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4장 22-42절: 유월절 양이 되신 주님

해설:

예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예식에 따라 식사를 시작하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중간에 유월절 예식에 없는 말과 행동을 하십니다. 빵을 들어 축복하신 다음에 떼어 주시면서 “받아라. 이것은 내 몸이다”(23절)라고 하십니다. 제자들은 무슨 뜻인지 모르면서 그 빵을 받아 먹었을 것입니다. 또한 그분은 잔을 들어서 감사 기도를 드린 다음 제자들에게 돌려 가며 마시라고 하시면서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다”(24절)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지점에서 제자들은 예수께서 당신의 죽음에 대해 말씀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 챘을 것입니다. 올 것이 오는구나 싶어서 더욱 두려웠을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이것이 당신이 나누는 마지막 식사라는 암시를 주신 다음 식사를 마치십니다(25절). 제자들이 그 모든 행동과 말씀의 의미를 깨달은 것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사흘만에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부활하신 다음의 일입니다.

유월절 식사를 마치고 예수님은 제자들을 이끌고 올리브 산으로 가십니다. 가는 길에 예수께서는 스가랴 13장 7절의 예언을 인용 하시면서 그들이 곧 당신을 버리고 달아날 것이라고 예고하십니다(27절). 하지만 당신이 다시 살아나시면 그들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실 것이라고 하십니다(28절).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과 함께 새롭게 시작할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 말씀을 듣고 베드로는 자신은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합니다(29절). 그러자 예수님은 그날 밤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베드로가 자신을 세 번 부인할 것이라고 예언하십니다(30절). 베드로는 죽는 한이 있어도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호언장담을 합니다(31절). 다른 제자들도 모두 베드로의 말에 가세합니다. 자신들이 어떤 위기 앞에 있는지도 몰랐고, 자신들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들인지도 몰랐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이끌어 올리브 산 계곡에 있는 겟세마네라는 숲에 이릅니다. 그분은 숲 입구에서 제자들에게 기도하면서 기다리라고 하신 다음 세 제자만 데리고 더 깊은 곳으로 가십니다. 그 때 예수님은 “매우 놀라며 괴로워하기 시작하셨다”(33절) 합니다. 갑자기 심한 공포에 짓눌린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세 제자에게 “내 마음이 근심에 싸여 죽을 지경이다”(34절)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예수님에게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감정입니다. 그분은 당신이 죽을 것을 뻔히 알고 예루살렘으로 오셨습니다. 죽음의 위험을 알면서도 피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성경의 예언대로 죽어야 한다는 것도 아셨습니다. 죽은 지 사흘만에 하나님께서 부활시키실 것도 알았습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갑자기 심한 공포에 짓눌린 것일까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오직 하나 뿐입니다. 인류의 죗값을 치루기 위해 당신이 마셔야 할 고난의 잔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를 이 지점에서 제대로 목도하신 것입니다. 그 죽음은 당신 개인의 죽음이 아니라 인류 전체의 죽음이었습니다. 그렇기에 그 죽음의 고통의 깊이와 무게는 예수님에게조차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세 제자를 따로 두고 홀로 더 깊이 들어가셔서 기도하십니다. 할 수만 있으면 그 잔을 마시지 않게 해 달라고 간구하십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뜻이면 그 잔을 마시겠다고 기도 하십니다(35-36절). 예수님은 긴 시간 동안 치열하게 기도 하셨을 것입니다. 그 잔을 마셔야 한다면 마실 수 있는 힘을 달라고 구하셨을 것입니다. 그렇게 기도하고 제자들이 있는 곳으로 와 보니 모두가 잠에 빠져 있었습니다(37절). 예수님은 그들을 깨워 일으키시면서 “깨어서 기도하여라”(38절)고 당부하십니다. 예수님은 다시 가서 홀로 기도 하셨고 돌아와 보니 제자들은 또 자고 있었습니다(39-40절). 세 번째도 동일했습니다. 예수님은 그토록 연약하고 깨달음이 없는 제자들에 대해 연민의 마음이 들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깨워 일으키고는 죽음의 길을 향해 걸음을 떼십니다. “일어나서 가자. 보아라, 나를 넘겨줄 자가 가까이 왔다”(42절)는 말씀에서 예수님의 달라진 마음과 태도를 봅니다. 깊은 기도를 통해 평정심을 회복하신 것입니다. 그것이 기도의 힘입니다.

묵상:

십자가에서 예수께서 겪으신 죽음은 그것 자체만으로는 별로 특별할 것 없습니다. 아무 죄도 없는데 죄인으로 몰려 죽임을 당한 사람들은 예수님 말고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십자가 처형은 당시 로마 제국이 반역자들을 다스리는 방편이었습니다. 수 없는 사람들이 십자가에 달려 죽었습니다. 인류 역사 상 예수님보다 더 억울하게, 그분보다 더 참혹하게 죽임을 당한 사람들은 수 없이 많습니다.

