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64편: 하나님이 보신다!

해설:

다윗의 시로 소개되어 있는 이 시편은 기도자가 악의적인 사람들로부터 중상모략을 당하고 있는 상황을 배경으로 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다윗은 탄식하며 하나님께 기도 드립니다(1절). 악한 사람들의 은밀한 모의와 폭력으로부터 보호해 주시기를 청합니다(2절). 

이어서 다윗은 그들의 악행을 자세히 묘사합니다. 그들은 “칼날처럼 날카롭게 혀를 벼려 화살처럼 독설을 뽑아냅니다”(3절). 누군가에게 악의를 품게 되면 우리의 마음은 이렇듯 잔인해집니다. 그 사람에게 가장 상처가 될 말들을 골라내어 급소를 찾아 공격합니다(4절). 그런 사람들은 끼리끼리 모여 작당하기를 좋아합니다. 그들은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악을 꾸미고 도모합니다(5절). 그러면서도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말하고 행동합니다. 그래서 다윗은 “사람의 속마음은 참으로 알 수 없습니다”(6절)라고 탄식합니다. 믿고 의지했던 사람에게 배신 당해 보았기에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악행을 도모하면서도 “누가 우리를 보랴?”(5절)고 생각하는데, 실은 그들의 악행을 불꽃같은 눈으로 지켜 보시는 분이 계십니다. 그들이 다른 사람에게 화살을 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그들의 악행에 대해 화살을 쏘십니다(7절). 하나님은 그들이 혀를 놀려 한 악담이 부메랑처럼 그들에게 돌아가게 하십니다(8절). 하나님의 징벌과 심판을 받고 나서야 그들은 회개하고 하나님의 하신 일을 고백하고 선포할 것입니다(9절). 반면, 의인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생각하며 기뻐하고 주님께 피할 것입니다(10절).

묵상:

대기권에 떠 있는 인공위성들은 지구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세밀하게 관찰할 수 있다고 합니다. 우리 집 냉장고에 있는 계란의 수까지 파악하고 있다고 합니다. “나를 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생각하는 순간에도 누군가 나를 보고 있다는 뜻입니다. 또한 요즈음 우리는 사방에 설치되어 있는 카메라에 항상 노출되어 있습니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마음 놓고 한 행동이 영상에 찍혀 사람들이 인터넷에서 돌려 보는 공포스러운 상황이 발생합니다. “낮말을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는 속담이 이제는 현실이 되어 버렸습니다. 우리는 이제 24시간 삶이 공개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전지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신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속속들이 지켜 보십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불꽃같은 눈동자”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모든 것을 샅샅이 꿰뚫어 보신다는 뜻입니다. 인공위성과 몰래카메라는 우리의 외면만을 보지만 하나님께서는 속마음까지 들여다 보십니다. 다윗은 “사람의 속마음은 참으로 알 수 없습니다”(6절)라고 탄식했는데, 우리가 숨기고 있는 속마음을 하나님은 꿰뚫어 보십니다. 

죄악을 탐하는 사람들에게 이 사실은 공포감을 안겨 줄 것입니다. 그 마음 속에 꿈틀대고 있는 죄악까지 하나님께 다 드러나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 하나님의 뜻 안에서 의롭게 살아가려는 사람들에게 그 사실은 큰 위안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바로 잡아 주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의인은 주님께서 하신 일을 생각하면서 기뻐하고, 주님께로 피할 것이니, 마음이 정직한 사람은 모두 주님을 찬양할 것”(10절)입니다. 

4 thoughts on “시편 64편: 하나님이 보신다!

  1. 우리의 중심과 속 마음을 꾀뚤어 보시는 하나님, 죄의 씨앗이 그대로 잠재해 있는 내 자신, 주님 앞에 설 때 늘 떨리고 두려움이 앞서는 것은 깊숙히 뿌리 박힌 인간 본연의 모습 때문이겠지요.
    의롭다 하신 주님을 기뻐하고 찬양하며 내 모든 삶을 주님 앞에 내 놓고 주님의 그늘에서 쉼을 얻기를 원합니다.
    주님은 나의 방패시며 요새시니 내가 주님 안에서 안정을 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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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주께로 피할 수 있다는 것이 복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예수를 믿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며 살게 된 사람은 피할 곳이 생긴 것입니다. 시편에 그려지는 억울한 상황, 불의한 원수들은 언제나 있는 일입니다. 왕에게도 사도에게도, 나 같은 소시민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완전한 세상에서 다같이 화목하게 살아가는 꿈 같은 하늘나라에 들어갈 때 까지 매일 이 땅 어딘가에서 오늘 시편을 읽으며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우리가 하나님께 피할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요. 눈물로 기도하고 매달릴 대상이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지요. 어리석고 폭력적인 부모 밑에서 자라는 것 보다는 차라리 고아로 크는 것이 낫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부모라는 그늘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얼마나 다른지요.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부모 자식으로 설명하는 것이 부족하고 불완전하지만 우리가 아프고 괴로울 때 기대고 싶은 첫대상은 어머니요 아버지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부모가 되셔서 불의한 세상에서 억울함을 당할 때 하소연을 들어주시고 눈물을 닦아 주십니다. 이길 힘을 주시고 헤쳐갈 지혜를 주십니다. 내게 좋은 일이 있을 때 듣고 웃어주는 사람은 많아도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떠오르는 사람들은 따로 있습니다. 좋은 일을 만났을 때는 빈 말이나 판에 박힌 인사라도 다 듣고 넘길 수 있는 여유가 있지만, 마음이 괴로울 때는 좋은 약 같은 말이 아니면 다 소음이요 서로 낭비일 뿐입니다. 모든 것을 보고 계시는 주님, 전후 사정을 다 아시는 하나님께 내 마음을 내려놓고 “내 목숨을 보호해주소서,” “나를 보호해주소서” 아뢸 수 있으니 복입니다. 나의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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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너무 너무 더럽고 악한 마음을 십자가의 안경을 통해 보시고 깨끗하다고
    인정 해주시는 주님의 은혜에 감사를 드립니다.
    십자가의 고난과 부활의 영광에 기꺼이 동참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모든 언행과 생각과 삶이 주님께 바치는 거룩한 산제물이 되기를 원합니다.
    이웃과 함께 부활의 증인이 되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 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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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목사님의 해설과 묵상으로 깨우침을 주셔서 머리숙여 감사합니다.
    매일 새벽 2시경 사귐의 소리가 이메일을 통하여 어김없이 도착합니다.
    해가 매일 뜨고, 철학자 칸트가 정해진 시간에 매일 산책나감을 보는 사람이 느끼는 그런 안정감을 느낍니다.
    목사님의 성실하심과 주님의 사랑을 우리와 나누시려는 열정에 감사드리고요, 사귐의 소리가 저의 일상생활에 바른 길을 가르쳐주는 마치 GPS 같은 역활을 해 줍니다.
    감사합니다. 목사님의 건강을 위하여 기도드립니다.
    목사님의 저서 설교자의 일주일을 읽고 있습니다.
    저는 설교자는 아니지만 예배와 설교, 그리고 남을 섬기는 이의 본분에 대한 큰 가르침을 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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