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장: 인간의 어리석음과 하나님의 지혜

해설:

고린도는 바울 사도가 특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던 도시입니다. 당시 로마 도시 가운데 고린도는 도덕적으로 가장 타락한 도시 중 하나였습니다. 또한 그곳에는 수 많은 이교들이 성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복음이 가장 필요한 곳이었습니다만, 또한 복음이 들어가기 가장 어려운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일 년 육 개월 동안 그곳에서 지내며 전도했습니다(행 18:11). 그로부터 여러 해가 지난 후에 바울 사도는 글로에 집 사람들 편에 전해진 고린도 교회의 소식을 듣고 직접 방문할 수 있는 형편이 되지 않기에 이 편지를 썼습니다.

먼저 바울은 당시의 편지 형식에 따라 자신을 소개하고 또한 누구에게 이 편지를 쓰는 것인지를 밝힙니다(1-2절). 그런 다음 그는 당시의 유대인들의 인사(“샬롬”)와 그리스인들의 인사(“은혜”)를 결합하여 축복의 인사를 전합니다(3절). 이어서 사도는 고린도 교인들에 대한 감사의 인사를 적습니다(4-9절). 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온갖 언변과 온갖 지식”(5절)이 늘어난 것과 “어떠한 은사에도 부족한 것이 없는”(7절) 것을 칭찬합니다. 그 믿음 안에서 계속 자라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날에 여러분이 흠잡을 데 없는 사람으로 설 수 있기를”(8절) 기도합니다.

그런 다음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갑니다(10절). 글로에의 집 사람들이 바울에게 전한 바에 의하면, 고린도 교회가 심한 분열과 갈등을 겪고 있었습니다. 바울 파, 아볼로 파, 게바 파, 그리스도 파 등으로 나뉘어 서로 자신들에게 정통성이 있다고 주장하며 갈라져 있었습니다(12절). 게바는 베드로의 아람어 이름이었습니다. 바울과 아볼로와 게바는 고린도교회를 다녀 갔던 전도자들입니다. 고린도교인들은 자신에게 세례를 준 사도를 따라 파당을 형성했고 자신들이 따르는 지도자가 제일 권위가 있다고 주장하며 서로 대립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자 이도 저도 아닌 사람들이 “우리는 오직 그리스도만 따른다”면서 또 다른 파당을 형성했습니다.   

이런 상황에 대해 전해 듣고 바울 사도는 한 마음 한 뜻이 되라고 권합니다(10절). 그는 자신은 누군가에게 세례를 주어 자신의 추종자를 만드는 데 아무 관심이 없고 오직 복음을 전하는 데에만 관심이 있다고 말합니다(17절). 바울은 자신이 “복음을 전하되, 말의 지혜로 하지 않았다”(17절)고 강조합니다. 그렇게 한 이유는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이 되지 않게”(17절) 하려는 것이었다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복음을 제대로 받아들였다면 그런 분열과 갈등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가 심하게 분열되고 갈등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들이 십자가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는 증거입니다. 

이어서 사도는 십자가의 복음이 무엇인지 설명합니다(18-25절). 우리의 죄값을 치루시려고 하나님의 아들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음을 당하셨다는 복음은 인간적으로는 어리석기 짝이 없는 말입니다. 합리적으로도, 논리적으로도, 그 어떤 이치로도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기적을 좋아하는 유대인들도, 지혜를 추구하는 그리스 사람들도 십자가의 복음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믿는 사람에게 십자가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지혜가 됩니다. 사람들은 십자가의 복음을 어리석다고 하지만, 실은 십자가는 하나님의 지혜의 절정입니다. 그것을 안다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지혜를 자랑할 수 없습니다. 

이 대목에서 바울 사도는 고린도 교인들이 인간적인 지혜에 있어서 뛰어난 사람들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상기시킵니다(26-31절). 세상적으로 지혜롭지 않은 그들이 복음을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은 어리석은 자를 통해 지혜 있다는 사람들을 부끄럽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섭리 때문입니다. 그것을 안다면 고린도 교인들은 스스로를 지혜롭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진정한 지혜는 오직 그리스도 예수 안에만 있기 때문입니다. 고린도 교인들의 문제가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그들 자신을 스스로 지혜롭다고 생각하고 교만해진 것입니다. 

묵상:

우리는 하나님을 더 깊이 알아가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지만, 우리의 머리로 이해할 수 있는 분량은 너무도 작다는 사실을 늘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자주 우리 자신의 논리와 분석을 멈추고 하나님 앞에 겸손히 머리 숙일 필요가 있습니다. 겸손히 자신을 연 다음에 다시금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래서 기독교 신앙은 “이해를 추구하는 믿음”이요 “믿음으로 아는 것”입니다. 먼저 믿는 것이고 믿는 그것을 이해해 가는 과정입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의 믿음은 더욱 깊어지게 됩니다. 십자가가 구원의 능력이라는 바울 사도의 고백은 믿음으로만 알 수 있는 대상이며, 믿고 난 후에 이해를 추구해 가야 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만 알 수 있는 것이 십자가의 도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셔야 했는지, 그것이 왜 우리 죄의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되는지 그리고 왜 십자가의 길이 실패하는 길이 아니라 승리하는 길이 되는지를 깨닫는 것은 이성과 논리가 아니라 믿음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이성과 논리와 학문을 믿는 사람들에게 십자가는 어리석음이거나 비밀이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십자가를 품는 사람에게는 그 비밀과 신비가 드러납니다. 그리고 우리가 품은 십자가는 우리의 삶을 십자가의 모습으로 변화시킵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십자가 앞에 겸손히 고개 숙이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 대해 함부로 판단하거나 정죄하지 않습니다. 넉넉한 품으로 다른 사람을 품을 수 있습니다. 바로 그것이 고린도 교회의 문제였습니다. 그들은 똑똑해지는 것에 대한 열망이 너무 커서 십자가의 도를 제대로 깨닫지 못했고 그로 인해 비판하고 정죄하는 습성에 젖어 있었던 것입니다. 

2 thoughts on “고린도전서 1장: 인간의 어리석음과 하나님의 지혜

  1. 파당을 지어 다투며 분쟁이 있었던 고린도 교회를 예로 들어 인간의 속성을 알려주시며 오직 십자가의 도만이 우리를 화합해 주며 구원해 줄 수 있다는 말씀을 상기합니다.
    삶에서 나의 지혜가 앞서가지 않고 늘 믿음위에 쌓아가는 지혜로운 삶으로 주님의 능력을 체험하기를 간구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만을 자랑하는 믿음으로 단련시켜 주시고 의와 거룩함과 구원의 원천이 되시는 예수님이 내 안에 역사 하시기를 간구합니다.
    오늘도 주님과 함께하는 하루로 은혜 내려 주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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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확고부동한 믿음을 원 합니다, 믿음위에 믿음으로 십자가의 신비를 더 많이 알기를
    원 합니다. 세상에서 십자가만 자랑하고 주님과 함께 못 박혀 온전히 죽고 의와
    거룩과 구원의 옷으로 갈아입는 삶이 필요합니다. 이웃과 함께 십자가 중심으로
    똘똘 뭉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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