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32장: 누구나 넘어질 수 있다

해설:

모세가 시내 산에 머물러 있는 동안 산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던 장로들과 백성은 서서히 의문과 회의와 불신의 늪에 빠져듭니다. 그들이 처해 있는 상황에서 40일 동안의 지도자 공백 상태는 너무도 긴 시간이었습니다. 그들은 또한 모세가 자신들을 광야에 내버려 두고 도피한 것으로 의심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삽시간에 공황 상태에 빠지고 아론에게 몰려 와 항의합니다(1절). 아론도 마찬가지 심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랬기에 백성의 요구에 대해 즉시로 응답합니다(2-3절). 그는 백성이 가져온 귀금속을 녹여 송아지상을 만듭니다(4절). 이집트에 살 때 이스라엘 백성은 그곳 풍습대로 송아지 신을 섬겼기에 그렇게 했을 것입니다. 그러자 백성은 “이스라엘아! 이 신이 너희를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낸 너희의 신이다”라고 외칩니다(4절). 그것을 보고 아론은 한 술 더 떠서 “내일 주님의 절기를 지킵시다”(5절)라고 화답합니다. 다음 날, 백성은 금송아지 신상 앞에서 축제를 벌입니다(6절).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것을 보고 계셨습니다. 그분은 모세에게 이 사실을 알리시며 그들을 모두 징벌하고 모세를 통해 새로운 민족을 일으키겠다고 말씀하십니다(7-10절). 산 아래에서 백성이 어떤 만행을 벌이고 있는지를 알지 못했던 모세는 백성을 위해 하나님께 사정합니다. 만일 시내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징벌을 받아 죽게 되면 이집트 사람들이 하나님을 조롱할 것이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약속도 이룰 수 없다면서 마음을 돌이켜 달라고 간청을 합니다. 모세의 간곡한 청을 듣고 하나님은 재앙을 내릴 계획을 일단 중지하십니다(11-15절).

하나님의 약속을 받아 낸 후에 모세는 십계명 돌판 두개를 들고 산에서 내려 옵니다(15-16절). 그 때 백성은 금송아지 신상 주위를 돌면서 춤을 추고 있었습니다. 이 광경을 본 모세는 격분하여 손에 들고 있던 십계명 돌판을 산 아래로 던져 버립니다(19절). 그 귀중한 돌판을 던진 것을 보면, 그의 격분이 얼마나 컸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는 금송아지 신상을 가져다가 불에 태우고 가루가 될 때까지 빻아서 물에 타 백성에게 마시게 합니다(20절). 또한 모세는 형 아론을 불러 문책합니다. 백성의 요구를 핑계 삼아 우상숭배를 주도했던 아론은 비겁하게도 “내가 그것을 불에 넣었더니, 이 수송아지가 생겨난 것입니다”(24절)라고 변명합니다. 

모세는 백성들이 아직도 제멋대로 날뛰는 것을 보고 “누구든지 주님의 편에 설 사람은 나에게로 나오십시오”(26절)라고 외칩니다. 그러자 모세가 속해 있던 레위 지파 사람들이 그에게 모입니다. 모세는 그들에게 칼을 차고 다니면서 춤추는 사람들을 닥치는 대로 죽이라고 명령합니다. 이렇게 명령하면서 그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르시기를”(27절)이라고 덧붙입니다. 레위 사람들이 마음 놓고 살륙을 저지르도록 거짓말을 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정말 그렇게 하기를 원하신다고 믿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뿐 아니라 모세는 “주님께서 당신들에게 복을 내리실 것입니다”(29절)라고 축복해 줍니다. 그러자 레위 사람들은 마음 놓고 살륙을 행했고, 그로 인해 그 날 하루 동안에 삼천 명이 죽임을 당합니다.

이튿날 모세는 백성의 죄를 위해 중재하기 위해 시내 산에 다시 오릅니다. 그는 먼저 하나님 앞에 백성의 죄를 소상히 고합니다. 앞에서 한 중보 기도(11-14절)는 백성이 얼마나 심각한 죄를 짓고 있는지 모르고 한 것입니다. 이제 그는 백성의 타락상을 목격하고 하나님 앞에 섭니다. 그리고는 백성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구합니다. 만일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라면 자신의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워 달라고 간청합니다(32절). 백성의 죄가 얼마나 큰지를 알았기에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기도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제안을 거절하십니다. 각자의 죄의 결과는 각자가 감당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면서, 내려가서 백성을 인도하여 행진을 계속하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모세의 간청으로 인해 잠시 중지했던 재앙을 내려 백성을 심판하십니다(35절). 

묵상: 

모세와 아론은 그동안 하나님의 대변자로서 이스라엘의 구원을 이끌었습니다. 그들은 바로에게 여러 가지로 도전 받았고 또한 이스라엘 백성에게서 모함과 비난을 들어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견고히 서서 인간적인 약점을 드러내지 않고 백성을 잘 인도해 왔습니다. 하지만 시내 산에서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그들의 인간적인 연약함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아론은 이제 곧 대제사장으로 임명 되어 이스라엘의 영성을 인도할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모세가 없는 상황에서 백성의 도전을 만나 무력하게 굴복합니다. 그들의 압력에 맞설 만큼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충분하지 못했고 인간적인 용기도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즉시로 우상을 만들어 냅니다. 나중에 모세가 이 문제에 대해 문책하자 그 책임을 모세에게 전가시키고, 자신은 우상을 만드는 일에 책임이 없다고 변명합니다. 그 이후로 아론은 이 행동을 가장 수치스러운 기억으로 마음에 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아론으로 하여금 영적으로 성장하도록 만들었을 것입니다.  

