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2장 18-34절: 하나님을 안다는 것

해설:

이번에는 사두개파 사람들이 찾아옵니다. 사두개파는 제사장들의 이익 집단이었습니다. 그들은 평신도 신앙 운동이었던 바리새파 사람들과 여러 가지 점에서 달랐습니다. 그 중 하나가 부활에 대한 믿음이었습니다. 바리새파 사람들은 마지막 날에 의인들이 부활할 것이라고 믿었지만 사두개파 사람들은 그렇게 믿지 않았습니다. 사두개파 사람들이 볼 때 예수님도 바리새파처럼 부활을 믿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바리새파 사람들과 부활에 대해 논쟁할 때마다 사용했던 어려운 질문을 가지고 예수님께 도전합니다. 

형이 자식을 낳지 못하고 죽으면 동생이 형수를 위해 대신 자식을 낳아 주어야 한다는 율법 규정(신 25:5-10)을 일곱 형제의 가정에 적용하여 가상의 상황을 만듭니다. 맏형이 자식을 낳지 못하고 죽어서 그 동생이 형수를 취했는데 그도 자식을 두지 못하고, 그래서 셋째가 그렇게 했는데 그도 자식을 낳지 못하고, 그렇게 일곱째까지 했다는 것입니다(20-22절). 이럴 경우, 부활의 날에 그 여인은 누구의 아내가 되느냐는 것이 그들의 질문이었습니다(23절). 

이 질문에 대해 예수님은 “너희는 성경도 모르고, 하나님의 능력도 모르니까, 잘못 생각하는 것이 아니냐?”(24절)고 답하십니다. 부활의 세계는 지금 우리가 경험하는 것으로 이해하거나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애벌레의 세계와 나비의 세계가 전혀 다르듯, 지금 우리가 사는 세계와 부활의 세계는 전혀 다릅니다. 우리가 지금 삼차원 공간에 산다면 부활의 세계는 무한 차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그 진실을 거듭 말하고 있고, 전능하신 하나님은 그것을 가능하게 합니다. 문제는 우리가 성경의 진실을 받아들이지도 않고 하나님의 능력도 믿지 못하는 데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나타나셨을 때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다”라고 말씀하셨다는 사실을 강조하십니다(26절). 모세 시대에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이미 오래 전에 죽은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었다”고 해야 하는데 현재형으로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여전히 살아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하나님은 죽은 사람들의 하나님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들의 하나님이시다”(27절)라고 말씀하십니다. 뒤집어 말하면 “하나님 안에 있는 사람들은 이미 죽었어도 살아 있는 것이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영원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율법학자들 중 한 사람이 예수님의 대답을 듣고는 그분이 범상치 않은 분이라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그는 율법과 관계하여 가장 중요하다고 여겨졌던 질문 즉 “모든 계명 가운데서 가장 으뜸되는 것은 어느 것입니까?”(28절)라는 질문을 예수께 던집니다. 예수님은 신명기 6장 4-5절의 쉐마 본문(하나님 사랑)과 레위기 19장 18절의 말씀(이웃 사랑)을 가장 중요한 계명으로 제시하십니다(29-31절). 

모든 계명 중에 가장 큰 계명은 ‘사랑의 계명’입니다. 모든 계명은 사랑에서 나오고 또한 사랑을 향합니다. 그 사랑의 대상은 하나님과 이웃입니다. 당시 율법학자들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분리시켜 놓았고, 율법을 잘 지키는 유대인만을 이웃으로 규정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웃 사랑이 하나님 사랑과 분리시킬 수 없는 것이며 이웃에는 이방인과 원수까지도 포함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그 율법학자는 이 대답에 공감을 표합니다(32-33절). 예수님은 “너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34절)고 칭찬하십니다. 그런 마음이면 머지 않아 예수님의 복음을 받아 들일 것이 분명해 보였던 것입니다.

묵상: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그 믿음으로 자신의 세계관과 인생관과 가치관을 리셋하는 것입니다. 물질과 육신이 전부라는 믿음 위에 세워진 모든 생각과 믿음을 드러나는 영적 진실에 맞추어 고쳐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알고 하나님 나라가 어떤 것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는 것은 그 때문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한계적인 인간으로서는 하나님을 더듬어 알 수 없고 하나님 나라를 찾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드러내 보여 주시고 당신의 나라를 계시 하셔야만 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말씀을 읽고 기도하며 묵상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묵상하며 기도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자신의 사고의 틀 안에 버티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두개파 사람들처럼 자신이 알고 있는 세상에 하나님을 끼워 맞추려 합니다. 자신을 가두고 있는 틀에 맞지 않는 것은 모두 잘라 버리려 합니다. 그렇기에 그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만든 우상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와서 가장 큰 계명이 무엇인지를 여쭈었던 율법학자처럼 자신에게 드러나는 진리에 자신을 맞추려는 겸손한 태도가 있어야 하나님을 제대로 믿을 수 있고 그분의 뜻을 분별할 수 있습니다. 자신을 활짝 열고 말씀 묵상과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알아가기를 힘쓰는 사람만이 믿음 안에서 성장할 수 있습니다.  

