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63편: 생명보다 더 소중한 것

해설:

표제는 다윗이 유다 광야로 피신해 있는 동안에 이 시편을 지었다고 밝힙니다. 9절과 10절에 암시된 것처럼, 그는 자신을 “죽이려고 노리는 자”들에게 쫓겨 광야로 피신해 있습니다.   

다윗은 광야에서의 목마름을 하나님께 대한 목마름에 대한 은유로 사용합니다. 그가 목이 마른 이유는 물기 없는 광야에 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버림 받은 것 같은 영적 무감각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애타게”(1절) 주님을 찾습니다. 주님의 임재를 찾는 사람은 성소를 찾게 되어 있습니다. 그곳에서는 하나님의 임재를 더 진하게, 더 가깝게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소에서 그는 밤을 낮으로 삼아 하나님의 임재를 구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기도한 결과 그의 영적 무감각이 깨어지고 하나님의 임재에 눈을 뜨게 됩니다. 그래서 그는 “내가 성소에서 주님을 뵙고 주님의 권능과 주님의 영광을 봅니다”(2절)라고 고백합니다. 다윗에게는 전쟁에서 패하여 광야로 피신했다는 사실보다는 하나님과 멀어져 있다는 사실이 더 고통스러웠는데, 간절한 기도를 통해 그분의 임재에 눈을 뜬 것입니다.

이어서 다윗은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이 생명보다 더 소중”(3절)하다고 고백합니다. 그가 “생명이 다하도록”(4절) 주님을 찬양 하려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한결같은 사랑(헤세드)을 맛보며 사는 것은 “기름지고 맛깔진 음식을 배불리 먹은 듯”(5절)한 내적 만족감을 맛보게 합니다. 그것을 맛본 사람은 “기쁨에 가득 찬 입술로”(5절) 주님을 찬송합니다. 잠자리에 들어 낮에 먹었던 맛난 음식을 상상하며 내일 또 먹을 생각에 혼자 웃는 어린 아이처럼, 하나님의 한결같은 사랑을 맛 본 사람은 잠자리에 들어서도 하나님을 상상하기를 즐깁니다. 그렇기에 다윗은 그분의 “날개 그늘 아래”(7절) 거하며 주님께 매달리겠다고 고백합니다(8절).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영적 감각을 회복한 다윗은 그제서야 자신을 죽이려는 사람들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납니다.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니 그들은 결국 심판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9-10절).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다시 높여 주시어 모든 백성들로부터 칭송을 받게 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회복합니다(11절).

묵상: 

사는 것은 곧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 하고 사랑 받는 것이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내면 깊은 곳에 사랑하고 싶은 갈망과 사랑 받고 싶은 갈망을 심어 두셨기 때문입니다. 그 갈망은 오직 “한결같은 사랑”(헤세드, 아가페)에 의해서만 채워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담과 하와가 범한 원죄로 인해 우리는 그 사랑을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람에게서 얻을 수 있는 대용품 사랑으로 그 자리를 채우려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누구나 태어나면서부터 사랑 받지 못할 것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혀 살아갑니다. 그 두려움은 우리의 사랑의 능력을 무력화시킵니다. 결국, 우리는 사랑을 알지도, 사랑을 하지도 못하는 존재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것이 우리 인간사에서 일상으로 경험하는 두려움과 미움과 의심과 불신과 적의와 갈등과 싸움의 원인입니다.

다윗이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이 생명보다 더 소중하다”고 말한 것은 시적 표현이 아닙니다. 상징도 아닙니다. 현실입니다. 한결같은 사랑을 경험하지 못하는 한 진짜 살았다 할만한 생명을 맛보지 못합니다. 우리가 목마른 이유는 그 사랑을 몰라서 그러는 것이고, 우리가 배고픈 이유는 그 사랑을 먹지 못해서 그러는 것입니다. 우리가 두려운 이유도 그 사랑이 없어서 그러는 것이고, 우리가 누군가에게 분노하고 미워하는 이유도 그 사랑이 없어서 그러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 모두는 다윗처럼 광야에 내몰려 살고 있는 셈입니다. 광야는 영적인 기회의 땅입니다. 우리에게 무엇이 결핍되어 있는지를 알게 하며, 그 결핍을 통해 하나님에게 눈 뜨게 만드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 우리도 하나님의 임재에 눈 뜨고 그분의 한결같은 사랑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3 thoughts on “시편 63편: 생명보다 더 소중한 것

  1. 매일 매일의 일상에서 하나님의 한결같은 사랑에 의지하여 이웃과의 관계를 이어가게 하시고 그 사랑이 늘 내 안에서 작동하게 성령의 도움을 구합니다.
    주님의 권능안에서 나가 나 됨을 신뢰하며 성숙하기를 기도합니다, 그래서 주님의 그늘아래서 안식하며 주님 찬양하면서 삶의 기쁨을 만끽하기를 기원합니다.
    주님 오늘도 제 곁에 계시어 주님의 기준에서 탈선하지 않도록 지켜주십시요 주님.

    Like

  2. 땅 끝까지 함께하시겠다고 약속하신 사랑의 주님 감사합니다.
    죽음의 골짜기에서 사랑의 약속을 믿고 평안을 누리는 믿음이 필요
    합니다. 매마른 빈 들 에서나 험한 풍랑속에서도 하늘나라를 맛보며
    살기를 원합니다. 이웃과 함께 사랑을 나누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
    주십시오. 아멘.

    Like

  3. 다윗이 말하는 이 광야가 예수님 계시던 광야였을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성령에 이끌려 광야에 나가 시험을 받으셨는데 그 광야에서 세상의 모든 것을 능히 이길 힘을 확인하셨습니다. 다윗은 광야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그분의 사랑이면 모든 것을 이길 수 있음을 발견합니다. 사는 것도 죽는 것도 다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모르고 사는 것은 곧 무덤으로 내려가는 것, 살아 있어도 죽음의 자리에 있는 것임을 우리도 경험합니다. 내 안에 사랑이 없을 때, 하나님의 사랑의 빛에서 멀어질 때는 무덤으로 내려가는 듯, 광야에 버려져 짐승의 밥이 되는 듯 고독하고 음울한 감정의 추락을 경험합니다.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들의 극적인 상태가 이처럼 빛이 없어진, 영혼의 광야 같은 때인지 모릅니다. 그런 상태를 벗어나게 하는 힘, 광야를 지배하는 사탄의 속삭임을 잠재울 힘은 어디서 나올까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을 수 있는 신비한 구원의 실마리는 어디서 나올까요.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기억할 때겠지요. 살아있음도, 혹 죽게됨도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일어나는 일임을 기억할 때,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고 고백할 때 내가 하나님께 연결되어 있음을 기억할 때겠지요.

    Like

Leave a Reply

Fill in your details below or click an icon to log in:

WordPress.com Log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WordPress.com account. Log Out /  Change )

Google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Google account. Log Out /  Change )

Twitter picture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Twitter account. Log Out /  Change )

Facebook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Facebook account. Log Out /  Change )

Connecting to %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