모세는 40일 동안 하나님과 깊은 사귐을 나누고 산 아래로 내려 옵니다. 그의 마음과 정신은 이 세상 사람같지 않을만큼 거룩하고 정결했고, 그랬기에 산 아래에서 벌어지고 있던 백성의 우상숭배를 보고 그토록 심하게 격분했습니다. 그 순간, 그는 그 격분을 가라앉히고 냉정하게 사태를 보았어야 했습니다. 잠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시간도 그에게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감정이 이끄는대로 말하고 행동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생각이 곧 하나님의 뜻인 것처럼 말하고 행동했습니다. 그것이 영적인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자주 빠지는 오류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언제나 정당합니다만, 인간의 심판은 언제나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성경을 읽으면서 하나님의 종으로 선택받은 사람들이 행한 일을 모두 하나님의 뜻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것은 또 다른 유형의 우상숭배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 중 완전한 분은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다른 모든 등장 인물들은 우리와 같은 인간들입니다. 그렇기에 그들의 행동 중에는 때로 인간적인 감정과 판단에 따라 하나님의 뜻을 그르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금송아지 사건을 읽으면서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의 죄만이 아니라 모세와 아론이 드러낸 연약함도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연약함이 우리에게도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끼리에 엘레이손! (주여, 자비를 베푸소서

3 thoughts on “출애굽기 32장: 누구나 넘어질 수 있다

  1. 금 송아지 사건을 통해 우리 자신을 드려다 보는 기회가 되고 아론과 모세의 한계를 통해 우리의 죄성을 드려다 보는 아침입니다, 40일을 못 참고 하나님을 배반하는 행위들이 늘 나에게도 있음을 인정하며 사탄의 유혹에 빠지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내 안에 흔들리는 감정들을 마치 하나님의 뜻으로 착각하는 일이 없도록 깨어 기도하게 이끌어 주십시요.
    분노의 감정이 나를 다스리지 못 하는 하루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께만 초점을 마추는 하루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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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모든 일을 행동으로 또 말로 내 뱉기 전에 주님을 생각하기를 원합니다.
    우선 주님의 마음을 품고 주님의 생각으로 사리를 판단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저희들의 우상을 가루로 만드는 힘과 용기를 허락해 주십시오.
    오직 주님만 오로지 주님만 이웃과 함께 따르고 즐기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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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책”이라는 전제를 놓고 성경을 읽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부분 부터 해석이 필요합니다. 우리 앞에 성경이 놓여 있게 되기 까지를 이해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성경을 어떻게 해석하느냐를 놓고 종교 간에, 교단 간에 그리고 각 개인 간에 의견이 분분합니다. 감리교단이 당면하고 있는 첨예한 갈등과 위기도 해석에서 출발합니다. 동성애를 다루는 성경 말씀을 보는 시각과 이해가 다 다르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려고 노력하지만 쉽지 않습니다. 성경은 오랫동안 성직자들의 전유물이었고 말씀의 해석은 교회의 전통 안에서 이루어져 왔기에 지금 현대인들이 각자 읽고 해석하는 것이 성경 해석의 권위나 타당성에 비추어 볼 때 일치하지 않는 부분도 상당하고 이런 불일치는 여러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놓는 방향으로 가게 되어 있습니다. 교회의 전통과 권위 대 (vs) 개인의 이해와 적용은 도전이며 동시에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지금 성경을 읽고 있다는 것 자체가 기적 같은 일입니다. 이것에 감사해야 할 사람들이 줄을 서있습니다. 두루마리 기록들을 잘 보존한 교회들, 구텐베르그, 조선에 성경을 들여온 선교사들, 여자도 글을 배워야 한다고 주장한 신여성들과 그들의 페미니스트 남성동지들, 교회에 가고 싶어하는 나를 이해한 엄마…..성경을 스스로 읽고 이해하려고 하는 노력은 가상하지만, 여러 위험 요소를 안고 있는 일이기도 합니다. 교회가 인정할만한 바른 해석이 있는 만큼, 내 맘대로 하는 해석 또한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사귐의 소리를 통해 함께 하는 묵상이 귀한 것은 내 맘대로, 내가 이해하고 싶은대로 해석하는 오류를 막아주는 해설 말씀 덕분입니다. 틀에 박힌 묵상, 한결 같은 질문과 이미 정해진 것 같은 답을 요구하는 묵상 가이드 책이 아닌 것도 감사합니다. 말씀 앞에 서서 나 자신을 보고, 예수님을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특별한 복인 것을 기억한다면 백 명이 읽어 백 가지 해석이 나온다해도 성경은 귀하디 귀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은 성경이 과연 하나님의 뜻을 담고 있는 책인가, 하나님의 마음을 온전히 표현한 책인가 하는 질문에 “그렇다/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그렇지 않다”라고 답하게 합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뜻대로 행한 사람인가요. 레위 집안 사람들이 삼천 명의 동족을 살해하게 한 것이 하나님의 명령인가요. 하나님의 마음이 잘 드러난 본문인가요. 성경과 하나님은 동격인가요. 하나님은 성경으로만 말씀을 하셨나요. 예수님은 어디쯤에 계시나요….칼팩 연회가 내일저녁부터 시작합니다. 교회에서 보내는 연회대표로서 투표를 해야하나 내 신앙을 따라 해야하나 기도하면서 참석합니다. 해마다 열리는 연회에 투표는 커녕 참석조차 미미하던 한국교회들이 특별총회 때에도 “눈치보듯” 조용히 있다 다시 조직을 만든 뒤로 카톡으로 이메일로 “모여야 산다””우리는 하나”를 주장하는 모습도 그리 편하지는 않습니다. 예수님은 어디쯤에 계신지요. 예수님이 보여주신 하나님의 마음을 성경속 잉크가 까맣게 칠해놓은 것은 아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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