4 thoughts on “마가복음 12장 18-34절: 하나님을 안다는 것

  1. 때때로 하나님 나라에 대한 궁금증은 누구에게나 있는 일이고 또 잘 받아들여 지지않기에 여러가지 의문점들이 있고 성경에서도 그때 그때 달리 설명하기에 종종 감이 잡히지 않지만 내 믿음 자체가 하늘나라라 믿고 성숙해 나가기를 기원합니다.
    그 믿음 위에 첫번째 계명인 하나님 사랑과 둘째 계명인 이웃 사랑을 실천하며 내 가치관을 주님께 고정하고 오늘 하루도 주님이 주인이 되는 하루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내 자녀 사랑하듯 이웃을 사랑 할수있는 믿음을 간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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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우리에게 영원히 살아계신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라고 가르쳐주신 주 예수님, 주님은 친히 부활신앙을 믿으시고 그 믿음으로 사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영원하신 아버지 하나님 보좌 우편에 오르셔서 지금도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고 계십니다.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의 기쁨과 평화를 누리고 살뿐아니라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 가르치심과 계명을 따라 살게 하옵소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를 통하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자가 없느니라 말씀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명히 깨닫고 주님을 배우며 따르게 하옵소서. 이미 우리는 이 땅에서 주 예수님의 복음을 믿음으로 영생을 얻었고 또한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속하여 있습니다. 이 믿음에서 좌로나 우로나 흔들리지 않게 하옵소서. 오늘도 하나님 나라의 약속의 언약 안에서 감사하며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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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하늘나라를 잘 모르지만 저희들 생각 하는것 보다 비교가 안될 정도로
    더 좋고, 주님과 이웃을 사랑하라는 주님의 뜻에 순종하려고 하지만
    겉으로 흉내도 못내는것을 고백합니다. 오직 한 분이신 창조주 사랑의
    하나님만이 원수를 사랑하라고 명령을 하실수있습니다.
    주님 나라와 주님의 사랑을 좀더 정확히 알기를 원합니다.
    주님 나라를 맛보며 이웃을 바로 사랑하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 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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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정확하지도 가능하지도 않은 말입니다. 지식으로도 경험으로도 사람이 하나님을 알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을 알고 싶고, 아는 데 그치지 않고 사랑하고 싶습니다. 알아야 사랑할 수 있는 대상도 아닙니다. 더 사랑하고 싶어서 알고 싶다는 표현이 맞을 것입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알아가는 과정, 사랑하게 되는 계기 등을 나와 하나님 사이에도 적용할 수 있지만 사람과의 관계와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하나님을 말할 때는 내 식으로 알고 이해하고 사랑하는 하나님을 말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 하나님과 영원히 사는 천국에 대해 사두개파 사람들이 질문을 합니다. 이 질문을 읽으면 일단 화부터 납니다. 여자로서 기분이 확 나빠집니다. 맏형의 아내는 자식을 낳는 의무 외에는 달리 가치가 없는 사람입니다.
    도리를 다 하지 못한 이 형수가 천국에 들어갔다고 가정을 해주니 고맙다고 해야 할까요, 죽은 뒤 천국에서라도 뜻을 이루라는 격려라고 해석해 줄까요. 천국에서도 이 남편들하고 또 같이 살아야한다면 거기가 천국 맞냐고 묻고 싶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이해와 지식이 다 자기식이라고 해도 부활 뒤에 가는 천국을 이 땅과 이생의 연장선에서 상상하는 것은 무익한 논쟁이고 무의미한 소망일 것입니다. 천국에 사는 나는 이 땅의 나와는 전혀 다른 나일 것입니다. 오늘도 나는 어제와 다른 나를 꿈꾸는데요. 내가 믿는 하나님은 아브라함 때 아브라함을 이끄신 하나님이시면서 지금 나의 길을 이끄시는 분이십니다. 우리 엄마가 당신 방식대로 자유롭게 믿은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과 같으면서도 다릅니다. 하나님은 영원히 살아계시기에 예수님을 통해 그 당시 사람들 앞에 나타나셨고, 지금 내게도 나타나시는 분이시라고 믿습니다. 한없이 부족하고 늘 약하지만, 매일 매일 하나님을 더 알고 더욱 사랑하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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