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세아서 1장: 하나님의 잔인한 명령

해설:

호세아는 남왕국 유다와 북왕국 이스라엘로 분열된 시기에 활동했던 예언자입니다. 1절은 그가 활동하던 시기에 유다를 다스렸던 왕들과 이스라엘을 다스렸던 왕을 소개합니다. 호세아는 이스라엘에 속했던 사람인데, 그가 살던 시기에 이스라엘은 여러보암의 41년 통치 이후로 급속하게 쇠락해 가고 있었습니다. 호세아 개인에 대해서는 그 아버지가 브에리였다는 사실 외에는 침묵하고 있습니다. 

구약의 예언자들은 하나님의 부름에 순종하여 그분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언자들이 전한 말씀을 ‘신탁'(oracle)이라고 부릅니다.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말씀이라는 뜻입니다. 예언자들은 자신에게 임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해 자주 어려움을 당하곤 했습니다. 그 말씀의 내용이 자신에게도, 듣는 사람들에게도 무겁고 거치는 말씀일 경우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말씀이 자신의 생각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것이었기에 예언자들은 그 말씀에 순종했고 또한 전했습니다.

호세아는 예언자로 부름 받으면서 아주 특별한 말씀을 받습니다. “음란한 여인과 결혼하여, 음란한 자식을 낳아라!”(2절)는 말씀이 그것입니다. “음란한 여인”이란 당시 바알 신전에서 예배자들에게 음행을 제공했던 신전 창녀를 가리키는 말일 것입니다. 학자들 중에는 이 말씀을 비유로 해석하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명령을 내릴 리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 정도로 이 명령은 충격적이었습니다. 하지만 호세아는 그 명령에 순종하여 고멜이라는 여인을 데려와 결혼을 합니다(3절). 하나님은 자신의 결혼을 통해 음란한 이스라엘에 대한 사랑을 보여 주려 하신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것을 “예언자의 상징 행동”이라고 부릅니다. 예언자들은 우선적으로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말씀을 전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만, 가끔 이상한 행동을 통해 말씀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때로는 그런 행동 하나가 백마디 말보다 더 강력한 호소력을 가졌습니다. 호세아의 결혼은 예언자들이 보여 준 상징 행동들 중에서 가장 강력하고 충격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는 망해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 소시민으로서 누릴 수 있는 행복을 희생해야 했습니다. 그것이 부름 받은 사람들이 감당해야 했던 희생입니다.

그뿐 아니라, 하나님은 아이가 태어날 때마다 이상한 이름을 짓도록 하십니다. 부모로서 자식에게 좋은 이름을 주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입니다. 하지만 첫 아들의 이름을 이스르엘이라고 짓게 하십니다(4절). 이스르엘은 인간 백정 예후가 왕들을 살해하고 구테타를 일으켰던 곳입니다(왕하 9:14-29). 여로보암은 예후 가문의 마지막 왕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예후의 집을 심판하겠다”(4절)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그렇게 이름 짓게 하신 것입니다. 둘째 딸을 낳자 하나님은 로루하마라는 이름을 주십니다(6절). 그것은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불쌍히 여기지 않고 심판에 내어 주시겠다는 뜻입니다. 셋째 아들이 태어났을 때에는 로암미라는 이름을 주십니다(9절). 이스라엘은 “내 백성이 아니다”라는 뜻입니다. 

10절부터 2장 1절까지는 괄호 안에 넣어야 할 말씀입니다. 1장 9절에서 2장 2절로 이어 읽어야 흐름이 맞습니다.    이 예언서의 편집자는 너무도 암울한 심판의 말씀을 기록하기 시작하면서 하나님께서 미래에 이스라엘을 다시 회복시켜 주실 것이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삽입해 넣은 것입니다. 앞으로 읽게 될 심판의 말씀을 하나님의 사랑의 빛에서 읽으라는 뜻입니다. 

묵상: 

하나님의 부르심은 때로 잔인합니다. 이스라엘이 급속하게 쇠락해 가고 있던 시기에 부름 받은 호세아는 하나님의 부름을 따르기 위해 소시민으로서 개인적으로 누릴 수 있고 또한 누릴 만한 소소한 행복을 반납해야 했습니다. 예언자라면 다른 누구보다도 현숙하고 순결한 여인을 아내로 맞기를 소망할 것입니다. 자녀를 낳을 때면 가장 좋은 이름을 지어 주고 싶어할 것입니다. 부름 받은 사람으로서 거룩하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어 사람들에게 보여 주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호세아에게 그 모든 것을 포기하라 하십니다. 아니, 가장 부정한 여인을 아내로 삼고, 가장 불길한 이름을 자녀들에게 지어주라 하십니다. 이 요청이 너무도 잔인하기에 “설마 이게 사실일까? 비유나 상징이겠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그 명령을 그대로 따라 행한 호세아를 생각합니다. 아마도 모세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여러 번 사양하고 거부했던 것처럼, 호세아도 그랬을지 모릅니다. 그 자세한 사정이 기록되어 있지 않아서 아쉽습니다. 하지만 그는 결국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습니다. 그에게 하나님은 자신의 소소한 행복보다 더 큰 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인간적으로 누리는 소소한 행복보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 더 큰 기쁨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그만큼 크셨기 때문입니다. 

나에게 하나님은 얼마나 크신가? 이것이 이 말씀을 묵상하는 동안 제 마음에 들어차는 질문입니다. 

2 thoughts on “호세아서 1장: 하나님의 잔인한 명령

  1.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에 순종하며 따르는 호세아를 배웁니다, 자신을 희생하며 끝까지 주님의 명령을 지켜나가는 호세아의 믿음으로 내 자신을 비추어 봅니다.
    나 한테 불리 한 말씀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내 욕정에서 나온다고 핑게를 대고 늘 피해 온 자신을 봅니다, 호세아 같이 유불리를 떠나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을 본받기 바람니다, 주님의 위대하심이 내 모든 생활을 지배하게 해 달라고 기도해 봅니다.
    오늘 하루도 주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변화되어 가기를 간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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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호세아의 부인이 주님알기전의 제 모습이었습니다. 보혈로 정결함을 받았는데도
    나도 모르는 사이에 세상에 한눈 팔고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성령의 세례가 항상 갱신되어 신실하고 참신한 신부가 되기를 원합니다.
    이웃과 함께 주님이 명하시면 힘들어도 순종하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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