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39장: 하나님께서 함께 하는 사람

해설:

이야기는 다시 요셉에게로 돌아갑니다. 미디안 상인들은 요셉을 바로의 경호대장 보디발에 집에 노예로 팝니다. 여기서 성경 저자는 “주님께서 요셉과 함께 계셔서, 앞길이 잘 열리도록 그를 돌보셨다”(2절)고 적습니다. 그것은 보디발에게도 느껴질만큼 분명한 일이었습니다(3절). 그는 요셉에게 무엇인가 특별한 것이 있음을 알고 그를 신뢰하게 되었고 점점 더 많은 일들을 맡깁니다. 일을 맡기는 것마다 잘 되는 것을 확인한 보디발은 마침내 자신의 음식을 관리하는 일 이외에 모든 일을 요셉에게 맡깁니다(6절). 정치적인 음모와 암살이 빈번했던 시대였기에 임금이나 고관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은 음식을 관리하는 일이었습니다. 그것 외에 모든 일을 맡겼다는 것은 절대적인 신임을 얻었다는 뜻입니다. 

이 즈음에서야 성경 저자는 요셉이 “용모가 준수하고 잘생긴 미남이었다”(6절)는 사실을 밝힙니다.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을 유혹하게 된 이유를 밝힌 것입니다. 그는 외모도 뛰어났지만 삶의 태도가 더욱 멋지게 보이도록 만들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보디발의 아내는 끈질기게 그를 유혹했지만 요셉은 단호하게 거절합니다. 그는 그것이 “하나님을 거역하는 죄”(9절)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았습니다. 사실, 인간적으로 따져 보면, 그 유혹을 받아들이는 것은 빠른 시간 안에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는 지름길로 보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요셉에게 있어서는 육신적인 쾌락이나 물질적인 이득이 아니라 하나님의 법도를 지키는 일이 더욱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요셉은 그와 마주치지 않도록 노력했습니다(10절). 아예 빌미를 주지 않으려 한 것입니다. 

그렇게 노력했지만 어느 날 요셉은 아무도 없는 곳에서 보디발의 아내와 마주칩니다. 그는 요셉의 옷을 붙잡고 또 다시 유혹합니다. 요셉은 그 유혹을 뿌리치고 달아났고, 그 바람에 그의 겉옷이 보디발의 아내 손에 남게 되었습니다. 거듭 거부 당한 애정은 증오로 변합니다. 그것이 비뚤어진 사랑의 속성입니다. 보디발의 아내는 종들을 불러 모아 요셉이 자신을 범하려 했다고 뒤집어 씌웁니다. 남편이 돌아오자 동일한 말로 요셉을 모함합니다. 경호대장의 입장에서는 요셉을 단칼에 처형할 수 있었습니다만, 다행히도 보디발은 요셉을 감옥에 보냅니다.

이쯤 되면 요셉으로서는 자신의 인생에 대해 한탄하고 저주하며 절망할 만합니다. 형들에게 죽을 뻔 했다가 살아나 노예로 팔려온 요셉에게 있어서 보디발의 총애와 신뢰는 인생 반전의 계기로 보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결과는 감옥행이었습니다. 그러니 이제 생의 의지를 놓아 버릴 만도 합니다. 그런데 요셉은 감옥에서도 여전히 신실하고 성실하고 진실하게 살아갑니다. 성경 저자는 여기서 다시 한 번 “주님께서 그와 함께 계시면서 돌보아 주시고, 그를 한결같이 사랑하셔서”(21절) 라고 적습니다. 

요셉의 삶의 목적은 성공도, 번영도, 인생 역전도 아니었습니다. 그의 목적은 오직 한 가지 즉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루하루 진실하고 정직하며 성실하게 살아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기에 그는 감옥에 내던저졌음에도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그렇기에 하나님은 늘 그와 함께 하시고 그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머지 않아 그는 간수장의 눈에 들어 감옥의 모든 일을 맡아 행하게 됩니다.

묵상:

성경 저자는 요셉을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으로 소개합니다. 하지만 그는 먼저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삶의 목적은 성공과 번영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것에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편애를 등에 업고 천방지축이었던 철부지가 고난의 여정을 통해 전혀 다른 사람이 된 것입니다. 어떻게 이토록 다른 사람이 되었을까요? 미디안 상인들에게 붙잡혀 이집트로 끌려 와 보디발의 집에 노예로 팔려 가기까지 시간적으로 얼마나 걸렸는지 모릅니다만, 그 기간 동안의 고난이 그를 변화시켰을 것이 틀림 없습니다. 그는 인생의 바닥에 내쳐지면서 많은 눈물로 후회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깊은 골짜기에서 하나님을 만났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사람이 이렇게 달라질 수가 없습니다. 고난의 골짜기를 지나면서 그는 오로지 하나님의 법도 안에서 그분의 뜻을 따라 사는 일에 인생을 걸었던 것 같습니다. 

그 결과, 그는 보디발의 집에서 신속하게 신뢰를 얻고 주인의 총애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성공은 그의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목적은 성실이었습니다. 매일매일 하나님의 법도 안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경험하며 사는 것이었습니다. 그랬기에 그는 보디발의 아내로부터의 집요한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또한 모함을 받아 감옥에 던져지는 불행을 겪지만 그로 인해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잘 사는 것이 그의 목적이었다면 그는 깊이 절망했을 것입니다. 아니면 앙심을 품고 이를 갈며 복수를 꿈 꾸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곳에서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하나님의 법도를 따라 성실하고 진실하게 매일을 살았습니다. 그랬기에 하나님도 그의 신실함에 응답하셨습니다.

아, 이렇게 살기를 원합니다. 높은 자리에 올려져도 교만해지지 않고 어두운 골짜기에 내쳐지더라도 절망하지 않는, 성공이 아니라 성실을 목적으로 두고 살아가는 그런 삶을 원합니다

2 thoughts on “창세기 39장: 하나님께서 함께 하는 사람

  1. 주님의 사랑은 함께하시는 하나님으로 표현되는것 같습니다.
    주님과 깊이 사귀는 경지에 들어가면 어렵고 힘들어도 신실하게
    살수있다는 오늘의 말씀 감사합니다.
    임마누엘 주님을 잊지않고 믿음의 가족과 이웃에게 주님의 사랑을
    나누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 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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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아브라함을 보고 사람들이 하나님이 함께 하시며 복 주시는 것을 안다고들 했습니다. 이제 요셉을 보고 주위에서 하나님의 존재를 말합니다. 세상에선 잘 나갈 때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고 합니다. 승승장구할 때 부러워들하고, 그의 주변에 모여듭니다. 일이 잘 안 풀리거나 어려운 상황에 닥치면 그 사람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 알게 됩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지, 하나님의 복을 신뢰하는지. 요셉은 형들이 구덩이에 떨어뜨리는 “추락”을 당했을 때 믿음의 진보가 시작되었을 것입니다. 처음에는 낙망하고 탓도 했겠지만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으며 하나님 앞에서 성실하게 살 것을 다짐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하거나 서원하는 (야곱처럼) 모습이 없지만 삶의 태도를 보면 하나님을 신뢰하며 살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총애와 추락을 반복하는 요셉의 삶처럼 우리도 골짜기와 봉우리를 차례로 지나며 사는데 어느 때나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게 살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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