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55편: 도피, 저주 혹은 신뢰

해설:

이것은 다윗의 시편으로서 극심한 심적 고통 중에 드린 기도입니다. 먼저 그는 자신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합니다(1-2절). 이어서 그는 자신이 얼마나 심한 고통 중에 있는지를 묘사합니다(3-5절). 그는 지금 악한 사람들로 인해 “두려움과 떨림” 그리고 “몸서리치는 전율”에 짓눌려 살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 처하면 누구나 도피하고 싶어합니다. 다윗도 그랬습니다. 그는 비둘기처럼 멀리 광야로 날아가 버리고도 싶고 아무도 없는 은신처로 피하고 싶다고 하나님 앞에서 하소연을 합니다(6-8절).

다음으로 다윗은 자신을 고통스럽게 하는 사람들에 대해 설명합니다. 지금 그가 살고 있는 성에는 오직 폭력과 분쟁, 죄악과 고통, 억압과 속임수만 가득해 보입니다(9-11절). 그런데 그를 더욱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그를 적대하고 괴롭게 하는 사람들이 낯선 사람들이 아니라 함께 우정을 나누며 같이 예배처소를 드나 들던 친구라는 사실입니다(12-14절). 가까운 친구로부터 당하는 배신과 고통의 무게는 몇 배 더 큽니다. 얼마나 진절머리가 났던지 다윗은 “죽음아, 그들을 덮쳐라. 산 채로 그들을 음부로 데리고 가거라!”(15절)라고 절규합니다.

시편의 기도가 자주 그렇듯이, 15절과 16절 사이에는 상당한 시간적 간격이 있습니다. 1절부터 15절까지의 기도는 그가 극심한 심적 고통 중에서 울부짖은 기도입니다. 거기에는 정화되지 않은 거친 감정이 다 담겨 있습니다. 그렇게 기도하다 보면 거친 감정이 정화되고 마음에 진정을 얻습니다. 앞의 기도가 마음에 뒤엉킨 감정을 쏟아 놓는 기도라면, 16절 이후의 기도는 감정을 쏟아 놓은 후에 올린 기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나는 오직 하나님께 부르짖을 것이니, 주님께서 나를 건져 주실 것이다”(16절)라고 기도합니다. 도피하고 싶었던 마음도, 저주했던 마음도 내려 놓고 이제는 오직 하나님께 의지하게 된 것입니다. 이제 그는 자신이 부르짖는 소리를 하나님께서 들으신다는 사실을 믿습니다(17절). 자신을 대적하는 사람들이 아무리 많아도 주님을 맞설 수 없다는 사실을 또한 기억합니다(18절). 온 세상의 창조주께서 자신의 기도를 듣고 응답해 주실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19절).

기도자는 믿음으로써 하나님의 응답을 미리 내다 봅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되찾고는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바로잡을 미래를 믿음의 눈으로 내다 봅니다. 그랬더니 자신을 고통스럽게 했던 친구들이 또 다른 친구들에게 자신이 당한 것과 똑 같이 배반 당하고 고통 받는 미래가 보입니다(20-21절). 하나님께서 그렇게 바로 잡아 주실 것을 믿은 것입니다. 이러한 경험에 근거하여 다윗은 마지막으로 회중에게 그들의 짐을 주님께 맡기라고 권면합니다(22-23절). 하나님께서 결국 갚아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묵상:

살다 보면 그럴 수 있습니다. 사람이기에 그럴 수 있습니다. 가장 믿었고 가장 아꼈던 친구, 함께 믿음의 길을 가면서 서로 기도해 주었던 친구, 죽음 외에는 갈라놓을 것이 없어 보였던 친구가 어느 날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등을 돌리는 일이 일어납니다. 그럴 때면 인간에 환멸을 느끼고 인생이 허무해집니다.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습니다. 아무도 없는 곳으로 가서 홀로 살고 싶습니다. 분노가 치밀어 오를 때면 마음에 있는 모든 악을 끌어 모아 저주를 퍼붓고 싶습니다. 그것이 인간의 마음입니다.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쏟아 놓기 전의 우리의 마음입니다. 

하지만 하나님 앞에 마음을 쏟아 놓고 나면 도피도, 환멸도, 저주도 길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배신을 당하면 인간에 대한 환멸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만, 그것은 인간에 대한 환상이 깨지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인간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의 대상입니다. 우리 모두 언제든지 깨어질 수 있는 연약한 그릇이기에 그렇습니다. 우리의 의지의 대상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 앞에 우리의 엉클어진 마음을 쏟아 놓으면 비로소 그 진실이 보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잠잠히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기다립니다. 그럴 때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 보입니다. 그제서야 우리는 마음의 평안을 얻습니다.

오, 평화! 주님만이 주시는 평화!

3 thoughts on “시편 55편: 도피, 저주 혹은 신뢰

  1. 믿는 도끼에 발 찍힌다는 경험을 안 해 본 사람이 있을까 의문이 듭니다, 사람은 그런 경험으로 큰 상처를 받게 되지만 또 다른 친구를 믿고 다시 실망하며 사는 것이 우리의 한계가 아닌가 행각하며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의 대상”이라는 목사님의 설명이 다시한번 내 눈을 번쩍 뜨이게 하는 아침입니다.
    오직 의지하고 믿어야 하는 대상은 하나님이며 그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모든 것들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믿고 기다리며 기도하는 자세를 취합니다.
    북미 정상 합의가 결렬되었지만 무엇이 주님의 뜻인지 알지못하는 마당에서 조급함과 서운함보다는 희망을 갖고 하나님의 게획에 맡기는 믿음으로 승화되기를 기도합니다.
    모든 것이 주님의 주권아래 있음을 고백하며 우리 세대에 더 이상 전쟁과 분쟁이 아니라 화해와 평회가 팽배하기를 기원합니다, 살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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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세상에서 얻은 무거운짐을 주님께 내려놓고 쉬는 믿음이 필요
    합니다. 주님께서 건져 주실것이니 주님만 의지 하는 믿음을
    원합니다. 기도의 응답을 때에 마추어 허락하시는 주님 감사합니다.
    이웃과 함께 주님 은혜안에서 편안히 사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
    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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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이번 주간은 실로 포괄적인 혼돈과 혼란의 격동기를 경험하는 것 같습니다.미국의 정치적 상황도 그렇고 북미정상회담도 그렇고 무엇보다도 내가 속한 연합감리교회도 그렇습니다. 특히 승리를 기뻐하는 보수진영도 그렇고 패배를 탄식하는 진보진영도 그렇습니다. 나는 오히려 이러한 혼돈의 중심에서 오직 주 예수님을 바라보며 그분의 음성에 귀를 기우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지상 명령인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는 주님의 부탁을 잠시 잊어버린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언제나 우리를 심판하시고 구원하신다는 엄중한 사실도 잊어버리는 것 같습니다. 함께 아파하고 기돟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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