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89편: 참담한 현실 가운데서

해설:

이 시편은 제 3권의 마지막 시편입니다. “에스라 사람 에단”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먼저 시인은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과 신실하심을 대대로 이어 가면서 전하겠다고 고백합니다(1-2절). 이 고백에 대해 하나님은 다윗에게 주셨던 언약을 상기시키십니다(3-4절). 다윗의 왕위를 영원히 이어지게 하겠다는 언약은 사무엘하 7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어서 시인은 하나님의 위대하심에 대해 고백합니다. 그분은 모든 신들 위에 뛰어난 신이십니다(5-7절). 또한 주님은 이 땅의 모든 민족을 다스리는 분이십니다(8-10절). “라합”(10절)은 이집트를 의미합니다. 시인은 “하늘은 주님의 것, 땅도 주님의 것, 세계와 그 안에 가득한 모든 것이 모두 주님께서 기초를 놓은 것입니다”(11절)라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세상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시며 또한 다스리고 계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세상 모든 만물은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 영광을 드러냅니다(12절). 주님은 전능하신 분이시며 또한 정의와 공정과 사랑과 신실이 원천이십니다(13-14절).

“축제의 함성을 외칠 줄 아는 백성”(15절)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고 그분을 예배하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주님의 이름을 크게 외치며 예배를 드립니다. 그 예배는 억지로 행하는 의무가 아니라 하나님을 앎으로 터져 나오는 기쁨입니다(16절). 그러한 기쁨의 예배는 “주님의 빛나는 얼굴에서 나오는 은총”(15절)을 경험하게 할 것이며, 주님은 예배자들의 힘이요(17절) 방패가 되어 주십니다(18절). 예배자들의 진정한 왕은 오직 주님 뿐이십니다.

이 지점에서 시인은 주님께서 오래 전에 주님의 성도들에게 하신 말씀을 회상합니다(19-37절). 이것은 하나님께서 예언자 나단에게 하신 예언을 의미합니다(삼하 7장). 나단은 한 개인으로서 이 말씀을 받은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의 대표자로서 받은 것입니다. 그렇기에 시인은 “주님의 성도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19절)라고 말합니다. 그 예언을 통해 하나님은 다윗을 왕으로 세울 것이며 그가 위대한 왕국을 이룰 것이고 그의 왕국이 영원할 것이라고 예언하십니다(20-29절). 다만, 그의 자손이 하나님의 법과 규례와 율례와 계명을 지켜야 합니다. 만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는 그 죄악을 물어 징계할 것입니다(30-32절).

하나님의 징계는 언약이 깨어졌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은 당신의 언약을 취소하지 않으십니다. 그렇기에 그분은 “그러나 그에게 약속한 나의 진실함은 변하지 않을 것이며 나는 내 언약을 깨뜨리지 않으며, 내 입으로 말한 것은 결코 번복하지 않는다”(33-34절)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징계하신다면, 그것도 역시 언약에 근거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은 이스라엘이 어떻게 행하든지 참고 지켜만 보겠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언약이 유효 하기에 하나님은 때로 징계도 하시고 심판도 하십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다시금 다윗의 “자손이 영원토록 이어지고, 그 왕위는 내 앞에서 태양처럼 있을 것이니, 저 달처럼, 구름 속에 있는 진실한 증인처럼, 영원토록 견고하게 서 있을 것이다”(36-37절)라고 확인해 주십니다.

하나님의 언약에 대해 회상한 후에 시인은 다시 현실로 돌아옵니다(38-45절). 이스라엘은 오래 전에 패망했고, 이제 유다 왕국도 멸망했습니다. 하나님의 도성이라 불렸던 예루살렘 성은 파괴되었고, 성전은 훼파되었습니다. 그것을 보는 이방인들은 하나님을 조롱합니다. 앞에서 고백한 대로 하나님이 정말 전능하신 분이시며 약속을 변치 않으시는 분이시라면 이런 현실이 계속될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시인은 “주님은 주님의 종과 맺으신 언약을 파기하셨다”(39절)고 결론 짓습니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정말 하나님의 언약이 아직도 유효하다면 그 증거를 보여 달라고, 시인은 호소합니다. 주님이 기름부어 세우신 왕과 주님께서 선택하신 백성이 더 이상 조롱과 모욕의 대상이 되지 않게 해 달라고 간구합니다.

묵상:

시인은 믿음과 현실 사이의 불일치 현상으로 인해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분이 창조주이시며 모든 신 위에 뛰어난 분이시며 세상 만물과 모든 민족을 다스리시는 분임을 믿습니다. 그분은 이스라엘을 거룩한 민족으로 불러 내셨고, 아브라함과 모세 그리고 다윗에게 언약을 맺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언약을 따라 이스라엘의 역사를 이끌어 오셨습니다. 과거의 역사를 보면 그것이 다 진실처럼 보이는데, 시인이 처한 현실을 보면 그것이 다 거짓말처럼 보입니다. 하나님은 언약을 깨뜨려 버리신 것 같고 이스라엘에 대한 선택을 무효로 만드신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스라엘과 유다의 운명이 이렇게 비참하게 끝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이 참담한 현실 이 이렇게 오래도록 지속될 수가 없습니다.

