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33장: 낮아지신 하나님

해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백성을 이끌어 가나안 땅으로 행진해 가라고 하십니다. 다만, 당신은 함께 가지 않겠고 대신 한 천사를 인도자로 보내겠다고 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고집이 센 백성”이기 때문에 시내 산에서 일어난 것과 같은 죄를 계속 범하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하나님이 그들을 없애버릴지도 모르기 때문이라고 하십니다(1-3절). 이 소식을 전해 들은 백성은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고 통곡하면서 회개의 표시로 몸에 걸친 장식품을 모두 제거합니다. 그 장식품은 이집트 사람들에게서 얻어 가지고 나온 것으로서 우상 숭배와 관련이 있는 것들입니다(4-6절).

백성이 진을 칠 때면 모세는 진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성막을 치고 하나님을 찾을 때마다 그곳으로 갔습니다. 하나님은 함부로 할 수 없는 분이라는 생각 때문에 진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성막을 둔 것입니다. 모세는 성막을 “회막”(7절) 즉 “만남의 장막”이라고 불렀습니다. 모세가 성막으로 갈 때면 백성은 모두 일어나 경의를 표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을 만나 대화할 때면 구름기둥이 장막 어귀에 서 있었는데, 그 모습을 볼 때면 백성은 자신이 선 자리에서 엎드려 주님을 경배했습니다. 모세가 자신들을 대신하여 하나님을 만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시기에 모세는 마치 친구와 대화를 하듯 친밀하게 하나님과 교제했습니다(8-11절).

모세는 성막에서 하나님을 만나 가나안으로 가는 과정에 함께 해 달라고 청합니다. 함께 가시지 않으려면 차라리 자신들도 올려 보내지 말아 달라고 합니다(12-16절). 하나님은 모세의 간청에 마음을 돌리십니다. 그러자 모세는 하나님께 주님의 영광을 보여 달라고 청합니다(18절). 그러자 하나님은 당신의 모든 영광을 그의 앞으로 지나가게 하겠다고 말씀하시면서, “그러나 내가 너에게 나의 얼굴은 보이지 않겠다”(20절)고 하십니다. 당신의 얼굴을 본 사람은 살아남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얼굴을 본다”는 말은 하나님의 영광을 있는 그대로 대면한다는 뜻입니다. 인간의 눈이 태양빛을 직시할 수 없듯, 인간의 내면은 하나님의 영광을 있는 그대로 대면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바위 위에 서 있으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당신의 영광이 지나갈 것이고, 그가 죽음 당하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모세를 바위 틈에 집어 넣고 당신의 손바닥으로 가리워 주겠다고 하십니다. 그 뒤에 하나님께서 당신의 손바닥을 거둘 것인데, 그 때 모세는 하나님의 등을 보게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21-23절). 하나님의 손바닥 혹은 하나님의 등이라는 말은 하나님을 인간에 빗댄 은유입니다. 예수님도 당신의 능력을 “하나님의 손가락”(눅 11:20)에 비유한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등을 본다”는 말은 하나님의 영광을 간접적으로 혹은 부분적으로만 본다는 뜻입니다. 

묵상:

32장과 33장에 나오는 하나님의 말씀과 행동에는 이상한 점이 많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죄악 앞에서 하나님은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는 분처럼 보입니다. 백성 모두를 쓸어 버리려던 하나님의 계획을 모세가 가까스로 말려야 했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가나안으로 올라가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그랬다가는 백성의 죄로 인해 그들을 없애버릴지도 모르기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전지전능하신 분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미래의 일까지 다 보고 계시다고 믿습니다. 그런 분이 이렇게 말씀하는 것은 어딘가 맞지 않아 보입니다. 그런데 모세가 간청을 하니 하나님은 또 다시 마음을 돌이키셔서 그들과 같이 가나안으로 올라 가겠다고 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영원불변하시다고 믿어 왔기에 이렇게 오락가락하는 모습이 많이 이상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인간의 차원으로 당신 자신을 낮추고 계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것은 마치 아버지가 어린 아이의 수준으로 낮추어 대화하는 것과 같은 일입니다. 아버지는 자신의 본성을 지키면서도 아들의 수준으로 자신을 낮추어 대화할 수 있습니다. 아들과의 대화 중에 아버지가 하는 말들은 아들의 수준에 맞추어 하는 말입니다. 그 말을 가지고 “그 아버지는 참 줏대가 없고 변덕이 심하네”라고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아버지는 자신의 생각과 뜻과 계획이 있지만 아들의 수준으로 자신을 낮추어 아들의 필요에 자신을 맞추려고 노력합니다. 

