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4장: 그리스도인의 삶

해설:

당시 로마 제국의 도시들에는 우상을 위한 신전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제사 드리고 남은 고기는 시장에 내다 팔았습니다. 그렇기에 소비자들로서는 제사 드리고 남은 고기인지 그렇지 않은 고기인지를 구별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믿음이 약한 이들”(1절)은 우상에게 바쳐진 고기를 먹지 않기 위해 아예 “채소만 먹었습니다”(2절). 반면, 우상은 아무 것도 아니므로 우상에게 바쳐졌던 고기를 먹어도 상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로마 교회 안에는 두 종류의 사람들이 함께 모이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이 되면 사람들은 서로를 비판하고 정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로마 교인들도 그랬습니다. 고기를 먹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 “믿음이 연약하다”고 무시했고, 채소만 먹기를 결심한 사람들은 고기를 먹는 사람들에 대해 “믿음 없는 사람들”이라고 비판했습니다(3절). 그것이 로마 교회 안에서 중요한 분열 요인이 되었습니다.

바울 사도는 우상에게 바쳐진 고기를 먹느냐 마느냐의 문제는 믿음의 본질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면서 서로 비판하고 정죄하지 말라고 권면합니다(3절). 우리 모두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입니다. 그렇기에 심판 당할 일이 있다면 주님께서 하실 것입니다(4절). 중요한 것은 자신의 믿음에 굳게 서는 것이며(5절) 또한 무엇을 하든지 주님을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6-8절). 고기를 먹는 사람도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먹으면 되는 것이고, 먹지 않는 사람도 주님을 위해서 그리하면 됩니다. 그리고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해 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사람들임을 기억하고(10절) 다른 사람을 함부로 비판하거나 심판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거룩하게 창조하셨습니다. 그렇기에 그 자체로서 부정한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14절). 이것은 율법에 목숨 걸고 살았던 바울로서는 혁명적인 발상의 전환이었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세상을 새롭게 보게 된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음식을 가려 먹는 것이 아니라 형제 자매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만일 나의 어떤 입장으로 인해 형제나 자매의 마음을 상하게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죄를 짓는 것입니다(15절). 우리는 누구를 대하든지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창조하셨고 그리스도께서 그 사람을 위해 죽으셨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16절). 그러면 함부로 업신여기고 판단할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일과 마시는 일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누리는 의와 평화와 기쁨입니다”(17절)라고 말합니다. 영적 생활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잊지 말라는 뜻입니다. 영적 생활은 성령과 함께 하면서 의와 평화와 기쁨을 누리고 또한 전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그리스도를 섬기는 사람은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고, 사람에게도 인정을 받습니다”(18절). 그렇기에 우리는 “서로 화평을 도모하는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에 힘을 써야”(19절) 합니다. “덕을 세우다”라는 말은 공동체를 세운다는 뜻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 안에서 자신의 믿음을 견고히 하는 것이고, 그 믿음에 근거하여 모두를 사랑하도록 노력하는 것입니다. 먹어야 한다면 왜 먹는지, 먹지 않는다면 왜 먹지 않는지, 믿음 안에서 분명한 근거를 가지고 행동 하라는 뜻입니다. 믿음에 근거하지 않고 자신의 기호와 욕망에 따라 행하는 것은 모두 죄에 이르기 때문입니다(23절).

묵상:

바울 사도는 여기서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원리를 제시합니다. 첫째는 믿음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에 근거하여 모든 일을 분별하고 판단하라고 권합니다. 무엇을 한다면 왜 하는지, 하지 않는다면 왜 하지 않는지, 모든 것을 믿음에 근거하여 분별하고, 분별한 바에 따라 거침없이 행하라고 합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그의 편지에서 “생각하라”는 말을 자주 사용합니다. 믿는다는 것은 생각을 멈추는 것이 아닙니다. 더 철저하게, 더 분명하게, 더 집요하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완전하신 뜻”(12:2)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사랑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자신의 믿음과 분별에 따라 행하되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 않도록 애쓰라는 것입니다. 형제 자매를 사랑하고 믿음의 공동체를 세우는 것이 우리의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바울 사도는 “지식은 사람을 교만하게 하지만, 사랑은 덕을 세웁니다”(고전 8:1)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믿음에 근거를 두지 않은 지식은 사람을 교만하게 하고, 그로 인해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줍니다. 따라서 믿음을 따라 분별하며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입장과 지식과 판단과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 않도록 힘써야 합니다. 그럴 때 그 사랑으로 인해 교회가 세워집니다. 

셋째는 주님의 영광을 높이는 것을 목표로 두라고 말합니다. 모든 질문과 선택과 결정의 기준을 “하나님의 영광”에 두라는 뜻입니다. 우리의 타락한 마음은 자신의 영광과 이익을 기준으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결정합니다. 믿는다는 것은 그 기준을 나에게서 하나님에게로 바꾸는 것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이 세 가지를 기억하면 틀림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가 우리를 통해 드러나는 일입니다.

