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22장: 사회적 약자를 향한 배려

해설:

계속하여 하나님은 손해 배상과 관계된 규정들을 말씀하십니다. 도둑질한 물건을 배상하는 법(1절), 도둑을 잡아 상해를 입힌 경우(2-4절), 가축이 다른 집 농작물을 먹어 치웠을 때 배상하는 법(5절), 방화의 경우(6절), 다른 사람에게 맡겨 둔 물건을 절도 당하는 경우(7-8절), 어떤 물건에 대해 두 사람이 소유권을 주장하는 경우(9절)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맡겨 둔 가축이 죽거나 다치는 경우(10-15절)에 대해 규정을 제시하십니다. 8절과 9절에 “하나님 앞으로 가라”고 되어 있는데, “재판관에게 가라”고 번역하기도 합니다. 당시에 재판이 성막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재판장에게 가는 것은 곧 하나님 앞으로 가는 것과 같았습니다. 

약혼하지 않은 처녀를 범하게 되면 신부의 몸값을 내고 그 여자를 아내로 맞아 들여야 합니다(16절). 당시 사회에서는 그것이 자신의 범죄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이었습니다. 여자의 아버지가 반대하면 “처녀를 신부로 데려올 때에 내는 값에 해당하는 금액”(17절)을 치러야 합니다. 마술을 부리는 여자(18절), 짐승과 성관계를 가지는 자(19절) 그리고 다른 신에게 제사를 드리는 자(20절)는 사형에 처하라고 하십니다. 극단적인 처벌을 주문한 이유는 그 행동들이 그만큼 심각하다는 뜻입니다. 고대 이스라엘 사회에서 이 규정이 그대로 지켜지지는 않았습니다. 율법의 의도가 죄를 억제하려는 데 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어서 하나님은 이방인 노예를 학대하지 말라고 명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도 이집트에서 나그네였고 또한 노예였다는 것을 기억하라고 하십니다(21절). 또한 과부와 고아를 괴롭히지 말라고 하십니다(22절). 고대 사회에서 과부와 고아는 절대 약자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나에게 부르짖으면, 나는 반드시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어주겠다”(23절)고 경고하십니다. 하나님은 약자편에 서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또한 가난하게 사는 사람에게 돈을 꾸어 주었을 때 독촉하지도 말고 이자도 받지 말라고 하십니다(25절). 만일 겉옷을 담보로 잡으면 해가 지기 전에 돌려 주라고 하십니다(26절). 겉옷은 밤에 덮고 자는 이불로 사용되었습니다. 가난한 사람에게 겉옷이 없으면 일교차가 심한 밤에 잠을 설치게 됩니다. 그러면 다음 날에도 제대로 일할 수 없어 가난은 더욱 깊어집니다(27절). 여기서도 하나님은 “그가 나에게 부르짖으면 자애로운 나는 들어주지 않을 수 없다”고 덧붙이십니다.

28절의 “하나님께”는 “재판장에게”라고 번역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지도자를 저주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것은 곧 그를 세우신 하나님께 하는 말이 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농작물을 수확한 다음 일부를 제물로 바치라고 하십니다(29절). “너희는 맏아들들을 나에게 바쳐야 한다”는 말씀은 인신제사를 명하신 것이 아니라 13장의 지침처럼 맏아들을 하나님께 바친다는 의미로 대속제물을 바치라는 뜻입니다. 가축의 맏배는 일주일 동안 어미와 함께 두었다가 제물로 바치라고 하십니다(30절). 그것은 새끼를 잃고 슬퍼할 어미에 대한 배려입니다. 또한 맹수에게 찢겨 죽은 짐승의 고기는 먹지 말라 하십니다(31절). 아무 것이나 먹는 것은 “나를 섬기는 거룩한 백성”에게 어울리지 않는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묵상:

태초의 에덴은 모두가 함께 어울려 사는 세상이었습니다. 누구도 부족함이 없었고, 누구도 넘침이 없었습니다. 힘이 있다면 서로를 섬기는 데 사용했고, 물질이 넉넉하면 없는 사람과 나누었습니다. 거기에는 질병도 없었고 장애도 없었습니다. 그 모든 것이 깨어진 것은 인간의 죄 때문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에게 등지고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기로 마음 먹자 세상에는 악이 번성하기 시작했습니다. 힘 있는 사람은 그 힘으로 자신의 이권을 챙겼고, 약한 사람은 그들에게 유린 당해야 했습니다. 죄로 인해 질병과 장애가 생겨났고 사고와 갈등과 싸움이 생겨났습니다. 가진 사람, 힘 있는 사람들은 서로 연합하여 자신들의 기득권을 영속화 시키려 했고, 그로 인해 사회적 약자들은 가난과 고난을 대물림해야 했습니다. 

