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장 14-28절: 회개, 믿음 그리고 따름

해설: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신 것은 세례 요한이 체포된 직후의 일입니다. “길을 준비하는 사람” 요한의 사역이 끝난 것을, 예수님은 당신의 사역의 출발 신호로 받아 들인 것입니다. 그분은 갈릴리에서 “하나님의 복음”(14절)을 선포하기 시작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그리스도로 보내신 것이 복음의 핵심이므로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라고 할 수도 있고 “하나님의 복음”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마가는 예수님의 설교의 핵심을 두 가지로 요약합니다. 하나는 “때가 찼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15절)는 것입니다. “가까이 왔다”는 “다 왔다” 혹은 “시작되었다”고 번역하는 것이 좋습니다.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기간이 다 차서 이제는 새로운 구원 활동을 시작하고 계시다는 뜻입니다. 다른 하나는 “회개하여라. 복음을 믿어라”(15절)는 권면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결정적인 구원 역사를 시작하신다면 먼저 하나님을 등지고 살아가던 삶을 청산하고 하나님께 돌이켜야 합니다. ‘회개’는 하나님께 대한 방향전환입니다. 그리고 복음을 믿어야 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 행동을 시작하셨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그 역사에 참여해야 합니다.  

전도 활동 중에 예수님은 “갈릴리 바닷가”(갈리리 호수를 가리킵니다. 당신 사람들에게 갈릴리 호수는 바다처럼 커 보였기에 바다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에서 시몬과 안드레를 보십니다. “보았다”는 말은 “주목하여 보았다”는 뜻입니다. 시몬과 안드레를 우연히 마주친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찾아내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17절)고 도전하십니다. 이 말씀을 통해 예수님은 당신의 사명이 죽음의 바다에서 사람들을 낚아 올리는 것임을 드러내십니다. 제자들이 그 말뜻을 제대로 알아 들었는지 모르지만 그들은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즉시로 그분을 따라 나섭니다. 야고보와 요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의 부름을 듣고 “아버지 세배대와 일꾼들을 배에 남겨두고, 곧 예수를 따라갔다”(20절)는 말은 그들이 삶의 근거를 떠났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데리고 가버나움으로 가십니다. 가버나움은 갈릴리 호수에 인접해 있던 동네로서 예수님의 갈릴리 사역의 거점이 됩니다. 어느 날, 안식일이 되어 예수님은 유대인들의 관습대로 회당에 가십니다. 회당장의 초청에 따라 예수님은 설교를 하게 되었는데, 회당에 모인 사람들은 그분의 설교를 듣고 놀랍니다(22절). 다른 율법학자들의 설교에서는 느껴보지 못한 권위감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전하시는 예수님의 태도와 그분의 말씀에서 느껴지는 강력한 힘으로 인해 그렇게 느꼈던 것입니다. 

그 때 어떤 사람이 괴성을 지릅니다. 그는 악령에 사로잡혀 있었는데, 예배 중에 갑자기 발작 증세를 보인 것입니다. 그는 “나사렛 사람 예수님, 왜 우리를 간섭하려 하십니까? 우리를 없애려고 오셨습니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지 압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거룩한 분입니다”(24절)라고 외칩니다. 공교롭게도 예수님의 정체를 가장 먼저 알아 본 것은 악한 영입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거룩한 분”이라는 말은 메시아라는 뜻입니다. 귀신은 메시아를 알아 보고는 자신의 때가 끝났음을 직감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입을 다물고 이 사람에게서 나가라”(25절)고 명령하셨고, 귀신은 그에게 경련을 일으켜 놓고 떠납니다. 회당에 모였던 사람들은 “권위 있는 새로운 가르침이다!”(27절)라고 말하면서 놀랍니다. 그분의 말씀에서 느꼈던 힘이 귀신까지 복종시키는 것에 놀랐던 것입니다. 그런 예는 과거에 볼 수 없었습니다.

