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77편: 묵상의 힘

해설:

이 시편 역시 아삽의 작품으로 되어 있습니다. ‘여두둔’은 음악 용어인데, 그 의미는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의 공적 관심사를 담고 있는 앞의 두 시편과 달리 이 시편은 개인적인 상황에서 드려진 기도입니다.

시인은 아주 깊은 고난 가운데 처해 있습니다. 그는 “밤새도록 두 손 치켜 들고”(2절) 하나님을 향해 구원을 호소합니다. 하지만 고난의 상황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이제는 위로가 필요한 때가 아니라 고난의 상황이 달라져야 할 때입니다. 그래서 그는 “내 마음은 위로를 받기조차 마다하였습니다”(2절)라고 기도합니다. 아무리 기도하고 구해도 상황이 변화되지 않으니 하나님을 생각하면 한숨이 나오고 마음이 약해집니다(3절). 하나님의 무응답이 서운하고 또한 실망스럽습니다. 

시인은 근심과 걱정, 실망과 절망 가운데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웁니다(4-5절). 잠을 이루지 못하고 밤새도록 흘러간 세월을 회상하는 동안 하나님께 대한 회의와 의심이 마음을 파고 듭니다(6-9절). 과거에는 그토록 가까이 계신 것 같았던 하나님이 너무도 멀리 계신 것처럼 느껴집니다. 과거에는 그리도 신속하게 기도에 응답해 주셨는데, 이제는 자신의 기도에 귀를 막고 계신 것 같습니다. 과거에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사랑하시고 돌보신다고 믿었는데, 이제는 그 모든 것이 거짓말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시인은 도리질 쳐서 그 모든 의문과 회의를 떨쳐 버리고 “가장 높으신 분께서 그 오른손으로 일하시던 때, 나는 그 때를 사모합니다”(10절)라고 기도합니다. 고난의 상황이 변하지 않았지만 여전히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겠다는 뜻입니다. 그는 하나님에 대해 의심하고 회의하는 대신에 과거에 그분이 행하신 모든 일들을 하나하나 기억하고 되뇌고 되새기겠다고 고백합니다(11-12절). 

그런 다음 시인은 실제로 하나님에 대한 고백을 이어갑니다(13-20절). 그는 출애굽 과정에서 조상들에게 행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기억합니다. 출애굽의 역사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 가장 분명한 하나님 체험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시인은 “물들”(16절)과 “바다”(19절)를 특별히 언급합니다. 그것은 시인이 당하고 있던 고난을 상징합니다. “주님의 길은 바다에도 있다”(19절)는 말은 고난 중에도 주님께서 인도하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고난 중에 있던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셔서 약속의 땅에 이르게 하셨습니다. 시인은 지금 그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자신의 고난 중에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인도하시리라고 믿을 수 있습니다.

묵상:

묵상은 마음의 방향을 하나님께 돌리려는 노력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죄로 인해 바람이 들어 있습니다. 그대로 내버려 두면 죄가 이끄는 방향으로 끌려가게 되어 있습니다. 일이 잘 될 때 우리의 마음은 교만해지기 쉽습니다. 마음이 교만해지면 하나님의 자리에 서려 합니다. 반면, 일이 잘 되지 않으면 절망하고 낙심하기 쉽습니다. 그럴 때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침식 당합니다. 어제같은 오늘이 반복되면 우리의 마음은 무뎌지고 나태해집니다. 하나님을 잊어먹기 쉽습니다. 

묵상은 우리의 마음을 바로 잡아 하나님을 향하게 만들려는 노력입니다. 교만해진 마음을 낮추고 낮아진 마음을 들어 올리고 무뎌진 마음을 예민하게 만드는 일입니다. 그럴 때 변화하는 상황에 상관없이 우리는 늘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아삽은 개인적인 위기를 만나고 그로 인해 믿음이 침식 당하고 있었습니다. 처음에 그는 고난으로 인해 밤잠을 설치며 마음이 가는 대로 내버려 두었습니다. 그러자 그의 마음에는 회의와 의문과 불신이 들어차게 되었고, 그로 인해 그는 한숨을 지으며 약해져 갔습니다. 그대로 내버려 두면 곧 불신의 경계선을 넘어갈 위기였습니다. 그 위기에서 그를 구해 준 것이 묵상이었습니다. 그는 “가장 높으신 분께서 그 오른손으로 일하시던 때”(10절)를 기억하고 그것을 입으로 되뇌었습니다. (히브리어에서 ‘묵상’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행동을 의미합니다.) 

그 묵상으로 인해 그의 마음에 일어난 변화가 오늘 시편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시편 자체가 그의 믿음이 회복되었다는 증거입니다. 

3 thoughts on “시편 77편: 묵상의 힘

  1. 하나님은 늘 내 곁에 있지만 내 자신이 세상 살이에 몰입하다보면 하나님과 멀어져 있는 것을 느끼며 하나님의 존재를 못 느낄 때가 종종 있습니다, 밤잠을 설치면서 기도를 드려도 내 스스로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역시 하나님이 어디에 있는지 막막 할 때가 있습니다.
    주님의길은 바다에도 있고 산들에도 있고 내 곁에도 있습니다, 주님의 발 자취를 헤아리며 주님을 사모하는 하루로 은총나려 주십시요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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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19절에 “주는 바다를 가로질러 큰 길을 내셨습니다. 주께서 바다 한가운데로 작은 길들을 내셨습니다. 물론 주의 발자국은 보이지 않았습니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시인은 홍해를 기억하며 노래하는지 모르지만 우리 모두의 인생길을 담은 이야기로 읽어집니다. 어떤 인생에선 큰 길을 내시고 어떤 사람에겐 작은 길을 내 주십니다. 내 삶을 뒤돌아 보아도 굵직한 큰 길이 있었나하면, 여러개 작고 짧은 길도 있습니다. 주의 발자국은 안 보인다는 표현은 현재 시인의 마음이 슬퍼서인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선명하게 보이던 발자국이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니 사라진듯하다는 뜻인지도 모릅니다. 어린아이가 갓 태어났을 때는 엄마의 몸 안에서 하나님의 빚으신대로 나온 것처럼 보이다 날이 가고 달이 가면 어느새 자기의 모양새와 목소리, 성격이 나타납니다. 자기 스스로 큰 것처럼 걷고 뛰고 말하고 표현하기 시작합니다. 선명하게 보이던 하나님의 손자국은 보이지 않지만 그분의 지으심과 인도하심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음을 우리는 믿습니다. 오늘 시인은 자기 목소리를 들어달라고 외칩니다. 그리고 밤새 자문자답합니다. 기억 속에서 하나님이 함께 하셨던 구원의 순간들을 끄집어냅니다. 스스로에게 증명하는 셈입니다. 과거에 이렇게 행하신 하나님이시니 앞으로도, 곧, 또다시 구원해 주실 것임을 스스로에게 말합니다. 이렇게 지새우는 밤이 여러날 계속 되어도 하나님의 날은 아직 밝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시간이 올 때까지 기다릴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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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신실하신 주님, 함께하시겠다는 약속을 기쁠때나 어려울때나 항상 기억하며
    살기를 원합니다. 지난날에 허락하신 모든 축복을 세어보는 믿음이 필요
    합니다. 비록 좁고 높고 힘든길이지만 이웃과 더불어 감사드리며 걷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 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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