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1장 15-33절: 열매가 있는가?

해설:

예수님은 곧바로 성전으로 가십니다. 성전 본채 바깥에는 넓은 마당이 있었습니다. ‘이방인의 뜰’이라고 불렸던 이 마당에는 성전 제사를 위한 매매 행위가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제사장들은 제사에 쓸 짐승을 엄격하게 검사했는데, 그 검사에 통과하려면 성전에서 장사꾼들에게 제사용 짐승을 사는 것이 더 편리했습니다. 상인들과 제사장들의 결탁이 있었기에 성전에서 파는 짐승들은 아무 문제 없이 검사를 통과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당시에 사용되던 동전에는 로마 황제나 신의 형상이 새겨져 있었기에 성전에 헌금으로 드릴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곳에는 동전을 교환해 주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환전상들 역시 제사장들과 결탁하여 부정한 이득을 취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작심한 듯 제물을 파는 장사꾼들을 내쫓고 환전상들의 상을 뒤엎었습니다. 또한 정해진 길로 다니지 않고 “성전 뜰을 가로질러”(16절) 물건을 나르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이 소동으로 인해 잠시 동안 성전 제사가 중단되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상인들과 제사장들의 부정한 결탁을 공격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성전 제사 자체를 중단시키려 하신 것입니다. 그러시면서 그분은 이사야 56장 7절과 예레미야 7장 11절을 인용하십니다. 성전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인데, 그들은 강도의 소굴로 만들어 놓았다는 것입니다. 이 소식이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에게 전해집니다. 그들은 예수를 그냥 두고 볼 수 없었습니다. 무리가 예수님의 가르침에 놀라고 있었기에 함부로 손을 댈 수가 없었습니다. 저녁이 되자 예수님은 다시 베다니로 가셔서 쉬십니다(19절).

다음 날 아침, 예수님의 일행은 다시 예루살렘으로 향하십니다. 가는 길에 어제 예수님께 저주 받은 무화과나무가 말라 죽은 것을 보고(20절) 베드로가 신기해 합니다. 그것을 보시고 예수님은 믿음과 기도에 대해 가르치는 계기로 삼으십니다. 그 모든 것이 하나님께 대한 믿음에서 나온다는 뜻으로 “하나님을 믿어라”(22절)고 말씀 하십니다. 하나님을 진실로 믿는다면 그분에게 구한 것이 그대로 이루어질 것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대한 믿음 안에서 기도로 구한 것은 무엇이든지 이미 “받은 줄로 믿어”(24절)야 합니다. 하나님은 살아 계시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는 “기도 하면서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24절)라는 말을 왜곡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살아 계시기 때문에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십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아무 기도나 응답 하지는 않으십니다. “무엇이든지”라는 말은 하나님의 뜻에 맞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른 하나는 기도하는 사람의 자세입니다. 예수님은 기도 중에 어떤 사람과 불화한 일이 생각나면 그 문제부터 풀라고 하십니다(25절). 하나님으로부터 기도 응답을 받는 기쁨을 경험 하려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야 하고 또한 하나님의 뜻을 따라 구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일행은 다시 성전에 가십니다. 성전 뜰 즉 이방인의 뜰에서 거닐고 있는 동안에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과 장로들이 예수께 와서 무슨 권한으로 성전에서 소동을 일으킨 것인지 묻습니다(27-28절). 그들은 한 편으로 예수님이 진짜 메시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렇다는 분명한 증거가 있을 것이니 그 증거를 제시하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런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면 걸어 넘길 구실을 얻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요한의 세례가 하늘에서 온 것이냐 사람에게서 온 것이냐?”(30절)라고 물으십니다. 그들은 이렇게 답할 수도, 저렇게 답할 수도 없었습니다(31-32절). 하늘에서 온 것이라고 답하면 왜 믿지 않았느냐고 물을 것이고, 사람에게서 온 것이라고 답하면 무리가 가만히 있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들은 궁리 끝에 “모르겠습니다”(33절)고 답했고, 예수님은 “나도 내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를 너희에게 말하지 않겠다”고 답하십니다. 그들의 속셈을 아셨기에 이렇게 답하신 것입니다. 그들은 그 무슨 증거를 제시 하더라도 믿지 않을 것이 분명했습니다. 아는 사람은 이미 알고 있으나 부정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묵상:

예수님 당시의 성전 종교는 거대한 소비 체제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것 자체가 목적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열매는 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성전 종교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선언하셨습니다. 성전 뜰에서 예수님이 일으킨 소동은 하나님의 심판을 행동으로 보여 준 예언적 행동이었습니다. 성전 종교는 저주 받아 죽은 무화과나무처럼 심판에 직면해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어떤 열매를 맺고 있습니까? 우리가 행하는 많은 종교 행위 그리고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경건 생활은 무엇을 위한 것입니까? 나무에 잎이 돋고 꽃이 피는 이유는 열매를 맺기 위함입니다. 그 모든 것이 열매를 향해 집중됩니다. 우리의 영적 행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보기를 원하시는 사랑, 거룩, 정의 같은 열매를 맺기 위해 예배도 드리고 말씀 묵상도 하고 봉사도 하는 것입니다. 그런 것 자체가 목적이 되어 종교 소비자가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는 신실하게 영적 생활에 시간과 노력을 쏟아야 합니다. 하지만 그 모든 영적 노력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주일에 드린 예배는 한 주간의 삶에 영향을 미쳐야 하고, 아침에 가진 묵상 시간은 하루의 삶에 영향을 미쳐야 합니다. 그것은 자연히, 저절로 되지 않습니다. 늘 주님과 동행하며 말씀을 묵상하고 순종하는 삶을 통해 열매가 맺혀지는 것입니다. 

3 thoughts on “마가복음 11장 15-33절: 열매가 있는가?

  1. 무화가 나무를 통하여 주시는 말씀 , 성전 들에서 행하여지는 상 행위를 통해서 말씀해 주시는 주님 또 주님의 성전에서 해야 할 기도를 통해서 무엇을 추구하며 어떤 결실들을 맺으며 주님을 따라야 하는 지를 가르쿄 주는 주님.
    내 삶에서 또 오늘 하루를 통해 내 말과 행동안에서 주님의 사랑과 정의가 스스럼없이 나타나기를 기도합니다, 또 믿고 기도하며 의심치 않는 결과를 위한 참 믿음을 간구합니다, 만물이 소생하듯 내 안에 믿음도 같이 소생하는 계절로 은혜주시기를 간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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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세상이 원하는것을 얻기위해 교회 나오지 않았을가 하는 생각을
    하며 회개합니다. 섬김을 받으려고 하지말고 주님뜻에 따라
    기도하며 섬기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항상 열매를 맺어 주님께로 칭찬 받기를 원합니다.
    열매속원들과 열매를 맺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 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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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무화과나무를 봅니다. 어제 시장기를 느낀 예수님에게 실망을 안겨준 무화과나무입니다. 무화과 때가 아직 아니었으니 열매를 딸 수 없는데 예수님은 왜 저주하셨을까요. 오늘 본문에 보니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설명하는 한 예로 쓰셨습니다. 예배하는 삶을 보여주는 소품입니다. 예배는 주일에 교회에서 일정한 형식을 따라 드리고 나면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일상 예배 (딱히 부르자면)”를 드리다 성전 뜰을 지나 성전에 들어가 “성전 예배”를 드리고 나와서 다시 일상 예배를 드리는 것이 우리의 인생입니다. 무화과나무는 무화과를 내고 깻잎 밭에서는 깻잎이 올라옵니다. 버지니아에서 살 때 토마토 나무도 길러봤고 꺂잎과 고추를 밭에 심어 여름 한 철 내내 잘 먹었더랬습니다. 신기하고 신통한 일이었습니다. 토마토는 별 재미를 못 보았습니다. 토마토가 잘 안 달리는 토마토 나무가 예쁘지 않았던 것은 토마토를 받아 먹으려던 원래 의도와 기대가 충족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나처럼 생각하시지는 않을 것입니다. 내가 토마토나무인지 고추인지 생각하는 것도 좀 무섭습니다. 하나님께 예배하는 목적을 위해 지어진 피조물로서 예배는 특별한 일이 아니라 늘 하는 일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성전에서 제물을 사고 팔던 행위도 처음에는 좋은 의도로 시작했겠지요. 예수님이 어제 본문에서 성전의 모든 것을 둘러보셨다는 구절은 성전 뜰과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의 속을 다 뚫어보셨다는 뜻 같습니다. 어제 본 무화과나무는 때가 되어도 제대로 된 열매를 내지 못할 것을 뚫어보셨을 것입니다. 예배는 무엇인가, 예배를 드린다는 것은 무슨 뜻이고, 어떤 모습인가. 나의 하루가 예배의 날인가…3월 내내 출애굽기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제사를 올리고 성막을 짓는 법과 절차를 따라 읽으면서 “하나님이 지시하신대로 다 하였더라”로 끝나는 이토록 중요한 예배의식이 지금 내 삶에서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를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올해 사순절 동안 이 고민을 착실히 해야겠다는 마음이었는데 어제와 오늘 마침 무화과나무가 등장을 했습니다. 아침에 떠오른 생각으로 하루를 시작해 종일 그 생각에 발전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자문자답을 하고, 가게에서 종업원과 손님을 대하고, 누군가가 잘 기른 토마토를 먹고, 나한테 배달된 귀한 선물 자식들 소식도 묻고, 남편 표정도 읽고 책도 읽고 세상도 읽다가 하루가 갑니다. 이렇게 성전 바깥에서 살다 내일은 성전 안으로 들어갑니다. 나는 성전 안에서만 예배자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성전 안에만 계시는 분이 아니시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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