묵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먼저 ‘회개’를 요청합니다. 회개는 마음에서 시작되는 것이지만 실은 삶의 방향 전환입니다. 하나님에게 등지고 나 자신의 뜻과 욕망을 따라 살던 길에서 돌아서서 하나님을 향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회개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할 수 있습니다. ‘큰 회개’는 하나님께 대한 삶의 방향 전환입니다. 그것은 일회적인 사건입니다. 반만, ‘작은 회개’가 있습니다. 그것은 살아가면서 자신에게서 죄를 발견할 때마다 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때로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하셔서 회개하게 하십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늘 하나님 앞에 거룩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복음은 또한 ‘믿음’을 요청합니다. 믿음은 먼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 행동을 시작하셨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하지만 지적 승인이 믿음의 전부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구원 행동을 시작하셨다고 믿는다면, 매일 그 영적 현실을 인정하고 살아야 합니다. 따라서 믿음은 삶의 태도입니다. 매일 매일 어떻게 사느냐의 문제입니다. 바울 사도가 “우리는 믿음으로 살아가지, 보는 것으로 살아가지 아니합니다”(고후 5:7)라고 말한 것처럼 믿음으로 보는 세상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복음은 ‘따름’을 요청합니다. 복음을 듣고 회개하고 믿는 것은 죽음의 바다에서 건짐을 받는 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영원한 죽음의 바다에서 건짐을 받았다면, 우리 또한 죽음의 바다에 빠져 죽어가는 사람들을 건져내야 합니다. 내 힘으로 건져낼 수 없습니다. 오직 복음을 전하는 것으로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예수의 뒤를 따르는 일입니다

4 thoughts on “마가복음 1장 14-28절: 회개, 믿음 그리고 따름

  1. 하나님의 복음 즉 예수님의 복음에 순종하여 큰 복음인 첫 회개로 구원을 받았으면 그 후에 일어나는 모든 삶의 과정이 주님의 뜻에 맞게 살라고 하시는 주님, 하지만 현실 속에서 일상 생활을 하다보면 주님을 잊고 내 뜻대로 행하는 경우가 너무 많은 것을 고백합니다, 지금 당장 주님이 오셔서 손짓하며 나를 따라오라 하면 시몬이나 안드레 또는 야고보나 요한 같이 주저 없이 따르지 못하는 내 자신을 발견합니다, 많은 핑개를 대겠지만 실은 믿음이 부족하다는 것을 고백합니다, 오늘 하루는 주님의 말씀이 내 안에서 더 강력하게 작동하기를 기도합니다.
    내 모든 삶을 주님께 드리는 하루가 되도록 이끌어 주십시요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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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예수님 당시에 이스라엘의 고난의 역사 속에서 크고 작은 수 많은 메시야들이 일어나고 사라졌다고 합니다. 그러나 백성들의 소망을 만족시키는 메시야는 없었습니다. 세례 요한도 그러한 시점에서 백성들의 관심을 끌다가 권력자에 의하여 투옥되고 그 운동도 막을 고합니다. 그 때에 예수님이 나타납니다. 그 예수님은 지금까지 나왔던 그 어떤 메시야와는 전혀 차원이 다른 메시야였습니다. 지금까지의 메시야는 사람들의 소망과 욕망을 투사한 메시지를 들고 나왔다면 예수님은 그 반대인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말씀을 들고 나옵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사람이 바라고 주장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메시지였습니다.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의 때였습니다. 그것은 지금까지의 모든 세상을 심판하고 새로운 시대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하나님 나라의 도래였습니다. 이 메시지와 이 시대는 지금까지의 우리의 모든 생각과 사상과 세계관을 버리고 떠나서 새로운 믿음으로 받아드리고 순종하는 삶을 요구하는 메시지였습니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신앙생활한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세상사람들과 같은 생각과 사상을 가지고 나의 욕망을 투사하며 따르고 있습니다. 여기에 회개의 메세지가 임하시는 것입니다. 내 모든 생각과 나 자신을 버리고 포기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은혜의 세계를 알수도 없고 맛볼수도 없습니다. 어린아이와 같이 새로 시작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맛볼 수가 없습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며 다시한번 이 사실을 깨닫고 회개하며 나 자신을 돌아보고 내 삶을 성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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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세상적인 계산을 하지않고 말씀을 듣고 믿고 즉시 순종하는 습관과
    태도가 필요합니다. 주님 말씀이 전부이고 절대적 인것을 깨닫고
    따르기를 원합니다. 제자의 사명을 이웃과 함께 책임있게 감당하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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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나를 따르라.” 부르시자 그물을 놔두고 따르는 시몬과 안드레. 아버지와 일꾼들을 배에 두고 따르는 야고보와 요한…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친숙한 것과의 이별이고 낯선 것과의 만남입니다. 내 안에 있는 쉽고 익숙하고 당연한 것들을 놔두고 숨기고자 했던 것, 일그러져 있던 것, 아직 피어나지 않은 것들을 찾아내는 사순절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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