이 세상의 부정과 부조리와 불의는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할 때에야 영원히 사라질 것입니다. 그 이전까지 하나님은 당신은 믿는 사람들에게 부조리하고 불의한 세상에서 정의와 사랑을 실천하며 살기를 기대하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향해 부르짖는 사회적 약자 편에 서시는 분입니다. 그렇기에 그분을 믿는 사람들도 사회적 약자들을 돌아 보아야 하고 그들 편에 서야 합니다. 우리에게 힘이 있다면 힘 없는 사람들을 돕는 데 사용해야 하고, 우리에게 돈이 있다면 가난한 사람을 도와야 하며, 우리에게 지식이 있다면 없는 사람들을 위해 봉사해야 하고, 우리에게 목소리가 있다면 목소리가 없는 사람을 위해 써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그 마음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3 thoughts on “출애굽기 22장: 사회적 약자를 향한 배려

  1. 오늘은 10계명의 세부 지침을 주시며 우리의 삶에 기초가 되는 몇몇규칙과 예의 범절을 접하는 아침입니다, 늘 약자의 편에 서시며 그들을 배려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내 삶의 바탕을 설정하여 끝내는 사랑과 정의로 이웃과 어울리라는 말씀을 따라 겸손히 이웃을 섬기는 하루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이 재림 하시는 날,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며 할 수만 있다면 평등하고 정의로운사회를 지향해 나가기를 기도합니다.
    약자를 배려하는 오늘 하루가 되기를 간구하는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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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너무나 후회하는 일을 많이 있었습니다. 저는 율법에서 죽어야 마땅합니다.
    십자가의 은혜로 용서 하시겠다는 믿기어려운 약속을 꼭 붙잡고 다시는
    후회하지 않도록 도와주시고 이웃과 더불어 약한자를 세우며 살게 도와
    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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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도둑질을 한 대가로 종이 되는 일이 왕왕 생겼나 봅니다. 남의 것을 탐을 내지 말라는 계명을 어기고 도둑질을 하다 잡히면 물어주어야 하고 물어줄 능력이 되지 않으면 종이 됩니다. 광야에서 사는 동안 뿐 아니라 앞으로 내내 사회를 이루어 사는데 바탕이 되는 법령입니다. 사람이 모여 사는 한 사고와 분쟁, 다툼이 일어나는 것은 분명합니다. 법은 야만과 문명을 가르는 기준이 됩니다. “법이 없어도 살 수 있는” 세상은 없기 때문에, 법이 촘촘하게 제정되어 있다는 것은 그만큼 법을 놓고 의논을 하고, 시행착오도 겪고 상호관계나 개연성 등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는 증거입니다. 지금까지 나타난 법만 보아도 하나님의 뜻은 평화입니다. 사람 사이에 고의와 우연을 가려 판단하게 하시고, 잘못을 했으면 댓가를 치루게 하십니다. 하나님 앞에도 재물을 바치라 하십니다. 당신을 기억하고 기리라는 뜻입니다. 사람 사이에도, 하나님 앞에서도 평화롭게 조화를 이루며 살기를 원하십니다. “과부나 고아”를 괴롭히지 말아야 하는 것은 그들은 타인이 아니라 나 자신과 동일시해야 할 “미래의 나”라는 뜻입니다. 나그네도 같은 뜻입니다. 돈을 빌려주기도 하지만, 빌려야 할 때도 있습니다. 나와 남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을수록 평화의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타인에 대한 이해와 공감력이 커질수록 평화를 유지하는 것이 쉬워집니다. “법대로 하자” 외치지 않고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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