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4장: 하나님의 때와 인간의 때

해설:

앞에서 모세는 하나님의 부름에 대해 핑계를 대며 사앙했습니다. 첫 번째는 자신이 아무 것도 아니라는 이유로 사양했고, 두 번째는 하나님의 이름을 알려 달라고 요구합니다. 그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친절하게 모세를 설득합니다. 하지만 모세는 여전히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세 번째로 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의 말을 믿지 않으면 어떻게 하느냐고 여쭙니다(1절). 그러자 하나님은 그가 들고 있던 지팡이를 땅아 던져 보라고 하십니다. 그대로 했더니 그 지팡이가 뱀으로 변합니다. 하나님은 다시 그 뱀의 꼬리를 잡으라고 하십니다. 그렇게 했더니 그 뱀이 다시 지팡이로 변합니다(2-4절).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 이적을 보여 주면 믿고 따를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5절). 하나님은 또 다시 모세에게 손을 품에 넣어 보라고 하십니다. 그대로 했다가 손을 빼니 악성 피부병이 온 몸에 돋아 있는 것이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손을 다시 품에 넣으라고 하셔서 그대로 했다가 빼니 손이 온전해 졌습니다(6-7절). 하나님께서는 지팡이 이적을 믿지 않으면 피부병 이적을 보여 주고 그래도 믿지 않으면 나일강 물을 퍼다가 부으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피로 변하게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8-9절).

그러나 모세는 여전히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네 번째로 그는 자신이 지도자가 되기에는 말재주가 없다는 핑계를 댑니다(10절).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할 말을 알려 줄 것이며 말하는 것을 도와 주겠다고 답하십니다(11-12절). 모세는 더 이상 하나님의 부름을 거부할 핑계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주님, 죄송합니다. 제발 보낼 만한 사람을 보내시기 바랍니다”(13절)라고 대답합니다. 다섯 번째에 이르러 하나님께서는 “크게 노하시어” 그의 형 아론이 말을 잘 하는 사람이니 그를 붙어 주겠다고 말씀하십니다(14-16절). 그리고는 지팡이를 들고 일어나 이집트로 가라고 명하십니다.

결국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들인 모세는 호렙 산에서 집으로 돌아와 장인에게 이집트로 돌아가겠다고 말씀 드립니다. 장인은 마치 예감하고 있었다는 듯 순순히 허락합니다(18절). 그는 미디안에서 얼마 더 머물다가 자신을 해치려던 이집트 왕이 죽었으니 이제 이집트로 돌아가라는 하나님의 지시를 받고 가족을 데리고 미디안을 떠납니다(19-20절). 그 때 그의 손에는 “하나님의 지팡이”가 들려 있었습니다. 그 지팡이는 하나님께서 그를 부르셨고 그와 함께 하신다는 증거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지팡이를 들고 바로에게 가서 이적을 보이라고 하십니다. 하지만 바로가 순순히 이스라엘 백성을 놓아 주지는 않을 것이라는 사실도 예고하십니다. 그의 앞길에 만만치 않은 도전이 있을 것임을 알려 주신 것입니다(21-23절).

모세와 그 가족이 이집트로 돌아가는 길에 모세는 갑작스러운 질병에 사로잡힙니다. 저자는 그것을 “주님께서 찾아 오셔서 모세를 죽이려고 하셨다”(24절)고 묘사했습니다. 그 때 모세의 아내 십보라가 급히 부싯돌 칼을 가지고 두 아들의 포피를 잘라서 모세의 발에 대고 “당신은, 나에게 피 남편입니다”(25절)라고 말합니다. 모세는 미디안에서 얻은 두 아들에 대해 아직 할례를 행하지 않고 있었던 것입니다. 십보라가 이 순간에 할례를 생각해 낸 것을 보면 모세가 할례를 행해야 한다는 사실을 아내에게 말했던 것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무슨 이유로든 할례를 행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십보라가 반대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랬기에 남편이 위기에 빠지자 급히 할례를 행했을 것입니다(26절).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이끌어내어 제사장의 백성이 되게 하는 거룩한 사명을 위해 장도에 오른 모세에게 있어서 두 아들에게 할례를 행해지 않았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결격 사유가 될 뻔 했습니다.

한 편 주님께서는 이집트에 살던 아론에게 광야로 가서 모세를 만나라고 지시하십니다(27절). 그들은 “하나님의 산”에서 해후를 합니다. 모세가 이집트로 돌아가면서 호렙 산에 다시 한 번 방문했던 것 같습니다. 영적인 준비가 필요하다고 느꼈을 것입니다. 그곳에서 형을 만난 모세는 그동안 자신이 보고 들은 모든 이야기를 아론에게 해 줍니다(28절). 그러자 아론은 모세와 그 가족을 데리고 이집트로 돌아가 장로들을 소집합니다. 그 자리에서 아론은 하나님의 계획에 대해 설명하고 모세는 이적을 행합니다. 그들은 마침내 하나님께서 그들의 고난과 호소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셨다는 사실로 인해 엎드려 주님께 경배합니다((29-31절).

묵상:

모세는 하나님의 부름에 대해 다섯 번이나 사양을 합니다. 처음에는 그럴 듯한 핑계를 대다가 나중에는 그냥 자신은 안 되겠다고 무조건 사양을 합니다. 하나님께 선택받고 부름 받는 것은 영예로운 일입니다. 하지만 그 부름에는 그만한 희생과 고난이 따릅니다. 모세는 하나님에게 선택 받았다는 영예보다는 그 선택에 따른 희생과 고난을 더 무겁게 생각했던 것입니다. 또한 그는 이제 80 줄에 들어선 노인입니다. 젊은 시절에 그런 야망을 품어 보기는 했지만 이제는 모든 야망을 내려 놓고 노후나 즐길 나이입니다. 그는 40년 동안의 광야 생활로 인해 이집트의 앞선 문명을 맞설 능력도 모두 잃었습니다. 그런 상황을 생각하면 하나님의 부름에 즉각 응답하고 따라 나서는 것이 더 이상한 일입니다. 모세가 거듭거듭 사양하는 것은 너무도 이해가 되는 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거듭거듭 그를 설득하여 장도에 나서게 하십니다.

