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41장: 요셉이 이집트를 구하다

해설:

두 관리가 감옥에서 나간 후 2년이 지난 어느 날, 바로가 꿈을 꿉니다. 성경 저자는 두 번의 꿈을 묘사하면서 생동감 있게 하려고 현재형 동사를 사용합니다. 그는, 나일 강 가에 살진 암소 일곱 마리가 풀을 뜯고 있는데 흉측하고 야윈 다른 암소 일곱이 나타나 살진 암소 일곱 마리를 잡아 먹는 꿈을 꾸고는 놀라 깨어납니다. 잠시 후에 다시 자리에 누웠는데, 이번에는 토실토실하고 잘 여문 이삭 일곱 개가 한 줄기에서 나오는 것을 봅니다. 그런데 뒤를 이어 야위고 마른 이삭 일곱이 나와서 앞의 이삭을 모두 먹어 버립니다. 바로는 범상한 꿈이 아니라는 사실을 감지하고는 마술사들과 현인들을 불러 모아 자신의 꿈을 해몽하게 했지만 신통한 대답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 때에서야 술 맡은 고관이 요셉을 기억합니다. 그는 바로에게, 자신과 빵 맡은 고관이 꾼 꿈 이야기와 요셉의 해몽 이야기를 보고합니다. 바로는 즉시로 요셉을 궁으로 불렀고, 요셉은 왕 앞에 알현하기에 적절한 몸단장을 한 다음 대령합니다. 바로가 자신의 꿈을 해몽할 수 있느냐고 묻자 요셉은 “저에게는 그런 능력이 없습니다. 임금님께서 기뻐하실 대답은, 하나님이 해주실 것입니다”(16절)라고 답합니다. 바로는 요셉에게 꿈 이야기를 해 주었고, 요셉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감과 지혜로써 그 꿈의 의미를 알아 봅니다. 두 가지의 꿈은 같은 의미인데, 먼저 7년의 풍년이 온 다음 7년의 흉년이 온다는 뜻이었습니다. 같은 꿈을 두 번이나 꾸게 한 이유는 “하나님이 이 일을 하시기로 이미 결정하시고, 그 일을 꼭 그대로 하시겠다는 것을 말씀해 주시”(32절)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요셉은 해몽에 그치지 않고 그에 대한 몇 가지 대책을 제안을 합니다. 모든 신하들이 요셉의 해몽과 대책을 좋게 여기는 것을 보고 바로는 “하나님이 너에게 이 모든 것을 알리셨는데, 너처럼 명철하고 슬기로운 사람이 어디에 또 있겠느냐?”(39절)라고 말합니다. 그리고는 요셉을 총리에 임명하고 전권을 위임하여 7년 풍년과 7년 흉년을 대비하게 합니다. 당시에 요셉의 나이는 서른 살이었습니다(46절). 그의 예언대로 이집트는 7년 동안 전에 없던 풍년을 맞습니다. 7년의 풍년이 지난 후에는 또 예언대로 7년의 지독한 흉년이 찾아 옵니다. 그것은 이집트만이 아니라 주변의 모든 나라가 함께 겪은 일입니다. 이집트는 미리 준비해 두었기에 7년의 흉년 동안에도 넉넉히 살 수 있었습니다. 반면, 준비하지 못한 나라들은 7년 동안의 극심한 흉년으로 인해 심한 고통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들은 음식을 구하기 위해 이집트를 찾았습니다.

바로는 요셉을 총리로 임명한 후에 그에게 사브낫바네라는 이집트 이름을 지어 주고 제사장의 딸 아스낫과 결혼을 시킵니다. 당시로서는 이집트 사람들이 히브리 사람들을 얕잡아 보던 시기입니다. 따라서 요셉이 총리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는 권위와 자격을 입혀 주어야 했습니다. 바로는 제사장의 딸과 요셉을 결혼시킴으로써 이집트 백성을 다스릴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해 준 것입니다. 요셉은 아스낫과의 사이에서 두 아들 즉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얻습니다. 

묵상:

하나님과 함께 하기를 힘쓰는 사람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그 사람 자신만 복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으로 인해 주변 사람들이 복을 누립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복의 근원” 혹은 “복의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그로 인해 한 가정이, 어떤 사람은 그로 인해 한 사회가, 또 어떤 사람은 그로 인해 국가가 복을 누립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며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사람은 때로 주변 사람들과 사회로부터 무시 당하기도 하고 오해 받기도 하며 박해를 받기도 합니다. 알고 보면, 그들은 자신들의 ‘복덩이’를 알아 보지 못하고 걷어 차고 있는 것입니다. 

요셉을 총리로 임명한 바로는 그 점에서 조금 달랐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감지했습니다. 당시 이집트 사람들은, 신은 종족마다 다르다고 믿었습니다. 그렇기에 바로는 요셉의 하나님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섬겨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요셉이 그가 믿는 신의 특별한 보살핌 가운데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실제로 이집트는 요셉 한 사람으로 인해 7년의 흉년을 넉넉히 견디고도 남았습니다. 