3 thoughts on “로마서 14장: 그리스도인의 삶

  1. 삶의 본질과 방향을 제시하시는 하나님, 모든 것을 믿음위에서 깊이 생각하여 분별하여 행하며 사랑으로 덕을 세우므로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삶을 통해 형제 자매를 사랑하라고 하시는 아침입니다.
    그렇게 하므로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고 사람들에게도 인정을 받아 , 먹고 입고 마시는 것으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고 성령 안에서 누리는 의와 평화와 기쁨을 나누는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것을 열심히 하도록 이끌어 주실 것을 간구합니다.
    오늘 하루도 이웃을 비판하는 일이 없이 오직 사랑으로 품는 하루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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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자신의 부족을 깨닫지 못하고 남의눈에 티만 쳐다보았습니다.
    만나는 모든 사람들도 환경도 주님께서 허락하시는것을 깨닫고 감사히 품기를
    원합니다. 상대방에게 걸림돌이 되지않고 디딤돌이 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이웃과 더불어 의와 평화와 기쁨으로 살며 주님께 영광드리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 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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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오늘 본문은 제사에 쓰인 음식을 먹는 사람과 먹지 않는 사람을 예로 삼고 있는데 이런 갈등은 지금 우리 안에도 있습니다. 길에서 구걸하는 홈리스들에게 돈을 주는 사람과 주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주일에 연회 동료임원에게 라이드를 주었습니다. 잠시 들릴 때가 있어 내린 프리웨이 출구에서 구걸하는 사람에게 돈을 주고, 또 다른 프리웨이에서 내려 동네로 들어가면서 본 사람에게도 주었습니다. 에어컨 잘 나오는 차를 운전하다 돈을 주려고 창문을 여니 더운 바람이 훅! 길에서 사는데 적응이 된다는 것 자체가 슬픈 일이다 싶었습니다. 차에 탄 동료가 자기는 홈리스에게 돈을 주지 않는다고 내게 선언하듯 말합니다. 어디다 쓸 지 모르는데 나쁜 버릇 (술 마약)을 계속하는 일에 보탤까봐 싫어서 안 준다고 합니다. 대신 교회에 낸다고 합니다. 나는 내가 주는 돈을 홈리스가 어디에 쓸까 걱정해 돈을 주나, 마나 갈등하는 일을 더이상 하지 않는다고 답했습니다. 그런 갈등을 하고 살 때는 홈리스가 제대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줄까 말까 생각하는 동안에는 말초시각이라고 하나요 peripheral vision에 있어 시야 초점 안으로 들어오지 않습니다. 언제부터인가 내가 주는 1불, 몇 시간동안 모은 10불 남짓한 돈으로 음식 대신 다른걸 살까 염려하느라 그를 “편리하게” 외면하는 내 모습이 더 부담스러워졌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과 연민을 실천한다는 귀한 뜻보다는 내 눈에 보이는 홈리스를 “생각 좀 해보고 결론이 나면 줄께”하는 식으로 세워두는 것 같아 영 편치 않았습니다. 주겠다고 마음을 정하고 실제로 주기 시작하니 홈리스의 얼굴이 또렷이 보였습니다. 그들의 목소리도 듣고, 어떤 때는 이름도 서로 알려줍니다. 동승한 친구는 교회에 준다고 합니다. 교회에서 다같이 모아 구제에 사용하는 일은 성서적이고 서로에게 덕이 되는 일입니다. 그 친구에겐 고민과 갈등 부분을 도려낸 깔끔한 방법이라 더 좋습니다. 나에겐 오히려 관념적으로 느껴집니다. 내 헌금이 교회에서 하는 큰 일에 보탬이 되는 것은 영광스러운 일이지만 무더운 날 내가 주는 1불이 그의 갈증을 덜어주었겠거니 생각하는 것도 좋은 일입니다. 제사 음식을 먹고 안 먹고, 홈리스에게 돈을 주고 안 주고…이런 행위 자체가 하나님을 움직이게 하는 일은 아닙니다. 그런 것으로 믿음을 잴 수 있다면 우리 대신 믿음을 감당할 인공지능을 만들면 다 해결될 일입니다. (내 경우에) 믿음은 내게 하는 질문에서 출발합니다. 말씀을 읽고 묵상하면서 생기는 질문, 살면서 보고 듣는 데서 오는 질문을 내게 던지고, 하나님께 가지고 갑니다. 그리스도의 말씀과 삶에 비추어 예수님은 무슨 질문을 할까, 뭐라고 답할까 상상합니다. 시원하게 에어컨 나오는 차 안에서 상상하는 동안 차창 밖에는 나의 상상과 질문에 도전하는 얼굴들이 곳곳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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