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2장: 성령으로 받는 마음의 할례

해설:

1장 18절 이하에서 바울은, 이방인들이 철저한 타락으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에 직면해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합니다. 그런 다음 2장에서 사도는 유대인들에게로 눈을 돌립니다. “그러므로 남을 심판하는 사람이여”(1절)라는 말은 부도덕성으로 인해 이방인들을 깔보고 있던 유대인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바울 사도는 유대인들이라고 해서 “변명할 수 없습니다”(1절)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이방인들보다 낫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그들도 죄성에 있어서는 별로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 역시도 유일한 희망은 자신의 죄를 깨닫고 진실하게 회개하는 데 있습니다(4절).

바울 사도는 하나님께서 각 사람이 행한 그대로 갚아 주신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6절). 그래서 “참으면서 선한 일을 하여 영광과 존귀와 불멸의 것을 구하는 사람에게는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 이기심에 사로집혀서 진리를 거스르고 불의를 따르는 사람에게는 진노와 분노를 쏟으실 것입니다”(7-8절)라고 말합니다. 이 말만 보면 행위에 따라 심판 받는다고 주장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영원한 생명을 하나님께 상으로 받을 정도로 선하게 살 사람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방인도, 유대인도 행위로는 진노와 심판에 직면할 수밖에 없습니다. 행위로만 본다면 구원의 희망은 전혀 없습니다.

선민으로 선택되고 율법을 부여 받았다는 사실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이방인들보다 나은 위치에 있다고, 많은 유대인들이 오해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것은 율법에 드러난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들입니다. 율법을 몰라도 그 뜻을 실천한다면 구원 받을 수 있고(14-15절), 율법을 안다 해도 그 뜻을 실천하지 않으면 구원은 없습니다(12-13절). 율법을 모르는 이방인들도 모두 죄악에 물들어 있고, 율법을 자랑하는 유대인들도 삶의 질에 있어서는 이방인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살갗에 할례를 받았다고 해서 모두 구원 받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으로 마음에 받는 할례”(29절) 즉 성령으로 새 사람이 되어야만 구원을 받습니다. 그런 점에서 유대인들도 이방인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진노 앞에 서 있습니다. 인간의 행위에는 구원의 가능성이 없습니다. 

묵상: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것을 자랑했고 율법을 자랑했으며 할례를 자랑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선택 받았다는 증거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로부터 선택 받은 백성다운 삶은 그들에게 없었습니다. 율법을 자랑했지만 율법을 따라 사는 거룩한 삶은 부실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선민이라는 자의식으로 인해 이방인들을 업신 여기며 차별했습니다. 그러한 유대인들의 자의식(self-righteousness)을 바울은 신랄하게 비판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살갗에 받은 할례가 아니라 마음에 성령으로 받는 할례라고 말합니다. 속사람이 새로와져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삶의 변화가 있어야 구원 받은 사람이라 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유대인들이 가졌던 자의식 혹은 허위의식이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있습니다. 세례를 받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했으니 구원을 이미 확보했고 그렇게 받은 구원은 영원히 취소되지 않는다고 확신합니다. 물론, 진정한 구원이라면 영원히 취소될 수 없습니다. 진정한 구원이란 자신의 죄성을 온전히 인정하고 십자가 앞에 두 손을 들고 항복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하나님 앞에 받아들여질 수 있는 자격과 이유가 자신에게는 전혀 없음을 통절히 깨닫는 것입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자신의 죄를 위한 것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의롭다고 인정해 주시고 또한 성령으로 의롭게 변화시켜 주십니다. 그것이 마음에 받는 할례입니다. 그와 같은 ‘내적 증거’가 있을 때 우리는 구원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3 thoughts on “로마서 2장: 성령으로 받는 마음의 할례

  1. 인간의 본성을 속속들이 들여다 보며 하나님의말씀을 전해 주는 바울을 통해 율법으 행위로는 도저히 주님의 의에 도달 할 수 없다고 강조하며, 끝내는 성령으로 속 사람이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의에 이를 수 있습을 기억하게 해 주는 아침입니다.
    유대인들이 마치 자기들만 선민인 것 처럼 행동하면서 주님이 기준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는 것 처럼 믿는 우리가 그들과 비슷한 행동을 해온 지난 날들을 회개하고 진솔하게 주님 앞에 나와 예수님의 십자가를 내 십자가로 받아들이고 주님으 부활을 내 부활로 받아들여 내 삶이 새로와지고 십자가의 삶으로 이어지기를 기도합니다.
    주님의 성령이 오늘의 하루를 이끌어 주실 것을 간절히 기도하는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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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죽을수밖에 없는 저희들을 보혈을 지나 아브라함의 족속으로 입양시키는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겉 모양만 보고 판단하는 위선자가 되지 말고
    속 사람이 주님 닮기를 원합니다.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 진것 같이 땅에서도
    저희들과 이웃을 통해 이루어지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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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정신이 번쩍 드는 말씀입니다. 유대인이라고 적힌 자리에 크리스찬을 대신 넣어 읽으니 오늘 우리에게 날라온 편지가 됩니다. 우리가 이해하는 기독교로 체계와 질서를 잡아준 공은 바울사도에게 있지만 마치 하나님을 “독점”하고 있다는듯 과시하며 사는 모습은 기독교인인 우리나 당시의 유대인이나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24절에 “너희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이 이방인들 사이에서 욕을 먹고 있다”나, 겉모습만 유대인 (크리스찬)인 사람은 진정한 의미에서 유대인 (크리스찬)이 아니라는 28절의 지적은 얼굴을 들지 못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자비로우심과 넓으신 아량과 오래 참으심의 은혜를 보물처럼 여기며 조심스럽게 살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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