우리의 하늘 아버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분은 영원불변하시고 또한 전지전능하십니다. 그분이 그 상태에 그대로 머물러 있으려 한다면 우리 인간과 교제할 수 없습니다. 그분은 당신 자신을 낮추어 우리에게 오십니다. 때로는 우리에게 흥정을 붙이기도 하시고 우리와 놀이도 하시며 밀당도 하십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필요를 채우시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그분의 얼굴을 대면할 수는 없지만 그분의 뒷모습을 보고 그분의 손길을 경험할 수 있는 이유는 그분이 우리의 자리로 자신을 낮추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분은 우리와 같은 몸으로 오셨습니다. 그분이 바로 우리의 주님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할렐루야!

3 thoughts on “출애굽기 33장: 낮아지신 하나님

  1. 이스라엘 백성을 위한 하나님의 지극 한 사랑이 모세와의 대화를 통해 드러나 듯 훗 날엔 자신의 아들인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 나타 나셨스을 알게 해주는 아침입니다.
    변덕이 죽 끌듯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지만 그 들이 회개하고 주님 앞에 나오면 또 그들을 용서하고 끝까지 그들과 함게하시는 하나님, 이제는 예수님의 영상으로 우리와 함께하시는 주님을 경배합니다.
    주님 우리 삶의 어귀에 서서 저희를 지켜주시고 혹 다른 길로 잘 못 들어서는 경우가 있어도 넉넉히 용서하시고 바른 길로 인도하여 주시기 간청합니다.
    주님의 영광을 보는 하루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Like

  2. 사귐에 교회에 신실한 목회자를 파송하신 주님께 감사와 영광을
    드립니다. 저희 교회가 주님께서 기뻐하시고 쓰임받는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약속의 땅에 들어가는 동안에 여섯 이방인 족속을
    물리치시는 주님! 저희들의 마음에 있는 세상의 욕심 교만 시기 질투
    비겁함 미움을 하나씩 물리쳐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바위틈으로
    모세를 보호하신 주님! 예수님의 허리의 상처안에서 이웃과 함께 주님의
    영광을 보고 보호받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 주십시오. 아멘.

    Like

  3. 구약에 나타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만나고 경험한 하나님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렌즈로 본 세상입니다.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이 되어 이야기를 따라 가기도 하고, 제 삼자의 입장에 서 보기도 합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하나님은 여러번 마음을 바꾸셨습니다. 아브라함과 소돔을 놓고 여러번 양보를 하셨고, 이삭을 죽여 제물로 바치려는 순간에 아비의 손을 막으셨습니다. 모세 앞에서 또 마음을 돌이키시는 장면입니다. 문득, 나 모르게 나의 인생길에서도 마음을 바꾸신 일이 있지 않았을까 싶어집니다. 나 모르게라고 표현하는 것은 기도하며 깨어 있었던 순간보다는 기도하지 않고 지나간 일과 상황이 너무나 많았기 때문입니다. 기도할 때는 그나마 하나님의 뜻을 묻기도 하고 내가 원하는 것을 놓고 곰곰히 생각하며 구하지만, 인생길의 모퉁이를 돌 때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모른채, 기도의 자리 – 모세의 회막 -에 가지도 않은채 모퉁이를 돌아 새 길로 나간 적도 많습니다. 지나고나니 하나님의 은혜임을 압니다. 내 앞으로 지나가시는 하나님의 등을 봅니다. 모세는 회막에서 친구에게 말하듯 얼굴을 맞대고 하나님과 만났다고 했는데 이 때에도 하나님을 볼 수는 없었나봅니다. 시각으로 하나님을 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말씀을 이해했다는 뜻인 것 같습니다. 18절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 달라는 표현은 시각적으로도 하나님을 보고 싶다는 말이겠지요. 임재를 경험하면서도 눈으로 꼭 보고 싶은게 사람의 마음이구나 생각도 듭니다. 모세의 회막은 시간과 공간을 따로 구분하여 하나님을 만난 자리입니다. 모세의 자리로 오셔서 친구처럼 만나주신 하나님. 우리도 지금 하나님을 만나고 있습니다. 말씀을 묵상하며 “하나님, 이게 뭐지요, 무슨 뜻이지요, 왜 그렇지요, 저는 잘 모르겠는데요, 보여주세요, 깨닫고 싶습니다, 죄송합니다, 못할 것 같습니다, 그건 아닌거 같습니다, 무섭습니다, 잘못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알겠습니다…” 하나님께 아뢰는 곳마다 그분과 만나는 곳이라고 믿습니다. 어디에나 계신 하나님.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하나님. 이스라엘이 만난 하나님. 나를 만나시는 하나님. 내 마음을 바꾸시는 하나님. 당신의 마음을 바꾸시는 하나님. 그분을 찬양합니다.

    Like

Leave a Reply

Fill in your details below or click an icon to log in:

WordPress.com Log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WordPress.com account. Log Out /  Change )

Google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Google account. Log Out /  Change )

Twitter picture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Twitter account. Log Out /  Change )

Facebook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Facebook account. Log Out /  Change )

Connecting to %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