그것이 믿는 사람의 존재 가치입니다. 이 세상은 믿는 사람을 때로 무시하고 때로 외면하고 때로 조롱하고 때로 거부하고 때로 박해합니다. 하지만 진실로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으로 인해 그들 자신이 덕을 입고 있는 것입니다. 오해는 하지 마십시오. 교회 다니는 사람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독교인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들에 대해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진실하게 매일 하나님을 찾고 그분의 뜻을 행하기 위해 힘쓰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런 사람은 그가 속한 공동체를 살게 하는 힘입니다. 믿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그것은 거룩한 소명이요 책임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신실하게 살아가는 것이 믿는 우리가 세상에 대해 할 수 있는 최선의 봉사입니다

5 thoughts on “창세기 41장: 요셉이 이집트를 구하다

  1. 요셉이 인생이 비상을 합니다. 파라오의 꿈을 멋지게 해석하고, 다가올 위기에 대해 더 멋진 대책을 제시합니다. 파라오가 요셉을 백퍼센트 신뢰하고 그의 지혜를 높이 삽니다. 요셉은 다시 채색옷을 입습니다. 자기 수레 다음으로 좋은 수레에 태우고 모든 사람들은 무릎을 꿇습니다. 이집트의 모든 땅을 다스리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이삭-야곱에게 하신 약속 “땅 위의 모든 민족들이 너와 네 자손을 통해 복을 받을 것이다”의 확실한 증거가 이루어집니다. 두 아들도 얻습니다. 온 세계에는 심한 가뭄이 드는데 (57절) 요셉의 삶에는 풍요가 깃듭니다. 요셉을 통해 하나님의 이름과 영광이 알려집니다. 요셉 시대의 파라오도 참 지혜로운 통치자입니다. 자기 백성을 돌볼 줄도 알고, 능력이 있으면 연령이나 출신국에 구애 받지 않고 자기 가까이에 둘 줄도 아는 현명한 왕입니다. 우리가 나중에 모세 때 만나는 파라오와 아주 다릅니다. 우리나라 역사의 임금들도 그랬고 지금 국제사회의 최고 지도자들도 그렇습니다. 사람 됨됨이에 따라 어진 왕이 되기도 하고 국민을 어렵게 하는 지도자가 되기도 합니다. 파라오가 요셉을 들어 쓰게 된 것은 하나님이 그의 눈을 열어주셨기 때문입니다. 요셉에게는 성실하고 묵묵하게 어려운 시간을 지나가게 하셨고 파라오에게는 자기 앞에 서서 꿈 해몽하는 히브리 청년을 좋게 보도록 마음의 눈을 열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지혜와 영감이 꼭 필요한 사람에게 주어질 때 많은 민족에게 복이 되는 것을 봅니다. 이 새벽에 하나님의 지혜를 사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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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바로왕의 꿈을 요셉을 통해 알려주시고 행하시는 그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임이 되기에 감사를 드립니다, 요셉의 신실한 믿음이 끝내는 그를 총리로 만들며 이집트에 축복을 주어 하나님의 역사가 쓰여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성실하며 진실될 때 하나님은 그 주위까지도 축복햐 주신다는 걸 믿고 내 community을 유해 더욱 옳바르고 성실하게 믿기를 기도합니다.
    멕시코 나다니엘 선교에서 어제 밤 돌아와 좀 피곤하지만 주님 그 여정에 주님께서 함께하신 모든 일에 감사를 드리고 이를 통해 더 많은 우리 사귐 교인들이 직접 선교지에 다녀오는 축복을 내려 주십시요, 그 들이 현지인들과 어우려 살다보면 영혼이 말라가며 변할 수 있기 때문에 종종 단기선교사님들이 찾아가 위로와 격로로 충전시키어 더 큰 사역을 할 수 있는 힘의 근원이 되게 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지남 5일 간의 여정에 함께하신 주님께 감사와 창양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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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세상을 뒤흔들수있는 권력을 취했으나 지난날의 배반과 누명을
    보복하지않고 주님의뜻에 순응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항상 깨닫고 이웃에게 하늘의 축복에 통로가
    되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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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어렷을 때 어머님께 듣던가장 살아하는 성경 이야기 입니다. 점점 커가면서 온 식구가 가정예배 드릴때면 늘 울면서 읽던 감동적인 스토리입니다. 우리 어머님이 우리가 옛날 이야기 해달라고 조르면 늘 놀리던 일이 생각납니다. 옛날 이야기 저무 좋아하면 가난하게 된다고. 그러면서 오셉이 애급의 총리가 되어 백성들로 부터 일곱해 풍면을 맞아 사들린 곡식 창고가 얼마나 많고 넘쳤는지 모른다. 그런데 그 흉년을 맞아 그 창고에서 개미가 곡식 한알 씩 물고 나온다, 수 많은 개미떼가 한마리씩 입에 물고 나온다. 또 한마리 가 물고 나온다. 또 한마리가 물고 나온다고 반복하며 말씀하시면 우리는 너무 지르해서 듣다가 잠이 들어 버렸습니다. 이 이야기를 각자 아이들과 손주들에게 한번 해 보세요. 옛날 이야기 해달라는 투정이 멈출 것입니다. 요셉의 이 신기하고도 놀라운 꿈같은 이야기는 하나님께서 창세기 15장에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영원한 언약(Berit Olam)을 어떻게 이루어 가시는가 하는 신비함에 우리는 언제나 감탄을 금치 못합니다. 이스라엘 맥성들이 자손 대대에 이 놀라운 이야기를 읽으며 고 고난의 역사 속에서 어떻게 참고 견디고 이겨 나갔을가를 생각해 봅니다. 시편을 읽으며 자주 만나는 하나님의 하시는 기이한 일들, 그 오묘함을 찬양하는 찬양을 자주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이제 그 의미를 조금이라고 짐작할 것 같습니다. 오늘도 그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영원하심을 찬양하고 경배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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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어떻게 하나님께 온전히 의지할수 있을까”하는 갈급함으로 오랜동안 지내왔고, 지금도 그런 심정이다.
    말하기 앞서서, 무엇을 하기 앞서, 좋은일이건 나쁜일이건 일이 매듭 지어졌을때, 내 눈앞에 보여지는 모든것에 대해서, 요셉의 담담한 고백을 내가하길 원합니다. “하나님이 하셨고 해주실 것입니다” 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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