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4장 1-21절: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해설:

유월절은 이집트로부터 해방된 날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우리로 하면 광복절과 같은 날입니다. 유월절은 곧바로 무교절로 이어집니다. 무교절은 일 주일 동안 누룩 넣지 않은 빵(무교병)을 먹으면서 이집트를 탈출하던 조상들의 고난을 기억하는 기간입니다. 이 기간 동안 유대인 남성들은 제사와 축제를 위해 예루살렘 성전으로 모여듭니다. 

유월절이 시작되기 이틀 전(1절), 즉 오늘로 하면 마지막 주간의 수요일에 예수님은 베다니에 있는 나병 환자 시몬의 집에 머무르고 계셨습니다(3절). 시몬은 한센씨 병으로 인해 격리되어 살았는데 예수님을 통해 치유 받고 집에 돌아와 있었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초대하여 대접하는 중에 한 여자가 값비싼 “나드 향유 한 옥합”(3절)을 가지고 와서 예수님의 머리에 붓습니다. 그러자 몇몇 사람들이 삼백 데나리온(오늘로 치면 3만 달러 이상의 고액)도 넘는 값비싼 향유를 허비하는 것을 못 마땅히 여깁니다(4-5절). 그것을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다면 얼마나 유익하겠느냐며 불평합니다. 예수님이 항상 가난한 사람들을 살피시는 것을 생각하고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칭찬을 듣고 싶어서 그랬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여자의 행위를 두둔하십니다. 그 여인의 행위는 당신의 장례를 위해 미리 준비한 것이라고 하십니다(8절). 사실, 그 여인은 그런 뜻으로 그 일을 행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향한 그의 사랑이 그렇게 행동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예수님의 장례를 위한 행위가 되었던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하나님의 길을 막고, 어떤 사람은 자신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하나님의 길을 준비합니다. 사랑으로 행하면 자신도 모르는 하나님의 일을 이룹니다. 바로 그것이 복음이 전해지는 곳에서마다 그 여인의 행위도 전해져야 할 이유입니다(9절).

그 즈음에 가룟 유다가 대제사장들에게 찾아가 예수님을 넘겨 주겠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그 대가로 은돈을 주기로 약속합니다(10-11절). 유다가 예수님을 넘겨 준 이유는 돈에 있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랬다면 더 많은 돈을 요구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무교절 첫 날(12절) 즉 오늘로 하면 목요일은 유월절 식사를 위해 양을 잡는 날입니다. 유월절 시작하는 시간(오늘로 하면 목요일 저녁)에 각 가정에서는 가장의 주도 하에 출애굽 사건을 기억하면서 식사를 나눕니다. 조상들이 이집트를 떠날 때 먹었던 음식을 먹으면서 조상들에게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찬양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 유월절 식사를 어디에서 준비하면 좋겠느냐고 여쭙니다(12절). 예수님은 두 제자를 예루살렘 성 안으로 보내어 미리 준비해 둔 장소를 찾아가 유월절 식사를 준비하게 하십니다(13-16절). 저녁이 되어 예수님은 다른 제자들과 함께 그곳으로 가서 유월절 식사를 나누십니다(17절). 

그 때 예수님은 제자들 중 하나가 당신을 넘겨 줄 것이라고 예언하십니다(18절). 그 말씀을 듣고 제자들은 두려워졌습니다. 위험 앞에서 자신들이 무슨 일을 할지 몰랐기 때문에 “나는 아니지요?”(19절)라고 여쭙니다. 예수님은 누구라고 말씀하지 않으시고 “나와 함께 먹고 있는 사람”(18절) 혹은 “나와 함께 같은 대접에 빵을 적시고 있는 사람”(20절)이 그럴 것이라고 대답하십니다. 시편을 잘 아는 사람은 이 말씀이 시편 41장 9절에 대한 암시임을 알 것입니다. 당신이 배반 당하는 것은 이미 성경에 예언이 되어 있는 일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인자는 자기에 관하여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대로 떠나간다”(21절)고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당신을 배반하는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자기에게 좋았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인간의 악한 선택이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는 데 사용되었다고 해도 그 악행이 용서 받는 것은 아닙니다. 

묵상:

이름 없는 한 여자와 가룟 유다의 행동은 극명하게 대조를 이룹니다. 그 여인은 예수님께 큰 은혜를 입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분에게서 받은 은혜와 사랑은 그로 하여금 자신의 가장 좋은 것을 드리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그가 예수님께 부은 향유는 그의 전 재산이었을 것입니다. 그는 단지 사랑이 이끄는 대로 행했을 뿐인데, 예수님은 그의 행동이 당신의 죽음을 준비하는 일이었다고 받아 들이십니다. 유대 관습에 따르면 죽은 사람을 매장하기 전에 시신을 향유로 깨끗이 단장해야 했는데, 예수님의 경우에는 그럴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는 알지도 못한 채 예수님의 장례를 미리 준비한 것입니다. 

