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6장 1-20절: 예수 다시 사셨다!

해설:

“안식일이 지났을 때”(1절)는 오늘로 치면 토요일 저녁 이후를 말합니다. 유대인들은 해가 진 시간부터 다음 날 해 지기 전까지를 하루로 계산했습니다. 그런 계산법에 의하면, 예수님은 “사흘 후”가 아니라 “사흘만에” 혹은 “사흘째 되는 날에” 부활하신 것입니다. 안식일 예비일 오후 세 시에 운명하시어 안식일을 지나 그 다음 날에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율법은 안식일에 어떤 장례 행위도 할 수 없도록 규정해 놓았습니다. 그래서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여인들은 안식일이 지나 가기만을 기다렸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시신에 바를 향료를 사 두었는데, 향료를 시신에 바르는 것은 죽은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였습니다. 안식일이 지난 다음 날 새벽에 무덤으로 가면서 여인들은 무덤을 막아 놓은 돌을 어떻게 옮길 수 있을지 걱정합니다(3절). 그들의 힘으로는 돌문을 옮길 도리가 없었지만 그렇다고 그냥 있을 수 없었습니다. 

무덤에 도착해 보니 놀랍게도 무덤 입구를 막아 놓은 돌문이 옮겨져 있었습니다(4절). 여인들은 적잖이 놀랐을 것입니다. 무슨 일인가 싶어 조심스럽게 무덤 안을 보니, 흰 옷을 입은 어떤 젊은 사람이 오른쪽에 앉아 있습니다. 무덤 안에서 기대할만한 일이 아니었기에 여인들은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그러자 그 청년은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셨으니(6절) 제자들에게 갈릴리로 가서 그분을 만나 보라고 이릅니다(7절). 이 일로 인해 여인들은 극심한 혼란과 충격에 휩싸이고 “벌벌 떨며 넋을 잃었”(8절)습니다. 그들은 한 동안 두려움에 질려 아무에게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왜 안 그랬겠습니까? 여인들은 무덤문이 옮겨진 것을 보고 가슴이 철렁 내려 앉는 듯한 충격을 받았을 것이고, 무덤 안에서 “사람인 듯 사람 아닌” 존재를 보고 머리가 하얘질 정도로 놀랐을 것이며, 그 사람의 말을 들었을 때는 충격과 두려움이 감당할 양을 넘어섰습니다. 그 여인들은 부활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는 했지만 그것이 어떤 것인지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이 모든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습니다.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고 한 번도 기대한 적이 없는 사건을 경험한 것입니다. 그래서 여인들은 한 동안 숨어서 서로 부둥켜 안고 벌벌 떨기만 했을 것입니다. 

그 두려움을 벗어나 마음을 수습할 수 있었던 것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그들을 만나 주신 후의 일입니다(9절). 막달라 마리아는 제자들이 모여 있던 곳으로 가서 이 소식을 전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믿지 않았습니다(11절). 누구라고 그 말을 믿을 수 있었겠습니까? 얼마 후에는 그들 가운데 두 사람이 걸어서 시골로 내려가던 중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납니다. 이 이야기는 누가복음에 더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오던 길을 돌아가 다른 제자들에게 그 소식을 알렸습니다만, 그들은 여전히 믿지 않았습니다(12-13절). 

얼마 후, 열한 제자가 모여서 식사를 하고 있는 동안에 예수께서 그들 가운데 나타나십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몸은 1차원 시간과 3차원 공간을 넘어서는 ‘초차원’으로 옮겨 갔습니다. 그분은 시간의 흐름과 3차원 공간을 초월하여 활동하셨습니다. 그랬기에 문을 걸어 잠근 상태에서도 홀연히 나타나시고 또한 사라지셨습니다. 그렇다고 유령은 아닙니다. 때로는 음식을 드셨고 당신의 몸을 보여 주기도 하셨습니다. 부활은 옛 몸으로 다시 돌아온 것도 아니고 유령의 상태가 된 것도 아닙니다. 옛 몸이 신령한 몸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예수님은 그들의 “믿음이 없고, 마음이 무딘 것”(14절)을 꾸짖으십니다. 두 번씩이나 당신을 본 사람들의 말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 다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온 세상에 나가서 복음을 전하라고 명령하십니다(15절). 또한 믿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뿐 아니라 여러 가지의 표징들이 따를 것이라고 약속을 주십니다(16-18절).

