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0장: 복음을 향한 뜨거운 열정

해설:

바울 사도는 자신의 동족인 유대인들이 복음을 받아 들이기를 간절히 소원하며 기도합니다(1절). 그들에게는 하나님을 향한 열성이 있지만, 그 열성은 의에 대한 그릇된 지식에 기초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시는 의를 외면한 채 그들의 열심과 노력으로 의를 성취하려 합니다(2-3절). 하나님께서는 율법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게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율법이 줄 수 없었던 의롭다 함을 얻게 하심으로 “율법의 끝마침”(4절)이 되셨습니다. 

알고 보면, 율법을 전해 준 모세도 믿음을 통해 얻는 의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율법을 행함으로 생명을 얻을 것이라고 말한 적도 있지만(5절), 믿음으로 얻는 의에 대해서도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 증거로서 바울은 레위기 18장 5절과 신명기 30장 12-14절을 인용합니다. 모세는, 율법을 행함으로 의를 얻는 것은 하늘로 올라가는 것 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지만 믿음으로 얻는 의는 “네 입에 있고, 네 마음에 있다”(8절)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그렇기에 “당신이 만일 예수는 주님이라고 입으로 고백하고,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마음으로 믿으면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9절). 그러므로 “사람은 마음으로 믿어서 의에 이르고, 입으로 고백해서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10절). 그것은 유대인에게나, 이방인에게나 마찬가지입니다(11-13절).

따라서 누구든지 주님의 이름을 믿고 부르면 구원을 얻습니다. 하지만 그 이름을 알지 못하면 부를 수도 없고, 그 이름을 부를 수 없으면 구원 받을 수도 없습니다(14절). 그렇기 때문에 예언자 이사야는 복음을 전하는 사람의 발이 아름답다고 말한 것입니다(15절). 하지만 복음을 들은 사람이라고 모두 믿는 것은 아닙니다(16절). “믿음은 들음에서 생기고, 들음은 그리스도를 전하는 말씀에서 비롯되는”(17절) 것인데, 마음으로 듣고 응답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불행히도, 유대인들 중 많은 이들이 복음을 듣고도 믿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이미 예언자 이사야가 예언한 사실입니다(20절).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구원하기 원하십니다. 그 사실에 대해서도 이사야가 이미 예언한 바 있습니다(21절). 그렇기에 바울 사도 자신도 복음 전하기를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묵상:

모든 인간의 내면 깊은 곳에는 하나님을 향한 갈망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일찍부터 그 갈망의 정체를 알아 보고 하나님께 돌아 오지만, 또 어떤 사람들은 그 갈망의 정체를 알지 못하고 다른 것으로 그 갈망을 채우려 합니다. 전도란 그 갈망의 정체를 알려 주고 그 갈망을 해결하는 길을 안내하는 일입니다. 복음은 그 갈망을 채우는 길이 열렸다는 소식입니다. 그렇기에 먼저 복음을 듣고 그 갈망을 해결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책임이 있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는데, 전하는 사람이 없으면 들을 수 없습니다. 물론 전한다고 해서 다 듣는 것은 아닙니다. 바울 사도가 겪었던 것처럼 복음을 듣고 믿는 사람보다 믿지 않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 그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전도에 있어서 실패는 당연한 일입니다. 그렇지만 어떤 사람도 끝내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기에 거듭 또 거듭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발걸음이 아름다운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의 구원을 위해 자신의 시간과 물질과 생명을 나누는 일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은 내가 다른 사람에게 해 줄 수 있는 가장 큰 도움입니다. 죽을 병에서 살려내는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영원한 죽음으로부터 건져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일은 불편과 손해와 거부를 감수해야 하는 일입니다. 때로는 모욕과 박해를 각오해야 합니다. 바울 사도는 그 일을 위해 끝내 순교 당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음 전하는 발길을 멈추지 않는 이유는 영원한 생명을 알기 때문이요 영원한 죽음을 향해 가고 있는 사람들의 영혼을 불쌍히 여기기 때문입니다. 

3 thoughts on “로마서 10장: 복음을 향한 뜨거운 열정

  1. 믿음은 들음에서 생기고 들음은 그리스도를 전하는 말씀에 비롯한다는 말씀을 따라 오늘 하루도 그리스도의 말씀을 전하는 하루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고백하는 주님의자녀들이 하루 하루 늘어 나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주님을 찬양하는 백성이 온 우주에 가득차기를 간구합니다.
    온 종일 주님의 손길이 매 시간마다 함께하여 주실 것도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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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청해도 오지 않는 잠을 기다리느니 “한밤 묵상”을 하려고 앉았습니다. 서부시간으로 2시 45분입니다. 내게 예수의 이름을 처음 알려준 사람이 기억나지 않습니다. “예수 믿고 천당 가시오” 길에서 전도하던 사람들도 떠오르고 “신앙촌” 물건을 머리에 이고, 가방에 들고 정기적으로 우리집에 와서 팔던 아줌마도 기억이 납니다. 그래도 하나님의 존재,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셨다는 선언은 길에서 전도하는 사람들이나 신앙촌 아줌마를 보기 전부터 들어 알았던 것 같습니다. 믿음은 말씀을 듣는 것에서 얻게 된다고 하는데 (17절) 말씀은 교회에 나가면서부터 듣게 된 것이니 교회에 출석하면서부터 믿음의 여정이 시작되었다고 정리하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나는 누구에게 예수의 이름을 전했나 생각해보니 부끄럽게도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친구 한 두 명, 남편, 시부모님, 회사 동료…이나마도 한국에서 살 때 일이고 미국으로 온 뒤에는 교회 안과 밖이 더 분명하게 구분되고 서로 차단되었다는 느낌입니다. 내 삶이 이리도 작디작은지, 소리로 치면 모기소리만한 것 밖에 되지 않는구나…쓸쓸하기도하고 부끄럽기도 합니다. 오늘 말씀을 읽는데 19절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이 이방인들로 (inferiors, outsiders) 그들을 시기하게 만들겠고 종교적으로 어리석다는 사람들로 (religiously stupid) 그들을 화나게 하신다는 부분에서 하나님의 공평하심, 자비하심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앞서간다고 우쭐할 때, 이미 깨달았다고 안심할 때, 먼저 만나주셨다고 자랑할 때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에서 비껴서게 되는 것임을 경고로 받아들입니다. 예수의 이름을 듣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 이름에 들어있는 복을 나누며 살도록 도와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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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포기치않고 귀하신 팔을 내밀며 천국 잔치에 초청하신 주님! 결국 말씀으로 오셨네요.
    그 귀한 은혜의 말씀을 마음과 영혼에 깊이 각인하여 이웃과 함께 말과 행동과 삶으로
    예수님의 향기를 풍기는 나날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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