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9장 35-50절: 뒤집어진 나라

해설:

예수님과 일행은 다시 갈릴리의 가버나움으로 돌아오십니다. 어느 집에 머무실 때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오는 길에서 다투는 것을 보았는데 무엇 때문이었는지 물으십니다(33절). 그들은 길에서 “누가 가장 큰 사람이냐”(34절)를 두고 다투었던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그것을 알고도 모른 척 하셨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질문에 제자들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 일로 다투었다는 것이 부끄러운 일인 줄을 그들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불러 놓고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그는 모든 사람의 꼴찌가 되어서 모든 사람을 섬겨야 한다”(35절)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나라의 질서는 세상 질서와 반대입니다. 자신을 낮추어 다른 사람을 섬기는 사람이 하나님에게는 가장 큰 사람입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구경하고 있던 어린이 하나를 불러 그들 앞에 세우시고는 껴안아 주시면서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이들 가운데 하나를 영접하면, 그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는 사람은, 나를 영접하는 것보다, 나를 보내신 분을 영접하는 것이다”(37절)라고 말씀하십니다. 당시에 어린이는 사회 계층 중에서 가장 낮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세상에서는 높은 사람, 강한 사람, 잘난 사람에게 줄을 대는 것을 잘하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하나님 나라에서는 낮은 사람, 약한 사람, 못난 사람을 섬기는 것이 잘하는 일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예수님을 섬기고,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높은 사람, 강한 사람, 잘난 사람을 섬기는 것은 자기 자신의 욕망을 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질서는 이 땅의 질서와 이토록 다릅니다.  

그 때 요한이, 낯 모르는 어떤 사람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기에 하지 못하게 막았다고 보고합니다(38절). 예수님께 칭찬 받을 일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냥 두라고 하십니다. 당신의 이름에 능력이 있음을 믿고 그렇게 행한다면 막을 일이 아니라고 보신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의 이름의 능력을 믿는 사람이 예수님께 해를 끼칠 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사람은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40절)라고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은 모든 것을 자신들의 통제 안에 두고 싶어 했습니다. 그것이 땅의 사람들의 습성입니다. 하나님 나라에는 네 편, 내 편이 없습니다. 진리 안에서 모두가 하나입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죄짓게 하는 것”(42절)에 대해 강력한 경고를 하십니다. “나를 믿는 이 작은 사람들”(42절)은 세상적인 기준으로 존재감이 없는 이들을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나를 믿는 사람들 모두”를 염두에 두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모두가 같은 값으로 대접받는 곳입니다. 세상적인 기준이 전혀 통하지 않는 나라입니다. 누구를 대하든 진심으로 그리고 성심으로 대해야 합니다. 만일 그들 중 어느 하나라도 “죄짓게” 혹은 “넘어지게” 하는 것은 무겁고 무서운 죄입니다. “그 목에 큰 맷돌을 달고 바다에 빠지는 편이 낫다”(42절)는 말은 그 죄의 심각성을 강조하는 어법입니다. 

그런 다음 예수님은 다른 사람을 “죄짓게 만드는” 원인을 제거 하라고 하십니다. 손이든(43절), 발이든(45절), 눈이든(47절) 죄 짓게 하는 것을 제거 하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비유입니다. 우리로 하여금 죄짓게 하는 것은 손도, 발도, 눈도 아닙니다. 마음의 죄성이 손과 발과 눈을 조종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목할 것은 마음에 있는 죄성입니다. 그것을 경계하지 않으면 게헨나 즉 하늘의 소각장에 버려지게 됩니다. “지옥”이라고 번역된 게헨나는 예루살렘의 쓰레기 소각장이었습니다. 쓰레기 소각장에는 구더기들이 득실댑니다. 그것처럼 지옥에서도 끔찍한 고통이 영원히 지속될 것입니다(48절). 또한 지옥에서는 “모든 사람이 다 소금에 절이듯 불에 절여질 것”(49절)입니다. 지옥은 생각하기 싫은 혐오스러운 장소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거북하고 불편하다고 해서 없다고 단정 해서는 안 됩니다. 성경에서 지옥에 대해 가장 많은 말씀을 하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지옥불에 대한 비유로 소금을 언급하신 다음, 예수님은 소금을 다른 비유로 사용하십니다(50절). 제자들은 소금처럼 짠 맛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정신을 배우고 그 정신대로 사는 것이 제자들이 내야 할 짠 맛입니다. 제자들에게 짠 맛이 든다면 그들은 서로 다투지 않고 화목하게 지낼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서로 높아지기 위해서 경쟁하는 곳이 아니라 서로 낮아져서 섬기는 곳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묵상: 