그런 다음 예수님은 하늘로 들려 올라가셔서, “하나님의 오른쪽에” 앉으십니다(19절). 이것은 1차원 시간과 3차원 공간의 언어로 하나님의 차원을 표현한 것입니다. “하늘로 올라갔다”는 말은 육신을 입고 오셨던 그분이 다시 하나님의 자리로 돌아갔다는 뜻입니다. 3차원 공간에 오셨던 그분이 하나님의 차원으로 옮겨 가셨다는 뜻입니다. 1차원 시간에 묶였던 그분이 영원으로 옮겨 가셨다는 뜻입니다. 육신을 입고 오셨던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에 하나님의 차원으로 옮겨 가십니다. 그리고 그분은 다시 오셔서 새 하늘과 새 땅을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승천은 우리에게 그분의 ‘부재’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존재 상태로 돌아가신 그분은 무소부재하시고 전지전능하신 존재로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20절). 부활과 승천은 우리로 하여금 세상을 새롭게 보게 해 줍니다. 하나님 없는 세상을 살던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으로 충만한 세상을 보게 해 줍니다. 오늘도 부활하신 주님은 우리의 갈릴릴 즉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묵상: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가 믿고 있던 세계관을 부정합니다. 물질이 전부가 아니고, 육신이 전부가 아니며, 목숨이 전부가 아님을 증명합니다. 1차원 시간을 넘어서는 영원의 차원이 있으며, 3차원 공간을 넘어서는 하나님의 나라가 있음을 증언합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이전에 하나님께서 예언자들을 통해 증언 하셨던 하나님의 나라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입증한 것입니다. 역사의 흐름 가운데서 일어난 이 한 번의 사건은 역사 전체를 새롭게 보게 만듭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보다 믿지 못하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 믿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에 눈 뜨고 보면, 그 차원을 알지 못하고 사는 것이 얼마나 큰 불행인지를 알게 됩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먼저 갈릴리로 가셔서 제자들을 부르십니다. 갈릴리는 주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전도를 시작하신 곳입니다. 갈릴리는 또한 당시 유대 사회에서 가장 낮은 곳이었습니다. 가난하고 소외되고 밀려난 사람들이 사는 곳이었습니다. 절망과 불만과 증오가 가득한 땅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곳에서 전도를 시작하셨고 완성하셨습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끝까지 주님을 오해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통해 땅의 나라를 얻으려 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야무진 야망은 십자가로 인해 산산히 깨어졌습니다. 인간적인 꿈이 무너진 자리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다면 그들은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갈릴리로 제자들을 부르십니다. 3년 전에 예수님이 그렇게 하신 것처럼 그들도 이제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들고 전도를 시작하라는 뜻입니다. 

그렇게 다시 시작된 복음 전파의 역사가 이어져 오늘 우리에게까지 그 복음이 들려졌습니다. “온 세상에 나가서,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여라”(15절)는 명령에 순종하여 인생을 바친 사람들로 인해 오늘 우리가 그 복음을 듣고 구원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구원자이신 주님께 감사 드리는 것이고, 그 복음이 우리에게 전해지게 한 수 많은 믿음의 조상들에게 감사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복음의 종착역이 아닙니다. 그 복음은 우리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퍼져 나가야 합니다. 우리가 진실로 하나님 나라를 알고 구원의 복음을 믿는다면, 그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전해야 할 영예와 의무가 우리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3 thoughts on “마가복음 16장 1-20절: 예수 다시 사셨다!

  1. 어제 성금요일예배를 드리고 우리는 오늘 아침 무덤에 계신 주 예수님을 묵상합니다.그러나 본문 말씀은 우리의 어두운 영혼을 깨고 부활하신 주 예수님을 바라보게 합니다.영원의 차원으로 옮겨가신 주 예수님은 이 세상의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신 하나님의 차원으로 옮겨 가셨습니다.그러므로 주님은 이 세상을 초월하신분이시며 동시에 이 세상 안에 계셔서 우리 가운데 영원히 계신 분이신 것을 믿습니다. 우리는 초대교회 성도들의 체험 증언을 믿습니다. 그것이 성경에 기록되어 전해져 오는 것을 믿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믿음을 가진 자는 부활하신 주 예수님을 생활 속에서 체험합니다. 또한 그것은 성령의 역사이시기도 합니다. 내일 우리는 부활하신 주 예수님을 찬양하며 경배합니다. 그리고 우리 삶속에 살아계신 주 예수님을 다시 영접하며 확인합니다. 사도 바울을 통하여 부활하신 주 예수님을 따라 사는 부활생명의 구체적인 삶에 대하여 로마서 6장에서 증거하는 것을 봅니다. 그리고 또한 고린도전서 15장에서 우리는 3차원의 부활신앙에 대해서 증거하는 것을 봅니다. 1차원은 주 예수님의 부활사건이요 2차원의 바울이 증언하는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받은 자는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죽고 그와 함께 다시 사는 것이니라는 말씀입니다.우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다시 살아있는 지로 여길 지어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주님 다시 오실때 우리 모두는 신령한 몸으로 부활한다고 하는 약속입니다. 그러므로 부활하신 주 예수님은 믿는 자들의 부활의 첫 열매라고 증언합니다. 그러므로 주 예수를 믿는 자들은 모두 주 안에서 다 부활하리라고 하시는 약속입니다.아멘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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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내가 믿는 예수님은 살아계신 예수님이십니다. 죽음을 모르는채 살아계신 분이 아니라 죽음의 자리에서 살아나신 분, 죽음을 끝이 아니라 시작으로 만드신 분이십니다. “어떻게”라는 질문에는 답을 못하지만 “왜”라는 질문에는 몇 가지 답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를 사랑하셔서, 어둠에서 빛으로 걸어나오라고, 당신의 마음으로 세상을 보라고, 진짜로 살라고…살아나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원하신 것은 세상으로 나가 복음을 전하는 일이었고, 좋아하지 않으신 것은 마음이 굳어져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새로운 날, 새로운 존재가 된 나에게도 이같은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변화의 필요성과 가능성을 말씀하시고 친히 보여주신 예수님. 순간에서 영원을, 땅에서 하늘을, 나에게서 타인을 보라고 하십니다. 빈 무덤이 영광으로 가득찬 것을 보라고 하십니다. 다시 사신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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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세상의 가치관으로는 도저히 믿지못할 진리를 깨닫게 인도하신 주님께 감사와
    영광을 드립니다. 값싼 은혜에 도취 되지말고 세상을 버리고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담대히 지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세상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천국
    소망만 바라보고 남은 여생을 살기를 원합니다.
    이웃과 함께 십자가와 부활의 증인이 되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 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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