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34장: 모세의 빛나는 얼굴

해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돌판 두 개를 깎아서 시내 산으로 올라 오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새겨 주신 십계명 돌판을 그가 격분하여 내던져 깨뜨렸기에 새로운 돌판을 준비하라 하신 것입니다(1-3절). 모세가 새 돌판을 준비하여 산에 오르자 하나님께서 “구름에 싸여 내려오셔서, 그와 함께 거기에 서서, 거룩한 이름 ‘주’를 선포하셨”(5절)습니다. 이것은 모세의 요청에 대해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입니다(33:17-23). 하나님은 당신의 영광을 모세 앞으로 지나가게 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얼굴은 보지 못하고 그분의 등만을 보게 될 것이라고 예고하셨습니다. 그 말씀대로 시내 산에 선 모세 앞에서 하나님은 당신의 영광을 지나가게 하십니다. 그것을 통해 모세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깨닫습니다(6-7절). 모세는 그 영광에 압도되어 땅에 업드려 경배하며 이스라엘과 함께 가나안으로 올라가 주시기를 청합니다(8-9절).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과 언약을 세우겠다고 하십니다(10절). 그들이 하나님의 명령을 잘 지키면 그들을 위해 이방 민족들을 몰아내겠다는 언약입니다(11절). 하나님과 언약을 맺는다는 말은 오직 그분만을 의지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민족과는 언약을 맺지 말아야 합니다(12절). 그 언약으로 인해 그들의 우상숭배에 빠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 민족을 몰아내고 그 땅을 차지하면 가장 먼저 그들이 섬기던 신상과 제단을 허물라고 하십니다(13절). 

여기서 하나님은 당신을 “질투하는 하나님”(14절)이라고 소개하십니다. 십계명을 주실 때에도 같은 말로 당신을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20:5). 이 말은 “뜨겁게 사랑하는 하나님”이라는 의미를 뒤집어 표현한 말입니다. 인간을 참되게 사랑하고 복되게 하는 신은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다른 신들은 악한 영이거나 우상일 따름입니다. 하나님께서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고 이토록 강조하시는 이유는 다른 신들을 찾는 것이 곧 파멸로 가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이방 민족과 언약을 맺는 일은 그들의 우상숭배에 문을 여는 행위입니다. 인간의 본성은 참된 하나님을 섬기기보다는 우상을 섬기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그것이 타락한 인간의 욕망에 더 매력적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15-16절).

하나님께서는 이미 주신 율법 규정 중에서 몇 가지 중요한 것들을 다시 강조하십니다(17-26절). 그분은 모세에게 이 모든 명령을 기록하라고 하십니다. 그것이 언약의 조건이기 때문입니다(27절). 모세는 40일 동안 그곳에서 금식하면서 준비한 돌판에 십계명을 새깁니다(28절). 40일 후에 모세는 새 돌판을 들고 산 아래로 내려 오는데 그의 얼굴에서 빛이 납니다(29절). 아론과 백성은 그 광채로 인해 모세에게 가까이 가기를 두려워할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백성을 대면할 때 수건으로 얼굴을 가려야 했습니다(30-33절). 우리 번역으로 “수건”이라고 해 놓았기에 세수할 때 사용하는 수건을 상상하기 쉽습니다. 실제로 이것은 면사포처럼 희미하게 앞을 볼 수 있는 베일을 의미합니다. 그 이후로 한 동안 모세는 하나님에게 나아갈 때에는 베일을 벗고 백성을 대면할 때는 그것을 쓰기를 반복했습니다(34-35절).