동일한 방식으로 죽는다 해도 죽는 사람이 누구인가 그리고 무엇 때문에 죽었는가에 의해 그 의미와 무게가 달라집니다.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려 죽은 두 사람은 예수님과 같은 자리에서, 같은 시간에, 동일한 죽음을 당했지만 그들의 죽음은 그냥 한 개인의 죽음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죽음은 한 인간의 죽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의 죽음이었고, 한 개인의 죽음이 아니라 인류 전체의 죽음이었습니다. 그랬기에 그분의 죽음은 모든 인류의 죄에 대한 대속의 죽음이 될 수 있었습니다. 

이집트에서 노예 살이를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양을 잡아 그 피를 문설주에 발라 구원을 받은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은 우리를 영원한 멸망에서 구원하는 능력입니다. 십자가 위에서 모든 인류의 죗값을 대신 짊어지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에게도 두렵고 괴로운 일이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아무런 이적도 행하지 않은 이유는 이 두렵고도 고통스러운 죽음을 마주하기 위해 그 모든 능력을 비축해 두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그분의 희생이 내 마음을 뜨겁게 합니다. 주님, 나를 구원하신 그 사랑에 감사 드립니다!

3 thoughts on “마가복음 14장 22-42절: 유월절 양이 되신 주님

  1. 인류의 죄 값을 치루기 위한 십자가의 공포와 사랑이 함께하는 시간에 깊은 기도를 통해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걷는 예수님, 저는 베드로보다 열번 더 부인했을 것이며 예수님이 피땀을 흘리며 기ㄷ하는 시간에 눈을 못 뜨고 조는 제 자신을 발견합니다, 미지막 성찬에서 몸과 피를 비유로 주셨지만 그 뜻을 못 깨달은 제자들 같이 무지 몽매한 내 자신을 주님의 말씀을 통해 비추어 봅니다.
    이제 고난 주일의 시작이니 깨어 기도하며 십자가에 동참하는 준비를 하게 도우소서, 주님의 십자가를 온종일 가슴에 품고 하루를 보내게 도와주십시요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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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겟세마네에서 땅에 엎드려 깊은 기도의 시간을 보내시는 주님의 모습을 그려봅니다. 스스로 “내 영혼이 심히 괴로워 죽을 지경”이라고까지 말씀하실 정도면 곧 닥칠 일들이 얼마나 가슴을 옥죄어 오는지 알 수 있습니다. 모르고 당하는 일이 아니고 다 알고 예측하고 준비하고 맞는 일이라고 하는데도 이 정도로 예수님의 마음을 무겁게 하는 일로 40일 광야에서 시험을 이겨낼 때보다 더 처절한 고독과 자기싸움의 밤을 지내십니다. 나의 가치, 내 삶의 의미는 새털보다 가볍고 때가 되면 피어나는 풀꽃만도 못하게 초라한 것이라고 인생허무에 생각이 다다를 때 쯤, 오늘 말씀이 퍼뜩 정신을 깨웁니다. 예수님이 밤새 괴로와하며 씨름하다 마음에 결심을 세우고 새벽을 맞으셨는데, 그리고 고난주간의 매 순간 피를 뚝뚝 떨어뜨림으로 당신의 생명을 나에게 주셨는데 이렇게 주저앉아 있으면 되겠는가. 사랑하는 믿음의 자매로 30여년 넘게 한국에서부터 교제를 나누다 여기서도 같은 교회를 섬기며 사랑의 교제를 나눈 선교사님이 필리핀에서 급히 돌아가시어 어제밤에 예배를 드렸습니다. 남편 선교사님과 장성한 자식들을 두고 평생 믿음의 본을 보이신 그분의 삶이 참 아름다왔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늘 감사와 찬양이 끊이지 않았던 것을 우리가 보고 동참했기 때문입니다. 고난을 통과하신 후 빛나는 생명의 세계를 열어주신 예수님께 감사합니다. 당신의 고난이 우리에게 영광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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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우리 주 예수님의 십자가 고통의 깊이와 무게를 어찌 다 가늠하겠습니까?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를 쏟는 기도의 절규의 깊이를 어찌 다 짐작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 하나님의 자기 아들을 내 죄값으로 내어주시는 무한한 사랑과 은혜의 깊이를 어찌 헤아릴수 있을까? 오 주님 오직 주님의 성령님만이 나의 눈을 열어 은혜의 신비를 알게 하십니다. 오 주님 조수와 같이 내 영혼 속에 그 은혜의 신비와 사랑의 물결이 밀려들어오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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