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9장: 믿음은 희생과 비례한다

해설:

앞(8장 13절)에서 사도 바울은 “음식이 내 형제를 걸어서 넘어지게 하는 것이라면, 그가 걸려서 넘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나는 평생 고기를 먹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즉 연약한 지체를 위해 자신의 자유와 권리를 양보하겠다는 뜻입니다. 그것은 자신에게 무슨 약점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당시에 바울 사도를 비방하던 사람들(3절)은 바울이 사도가 아니기에 독신으로 살고 손수 돈을 벌어 생활비를 충당하는 것이라고 헐뜯었습니다(4-6절). 바울은 일반적인 예와 성경의 예를 들어 자신에게도 생활비를 요구할 권리가 있음을 밝힙니다(7-11절). 그렇지만 그 모든 권리와 자유를 반납하고 희생하고 헌신하는 이유는 오직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에 이르게 하려는 그의 열심 때문이었습니다(12-15절).

바울은 자신이 복음에 매인 사람이라고 고백합니다. 자신이 자진하여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자신에게 화가 미칠 것이기에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16-17절). 이 말은 원치 않는 일을 하고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너무도 강력하여 그것을 벗어날 수 없다는 뜻입니다. 복음이 어떤 것인지 알기에 복음 전하는 일에서 손을 뗄 수가 없다는 뜻입니다. 그렇기에 바울은 아무런 조건 없이 복음을 전하고 그에 따른 권리를 사용하지 않았습니다(18절). 바울 사도는 그것이 자신이 받을 보상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나는 어느 누구에게도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운 몸이지만, 많은 사람을 얻으려고, 스스로 모든 사람의 종이 되었습니다”(19절)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그의 삶의 원리입니다. 어떻게든 복음을 전하기 위해 상대방의 눈높이와 문화와 수준에 자신을 맞추었다는 뜻입니다(20-22절). 그렇기에 그는 “나는 모든 종류의 사람에게 모든 것이 다 되었습니다. 그것은, 내가 어떻게 해서든지, 그들 가운데서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려는 것입니다”(22절)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복음의 복에 동참하기 위한”(23절) 것입니다.

이 대목에서 바울은 운동선수의 예를 사용하여 논지를 이어갑니다. 경기장에서 뛰는 사람들이 모두 상을 받는 것이 아니듯 믿는다고 해서 모두 “복음의 복”에 동참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24절). 그러므로 운동선수들처럼 우리도 자신의 욕망을 절제 하면서 잘 훈련하여 우리의 경주에서 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운동선수들은 나무로 만든 월계관을 위해 뛰지만, 우리는 “썩지 않을 월계관”(25절)을 위해 뛰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내 몸을 쳐서 굴복”(27절)시킨다고 했습니다. 운동선수들이 욕망을 절제하며 훈련하는 것처럼, 믿음의 경주도 역시 그렇게 해야 합니다. 

묵상: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모든 것을 내어 주시어 우리를 구원 하셨다는 소식입니다. 하나님의 아들께서 당신의 모든 것을 내려 놓고 가장 비천한 자리에 내려 오셨다는 소식입니다. 그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가 구원의 은혜를 입었습니다. 그분의 희생이 얼마나 값진 것이며 그로 인해 우리가 얻은 구원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안다면, 우리는 그 복음을 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 어떤 대가도 기대하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무엇을 희생하셨는지를 안다면, 우리 또한 무엇이든 희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필요하다면 자신의 자유와 권리와 안전을 기꺼이 희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바울 사도는 그것을 “내 몸을 쳐서 굴복시키는 것”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바울 사도가 쓴 마지막 말씀 즉 “그것은 내가, 남에게 복음을 전하고 나서 도리어 나 스스로는 버림을 받는, 가련한 신세가 되지 않으려는 것입니다”(27절)라는 말씀은 저같은 목사들에게는 정신이 번쩍 들게 하는 말씀입니다. 실제로 복음 전도자로 나서서 목회 혹은 선교를 하다가 미끄러져서 “버림 받는” 사람들이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목사나 선교사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진실한 믿음을 추구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기억해야 할 말씀입니다. 우리의 영적 여정이 숨 다하는 순간까지 계속되도록 늘 깨어 살아야 합니다.

3 thoughts on “고린도전서 9장: 믿음은 희생과 비례한다

  1. 복음을 위해서라면 자유인인 바울은 자신을 쳐서 굴복시키면서 까지 복음 전파를 한다는 믿음의 본을 보며 난 내가 전도를 하기위해 내 자신을 얼마나 희생했나 되 돌아보면 부끄럼 밖에 없다는 사실에 직면하게 됩니다, 복음은 나 한테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공통으로 적용되는데 전도하는데 수줍고 거북함은 내 믿음의 분량이 부족함에 있음을 자백합니다, 또 복음을 남에게 전하고 나는 버람 받는 가련 한 신세가 되지 않도록 늘 깨어 기도하며 주님 안에 머물기를 기원합니다.
    단 한 사람에게라도 복음을 전하는 오늘 하루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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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바울 사도가 그동안 마음에 쌓아둔 섭섭함을 풀어냅니다. 철저하게 자기관리를 하며 오로지 그리스도의 이름 만을 가르치며 살아도 오해는 생기는 법입니다. 잘 알지 못해서 생기기도 하고, 자기 생각과 다르다고 서운해서 생기기도 합니다. 리더가 어려운 자리라는 것이 이런 까닭입니다. 공동체를 우선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면 리더가 되기 어렵습니다. 자기한테 불리하고 서운한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그 불을 끈다고 나서면 리더로서 체통도 안 서고, 공동체의 목적을 이루기도 어렵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이 주실 상을 받고자 자신의 탤런트를 마음껏 사용하면서도, 상대방의 처지에 맞춰 자신을 재단하며 사는 지혜와 분별력을 갖춘 사람입니다. “허공에다 주먹을 휘둘러대는 사람” 같이 비효율적이고 어리석은 리더가 아니었습니다. 원칙이 분명하면서도 적용하는 일에는 상대방의 수준에 맞게 융통성과 배려를 갖추었던 바울의 지혜를 돋보입니다. 한편으론 남의 말을 함부로 하지 않는 훈련에 힘써야겠습니다. 보이는대로 평하지 않는 신중함, 상대방의 아픔을 헤아릴 줄 아는 지혜를 구하는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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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주님의 사랑을 알면서도 자주 잃어버리고 주님의 뜻에 어긋나게 살아 왔습을
    고백 합니다. 주님 은혜안에서 항상 살며 이웃과 함께 땀과 수고와 희생을 감수하며
    이방인들을 진리의 길로 인도 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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