시인이 이스라엘과 유다의 운명에서 느끼는 모순적 번민을 우리는 개인의 삶 속에서 경험할 때가 있습니다. 과거에 경험 했던 하나님 혹은 성경에서 만나는 하나님과 우리가 지금의 현실에서 만나는 하나님이 너무도 달라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면 하나님은 없는 것 같고, 계신다 해도 우리를 잊으신 것 같고, 잊지 않았다 해도 우리에게 관심이 없는 것 같아 보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지금 당하고 있는 현실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고 우리를 사랑하신다면 이런 현실에 내던져질 수 없다고 느낍니다.

그 느낌에 압도되지 말아야 합니다. 느낌이 때로 얼마나 근거 없고 때로 얼마나 비현실적인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느낌에 따라 살 것이 아니라 사실에 따라 그리고 말씀에 따라 살아야 합니다. 지금 우리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로써 하나님의 사랑을 판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의혹과 회의가 일어날 때마다 “그에게 약속한 나의 진실함은 변하지 않을 것이며 나는 내 언약을 깨뜨리지 않으며, 내 입을 말한 것은 결코 번복하지 않는다”(33-34절)는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의 상황은 끊임없이 변화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한결같기 때문입니다.   

3 thoughts on “시편 89편: 참담한 현실 가운데서

  1. 때로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곳을 지날 때에도 늘 함께 하시는 주님, 내가 주님에게서 멀리 떠나 있을 때도 함께 하셨던 주님을 기억 합니다.
    주님의 사랑과 신실 한 언약은 영원하며 주님의 정의와 공의는 늘 사랑 안에서 신실히 행해집니다.
    크고 작은 하루의 모든 일과를 주관하여 주시고 주님의 그늘에서 쉼을 얻는 하루로 은총 내려주십시요 주님. 주님을 찬양하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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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주님은 온 천지 해와 달과 별과 땅과 바다로 부터 찬양 받기에 합당한 분이십니다.
    저희들의 자손들을 바른길로 인도 하시겠다는 약속을 꼭붙잡고 감사하며 찬양을
    드립니다. 약속의 결과가 보이지 않고 느껴지지도 않지만 신실하신 주님만 믿고
    영광을 드립니다. 지금부터 마지막 숨 쉴때까지 이웃과 함께 감사와 찬양을 드리며
    살도록 도와 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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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성경의 권위는 당의정 (sugar coating)이 아닌데서 온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고전으로 자리잡은 책이나 시대를 지나 계속 사랑받는 오페라, 유행가, 미술품에는 진정성 authenticity이 있습니다. 학계에서 이 단어를 쓰는 것과 내가 이해하고 사용하는 것은 다를 수 있지만 “진실은 통한다”라고 것은 곧 서로에게 있는 진정을 알아본다는 것으로 이해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오늘 시편은 하나님의 언약이 깨어진 것 같은 상황, 하나님에게서 버림 받은 것 같은 비참한 현실을 그리고 있습니다. 좋은 것만 노래하고, 좋은 시절만 기억하는 것은 강력한 진통제 노릇만 해줄뿐입니다. 세상에는 고통을 잊게 해주겠다고 자처하는 것들로 가득합니다. 잠시 도움을 주는 것과 오래 유익한 것을 구별할 줄 아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오늘 해설에서 “과거에 경험 했던 하나님 혹은 성경에서 만나는 하나님과 우리가 지금의 현실에서 만나는 하나님이 너무도 달라 보일 때가 있습니다”라는 고백에 백퍼센트 공감이 갑니다. 지나온 세월을 보면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진 것 같은데 지금의 내 처지는 하나님께 잊혀진 존재처럼 느껴집니다. 하나님이 변하신걸까요. “내 인생이 짧다는 사실을 기억해주소서. 주께서 지으신 모든 삶이 너무도 허무합니다! (47절)” 당연히 이런 생각을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 이런 생각을 한다는게 부끄럽지만 종종 허무감이 찾아옵니다. 이게 다인가, 이렇게 살다 가는 것인가…우울해집니다. 이런 인간의 연약함을 담고 있기에 성경에는 힘이 있습니다. 승승장구하는 사람들, 하나님과 늘 잘 지내는 사람들,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다”는 사람들만 나오는 책이 아니라서 믿을만합니다. 시편에 아름다운 찬양도 들어있고 원망과 한숨도 들어있다는 것을 기억하기만해도 위로가 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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