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5장: 거룩한 사귐

해설:

1장부터 4장까지에서 고린도 교회를 심각하게 흔들고 있던 분열의 문제를 다룬 다음, 바울 사도는 5장과 6장에서 음행 문제를 다룹니다. 당시 고린도는 상업과 무역으로 인해 부유하고 번성한 항구 도시였는데, 도덕적인 타락으로도 악명이 높았습니다. 그래서 고린도 교인들 중에는 복음을 받아들이고 나서도 성적으로 부도덕한 과거의 생활 습관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먼저 고린도 교인들이 행하고 있던 음행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 하면서 이것이 교만과 관련이 있음을 지적합니다. “자기 아버지의 아내”(1절)은 계모를 의미합니다. 교인들 중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계모와 동거하는 사람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다른 교인들은 그런 행동을 “통탄하고”(2절) 징계하지 않고 그대로 묵인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그것이 바로 그들의 영적 교만의 증거라고 지적합니다. 

바울 사도 자신은 이미 음행 하는 그 사람을 심판 했다고 하면서 그를 공동체로부터 내보내라고 말합니다(3-4절). “사탄에게 넘겨주라”는 말은 “믿음의 공동체로부터 사탄이 영역인 세상으로 내보내라”는 의미입니다. 그것이 그의 영혼과 교회에 유익한 일입니다. 만약 그가 세상에서 죄 가운데 살다가 결국 그 비참함을 깨닫고 돌이켜 회개하면, 그의 영혼은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교회에 남아서 계속 다른 사람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면, 그것은 거룩한 교회를 어지럽히는 일이 됩니다(5-6절).

바울은 여기서 누룩과 반죽을 비유로 사용합니다(6-8절). 새 반죽이 되기 위해서는 묵은 누룩을 깨끗이 치워야 합니다. 유월절 음식을 준비할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묵은 누룩을 내다 버렸습니다. 여기서 누룩은 사고 방식과 생활 방식 혹은 윤리관과 가치관을 의미합니다. 교회가 밀가루 반죽이라면 음행은 치워 버려야 할 “묵은 누룩”(7절)입니다. 옛 가치관과 윤리관이 교회 안에서 작용하면 안 됩니다. 그렇게 되면 다른 사람들도 영향을 받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음행과 같은 묵은 누룩은 모두 치워 버려야 합니다. 바울 사도는 “여러분은 누룩이 들지 않은 사람들입니다”(7절)라고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유월절 양으로 희생되셔서 묵은 누룩을 없애 주셨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모든 죄를 내버리고 성실과 진실이라는 새로운 누룩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8절).

바울은 전에도 고린도 교회에게 편지를 써서 “음행하는 사람들과  사귀지 말라”고 경고한 적이 있습니다(9절). “사귀다”라는 말은 인간적인 교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삶을 같이 하는 깊은 관계를 의미합니다. 음행하는 사람들과 사귀는 것은 그들의 생활 방식을 승인한다는 뜻입니다. 그들과 사귀지 말라는 말은 그들의 생활 방식에 참여하지 말라는 뜻입니다(10절). 따라서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 부끄럼 없이 그런 행동을 하는 사람이 있을 경우에는 교제를 중단해야 합니다(11절). 바울 사도는 믿지 않는 사람들이 세상에서 행하는 일에 대해 심판관으로 행세할 마음이 없다고 말합니다. 다만, 믿음의 공동체 안에 그런 악한 행동을 일삼는 사람이 없게 하라고 권면합니다(12-13절).

묵상:

사귐에 해당하는 헬라어 코이노니아는 단지 통성명을 하고 밥 한끼 먹는 정도의 교제가 아닙니다. 코이노니아는 같은 영으로, 같은 정신으로, 같은 믿음 안에서 삶을 함께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신을 서로에게 활짝 열고 자신의 연약함과 부정함을 내어 놓고 서로 품어주고 기도해 주는 관계를 의미합니다. 그런 사귐 가운데서 성령께서는 강력하게 역사하십니다. 코이노니아의 사귐이 이루어지면 교회가 거룩한 그리스도의 몸으로 자라갈 수 있습니다. 교회의 본질은 이와 같은 깊은 사귐에 있습니다. 이 사귐을 통해 우리는 영혼 깊은 안식을 맛볼 수 있고, 서로 진실되게 연합되어 몸을 이룰 수 있습니다. 

바로 이런 까닭에 바울은 믿는다고 하면서도 죄악을 즐기는 사람들과 사귀지 말라고 권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용서 받은 죄인들의 모임”입니다. 완전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서로에게 죄를 고백하고 성령의 능력으로 변화되기를 소망하며 서로 격려합니다. 교회는 그런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그렇기에 “변화되기를 거부하는 죄인” 혹은 “변화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죄인” 혹은 “자신이 죄인인지도 모르는 죄인”은 교회의 사귐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죄가 크냐 가벼우냐가 문제가 아니라 그 죄에 대해 어떻게 느끼느냐가 문제입니다. 이렇게 교회의 사귐을 지켜야 하는 이유는 교회가 거룩성을 지켜야만 교회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은 모든 죄인을 회개하게 하는 것이 교회의 존재 이유입니다. 하지만 그 존재 이유를 지키기 위해 교회는 먼저 거룩한 사귐을 이루도록 힘써야 합니다.  

2 thoughts on “고린도전서 5장: 거룩한 사귐

  1. 믿는 자들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생활방침을 고린도 교회를 통해 말씀해 주시며 음행, 탐욕, 모략, 술취함, 우상숭배 같은 죄에 빠지지도 말고 그런 사람들과의 교제도 말라고 하시며 신실하고 옳바른 생활을 바탕으로 주님의 공동체를 만들어 가며 늘 주님에게 붙어 있으라는 말씀을 주십니다, 특히 탐욕, 분노, 시기 실투에 흔들리지 않고 늘 겸손하고 성실 한 주님의 제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주님의 은혜가운데 정상적으로 회복하는 당신의 따님과 끝까지 함께하시어 큰 고통없이 완전 회복되도록 보살펴 주실 것을 간구합니다.
    주님의 영이 오늘 하루도 지배 해 주실 것을 구하며 감사의 기도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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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보기 좋고 먹음직한 세상의 풍조에 흔들리지 말고 오직 보혈만 바라보기를
    원 합니다. 내 몸과 영혼을 세상의 가치관에 물 드리기 전에 항상 생명수로 씼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이웃과 더불어 가정과 교회와 직장과 사회를 깨끗게 하시는
    주님의 뜻에 동참하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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