묵상: 

40일 동안 금식하며 하나님과 함께 지낸 후에 모세의 얼굴에서 광채가 났다고 합니다. 그의 존재 전체가 인간으로서 가 닿을 수 있는 거룩함과 정결함의 최고 경지에 이르렀기 때문입니다. 우리 말의 ‘얼굴’은 ‘얼꼴’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보이지 않는 ‘얼’ 즉 내면의 상태가 보이는 ‘꼴’로 드러난 것이 얼굴이라는 뜻입니다. 모세가 하나님과 깊고도 밀도 있는 교제를 한 결과, 그의 존재는 거룩하고 정결함의 최고치에 이르렀고 그것이 그의 얼굴을 통해 발산된 것입니다. 모세는 한 동안 그러한 내면 상태를 유지했을 것이고, 그래서 얼굴을 베일로 가려야 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이것을 우리의 영적 생활에 대한 비유로 사용했습니다. 우리의 영적 생활은 “주님의 영광을 바라보는 것”(고후 3:18)입니다. 우리의 기도, 예배, 말씀 묵상 그리고 사랑의 섬김은 모두 하나님의 영광을 향해 우리의 마음을 들어 올리는 일입니다. 그렇게 하면 “우리는 주님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하여, 점점 더 큰 영광에 이르게 됩니다.” 우리의 내면에 그런 변화가 일어나고 그 변화가 우리의 삶을 통해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 변화에 대해 바울 사도는 “이것은 영이신 주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라고 덧붙입니다. 

모세처럼 베일로 얼굴을 가릴 정도는 아니라도 우리의 얼굴에서 하나님 나라의 기쁨과 평화의 빛이 희미하게나마 발산되기를 기도합니다.     

  

3 thoughts on “출애굽기 34장: 모세의 빛나는 얼굴

  1. 질투하는 하나님 즉 뜨겁게 사랑하는 하나님과의 대화를 통해 빛을 발하는 모세를 보며 주님의 영광이 우리 사귐교회에 머물기를 기도합니다.
    두 번째 돌판에 처움과 같은 십계명을 주시며 주님의 말씀을 다시 강조하는 하나님, 그 하나님을 경배하며 기도와 말씀과 묵상과 예배로 우리의 마음을 바칩니다.
    내 얼굴에서도 하나님의 자국이 선명해 지기를 바라며 기도로 오늘을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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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하나님께서 다시 계명을 새겨 주십니다. 시내 산꼭대기로 돌판을 들고 모세가 올라가고, 하나님의 영광이 모세 앞을 지나갑니다. 사십 일 동안 시내 산에 있던 모세가 내려왔을 때 하나님의 영광이 모세의 얼굴을 통해 백성들에게도 보입니다. 마치 하나님을 보는 듯 모세의 빛나는 얼굴을 제대로 쳐다 보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돌판에 새기는 여호와의 말씀은 이방민족과 교류하지 말라는 말씀과 처음 태어난 것은 다 여호와의 것이라는 말씀, 일년에 세 번 여호와께 나오는 절기, 등입니다. 종교적인 주체성을 뚜렷이 하는 것이 정착하면서 처음 해야 할 일입니다. 이방적인 것은 다 배척하고 없애라고 하십니다. 오로지 여호와 만을 기리고 인정하는 종교적인 발상전환이 일어나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다시 태어나려면 반드시 해야 하는 일입니다. 쉽지 않을 것입니다. “조심하여라” 두 번 경고하십니다. 예전처럼 하려는 본능적인 습관을 없애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창세기 34장은 이방 문화에 끌려 구경을 나간 야곱의 딸 디나의 이야기입니다. 이방 문화와 여호와가 양자택일을 요구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종교다원주의 논쟁으로 한국 종교계가 들끓던 80년대를 기억합니다. 같은 본문을 읽어도 시대에 따라 다른 울림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 이야기와 만백성의 하나님 이야기가 똑같이 일치할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와 있는 말씀 만을 놓고도 우리가 지키지 않는 부분이 있음을 봅니다. 말씀의 정신은 알 것 같으나 “말씀대로”는 지킬 수 없는 제사 규정들이 앞으로 무수히 많이 나올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간직하고 감당하고자 모세는 얼굴에 베일을 덮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베일을 거두시지 않을까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기를 원합니다”라는 우리의 기도는 오늘 본문에 대한 충분한 묵상을 하고 올리는 기도인지….예수님께 묻는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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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마음과 혼을 잘 가꾸어 주님의 말씀을 깊히 각인 하기를 원 합니다.
    그 말씀을 신실하게 따르며 세상의 모든것을 버리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님의 향기가 이웃과 함께 풍기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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