왜 하나님은 창창한 나이에 모세를 부르지 않으셨을까요?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열정이 부글부글 끓어 오를 때, 그의 정신과 육신이 팔팔할 때 그리고 이집트의 정치와 경제 상황을 꿰뚫고 있을 때에는 그를 미디안 광야에 내버려 두셨습니다. 그 아까운 인재가 목자로 썩고 있을 때 침묵 하시던 하나님은 왜 이제서야 모세를 불러 이 거대한 일을 하게 하셨을까요? 

이스라엘을 이집트로부터 해방시키는 일은 모세의 인간적인 능력으로 할 일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모세에게서 하나님께 필요한 것은 열정도, 능력도, 힘도 아니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는 듯이 바라보며”(히 11:27) 나아갈 수 있는 믿음이 필요하셨습니다. 그래서 그의 인간적인 모든 요소들이 늙고 낡아갈 때 하나님은 그를 불러 내셨습니다. 그랬기에 모세가 거듭거듭 사양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그 모세를 설득하여 끝내 장도에 오르게 하신 것도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참, 놀라운 신앙의 신비입니다

4 thoughts on “출애굽기 4장: 하나님의 때와 인간의 때

  1. 여러 기적을 경험하면서도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그리 쉽지 않았던 모세를 통해 내 자신을 비추어 봅니다, 주님을 못 받아들였던 지난 날들이 너무 당연한 것 같아 부족한 믿음에 위로를 받는 아침입니다.
    세례가 비록 형식적인 것 같지만 십보라의 행동을 보면 그 할례가 주님과 주님의 백성간에 맺은 언약이 아닌가 느껴지며 준비 안 된 상태에서 받았던 세례가 가물가물 새로와 집니다.
    다섯번의 핑계끝에 주님을 따르는 모세와 오랜 기간 참으면서 때를 기다리신 주님을 통해 다시한번 믿음에 눈을 뜨게 됩니다, 주님의 모든 계획 안에 내 자신을 맡기며 오직 주남만을 의지하는 믿음으로 남은 여생을 마추기를 기도합니다, 이제 혈기조차 쇠약해진 내 자신이지만 그래도 온전히 주님께 의지하는 오늘 하루가 돠가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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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은퇴하고 집에 들어앉어 모세의 나이에 이른 나에게 하나님이 모세를 부르신 이야기는 나에게 또 다른 소망을 주십니다. 요한 웨슬레의 언약의 기도처럼 주님, 나는 주님의 것입니다. 건강할 때도 주님의 것이지만 늙고 힘 없을 때도 주님의 것입니다. 주님, 나로 하여금 주님께 쓰임받게 하실 때에도 순종하며 또한 쓰임받지 않고 쉴때도 주님의 것임을 잊지 말게 하옵소서. 언제나 부르심에 응답하게 하옵소서. 나는 오직 주님의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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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세상의 가치관과 지식과 이성을 가지고 주님앞에서 머리를 굴리지말고 주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험하고 힘들고 좁은길을 나의발등에 등불이신
    주님만 의지하고 한걸음씩 걸어 가기를 원합니다. 죄악 가운데 방황하는 세상을 사랑
    하시고 구원 하시려는 뜻을 알려주시는 주님께 감사와 영광을 드립니다.
    주님께 완전히 굴복하고 의지하고 이웃과 함께 헌신하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 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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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히브리 노예들이 학대받는 것을 보고 참지 못해 해결을 하려고 나서던 모세였는데 정작 그 목적을 위해 하나님이 부르시니 발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광야로 도망간 뒤에 곧바로 하나님이 찾아오셔서 이렇게 말씀하셨다면 모세는 감사합니다 주님, 제 마음을 아셨군요 하며 얼른 나섰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그건 하나님의 계획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장인의 양을 치며 자식을 낳고 “소시민”으로 고만고만하게 살도록 두셨습니다. 세월이 지난 사이에 말재주가 는 것도, 더욱 담대해 진 것도 아닙니다. 그저 세월만 흘렀나봅니다. 그런데 그 세월 동안에 모세를 죽이려고 했던 사람들이 다 죽었습니다. 내가 모세라면 이 소식으로 힘을 얻었을 것 같습니다. 야인생활을 거두어도 될 법 합니다. 오늘 묵상에서도 새로운 것을 보았습니다. 11절에 하나님이 누가 말 못하는 자, 듣지 못하는 자, 앞을 보는 자나 앞을 보지 못하는 자를 당신이 만드신다고 하십니다. 다 완전하고 일정하게 만드는데 너희들 죄로 (사고로, 의지로) 그리 되는 것이라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잘못된” 샘플로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하라고 그렇게 만드셨다고도 하지 않으십니다. 물론 “만들다”의 뜻이 창조의 뜻 (create-make) 인지 일어나도록 둔다 (happen-make) 의 뜻인지 모릅니다만 우리가 알 수 없는 하나님의 창조의 세계가 있다는 뜻으로 읽습니다. 보수와 진보, 전통과 변화로 굳이 나누자고 외치는 때를 살고 있습니다. 고만고만한 교인들이 제각각의 속도로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소시민의 고민을 놓고 씨름하는 동안에도 하나님의 시간은 구원과 회복을 향해 흐른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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