반면, 가룟 유다는 자신의 생각과 계획 대로 행동했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배반한 것은 은전 몇 푼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갈릴리에서 발휘했던 이적의 능력으로 로마군을 몰아내고 이스라엘 왕국을 이루도록 몰아 세우려고 대제사장들을 찾아갔습니다. 예수님이 위기를 만나면 당신의 정체를 드러낼 것이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의 기대와는 달리 예수님은 순순히 체포 당하시고 무력하게 고난 당하십니다. 그리고 마침내 십자가에 달려 죽임을 당하십니다. 가룟 유다의 배반은 역설적으로 예수님의 사명을 이루는 데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죄가 용서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죄를 통해 당신의 뜻을 이루셨지만, 그가 선택한 죄악은 오롯이 그의 몫이었습니다. 

두 사람 모두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는 데 있어 공헌을 했습니다. 다만 한 사람은 사랑의 행위로 공헌했고, 다른 한 사람은 죄악을 선택함으로 공헌했습니다.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든 하나님의 다스림 아래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택한 선과 악을 통해 당신의 그림을 만들어 가십니다. 문제는 우리가 어떤 선택으로 하나님의 뜻에 기여하느냐에 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오직 그분께 대한 사랑을 따르는 것이 가장 복되고 아름다운 삶입니다

3 thoughts on “마가복음 14장 1-21절: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1. 한 여인의 아름다운 사랑을 통해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가롯 유다의 악행으로 주님의 길이 예비되는 반대의 대칭적인 사건을 보며 늘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기도하며 간구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때로 선행을 하며 주님의 뜻인줄 알았지만 실제로는 내 자신의 위선에 기인되는 경우들이 많았습을 고백합니다. 한 여인과 같이 무의 상태에서 오직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자신이 갖은 모든 것을 드리는 믿음으로 성화해 나가기를 기도합니다.
    악마가 가롯 유다의 마음에 들어가 주님을 배신하듯 언제 나한테 들어 올지 모르는 악마가 있음을 깨닫고 늘 깨어 기도하며 악마의 접근을 예방하는 믿음을 간구합니다, 오늘도 매 시간 깨어 기도하게 이끌어 주십시요 아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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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예수님께 온 여인은 자기 돈으로 살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을 가져와 감사한 마음을 표시하는데 어떤 사람들은 이를 보고 “낭비하는” 것이라고 비난합니다. 실제로 자기들은 가난한 이웃을 도와주면서 그런 말을 했는지 모르지만 누군가에게 깊은 감사를 표시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예수님께 백퍼센트 드리고 싶어한 여인의 이야기를 읽으니 부끄럽기도 하고 부럽기도 합니다. 매사를 “적당한” 선에서 하는 것에 익숙한 나의 삶이 초라해 보입니다. 이 당시 베다니 시몬의 집에 있었다면 나 또한 여인을 보며 과하다, 낭비다, 하며 책잡지 않았을까 정직하게 나를 들여다 봅니다. 유다처럼 예수님을 배반하는 죄를 짓지는 않노라고 스스로에게 말하는 것이 크게 감동을 주지 않듯 여인과 유다 사이 어딘가에 어색하고 불안정하게 서 있는 나를 봅니다. 주님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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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입은 여인은 그 동안 주님의 행보를 보면서 주님이 당하셔야 할 종말이 다가옴을 직시하고 있었습니다. 더우기 여인의 민감한 감각은 더 예리하게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는 자기에게 가장 귀한 것을 드려 그녀의 사랑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그녀의 마음을 알아차린 주님은 그녀가 나의 장례를 준비하였다고 하셨습니다. 그 장례는 특별한 장례였습니다. 조금후에 알려질 많은 사람의 죄사함을 얻게 하기 위한 고통과 피흘림의 죽음이었습니다. 반면에 3년동안 따라다니며 온갖 진리의 말씀을 배웠다고 하며 친히 많은 기적을 목격한 제자들의 마음은 늘 콩밭에 가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나는 주 예수님의 구속의 은총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그 가치를 헤아일 수도 없고 또 그러한 일에 무관심하였습니다. 나를 향하신 주 예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크신지 늘 잊어버리고 오직 나의 욕망만을 추구해 왔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러한 나를 위해서도 피흘리셨다고 미리 증언 하셨습니다. 오 나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의 귀한 사랑을 일생동안 찬양하며 경배하게 하옵소서. 오 나의 주님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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