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2장: 자연에 속한 사람과 영에 속한 사람

해설:

바울 사도는 자신이 고린도에서 전도할 때 인간의 지혜나 화려한 언변으로 하지 않고 오직 십자가의 복음만을 전했음을 상기시킵니다. 고린도 사람들의 지적 우월감으로 인해 바울은 “약하였고, 두려워하였으며, 무척 떨었습니다”(3절). 하지만 그는 인간의 지혜나 지식에 의존하지 않고 오직 성령의 능력을 의지하여 십자가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사실, 세상적인 지식과 논리에 있어서 바울은 누구에게 꿀릴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들의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바탕을 두지 않고 하나님의 능력에 바탕을 두게 하려고”(5절) 복음을 어리석은 말로 선포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십자가의 복음이야말로 가장 탁월한 지혜임을 믿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러나 우리는 성숙한 사람들 가운데서는 지혜를 말합니다”(6절)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성숙한 사람”은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을 가리킵니다. 인간적인 지혜를 자랑하는 사람들은 실은 성숙하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에게 말할 때는 지혜가 아니라 성령의 능력에 의존해야 했습니다만,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들에게는 영적인 지혜를 말할 수 있습니다. 이 지혜는 “이 세상의 지혜나 멸망하여 버릴 자들인 이 세상 통치자들의 지혜가 아닙니다”(6절). 그것은 “비밀로 감추어져 있는 하나님의 지혜”(7절)입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오직 성령을 통해서만 알 수 있습니다(10절). 공부를 아무리 많이 해도 혹은 아무리 큰 권력의 자리에 앉는다 해도 하나님의 지혜는 알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깊은 경륜”(10절)까지 살피며 또한 우리의 내면 깊은 곳까지 살피시는(11절) 성령을 통해서만 그 지혜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오신 영을 받았습니다”(12절)라고 말합니다. 성령을 통해 하나님의 지혜를 받아들인 것이고 또한 믿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인간의 지혜나 논리나 언변으로 담아낼 수가 없습니다. “신령한 것을 가지고 신령한 것을 설명하는”(13절) 것 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습니다. 그렇기에 “자연에 속한 사람”(14절) 즉 영적 세계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인간의 지혜나 논리에는 “이런 일들이 어리석은 일”이며 “이런 일들을 이해할 수 없기”(14절) 때문입니다. 반면, “신령한 사람” 즉 성령의 감화와 감동 안에 사는 사람은 이런 일들이야말로 진정으로 지혜로운 일이라는 사실을 이해하고 받아들입니다. 그런 사람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진 사람들입니다(16절). 성령을 통해 그리스도의 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묵상:

믿는다는 것은 믿기 이전과는 전혀 다르게 세상을 보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믿기 이전의 사람을 “자연에 속한 사람”(14절)이라고 부릅니다. 눈에 보이고 손에 만져지는 것이 전부라고 믿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그러한 세계관 안에서 논리와 이론을 발전시킵니다. 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영에 속한 사람”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만져지지 않는 영적 세계를 인정하고 그 영적 세계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세계를 알게 하고 보게 하고 체험하게 하는 분이 성령이십니다. 성령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전에 보지 못하던 세상을 보게 합니다. 그 세상을 보고 나면 자연인들의 논리와 이론이 전부가 아님을 알게 됩니다. 그 모든 것이 효력을 멈추는 지점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그렇기에 인간적인 논리와 이론을 넘어 성령의 영감을 구합니다.

자연에 속한 사람은 때로 영에 속한 사람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영에 속한 사람이 보는 세상을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영에 속한 진리를 자연에 속한 사람에게 이해시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십자가의 도는 자연에 속한 사람이 받아들이기에 가장 어려운 일입니다. 그 어떤 논리와 언어를 동원해도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도는 어리석은 말로 선포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그 사람의 마음을 만지시기를 기도할 수 밖에 없습니다. 오직 그럴 때에만 십자가의 어리석음이 하나님의 지혜로 드러나게 됩니다. 그 때 우리는 진실로 십자가 앞에 고개 숙이고 그 은혜에 두 손을 들 수 있습니다.   

3 thoughts on “고린도전서 2장: 자연에 속한 사람과 영에 속한 사람

  1. 세상의 영이 아니고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아 주님을 나의 구주로 섬기게 해준 성령께 감사를 합니다, 세상의 높고 깊은 지혜를 통해 주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고 오직 성령의 이끌림으로 주님 앞에 아니 내 안에 주님을 인정하고 경청하며 따르는 믿음이 식지 않기를 간구합니다.
    성령에 초점이 마추어 지는 하루로 이끌어 주시고 모든 것에 감사하는 하루로 은총 내려주십시요, 오늘 하루도 주님의 영으로 세상을 보는 지혜를 간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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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세상의 지혜는 교만과 경쟁심을 불러오지만, 하늘의 지혜는 겸손과 배려를 안겨
    주는것을 알면서도 세상의 지혜로 살려는 저의 모습입니다.
    그렇지만 십자가의 은혜를 가리켜주신 주님께 감사와 영광을 드립니다.
    이웃과 함께 주님의 마음을 품고 주님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오늘의 여정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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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교회를 오래 다니고 믿음 생활에 열심일지라도 “성령을 받거나,” 잘 이해하게 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오히려 서로 성령에 대해 말하다가 “시험에 드는” 일이 생기기도 합니다. “본 어게인”한 것이 언제냐고 묻는 사람도 있습니다. 생일처럼 분명하게 기억을 해야 한다며 본 어게인의 경험을 추궁하듯 묻습니다. 성령을 받았냐고, 방언을 하느냐고 묻기도 합니다. “성령”이 어떤 단계나 계급인가 생각하게 만듭니다. 성령 받은 경험을 말 할 수 없으면 직분을 받을 수 없다고도 합니다. 이 직분 또한 여러 사람을 시험에 들게 합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또다른 이름입니다. 내게 오시는 하나님의 또다른 모습입니다. 하나님을 설명하는 또다른 언어입니다. 자연만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 사람의 노력만으로는 깨달을 수 없는 하나님을 조금이라도 알 수 있게 돕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이 성령입니다. 거룩하신 분을 바라보고 사랑하게 하는 성령이시여 임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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