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0장 13-31절: 하나님을 의지하지 못하게 하는 것들

해설:

 그 때 사람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예수님께 안기려 합니다. 그것을 보고는 제자들이 화를 냅니다(13절). 제자들은 아직도 땅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어린 아이들처럼 사회적으로 존재감 없는 사람들을 귀하게 여기라고 이미 말씀하셨는데(9:36-37) 그들은 아직도 과거의 시각으로 아이들을 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것을 보시고 노하셔서”(14절) 하나님 나라는 “이런 사람들의 것”(14절)이라고 말씀 하십니다. 어린아이들처럼 사회에서 존재감을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 나라는 더욱 필요합니다. 그런 사람들일수록 하나님 나라를 간절히 그리고 겸손히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15절).

그렇게 말씀하신 다음, 예수께서 길을 떠나실 때 어떤 사람이 찾아와 무릎을 꿇고 어떻게 하면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는지를 여쭙니다. 그는 예수님께 “선하신 선생님”(17절)이라고 말을 겁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분이 없다(18절)고 답하십니다. 당신은 선하지 않다는 뜻이 아닙니다. 온전한 의미에서 선하다고 할 분은 하나님 외에 없다는 뜻입니다. 만일 예수님이 온전한 의미에서 선한 분이라고 믿는다면,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사람의 질문에 답하시면서 십계명 중에서 이웃과 관계되는 계명들을 열거하십니다(19절). 그러자 그 사람은 “이 모든 것을 어려서부터 다 지켰습니다”(20절)라고 답합니다. 예수님은 그가 진심인 것을 아시고 “사랑스럽게 여기셨”습니다(21절). 그의 수준에서는 최선을 다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의 수준”이 문제입니다. 모든 인간이 공유하고 있는 죄성으로 인해 우리가 노력하여 이룰 수 있는 수준은 아주 제한적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너에게는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21절)고 하시면서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와서 당신을 따르라고 말씀하십니다(21절). 

이 말씀으로써 예수님은 그 사람이 가지고 있던 율법적인 의를 무너뜨리십니다. “이만큼 하면 되지 않았나?”라는 율법적 자만심이 예수님의 절대적인 요청 앞에서 무너져 버립니다. 그래서 그 사람은 “울상을 짓고, 근심하면서”(22절) 떠나갔습니다. 

그 사람이 떠나가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재산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참으로 어렵다”(23절)고 말씀 하십니다. 이 말씀에 제자들은 적잖이 놀랍니다(24절). 당시 유대교의 가르침에 의하면 부는 의로운 삶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이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어렵다면 가난한 사람들은 더욱 어려울 것입니다. 

제자들의 생각을 꿰뚫어 보신 예수님은 한 술 더 떠서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지나가는 것이 더 쉽다”(25절)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아예 불가능하다는 뜻입니다. 그 말씀에 제자들은 더욱 놀라서 “그렇다면, 누가 구원을 받을 수 있겠는가?”(26절)라고 묻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부자가 구원 받지 못한다면 다른 사람들은 더 말할 것 없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사람에게는 불가능하다. 하나님께는 그렇지 않다. 하나님께는 모든 일이 가능하다”(27절)고 대답하십니다. 

구원 즉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은 인간이 노력하여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입니다. 당시 유대교가 범한 가장 치명적인 오해가 바로 이것입니다. 인간이 의를 쌓아서 하나님의 커트라인을 통과할 수 있고 그래야 한다고 가르친 것입니다. 부자는 그럴 가능성이 가장 큰 사람입니다. 그의 부의 정도가 곧 그의 의의 정도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 생각을 뒤집어 엎으십니다. 구원은 인간이 노력해서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며, 인간의 의는 그 선물에 대한 응답입니다. 부의 정도는 그 사람의 의의 정도와 상관 없습니다. 부를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그의 의를 보아줍니다. 당시 유대교에서는 “쌓은 부”의 분량이 그 사람의 믿음의 정도라고 가르쳤는데, 예수님은 “나눈 부”의 분량이 그 사람의 믿음의 정도라고 말씀 하십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보십시오. 우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선생님을 따라왔습니다”(28절)라고 답합니다. 부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에 베드로가 용기를 얻은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축복의 말씀으로 응답하십니다(29-30절). “나를 위하여, 또 복음을 위하여”(29절) 이 땅에서 무엇인가를 포기하면 “지금 이 세상에서는 박해도 받겠지만”(30절) 더 많은 보상을 받을 것이고 “오는 세상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30절)이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에서 “집이나”(29절) “논밭을”(30절) 버리라는 말씀은 그래도 수긍할 만한데,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녀”를 버리라는 말씀은 수긍하기 어렵습니다. “버리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자주 충격적이고 도발적인 표현을 사용하여 말씀하십니다. 한 번 들으면 잊지 않도록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여기서도 그런 어법을 사용하십니다. 예수님이 말씀하고자 하시는 것은 자녀 혹은 부모의 책임과 도리를 져버리라는 뜻이 아닙니다. 제자들처럼 때로 사명을 위해 모든 소유를 포기하고 가족에 대한 책임을 내려 놓아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누구나, 언제나 그래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이 여기서 말씀하시는 것은 우선순위입니다. 제자의 삶에 있어서 가장 앞에 있어야 할 것은 예수님이요 하나님 나라요 복음입니다. 매일의 일상 생활 중에 행하는 수 많은 결정과 선택에 있어서 하나님 나라를 맨 앞에 두기를 힘쓰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모든 것을 내려 놓고 떠나야 할 때—특별한 부름에 응답해야 할 때 혹은 죽음의 문턱에서—미련 없이 내려 놓고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포기한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것으로 보답해 주십니다. 그래서 “첫째가 꼴지가 되고 꼴찌가 첫째가 되는”(31절) 역전의 현상은 하나님 나라에서 다반사로 일어납니다. 이 세상 기준으로 첫째인 사람이 하나님의 기준으로는 꼴찌가 되는 일이 허다합니다. 

