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2장 1-17절: 새로운 계약 백성

해설:

성전 뜰에서 예수님은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과 장로들에게 비유를 하나 말씀 하십니다. 어떤 사람이 포도원을 잘 지어 놓고는 농부들에게 세를 주고 멀리 떠납니다. 때가 되어 주인은 세를 받으려고 종을 보냈는데 농부들은 그를 때리고 빈 손으로 보냅니다. 분노를 참고 또 다른 종을 보내도 동일하게 행동을 합니다. 그들의 행동은 점점 악해지더니 나중에는 보낸 종을 죽이기까지 합니다(3-5절). 결국 주인은 “그들이 내 아들이야 존중하겠지”(6절) 생각하고 사랑하는 아들을 보냈는데, 농부들은 그 포도원을 영구히 차지할 마음으로 그 아들을 죽이고 포도원 바깥에다가 내던집니다(7-8절). 

구약성경에서 포도원은 하나님의 선택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이 비유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선민으로서의 책임을 맡긴 상황을 그리고 있습니다. 농부들은 이스라엘 백성 혹은 그 지도자들을 말합니다. 세를 받으러 보낸 종들은 예언자들을 의미합니다. 참 예언자들은 대부분 고난과 박해를 당했고 때로는 죽음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보냄 받은 아들은 예수님 자신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이제 당신이 당할 일을 내다 보시면서 이 이야기를 만드신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을 죽여 예루살렘 성 바깥에 버릴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이런 상황에서 주인이 그 농부들을 죽이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시면서(9절) 시편 118편 22-23절을 인용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버려진 돌이 가장 귀한 머릿돌로 사용되는 것과 같은 반전을 만들어 내시는 분입니다. 이스라엘이 선민의 자격을 박탈 당하고 새로운 선민이 세워질 것을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은 이 비유의 뜻을 알아 듣고는 분노하여 당장 예수님을 잡고 싶었지만 사람들 눈 때문에 그러지 못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잡아 넣을 구실을 찾다가 묘수를 발견하고 바리새파 사람들과 헤롯 당원 가운데서 몇 사람을 파견합니다(13절). 그들은 먼저 예수님께 아부성 발언을 합니다(14절). 그들은 진심으로 한 말이 아니었는데, 실은 그들의 말이 예수님에 대한 진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진실한 분이시고 아무에게도 매이지 않는 분”이며 “사람의 겉모습으로 판단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길을 참되게 가르치시는” 분입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황제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습니까, 옳지 않습니까? 바쳐야 합니까, 바치지 말아야 합니까?”(14절)라고 묻습니다. 

로마의 식민 지배 아래에 있던 유대인들에게는 이것이 매우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세금을 내는 것은 로마 황제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주권만을 인정해 왔던 유대인들에게는 로마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것이 늘 마음에 걸리는 문제였습니다. 세금을 내지 않는 것은 황제에게 반기를 드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 질문은 예수님을 꼼짝없이 묶어둘만한 묘수였던 것입니다. 세금을 내지 말라 하면 정치범으로 고발 당할 거리를 제공하는 것이고, 내라고 말하면 그분을 따르던 군중이 일시에 등을 돌릴 것입니다. 

그 속셈을 아신 예수님은 데나리온(당시에 가장 흔히 사용되던 로마 화폐)을 보여 달라고 하시고는 “이 초상은 누구의 것이며, 적힌 글자는 누구의 것이냐?”라고 물으십니다(16절). 데나리온 동전에는 로마 황제의 초상과 로마 글자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그들은 “황제의 것입니다”라고 답했고, 예수님은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돌려드려라”(17절)고 답하십니다. 이 대답은 표면적으로는 세금을 내라는 뜻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의 사고 방식에 의하면 하나님의 것이 아닌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이 대답을 통해 예수님이 하고자 하신 말씀은 “황제의 것이 있다면 그에게 돌려주라. 하지만 황제 조차도 하나님의 것인 줄 모르느냐?”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의 대답에 경탄했습니다. 

묵상:

