움이 극치에 달했을 때 나타나신 하나님, 야곱을 변화시키며 주신 새로운 이름, 아침 햇살을 받고 새로와 지는 야곱 , 그 이스라엘을 통해 12지파를 아루고 훗날 이스라엘리이라는 나라와 민족을 이루어 예수님을 보내신 하나님, 야곱을 내 잔 머리로 이해하려고 했던 어리석음, 모두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이루어 지는 구원의 은총을 느끼는 아침입니다.
    주어진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뜻이라 받들고 성실히 살다가 주님 앞에 서기를 갈망합니다, 주님 곁을 떠나지 않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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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하늘의 신령한 축복을 갈망하는 야곱의 집념이 필요합니다.
    끊임없이 기도하는 믿음을 주십시오. 온전히 주님안에서
    의지하며 안식하는 마음 갖기를 원합니다.
    주님앞에 섰을때 칭찬받도록 오늘의 삶이 되도록 인도
    하여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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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야급을 믿음의 길로 인도하시는 선하신 하나님, 오직 믿음으로만 오직 은혜로만 새생명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신 한번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님 나의 어리석음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이 믿음 가지고 내 생명 다하도록 이 순례의 길을 마치게 하옵소서. 오직 주님께만 새 생명의 길, 은총을 입는 길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고 계속 정진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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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성경 66권 1,750여 페이지 중에서 오늘 본문은 깊은 묵상을 하게 만드는 보서같은 장면입니다. 1,750여 페이지가 화랑에 걸린 그림이요 조각품이라면 오늘 말씀은 “모나리자” 만큼 보는 이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는 그림입니다. 읽고 또 읽고, 눈을 감고 마음으로 보고 또 보고…말씀이 나를 읽는다는 표현이 무슨 뜻인지 알아지는 본문입니다. 이제 얍복강만 건너면 에서와 대면하게 됩니다. 큰 재산을 여러 몫으로 나누면서 이 정도는 빼앗겨도, 그냥 줘도 괜찮아…하는 마음이었습니다. 부하를 400명씩이나 라거느리고 달려오는 에서를 생각하니 몸과 마음이 얼어붙습니다. 20여년의 세월이 지났으니 자기도 가솔과 재산을 많이 가진 어른인데 에서를 생각하면 철모르는 시절, 수염도 별로 없어 얼굴에 털을 붙이고 에서의 털옷을 입고 아버지 앞에 앉던 장면만 떠오릅니다. 차마 저 강을 건너지 못하겠습니다. 도저히 자신이 없습니다. 반드시 만나야하는 형인데, 한 번은 겪어야 할 일인데 이런 마음으로는 아무 것도 못하겠습니다. 야곱이 참으로 천사들과 씨름을 했을까…예전엔 이것이 궁금했습니다. 오늘은 아닙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밤을 새워 기도하신 예수님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물론 야곱의 잔과 예수님의 잔은 같을 수가 없지요. 야곱은 자신의 과거와 대면하는 밤이고, 예수님은 완전한 순종과 일치를 결단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야곱의 일생이 빼어난 미술작품인 것은 그 속에 내가 있고, 인간의 여러 모습이 담겨 있고, 그 옆에 늘 하나님의 천사가 보일듯 말듯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혼자 겪고 인내하는 것 같아도 하나님이 보고 계심을 알게 하는 스토리이기 때문입니다. 누구냐고, 이름이 뭐냐고 야곱이 묻습니다. “너 자신이 누군지 알았는데 (하나님을 이긴 자) 내 이름이 뭐가 중요하냐” 라는 답이 돌아옵니다. 살려줍니다. 해가 뜨는 것을 보는 복을 받습니다. 두려움이 물러난 아침을 맞이하는 복을 받습니다. 에서와 맞설만한 어른으로 성장한 아침입니다. 하나님과 겨루고도 아침을 맞았는데 강 건너에 무엇이 있든 부딪치지 못할 것이 없습니다. 나는 이스라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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