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6장 1-13절: 믿음은 생명이다

해설:

예수께서는 고향 나사렛을 찾으십니다. 안식일이 되어 그분은 회당 예배에 초청 받아 설교를 하십니다. 동네 사람들은 그분의 설교를 듣고 그 지혜와 권위에 놀랍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목수일을 보던 사람이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나타났으니 동네 사람들로서는 어리둥절 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과거에 알던 예수에 붙들려서 자신들 앞에 드러난 새 예수를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달갑지 않게 여겼다”(3절)는 말은 그분을 의심하고 꺼렸다는 뜻입니다. 개역개정에서는 “거역했다”고 번역해 놓았습니다. 소문처럼 예수가 미쳤거나 자신들을 속이고 있는 것처럼 느꼈을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예수님은 당신의 고향에서 기적을  행할 수 없었습니다(5절). 그분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믿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는 원하기만 하면 당사자의 믿음이 없이도 이적을 행하실 수 있었습니다만, 그런 이적은 별 의미가 없습니다. 한 사람의 간절하고 진실한 믿음에 대한 응답으로 이적이 일어날 때 그 이적은 그 사람에게 믿음의 도약을 하게 해 줍니다. 그런 까닭에 예수님은 “예언자는 자기 고향과 자기 친척과 자기 집 밖에서는, 존경을 받지 않는 법이 없다”(4절)는 속담을 생각하셨습니다. 때로는 안다는 생각이 진정한 앎을 방해합니다.

나사렛을 떠나 다른 마을로 두루 다니면서 가르치던 예수님은 열두 제자를 둘씩 짝을 지어 보내시면서 전도 실습을 시키십니다(7절). 그들에게 악한 귀신을 제어하는 능력을 주시고는 오직 하나님의 공급 하심을 의지 하라고 당부하십니다(8-9절). 하나님께서 보내셨으니 하나님께서 먹이시고 입히실 것이라는 뜻입니다. 또한 더 좋은 대접을 받기 위해 이집 저집 돌아다니지 말라고 하십니다(10절). 만일 그들을 배척하는 동네가 있다면 떠날 때 “발에 묻은 먼지를 떨어”(11절) 내라고 하십니다. 전도자로서 책임을 다했으니, 심판을 받는다면 그 책임은 배척한 사람들에게 있다는 뜻입니다. 그들은 그 말씀에 순종하여 여러 동네로 다니면서 예수께서 행하신 일들을 행합니다(12-13절). 

묵상:

믿음은 살아 있는 생명체와 같습니다. 생명체는 부단히 굳은 껍질을 깨고 새로운 순을 돋아 냅니다. 그것처럼 믿음도 굳어버린 전통과 관념을 깨뜨리고 새로운 경지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의 대상은 예수님이십니다. 육신을 입고 우리 가운데 오셨다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장사 된 지 사흘만에 살아나셔서 하나님의 우편으로 돌아가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있어서 다 알 수 없는 신비의 존재이십니다. 우리가 성경을 통해 그리고 체험을 통해 예수님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전체의 1%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이미 우리에게 알려진 것 만으로도 구원 받기에 충분하지만, 그렇기에 우리는 더욱 그분을 알아 가고 싶어 합니다. 그분을 더 깊이 알려면 과거에 그분에 대해 알고 있던 것을 부정해야 합니다. 성령을 통해 우리에게 드러나는 그분의 모습을 경험 하면서 부단히 알아 가야 합니다. 

예수님의 고향 나사렛 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그분을 제대로 보지 못했습니다. 차라리 그분에 대해 몰랐더라면 그분을 제대로 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와 같은 잘못을 우리도 범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에 대해 이미 다 알았다는 생각 혹은 더 알 필요 없다는 생각이 우리의 믿음을 죽게 만듭니다. 껍질이 굳어져 갈 때 그것을 뚫고 나오지 않으면 그 안에서 죽어 버립니다. 그것처럼 신앙인들도 굳어버린 껍질에 갇혀 죽었으면서도 죽은 줄 모르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마른 가지에 새 순을 밀어내는 뒷뜰 나무처럼 우리의 믿음도 끊임없이 새로워져야 하겠습니다.  

4 thoughts on “마가복음 6장 1-13절: 믿음은 생명이다

  1. 앙상하게 가지만 남았던 나무들이 기지개를 틀며 새 순을 내듯 잠잠했던 내 영혼도 굳어있던 껍질을 깨고 소생하며 새로운 가지로 뻗어 나기를 기도합니다.
    믿음이 없을 때는 기적이 안 나타나듯 믿음 안에서 주님의 성품을 닮아가기를 기도합니다.
    이 아침 묵상을 통해 주님을 조금 더 알고 조금 더 새로와지는 믿음으로 제자리 걸음에서 벋어나기를 간구합니다.
    주님이 열두제자들을 파송하여 현장 실습을 통해 사역하듯 우리 각자는 있는 이곳에서 주님의 말씀을 전하는 현장 전도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닫힌 입을 열어주시어 담대히 주님 말씀을 전하는 오늘 하루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Like

  2. 온 세상이 주님을 선지자, 예언자 또는 성인이라고 인정을 합니다.
    그러나 저희들은 말씀을 통해 주님은 그리스도 이시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합니다. 말씀이 육신이되신 예수님을
    믿습니다. 제자가 되어 말씀을 가지고 이웃과 함께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 주십시오. 아멘.

    Like

  3. 성지 순례 기간에 예수님의 고향 나사렛을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지금 기억으로는 그곳에 예수님을 기리는 나사렛 교회 하나 없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땅은 아직도 불모지로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믿음을 통하여 우리에게 들어오시는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은혜의 신비를 말해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믿음의 신비를 다시한번 생각합니다. 물론 믿음 자체도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것이 요한 웨슬레가 말한 선재의 은혜인 줄 압니다. 우리의 마음을 열어놓고 있지 않으면 하나님의 은혜가 들어올 자리가 없습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셰를 주셨느니라. 나같은 자를 받아주시며 주님의 은혜와 사랑안에 거하게 하시는 주 예수님을 찬양하며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Like

  4. “사귐”에는 일정한 법칙 같은 것이 있습니다. 처음 만나 호감을 느낀 뒤 우연히 또 만나게 되든, 약속을 해서 다시 만나게 되든전보다 좀 더 적극적으로 알아가는 노력을 합니다. 타인을 알아가는만큼 자기 자신을 열어 보여주는 쌍방적인 노력도 기울여야 합니다. 시간을 써야 합니다.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의지적인 노력이 있어야 사귈 수 있습니다. 나 좋은대로만 하려고 하면 내 마음에 꼭 드는 사람을 만나야 하는데 지구를 다 돌아다닌다해도 그런 사람을 만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과의 사귐은 나를 아시는 분, 나를 받아주시는 분과의 사귐이기에 우리는 시작부터 advantage 를 얻고 가는, 실로 “손해볼 것이 없는” 사귐입니다. 사순절 내내 조금씩 조금씩 그분을 더 알고, 더 사랑하기를 바랄뿐입니다.

    Like

Leave a Reply to 윤흥노 Cancel reply

Fill in your details below or click an icon to log in:

WordPress.com Log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WordPress.com account. Log Out /  Change )

Google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Google account. Log Out /  Change )

Twitter picture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Twitter account. Log Out /  Change )

Facebook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Facebook account. Log Out /  Change )

Connecting to %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