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38장: 하나님의 영광과 인간의 허영

해설:

성막과 성막 내부에 둘 성구들을 제작한 다음 브살렐은 성막 바깥 마당에 둘 기구들은 제작합니다. 성막 바깥에는 가로 백 규빗(45미터)과 세로 오십 규빗의 직사각형 울타리를 치게 되어 있고, 그 안에 번제단과 물두멍을 두어야 했습니다. 브살렐은 먼저 모세가 전해 준 지시대로 번제단을 제작합니다(1-7절). 그곳에서는 아침 저녁으로 번제를 드리게 되어 있었고, 또한 필요할 때마다 그곳에서 제물을 드렸습니다. 이어서 그는 물두멍을 제작합니다(8절). 제사장이 성막에 들어갈 때 손과 발을 씻기 위한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성막 울타리를 모세의 지시대로 제작합니다(9-20절). 성막은 동서 방향으로 세우게 되어 있었고, 입구는 해돋는 방향 즉 동쪽에 두게 되어 있었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성막에 필요한 모든 것의 제작이 완료되자 모세는 아론의 아들 이다말에게 명령하여 소요된 경비를 계산하게 합니다(21절). 성막 제작을 주도한 사람은 브살렐과 오홀리압입니다(22-23절). 성막 제작에는 막대한 양의 금과 은과 놋쇠가 사용되었습니다(24-31절). 또한 수 많은 보석과 직물과 목재가 사용되었습니다. 이와 동일한 성막과 성구를 오늘 제작한다면 6천만 달러 정도 들 것이라는 계산이 있습니다. 세상적으로 본다면 성막은 보물 창고와 마찬가지였습니다. 

묵상:

성막은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계시는 하나님의 현존을 상징합니다. 또한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상징합니다. 그렇기에 성막은 가장 귀한 재료를 사용하여 가장 아름답게 제작되어야 했습니다. 성막의 외적인 규모는 그리 인상적이지 않았습니다. 성막 본체의 길이가 기껏해야 삼십 규빗(14미터 정도)이었고, 울타리까지 해도 45미터 정도였으니 말입니다. 이집트에서 그들이 보았던 신전들의 규모에 비하면 너무도 초라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신전의 규모가 곧 그 신의 능력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이집트의 신들에게 상대도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지시하신 성막은 외적인 규모가 아니라 내적인 질에 초점을 두었습니다. 이집트인들이 세운 신전에 비하면 오두막처럼 보일 수 있었지만, 성막은 이스라엘 백성이 사랑으로 헌납한 온갖 귀한 재료들로 만들어졌습니다. 겉으로 보이기에는 하찮아 보였을지 몰라도 그 내면은 온갖 진귀한 것들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이집트의 신전들은 인간의 허영심의 표현이었지만, 성막은 하나님의 영광의 상징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인간의 허영’은 혼동하기 쉽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다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헝영심을 채우려는 일들을 자주 봅니다. 거대하고 화려한 예배당을 건축하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고 선전하는데, 하나님께서 그것을 보고 어떻게 말씀하실지 의문이 듭니다. 그런 줄 알면서도 그렇게 우기고 또 그렇게 속아 넘어가는 이유는 우리 모두에게 허영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그 둘 사이를 분별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데 있습니다. 

그렇기에 그것이 우리의 매일의 영적 싸움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하루 나의 생각과 행동이 나의 허영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3 thoughts on “출애굽기 38장: 하나님의 영광과 인간의 허영

  1. 성막 울타리를 만들고 그 안에 번제단과 물두멍을 만드는 과정에서 모든 것을 주님의 지시에 따라 시행했으며 인간의 지혜를 따르지 않은 이스라엘의 초창기 광야생활의 믿음을 생각해 봅니다, 또 그 들은 그 성막에 들어 간 물품 명세서를 만들어 상세하게 기록하여 후손들이 알수있게 정리를 해 둡니다.
    오늘은 하나님의 영광과 인간들의 허영심을 회상하며 인류역사를 되 돌아보면 수많은 아름다운 성전들이 유럽과 중앙아시아에 또 러시아에 지어졌지만 전쟁과 기근을 통해 무너져 내려 그 자취를 찾아보기 힘든 교회당을 유럽 전역에서 보며 하나님의 영광이 더는 건물에 있지않고 내 안에 계심을 자각합니다.
    오늘도 주님의 영광이 내 안에서 이루어지는 하루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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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겉으로만 화려하고 내용이 없고 겉모양만 웅장한 신전을 원치않습니다.
    내면이 보혈을 통해 거룩하고 생명의 말씀과 믿음의 가족과 깊고 긴밀한
    사귐이 있는 성막을 원합니다. 믿음의 가족과 함께 말씀으로 세상을
    섬기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 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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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이집트에서 풀려나온 히브리 백성은 하나님을 새롭게 알고 섬기는 길을 배워갑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을 아는 백성이지만 모세의 시대는 요셉을 모르는 새 왕이 다스리던 때였습니다. 히브리 백성이 이해하는 하나님은 이집트처럼 강대한 나라를 지켜주는 강하고 무서운 신들과 다를바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 신들 가운데 한 존재라고 여겼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편에서 이집트를 대적해 주셨습니다. 이집트에 내려온 열 가지 재앙 이야기를 읽을 때 이집트의 평민들과 짐승까지 고통을 겪는 부분이 마음에 걸린 것은 사실입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는 이름이 배타적으로 들리기도 했습니다. 만백성의 하나님으로 이해하는 나에게 출애굽기의 하나님은 이스라엘만을 보호하시는 분으로 비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집트와 이스라엘의 구도를 다른 틀로 보면,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시대로 옮겨와 적용해보면 있는 자와 없는 자, 지배자와 약자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본문은 계속 광야에 세우는 성전, 하나님의 집을 다루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지시를 받은 이스라엘 백성이 성막을 세우는데 이들은 이집트에서 성전과 건물을 많이 세운 사람들입니다. 원하는 마음으로 노동을 한 것이 아니라 노동력으로 태어나 평생 노동을 하는 것 외에는 다른 삶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백성이 자원하는 마음으로 자기에게 있는 것을 바쳐 하나님을 예배하는 텐트를 세우고 있습니다. 인구 조사를 받은 스무 살 이상의 남성이 바친 은으로 기둥과 갈고리를 만들었습니다. 인구 조사에 들어가지 않는 여자들도 남자들이 주는 일감을 받아 참여했을 것입니다. 이들이 세우는 성막은 노동의 산물이 아니라 감사의 헌물입니다. 아무도 보호해주지 않는 이스라엘 백성을 지켜주시는 여호와의 신전은 마땅히 금과 보석으로 아름답고 귀하게 지어져야 합니다. 하지만 머지않아 광야의 신전도 사라지고, 예루살렘 성전도 허물어집니다. 하나님은 이제 그분의 이름을 부르며 그분 만을 귀하게 여기는 사람의 내면으로 자리를 옮기십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광야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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