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5장: 역풍을 만날 때

해설:

모세와 아론은 이스라엘 백성의 대표자 자격으로 바로를 찾아갑니다. 그들은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1절)의 명령이라면서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로 나가 절기를 지키게 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광야에서 절기를 지키게 허락해 달라는 것은 전략적 요청입니다. 처음부터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떠나게 해 달라고 요청하면 바로가 허락하지 않을 것이므로 그보다 작은 요청으로 시작한 것입니다. 

하지만 바로는 모세와 아론이 말하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허락할 수 없다고 거절합니다(2절). 이집트인들은 수 많은 신을 섬기고 있었는데, 그 중에 모세와 아론이 말하는 하나님은 없었습니다. 모세와 아론은 거듭 허락을 구하지만(3절) 바로는 노동을 회피하기 위한 구실로 여깁니다(4-5절). 그래서 그는 강제노동 감독관들에게 이스라엘 백성의 노동을 더욱 혹독하게 만들어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게 하라고 지시합니다(6-9절). 

과거에는 정부에서 제공해 주는 재료로 벽돌을 만들기만 하면 되었는데, 바로의 명령이 떨어진 다음부터는 벽돌에 쓸 짚을 손수 구해다가 벽돌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벽돌 생산량은 동일하게 요구합니다. 그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은 매일의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게 되었고, 그러면 감독관들은 이스라엘의 작업 반장들을 혹독하게 문책합니다(10-14절). 

견디다 못한 이스라엘 작업반장들이 바로에게 찾아가 호소합니다(15-16절). 그러자 바로는 모세와 아론이 절기를 지키러 가게 해 달라고 요구했기에 그렇게 한 것이라고 답합니다(17-19절). 그들은 모세와 아론을 만나 원망하고 저주합니다. 그들 때문에 자신들이 고초가 더 심해졌기 때문입니다(20-21절).

이스라엘 작업 반장들의 항의를 듣고 모세는 하나님께 호소합니다(22-23절). 그것은 모세가 자원한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억지로 그를 끌어다가 맡겨 주신 일입니다. 그런데 그 일로 인해 사태는 꼬이기만 합니다. 이스라엘의 해방자가 되라고 불러 내셨는데, 이스라엘 백성의 원성만 사게 되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정말, 왜 저를 이곳에 보내셨습니까?”(22절)라고 여쭙니다. 그로서는 하나님이 매우 원망스러웠을 것입니다. 

묵상:

“정말, 왜 저를 이곳에 보내셨습니까?” 하나님의 부름을 따라 하나님의 일을 위해 헌신해 본 사람이라면 모세가 하나님 앞에 쏟아 놓았던 이 원망에 대해 공감할 것입니다. 선교사로 혹은 목회자로 부름 받은 사람들은 이런 경우를 자주 만납니다. 개인적인 복락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헌신하라는 부름에 응했는데, 그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어려움이나 상상할 수 없는 오해 혹은 비판을 직면할 때면 이런 호소를 하고 싶어집니다. “당신의 일을 위해 부르셨으면 끝까지 책임 지셔야지 이게 뭡니까?”라고 저항하고 싶어집니다. “왜 저를 이곳에 보내셨습니까?” 혹은 “왜 저에게 이 일을 맡기셨습니까?”라고 호소하고 싶어집니다.

선교사 혹은 목사로 부름 받은 사람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믿는 사람은 모두 제사장입니다. 각자 자신의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뜻을 위해 헌신하도록 부름 받았습니다. 가정에서, 교회에서 혹은 직장에서 부름 받은 사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나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위해 헌신해야 합니다. 그렇게 부름 받은 자로서 살아가는 삶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모두가 자신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 분투하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을 위해 일하는 것은 고초를 자초하는 일입니다. 공연한 비난과 손해와 오해와 모략을 감수해야 하는 일입니다. 그런 역풍을 만날 때면, 누구 말 마따나, “하나님, 믿는 거, 그만 하고 싶어요”라고 말하고 싶어집니다. 

