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26장: 휘장으로 가려진 지성소

해설:

언약궤와 상과 등잔대에 이어 성막에 대한 지시가 나옵니다. 성막은 여러 가지 실로 정교하게 꼬아 만든 천으로 만들어야 했습니다. 성막 전체는 가로 30자(규빗, 약 13미터)와 세로 10자(약 4.5 미터)의 직사각형 모양으로 지어져야 했습니다. 네 측면과 지붕을 가릴 수 있도록 천막을 준비해야 했습니다. 성막은 광야 유랑 중에 계속 이동해야 했기 때문에 쉽게 분해하고 다시 조합할 수 있어야 했습니다(1-14절). 또한 천막을 세우는 데 사용될 목재들도 필요했습니다(15-30절). 

성막 내부를 두 부분으로 가를 수 있도록 휘장도 필요했습니다. 성막은 입구를 동쪽으로 두게 되어 있는데, 휘장을 중간에 세워서 서쪽 부분을 지성소로, 동쪽 부분을 성소로 구분해야 했습니다. 지성소에는 증거궤라고도 부르는 언약궤를 두어야 하고, 성소에는 떡상과 등잔대를 두어야 했습니다(31-35절). 성막 동쪽 입구에도 천으로 막을 만들어 드나들 수 있게 해야 했습니다(36-37절).

묵상:

이동식 성소였던 성막은 나중에 솔로몬에 의해 붙박이 성소가 되었습니다. 성막의 존재 이유는 “내가 그들 가운데 머물 수 있도록”(25:8)이라는 말씀에 담겨 있습니다. 성막은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증거였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광야 유랑 중에 항상 성막을 중심으로 대오를 짰습니다. 성전이 지어진 이후로는 언제 어디서나 성전을 향하여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들어 주신다고 믿었습니다. 

성막의 눈동자는 언약궤였습니다. 언약궤는 성막 안에서도 지성소에 따로 보관해 두었고, 지성소는 휘장으로 가려져 있었습니다. 지성소에는 오직 대제사장만이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일반 백성은 고사하고 제사장들도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지성소와 성소를 가르고 있던 휘장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존재하는 뛰어 넘을 수 없는 거리를 상징합니다. 시내산 아래에 일반 백성은 넘을 수 없는 경계선이 있었던 것처럼, 성막에는 인간이 넘어서는 안 되는 경계선이 있었던 것입니다. 죄로 인해 절대 거룩의 하나님 앞에 인간은 함부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그 경계선은 오직 하나님만 넘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허락하는 한에서만 인간은 그 선을 넘을 수 있습니다. 그 특권은 오직 한 사람 대제사장에게만 주어졌습니다. 하나님은 대제사장의 중재를 통해 백성에게 말씀하시고, 백성은 중재자인 대제사장을 통해 하나님에게 나아갈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운명 하셨을 때 예루살렘 성전의 휘장이 “위에서 아래까지 두 폭으로 찢어졌다”(마 27:51)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인류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벽이 허물어졌다는 의미입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예수께서 영원한 대제사장으로서 당신 자신의 생명으로 영원한 제사를 드림으로써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장벽을 제거해 주셨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죄의 장벽이 무너졌고, 이제는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은혜 안에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더 이상 인간 중재자는 필요 없습니다. 영원한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히 4:16).   

 

3 thoughts on “출애굽기 26장: 휘장으로 가려진 지성소

  1. 잘 이해가 안 되는 성막안의 지성소 와 그 안에 있는 증거괘, 그 밖에 제단과 촛대, 이 두 부분을 나누는 휘장을 통해 제사의 규정을 설정해 주시고 일반 백성들이 하나님을 어떻게 섬기며 대 제사장의 직분이 뭔가를 통해 예수님을 예비하시는 하나님, 자신을 희생 제물로드리며 대 제사장의 임무를 완성하신 예수님을 조용히 묵상하며 하늘나라를 바라봅니다, 씻겨 질 수 없던 죄성을 고백하므로 죄사 함을 받고 값없이 의롭다 하심으로 주님과 함께 할 수 있는 구원을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주님의 뜻이 내 안에서 이루는 오늘 하루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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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저희들과 함께 하시겠다는것이 바로 사람임을 깨닫습니다. 십자가의
    사랑으로 죽을죄인을 왕같은 제사장으로 승격 시켜주시고 항상 주님께
    나아가 독담할 기회를 주신것 감사합니다. 이웃과 함께 주님과 같이 걸으며
    깊고 귀하고 긴밀한 사귐을 갖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 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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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양파의 껍질을 벗기는 것을 반대로 연상하며 본문을 다시 읽어봅니다. 귀한 것을 싸고 또 싸는 마음으로 본문을 따라가봅니다. 말씀판이 들어 있는 언약궤와 언약궤를 덮는 속죄판, 속죄판을 받치는 상과 위에 놓는 등잔대, 이들을 두는 지성소와 그 지성소 앞 성소, 성소를 드나드는 회막문과 전체 회막을 덮는 천막, 천막 조각을 잇는 고리와 채….성소에는 대중이 출입할 수 있지만 지성소에는 단 한 사람만 들어갈 수 있게 철저하게 구분이 되어 있습니다. 이런 구분이 없어진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 쳐 있는 휘장이 찢어지는 이미지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연결된 아주 강렬한 이미지입니다. 마치 예수께서 당신의 몸으로 휘장을 베어버린 듯, 태워버린 듯 휘장이 없어지고 지성소, 하나님이 머무신다는 공간이 확 드러납니다. 어찌보면 하나님은 지성소의 공간에 당신을 가두셨던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애써 우리와 당신을 분리하셨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도저히 풀 수 없는 방정식에 예수의 값이 들어가자 대변과 차변이 이퀄하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로 인해 의미없는 숫자일 뿐이던 우리가 질서와 논리의 모양새를 입은 단순한 방정식이라도 된 것입니다. 광야시대 뿐 아니라 지금도 하나님과 나 사이에 휘장이 내려져 있어 하나님 앞에 감히 나갈 수 없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과 나는 분리되어 있다고, 상관이 없다고, 만나지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나 또한 그렇게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없앤 휘장을 나의 손으로 다시 치는 꼴입니다. 이럴 때 연민에 찬 예수님을 상상합니다. 광야의 백성에게 명하시어 완벽한 디테일로 당신의 집을 지으신 하나님이 내 안에 머무시길 원하신다고, 내가 오늘 너의 집에 묵겠다고 하시는 음성을 상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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