성전에서 소동을 일으키시고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여 말라 죽게 하신 다음, 예수님은 그 모든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포도원 소작인의 비유’로 설명하십니다. 그분이 성전에서 소동을 일으킨 이유는 성전 종교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예고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수 많은 예언자들을 보내어 타락한 유대교의 갱신을 촉구했지만 그들은 듣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지막으로 당신의 아들을 보내셔서 그들을 깨우치려 했지만 그들은 조상들의 불신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며칠 후 그분은 그들의 손에 넘겨져 결국 죽임을 당하고 예루살렘 성 바깥으로 내던져질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하나님께서는 유대교와 성전 종교를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 예언이 주후 70년에 로마군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유대교와 성전종교가 심판을 받아 이스라엘은 약속의 백성으로서의 자격을 상실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새로운 언약의 백성으로 세우십니다. 이제는 혈통을 따라 언약의 백성이 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따라 언약의 백성이 됩니다. 열매 맺지 못하는 백성을 폐하시고 열매 맺는 백성을 새로 세우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의 교회는 과연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열매를 맺고 있습니까? 구원 받은 영혼의 열매, 거룩함의 열매, 진실의 열매, 사랑의 열매, 정의의 열매 같은 것들을 맺고 있습니까? 혹시 예수님 당시의 유대교와 성전종교처럼 이파리는 무성한데 열매는 없는 상태에 있는 것은 아닙니까? 교회의 한 지체로서 내게는 어떤 열매가 맺어지고 있습니까?

4 thoughts on “마가복음 12장 1-17절: 새로운 계약 백성

  1. 선민였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의 선조 예언자들과 사사들을 배척하고 끝내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까지 십자가에 못 밖으며 스스로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하겠다는 주님의 질책을 통해 어리석은 내 자신을 돌아 봅니다.
    삶속에서 주님이 바라시는 성령의 열매 즉 사랑과 희락과 화평 오래참음과 자비와 양성, 온유와 절재와 하나님에 대한 충성의 열매를 맺고있는지 자책하는 아침입니다.
    믿음의 열매들이 성숙되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늘 하나님이 주권을 인정하고 그 주권아래서영생의 삶을 누리도록 마음의 문을 열아주십시요, 주님과 함께하는 하루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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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주님의 몸된 교회의 지체로서 오늘 아침의 말씀을 통하여 사도 바울이 빌립보교회에 한 말씀을 떠올립니다.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하나님의 아들 예수의 피값으로 구원얻은 값비싼 은혜를 늘 기억하게 하옵소서. 오직 주 예수님만이 높힘을 받으시옵소서. 삽자가와 부활의 주님만이 영광을 받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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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가정에서 길거리에서 교회에서 정신이상자로 구걸하는자로 노숙자로
    변장하고 찾아오신 주님을 업신여기고 배척한 죄를 고백합니다.
    영의 눈과 마음이 열려 주님을 항상 기쁘게 맞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세금을 마땅히 바치는 본을 국민에게 보여주는 지도자를 원합니다.
    모든것이 주님의 통치안에 있는것을 깨닫고 이웃과 함께 주님나라를
    이땅에서 맛보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 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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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예수님의 비유를 알아들은 그들 – 율법학자들과 장로들 같은 엘리트 집단- 의 반응은 예수님을 붙잡아 법에 넘기는 일이었습니다. 비유 속에서 자신들이 악한 소작인이라는걸 알았다는 뜻인데 군중심리 때문인지 아예 죄책감조차 못 느껴서인지 진실을 외면하고 거짓의 길에 남는 쪽으로 선택을 합니다. 예루살렘에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그들은 이미 예수님에 대한 소식을 들었을 것이고 그 가르침을 놓고 자기들끼리 토론도 했을 것입니다. 이제 오셔서 성전 안에서 일어나는 상업행위를 꾸짖으시고, 성전의 본뜻이 훼손된 것을 질책하실 때 그들은 자기들의 상태를 꿰뚫어 보시며 그렇게 살지 말라고 촉구하시는 것을 알았습니다. 비유 속에서 소작인들은 자신들이 해야 하는 한가지를 하지 않으려고 열가지 잘못을 일으키는 것을 봅니다. 주인에게 주인이 마땅히 받아야 할 수확물을 보내면 되는데 이를 하지 않으려고 더 큰 죄를 짓습니다. 작황이 좋지 않아 수확물이 적어 걱정이라면 이 문제를 주인에게 알리고 해결책을 구해야 맞습니다. 자기들 몫이 작다고 생각되면 이 문제도 주인과 “단체교섭”이라도 해서 풀면 될 것입니다. 예수님 시대의 상황은 성전에서 드려지는 예배 뿐 아니라 유대인들의 삶 자체를 규정하는 모든 종교의식과 행위가 속속들이 다 부패해 어디 한 군데만 손을 댈 수 없는 상태에 놓였는지 모릅니다. 세례 요한도, 예수님도 회개하라고 하십니다. 새로와지라고, 새롭게 되기를 원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모든 것을 다 고치고 싶어도 한 가지부터 시작해야 하고, 모든 사람이 다 해야하는 일도 한 사람씩 해야 합니다. 오늘 내 삶 속에도 내가 속한 교회 속에도 분명 고치고 회개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회개를 선택할 것인지, 지금 이 상태를 덮고 지나갈 것인지…예수님, 새로와지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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