모세도 그랬다는 것이 큰 위로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연약한 투정을 들으시고 돌보신다는 것이 또한 큰 위로입니다. 

 

4 thoughts on “출애굽기 5장: 역풍을 만날 때

  1. 우리 세대에 특히 미국에 이민와서 무난히 자리잡으며 안정된 가정을 꾸린 많은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고통스러운 역경을 딛고 일어나 안정을 이룬 가정도 많고 또 아직도 신분문제나 경제문제나 자녀문제로 어려움을 격고있는 분들이 때론 하나님이 어디에 있습니까? 왜 내 기도는 안 들어주십니까? 그런 원망이 들리는 아침입니다.
    지난 날들을 회상해보면 주님의 임재를 느낄 때도 있었지만 오히려 없다고 느낄 때가 더 많았지만 끝내는 주님의 자녀로 삼아주시고 구원의 은총을 베프신 것을 감사합니다.
    세상 풍파로 어려움을 만날 때도 끝까지 참아내는 인내와 포기하지 않는 믿음을 간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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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옳은 일을 하다가 반대와 저항과 모함을 당한다면 바로 그러한 일 때문에 나의 옳은 일에 대한 생각이 더 깊어지고 나의 신념을 시험하게 됩니다. 고난을 통하여 더욱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게 되고 호소하게 되고 신뢰하게 됩니다.그리고 나를 더욱 옳은 일을 위한 편에 서게합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의를 위하여 핍박을 당하는 자는 복이 있다. 의를 위하여 결단하고 참여한다는 것은 바로 나를 시험하는 방편이 될수 있습니다. 그 고난으로 인하여 오히려 전에는 생각지 못하고 맛보지 못한 주님의 도우심과 기쁨을 맛보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로하여금 의의 편에 서게 하시는 주님을 찬양하며 경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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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모든 일이 꼬이고 순조롭지 않을때 주님께 온전히 의지하며 평강을 누리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허락하신 사역 들을 같이계시고 주관하시는 여호와 하나님만 생각
    하며 어려워도 이웃과함께 포기하지않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 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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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순탄하게 앞으로만 간다면 좋겠습니다만 그런 일은 예외이기가 쉽습니다. 어려움이 닥치거나 예상치 못한 돌발사태가 일어나면 오히려 바로 가고 있다는 증거라는 말을 할 정도로 만사가 호락호락 쉽지 않습니다. “만사형통”을 구하지만 실제상황에선 “산 너머 산”을 넘어야 합니다. 모세와 아론이 애들도 아닌데 파라오에게 말만 하면 얼른 내보내 줄 것으로 기대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파라오에게도 기적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말씀도 있었으니 몇 번이고 반복하여 부탁을 해야할 줄 알았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모세는 불평을 합니다. 이스라엘의 작업 반장들이 항의하자 모세도 여호와께 “도대체 무엇 때문에”라며 볼 멘 소리를 합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장인 일을 봐주며 산 세월을 “온실의 화초”같이 산 시간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사람들 사이에서 여러 가지를 겪으며 세상 때가 묻었다면 찬바람이 조금 불자 금새 움추러드는 이런 모습을 보이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모세와 여호와의 대화에 벌써 패턴이 보입니다. 여호와는 적극적인 구애자로, 모세는 수동적인 비협조자로 대화를 합니다. 우리 믿음의 개인사에서도 이처럼 수동적이고 마지못해 하나님을 믿는 듯한 때도 있었음을 기억합니다. 일이 조금 뒤틀어지거나 부담스러워지면 하나님께 불평부터 하던 때가 있습니다. 그 상황을 넘어갈 지혜와 인내심을 구하지 않고 왜 이런 일을 당하게 하냐고 불만스러워합니다. 하나님은 모세와 대화를 통해 당신의 뜻을 알려 주시고, 당신의 계획을 설명해 주십니다. 모세는 하나님을 알게 되고 하나님의 마음을 느끼게 됩니다. 나 또한 하나님과 사귀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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