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3장: 주님은 내 삶의 모든 영역을 다스리신다

해설:

바울 사도는 “거룩한 산 제사를 드리는 삶”(12:1)이 어떤 것인지를 삶의 여러 상황에 적용하여 구체적인 가르침을 줍니다. 그것은 성실한 시민으로서의 의무를 다하는 것으로도 표현되어야 합니다(1-7절). 바울은 모든 “권세”가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며 또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도구임을 강조합니다. 그러므로 크거나 작거나 어떤 직책과 그에 따른 권세를 받은 사람들은 스스로를 “각 사람에게 유익을 주려고 일하는 하나님의 일꾼”(4절)으로 생각하고 그 권세를 다른 사람에게 유익하게 사용하도록 힘써야 합니다. 반대로, 권세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권세를 가진 사람들이 제 역할을 감당하도록 순종하고 협조해야 합니다. 시민으로서의 의무를 다하는 것 그리고 조세와 관세를 정직하게 내는 것도 역시 “거룩한 산 제사”의 삶을 사는 한 방법입니다.

이어서 바울 사도는 “서로 사랑하는 것 외에는, 아무에게도 빚을 지지 마십시오”(8절)라고 말씀합니다. 7절에서 조세와 관세를 언급 했기에 빚의 비유를 사용한 것입니다. 지금처럼 당시에도 국가에 내야하는 세금을 속이거나 회피하는 것을 잘 하는 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은혜로 구원 받은 사람들은 조세나 관세 문제로 정부에게 빚을 지거나 혹은 다른 사람에게 재정적인 빚을 지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믿는 이들이 기꺼이 감당할 빚이라면 사랑의 빚 뿐입니다. 믿음이 깊어질수록 사랑의 품은 더 넓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에 사랑의 빚은 점점 더 커지는 것입니다. 수 많은 율법이 있지만 모든 율법은 사랑으로 완성됩니다(9-10절). 이것은 예수님의 가르침의 핵심입니다. 

사도 바울은 또한 종말론적인 경각심을 가지도록 권합니다(11-14절). 그는 “지금은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더 가까워졌습니다”(11절)라고 말하면서 깨어 있을 것을 요청합니다. 예수께서 다시 오시는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어느 때에 오실지는 알 수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대비는 깨어있는 것입니다. 이것도 역시 예수께서 주신 말씀입니다. 바울 사도는 깨어 있다는 말을 “어둠의 행실을 벗어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는 것”(12절)으로 해석합니다. 우리의 탐욕이 추구하는 모든 일들을 버리고 거룩하게 살도록 힘쓰는 것입니다(13-14절). 매일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은 예수님이 언제 다시 오시든 기쁨으로 맞아 들일 수 있습니다. 

묵상: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 주님이십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모셨다면 그분은 우리의 모든 시간, 모든 영역에서 높임 받으셔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분을 신앙이라는 영역 안에만 모셔 두고 그 밖의 영역에서는 그분과 상관 없이 행동하려 합니다. 믿음이 좋다는 사람들 중에도 “신앙은 신앙이고, 비즈니스는 비즈니스다” 혹은 “믿음은 믿음이고 정치는 정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일상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예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거룩한 산 제사”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조세와 관세를 내는 것을 통해서도 예수님은 높임 받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돈 씀씀이와 거래 방법을 통해서도 예수님이 주님이심이 드러나기를 원하십니다. 누룩이 밀가루 반죽 덩이에 골고루 퍼져 가듯 우리의 믿음도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 퍼져 나가야 합니다. 

4 thoughts on “로마서 13장: 주님은 내 삶의 모든 영역을 다스리신다

  1. 내 삶 전체를 주님께 산 제사로 드리라는 바울의 조언을 통해 내 현실 속에서 이루어지는 행동 하나 하나를 살펴보는 아침입니다, 국세, 지방세 그리고 상 거래세는 잘 지키고 있는지? 세상의 권세에 겸손히 순종하는 지? 사랑의 빚 이이에는 아무 빚도 지지 않는지? 실로 내 이웃을 내몸과 같이 사랑하는지? 돌아보면 남을 비판하는 잣대로 만 사용했던 주님의 말씀 앞에 위선자로 살아 온 지난 날들을 돌이켜 봅니다, 비록 나는 할 수 없지만 주님이 내 안에 들어 오시에 성령의 이끌림을 받아 겸손히 실천해 나가는 삶으로 벼화시켜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그리스도의 옷을 입고 늘 깨어 주님을 마지 할 준비에 부족 함이 없기도 간구합니다.
    오늘도 성령이 다스리는 하루가 되기를 간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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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눈에 보이는 육의 세상과 보이지 않는 영의 세상 모두가 다 창조주 하나님으로 부터 입니다.
    세상에서 올바르게, 투명하게 주님의 사랑으로 순종하며 살기를 원 합니다.
    주님 오실날이 어제보다 하루가 더 가까워 졌습니다, 음담패설 시기질투할 시간이 없습니다.
    마지막 숨쉴때까지 이웃과 함께 세상에 주님의 사랑을 선포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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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13장에 오니 불편한 대목과 마주치게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의 가르침을 백퍼센트 다 받아들이기 어렵다”라는 말을 할 때가 있습니다. 세상 통치자, 권세 잡은 사람에게 복종하라는 오늘 본문이 그 시작입니다. 바울의 말씀 (서신)을 잘못 해석 (보존, 번역, 분석 등등을 다 묶어) 하는 것인지, 아니면 당시 바울이 갖고 있던 세계관이 시민으로서 꼭 지켜야할 납세와 준법의 의무를 이렇게 강조하게 만든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시민으로서 세금을 정직하게 잘 바쳐야 한다는 권면이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라는 가르침이 어떻게 연결되는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지금도 교회 안에서 “교회는 교회, 장사는 장사”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장사를 하면서 이해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내 나름의 잣대로 그렇게 말하는 사람을 정죄했다는 반성을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오늘 목사님의 해설이 담은 뜻은 그렇게 편리를 따라 분리하는 것을 경계하자는 말씀으로 이해합니다. 또한 신앙을 삶이라는 그릇에 제대로 담으려면 내 삶의 모든 곳에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적용되고, 표현되어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오늘 본문처럼 권세잡은 자들에 대한 복종을 가르치는 부분이 정치 경제 사회의 여러 부분에서 드러나는 구조적인 잘못을 지적하는 일 자체를 막거나 죄악시하는 것으로 사용되니 혼란스럽고 불편합니다. 정치적인 논의나 토론이 열을 받기 시작하면 누군가는 꼭 이 귀절을 말합니다. 세상의 권세는 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온다. 그러니 우리는 복종해야 한다…..그럴까요. 권세가 없는 사람이 겪는 법과의 마찰 혹은 약자이기 때문에 더 클 수 밖에 없는 법과의 거리를 해소하는 일에 교회가 나서면 안된다는 주장은 권세자에 대한 복종은 필수이고 이웃 사랑의 빚을 갚는 일은 선택이라는 어정쩡한 타협안처럼 들립니다. 계속해야 할 고민이고 묵상입니다. 주일에 교회에서 예배드리고 월요일 되면 의회로, 시티 홀로, 경찰서로 출근하는 공무원들, 공장으로 가게로 일을 가는 시민들, 교회로 출근하는 목회자들…하나님 나라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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