예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하나님 나라에 눈 뜨고 그 나라의 원리와 질서를 따라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기독교 신앙은 이 땅에서는 세상의 원리대로 살고 죽고 나서 하나님 나라에 가는 것이 아닙니다. 장차 이르게 될 하나님 나라의 원리를 지금 이곳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원리는 이 세상의 원리와 다를 경우가 많습니다. 이 세상의 원리에서 보면 하나님 나라는 ‘뒤집어진 나라’입니다. 이 세상의 원리는 우리의 타락한 죄성이 만들어 낸 것이기 때문입니다. 승자독식이나 약육강식이 그 예입니다. 우리의 죄성은 할 수 있는 대로 높아지려 하고 더 많은 사람들을 부리려 합니다. 우리의 죄성은 내 이익과 안전을 위해 다른 사람을 무참히 희생시키려 합니다. 또한 우리의 죄성은 나와 같은 사람이 아니면 배척하고 차별하려 합니다. 하나님 나라에 눈 뜨고 나면 이 모든 것이 얼마나 큰 죄인지 깨닫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원리에 따라 살기를 힘씁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의 원리를 따라 사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성공하고 번영하기 어렵습니다. 세상은 자신과 다른 원리를 따라 사는 사람을 그냥 두고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때로 따돌림 당하기도 하고 때로 박해를 경험하기도 하며 때로 순교를 당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예수의 제자의 가장 큰 소망은 이 세상에서 성공하고 번영하는 것에 있지 않습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의 원리대로 살고 죽은 후에 하나님 나라에 이르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 세상에서 당하는 손해와 고난에 굴하지 않고 하나님 나라를 사는 것입니다.    

4 thoughts on “마가복음 9장 35-50절: 뒤집어진 나라

  1. 제자들 간의 다툼을 통해 하늘나라의 진리를 말씀하시고 또 어린 아이를 통해 하늘나라의 질서를 말씀해 주시며 내 안에 있는 속성을 깨닫고 주님의 제자가 되라고 하시는 말씀을 통해 내 자신을 비추어 봅니다, 역시 죄의 속성으로 이 땅의 질서 안에 안주하려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내 마음 속에 있는 옛 질서에서 벋어나게 해 주시고 하늘 나라의 질서를 따르는 주님의 제자로의 삶을 추구합니다, 늘 성령으로 내 안에서 작동하시어 소금의 맞을 잃지 안게 깨어 기도하게 하십시요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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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믿음의 교만을 고백하고 회개합니다, 용서하여 주시고 주님의 마음을
    품고 기쁨으로 섬기는 겸손이 필요합니다. 저희들이 주님의 눈으로
    세상을 보게하시고, 주님의 손과 발 이되어 이웃과 더불어 주님의 뜻
    이 이뤄지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 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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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내 마음 속에 뿌리박고 있는 나의 자존심이 언제나 나를 괴롭힙니다. 나를 부인하고 주님만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시옵소서. 주님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나는 죄인입니다. 내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내 마음 속에 섭섭한 생각이 똬리를 틀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내 속에 어리석은 교만함이 자리 잡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나는 죄인이라는 사실을 늘 잊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주시는 말씀으로 나를 돌아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성령님께서 언제나 나를 일깨워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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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바리새파 사람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조심하여라” 8장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서로가 소금을 가지고 화목하게 지내라” 오늘 말씀하십니다. 누룩과 소금은 조금씩 매일 쓰는 것들입니다. 많은 양을 쓰지는 않아도 없으면 곤란한 것들입니다. 누룩을 조심하라고 하셨어도 누룩 자체가 나쁘다는 뜻이 아니듯 손, 발, 눈 역시 용도와 목적이 어떠한가를 보라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누룩도 소금도 무엇엔가 섞이고 과정을 통과해야 유익함을 끼칩니다. 요즘 캘리포니아 산과 들을 물들이는 아름답고 향기로운 봄꽃처럼 그저 그 자리에서 피어나 자기의 생명을 한 철동안 유지하기만 하면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는 것이 있는가 하면, 누룩이나 소금처럼 비록 자신은 드러나지 않아도 그 속에는 대체할 수 없는 독특한 값이 있는 것도 있습니다. 어떤 날엔 꽃으로, 어떤 날엔 소금으로 나의 인생을 해석하면서 주님 말씀에 비추어봅니다. 세상에서 사는 동안 세상이 만든 길을 걷지 않기란 참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세상의 길을 열심히 걷다보면 어느덧 하나님을 잊고 예수님의 말씀과는 다른 길로 접어든 것이 아닌가 고민할 때도 많이 있습니다. 젊었을 때, 세상 속에 내 “자리”를 만들어 놓아야 하는 때가 분명 있었습니다. 남과 더불어 세상살이를 하는 동안에는 누룩도 되고 소금도 되면서 사는 것이겠지요. 내 중심에 예수님의 말씀이 있는지, 세상의 방법이 있는지….세상으로 향한 문을 닫고 예수님 창문을 열어놓는 하루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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