묵상:

어른이 되는 것, 부자가 되는 것, 권력의 자리에 앉는 것, 유능해 지는 것, 똑똑해 지는 것–이 모든 것은 누구나 추구하는 이상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바라는 일입니다. 인간의 역사가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된 이유는 모두가 강자가 되고 최고가 되고 부자가 되려고 경쟁하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그것을 추구하는 이유는 그럴 때 우리의 죄성이 만족을 얻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신이 되고 왕이 되고 주인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할 수 있는대로 많은 사람들을 다스리기를 원합니다. 그렇게 되려면 어른이 되어야 하고 부자가 되어야 하며 권력을 가져야 하고 강해져야 합니다. 

예수께서는 정반대의 길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아이처럼 되는 것, 가난해지는 것, 무력해지는 것, 무능해지는 것, 어리석어 지는 것을 추구하라고 하십니다. 아이처럼 되라는 말은 성숙해지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어린아이처럼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라는 뜻입니다. 가난해지라는 말은 놀고 먹으라는 뜻이 아닙니다. 물질을 목적으로 삼지 말고 물질의 노예가 되지 말라는 뜻입니다. 무력해지라는 말은 자신에게 주어진 힘으로 부리려 하지 말하는 뜻입니다. 무능해지라는 말은 자신의 능력을 의존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어리석어지라는 말은 자신의 지식을 과신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에게 주어진 성숙과 부와 권력과 능력과 지혜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아가는 길에서 걸림돌이 되어 버립니다. 우리에게 무엇이 있든 모든 것을 내려 놓고 언제나 어린 아이처럼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고 의지하는 것이 영적 여정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입니다. 

4 thoughts on “마가복음 10장 13-31절: 하나님을 의지하지 못하게 하는 것들

  1. 어린 아이와 약자들을 돌보시며 부를 하늘 나라에 쌓으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 세상의 부와 명예 때문에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믿음에 걸림돌이 될수있다는 주님의 말씀을 상고합니다.
    세상의 것들을 추구하며 그 안에 안주하는 내 자신을 봅니다, 때론 양다리를 걸치며 엉거 추춤한 자신을 거울에 비추어 봅니다, 나이들며 세상 욕심이 줄어들었지만 아직도 남아있는 욕심을 보며 내 자신의 한계를 깨닫씁니다, 머리숙여 겸손히 기도하며 주님을 경청하는 하루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밤 진실 속 야간 벗꽃 구경가는데 비를 잡아주시고 화기애애한 시간으로 축복해 주십시요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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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땅속에 뭍여있는 가장 귀중한 진주를 사기위해 모든것을 팔고 포기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세상 가치관에 반대되는것 같이 보이는 진리를
    따르는 용기를 원합니다. 주님안에서 원하시는 모든것이 가능하게
    하시는 전지전능의 하나님을 향해 이웃과 더불어 걸어가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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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예수님은 어린이들을 환영하시며 어린이들의 인권을 세워주셨을뿐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본질도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것을 당시 율법 윤리가 조성하는 사회적인 관념을깨뜨리셨을뿐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혁명적인 길을 가르치고 계셨습니다. 이 말씀과 가르치심은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고 있습니다. 이 말씀 앞에서 우리들의 잘못된 사고방식과 관행들이 심판을 받고 있습니다. 진정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는 믿음의 자세를 깨우쳐주십니다. 부자 청년의 이야기도 마찬가지 입니다. 자기 자신을 위한 율법적인 인생관과 재물관은 예수님의 가르침 앞에서 심판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 속에 생래적으로 뿌리밖고 있는 자기 중심적인 모든 사고방식을 심판하고 계십니다. 아무리 부한 사람이라도 자기가 주인이라는 자기중심적인 욕망으로부터 자유하여 하나님의 청지기 정신을 가지고 주님 나라를 위하여 부를 추구한다면 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겠습니까? 모든 것을 하나님의 선물로 받아드리며 주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리는 자세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리라 믿습니다. 우리는 그져 선물에 합당한 삶을 살도록 힘쓸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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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어린아이는 노는 게 삶인데 어른은 놀면 안 되는게 삶입니다. “각자도생”을 잘 하는 것, 만인을 대항하여 하는 만인의 투쟁에서 살아남는 것이 어른으로 삶을 잘 사는 모습이라고 배워왔는데 예수님은 어린이를 하늘나라 시민의 롤모델로 삼으십니다. 연약하고 힘이 없어 타인의 은혜에 의지해야만 살 수 있는 사회적 약자인 어린이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 생각을 뒤집어야 답을 얻을 수 있는 데까지 이끄십니다. 세상이 말하는 가치, 어른으로 살면서 챙겨야 하는 성실한 책임의 리스트가 다 휴지조각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으로만 이해한다면 부자 청년처럼 “매우 슬퍼하며 떠나”야 하지만 예수님의 진실은 그보다 더 깊은 데까지 도달해야 하는 지 모릅니다. 부자 청년은 당장에는 슬퍼했지만 예수님의 말씀을 되새기고 고민하고 기도하면서 자기의 답을 찾았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당신 앞으로 오는 어린이들을 팔에 안으시고 축복하신 예수님. 주님 앞에 나는 어른으로 서 있고 싶지 않습니다. 당신 앞에 서 있는 나는 언제나 어린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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