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74편: 나라를 위한 기도

해설:

표제에 의하면, 이 시편은 아삽이 쓴 것인데, 내용을 보면 예루살렘이 바벨론에 의해 멸망한 후에 쓰여진 것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시편이 지금의 모습으로 정리된 것이 바벨론 포로 시기에 이루어진 일이므로 당시의 상황이 이 시편에 배어 들어 갔을 것입니다. 이 시편은 환난 가운데 처해 있는 이스라엘에 대한 탄원의 기도입니다. 

먼저 시인은 이스라엘이 처해 있는 상황에 대해 묘사합니다(1-9절). 이스라엘은 오랫동안 하나님께 버림 받은 것 같은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1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값주고 사셨고 친히 속량하셔서 당신의 것으로 만드시고 시온을 거처로 삼으셨다는 사실(2절)을 기억한다면, 이렇게 오래도록 환난 가운데 있게 하시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주님의 성소는 폐허가 되었고 원수들의 깃발이 성소에서 휘날리고 있으니 말입니다(3-4절). 그들은 “밀림의 벌목꾼처럼”(5절) 성소를 파괴하고 모든 것을 불질러 버렸습니다(6-8절). 

이 모든 묘사는 주전 586년에 바벨론이 예루살렘 성전을 파괴한 사건을 생각나게 합니다. 이 사건은 유대인들에게 역사적 트라우마를 안겨 준 참혹하고 참담한 사건이었습니다. 그보다 더욱 고통스러운 것은 “어떤 징표도 더 이상 보이지 않고, 예언자도 더 이상 없다”(9절)는 사실에 있었습니다. 물리적으로는 폐허가 되었고 영적으로는 공허해진 것입니다. 그들 가운데는 “이 일이 얼마나 오래 갈지를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9절). 예루살렘이 함락된 후로 70년 이상이 지나서야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던 사람들이 돌아온 것을 생각하면, 그들의 절망감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시인은 하나님께 구원을 호소합니다. 먼저 그는 하나님께, 언제까지 이 상태로 내버려 두시겠느냐면서 속히 손을 빼어 심판해 달라고 기도합니다(10-11절). 그러면서 시인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에 대해 고백합니다(12-17절). 그분은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전능자이십니다. 리워야단(14절)은 당시 사람들이 알고 있던 가장 공포스러운 괴물의 이름입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가장 무서운 괴물도 하나님에게는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그분은 온 우주를 다스리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시인은 바로 그 하나님이 “옛적부터 나의 왕이시며 이 땅에서 구원을 이루시는 분이십니다”(12절)라고 고백합니다.

이 고백에 근거하여 시인은 하나님께 호소합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을 모독하는 사람들을 더 이상 그냥 두지 말라고 기도합니다. 하나님이 손을 떼신다면 이스라엘은 들짐승 앞에 있는 “멧비둘기 같은”(19절) 가련한 백성일 따름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이스라엘과 맺으신 언약을 기억하셔서 날마다 주님을 모욕하는 어리석은 자들을 심판하셔야 합니다(20-22절). 하나님께서 침묵하시니 “주님께 항거해서 일어서는 자들의 소란한 소리가 끊임없이 높아만 가기”(23절) 때문입니다.

묵상:

오늘 시편에서 “우리에게는 어떤 징표도 더 이상 보이지 않고, 예언자도 더 이상 없으므로”(9절)라는 구절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여기서 “징표”는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증거를 말합니다. 시인에게는 나라의 주권을 잃고 성소가 폐허가 되었다는 사실보다 더 큰 절망의 이유가 있었습니다. 바로 이스라엘의 영적 공황 상태가 그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예언자들이 세상을 보는 눈입니다. 물질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있더라도 영적으로 살아 있다면 희망이 있습니다. 반대로 물질적으로 번영 일로에 있다 하더라도 영적으로 고갈되어 있으면 위기라고 보아야 합니다. 아삽은 이스라엘이 물질적으로 곤고한 상태에 있을 뿐 아니라 영적으로도 바닥에 처해 있다는 사실로 인해 아파합니다. 그가 하나님께 구원을 호소하는 이유는 단순히 물질적인 상태를 회복시켜 달라는 데 있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이 다시금 하나님의 백성으로 회복되게 해 달라는 호소였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예언자의 시각으로 이 세상을 바라봅니다. 우리가 속한 나라를 위해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은 물질적인 조건을 개선해 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시대의 문제는 영적인 문제입니다. 영적으로 깨어나 거룩한 백성으로 회복되는 것이 우리 시대에 가장 필요한 일입니다.  

2 thoughts on “시편 74편: 나라를 위한 기도

  1. 말라위의 토속 노래가사에 money is the the devil 이라는 노래가 있다는 방송을
    들었습니다. 세상이 바라는 축복은 축복보다 영적 저주가 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고난속에서 힘들지만 깨어 기도하고 주님만 바라는것이 무엇보다 더 큰 축복임을
    깨닫는 말씀 허락하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찾는 조국과 미국과
    온 세상이 되기를 기도 합니다.
    이웃과 함께 좁고 험한길을 걷지만 함께하시는 주님을 생각하며 기뻐하며 사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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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미국이 이란을 공격할 준비를 했다가 취소했다지요. 완전히 거둬들인 명령인지, 잠시 유보한 것인지 확실치 않지만 언제라도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또다시 실감합니다. 한국에서 살 때는 북한이 언제 또 전쟁을 일으킬 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안고 살았습니다. 북한이 핵을 갖고 있어 남한을 언제든 “불바다”로 만들지 모른다는 공포감이 정치하는 사람들에게 쓸모 많은 당근과 채찍이 되어 왔습니다. 미국에서 살면 전쟁 공포가 없어진 줄 알았는데 착각이었습니다. 트럼프 정부가 들어선 이후 무역관세며 기후협정, 이민정책, 인종차별 등등을 이유로 적대관계가 된 국가들이 한 두 나라가 아닙니다. 시편 기자가 느끼는 공포와 절망은 지금 우리의 심정보다 더해 보입니다. 예루살렘이 몰락되고 70년이 지나서야 포로 귀환이 이루어졌는데 한국전쟁이 끝난 지도 60년 넘어 곧 70년을 맞을 참입니다. 한 세대가 경험하기에 70년 세월은 긴 시간입니다. 누군가를 기다리고, 어딘가로 돌아가기를 바라며 70년을 산다는 것은 일평생을 다 쏟는 일입니다. 평생토록 메시야를 기다리던 시므온이 성전에서 아기 예수님을 만나 팔에 안고 기도하는 누가복음 기록을 떠올립니다. 폭력과 싸움이 땅을 어둡게 하는데 백성과 맺은 언약을 기억해 달라는 시인의 호소가 아픕니다. 주의 백성들이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게 해달라는 표현이 시편에 자주 나오는데 평생 주를 믿고 주님의 구원을 기다리고 사는 인생들이 허무와 실망에 무너지지 않게 해달라는 표현일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기 어려운 자리에서도 의지적으로 하나님을 향해 소망을 두는 것이 예나 지금이나 믿음의 도전입니다. 기쁜 소식이 날아오지 않는 날에도 여전히 희망을 품고 기도하는 시인과 같은 마음으로 전쟁과 평화가 시시각각 자리바꿈을 하는 이 시대를 살아갑니다. 하나님 만이 우리의 구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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