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5장 35-58절: 부활은 약속이다

해설:

부활에 대해 가지게 되는 또 다른 의문은 “죽은 사람이 어떻게 살아나며, 그들은 어떤 몸으로 옵니까?”(35절)라는 것입니다. 이 의문에 대해 바울 사도는 씨앗을 비유로 삼습니다(36-38절). 씨앗이 죽어 나무로 자라듯, 육신이 죽은 다음에는 새로운 생명으로 부활합니다. 또한 인간의 몸과 새의 몸이 다르듯, “하늘에 속한 몸”도 있고 “땅에 속한 몸”도 있습니다(40절). 그리고 각 몸의 영광도 서로 다릅니다(41절). 

이렇듯, 부활이란 죽을 몸으로 다시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신령한 몸”(44절)으로 변화하는 것입니다. 첫 사람 아담은 우리에게 흙으로 돌아갈 몸을 주었다면, 둘째 사람 예수는 하늘의 몸을 주셨습니다(45-49절). 하나님 나라는 물리적인 나라가 아닙니다. 그렇기에 육신의 몸으로 하나님 나라를 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 나라에 참여하려면 그 나라에 맞는 몸을 입어야 합니다(50절). 예수님은 첫 열매로 부활하셔서 그 나라에 이르셨습니다. 마지막 날에 그분이 다시 오실 때 우리도 부활할 것입니다. 그분의 나라에서 영원히 살기 위해서 그 나라에 맞는 몸을 입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지점에서 바울 사도는 “우리가 다 잠들 것이 아니라, 다 변화할”(51절) 것이라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여기서의 잠은 죽음을 의미합니다. 죽음이 우리의 종착점이 아닙니다. “마지막 나팔이 울릴 때에”(52절) 믿음 안에서 이미 죽은 사람들은 “썩어 없이지지 않을 몸으로 살아나고”(52절) 살아 있는 사람들은 “다 변화할”(51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믿는 사람들은 “썩을 몸이 썩지 않을 것을 입어야 하고, 죽을 몸이 죽지 않을 것을 입어야”(53절) 하기 때문입니다. 

그 때에 마지막 원수인 죽음이 정복될 것입니다. 여기서 사도는 이사야서 25장 8절과 호세아서 13장 14절을 인용합니다(54-55절). 그 말씀을 부활에 대한 예언으로 해석한 것입니다. “죽음의 독침은 죄요, 죄의 권세는 율법”(56절)인데, 예수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죄의 독침을 제거하셨고 부활하심으로 죄의 권세를 무력화시키셨습니다(57절). 그 승리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여할 때 완성될 것입니다.

믿는다는 것은 여기까지 가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구원이 놀라운 것이고 복음이 기쁜 소식입니다. 이것을 안다면 우리는 “굳게 서서 흔들리지 말고, 주님의 일을 더욱 많이”(58절) 할 수 있습니다. 부활을 믿기에 우리의 수고가 “주님 안에서 헛되지 않다”(58절)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묵상: 

예수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셨다는 사실은 우리 눈에 보이는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해 주는 사건입니다. 무덤이 모든 인간의 종착점이 아니라는 뜻이며, 우리의 목숨이 전부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허블 망원경으로 볼 수 있는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는 뜻이며, 시계로 측정하는 시간이 전부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 모든 것을 넘어서는 차원이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하나님 나라가 있으며, 영원 혹은 절대라는 차원이 존재하며, 지금 경험하는 것과는 질적으로 다른 생명이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바울 사도는 자연 현상을 잠시만 관찰해도 그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메마른 씨앗 한 톨 속에 거대한 나무가 들어 있다고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 씨앗 안에 수 십년 동안 맺을 수만개의 사과가 담겨 있을 줄 짐작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경험으로 그것을 보아 알기에 농부는 씨앗을 땅에 심고 가꾸는 것입니다. 그것을 생각한다면, 우리의 인생도 죽는 것으로 끝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을 왜 하지 못합니까? 이 육신 안에 영원한 생명의 씨앗이 담겨 있을 수 있습니다. 

땅에 심긴 씨앗이 나무로 피어나지 못하고 그냥 썩어 버릴 수 있는 것처럼, 우리의 인생도 영원한 생명으로 피어나지 못하고 썩어 버릴 수 있습니다. 죄가 그렇게 만듭니다. 예수께서는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죄의 독침을 제거하셨고 부활하심으로 죄의 권세를 파괴하셨습니다. 그렇기에 그분 안에 거하는 사람은 그분의 부활에 참여하여 그분의 나라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에게 일어난 사건은 그 사건에 대한 보증입니다.  

그것을 믿는다면 죄악을 즐기는 삶을 지속할 수 없습니다. 그것을 믿는다면 이 세상에서 고난을 겪는다 하여 짓눌리지 않고 번영을 누린다 하여 교만해지지 않습니다. 영원하고 절대적인 것을 알기에 이 세상에서 일희일비하지 않고 흔들림 없이 거룩한 길을 걸어갑니다. 

3 thoughts on “고린도전서 15장 35-58절: 부활은 약속이다

  1. 썩어 없어질 세상의 것들로 심지 않고 주님과 함께 할 생명의 씨앗으로 뿌려져 변화 된 몸으로 거듭나기를 간구합니다.
    주님과 함께 할 그 날들을 그리며 죽어 없어질 육신에 애착을 두지말고 영원 한 생명의 그날을 향해 뚜벅 뚜벅 걷는 믿음으로 오늘 하루도 기도하며 준비하는 하루가 되기를 간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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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엘에이에 몇 주째 무더위가 계속 되고 있습니다. 해변가나 산밑 동네는 낮과 밤의 기온차가 있겠지만 도시 중심부는 밤에도 무척 덥습니다. 태풍으로 인해 바하마 주민들이 큰 피해를 입고, 미국 남동부 주에도 태풍이 닥친다는데 인명과 재산 피해가 크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언제 어떻게 삶의 모양이 달라질 지 모르는 우리들인데 부활이나 장차 맞이할 하나님의 나라 같이 이해하기 어려운 주제를 놓고 묵상하는 것이 가능하기나 한 일인가 싶습니다. 커다란 바위, 꿈쩍도 하지 않는 바위에 빗방울이 떨어지고 또 떨어지고, 셀 수 없이 많은 날 바람이 지나가고 햇볕에 닳아 그 바위 표면에 작은 구멍 같은 것이 생기는 것을 떠올리며 “알 수 없는” 것을 믿음으로 알아 가는 일, 알아서 아는 것이 아니라 믿기 때문에 알게 되는 일에 대해 묵상합니다. 부활의 신비는 보이는 것이나 지금 경험하는 일에 마음을 다 내어주지 않는 것에서 부터 시작합니다. 신비라고 밖에는 말할 수 없는 것이 살면서 경험하는 그 어떤 것과도 다르기 때문입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here and now” 로부터 한 발 물러나야 합니다. 주어진 시간과 공간 안에서 성실히 살아가는 것이 마땅하지만 그 성실함은 부활의 신비를 담는 그릇은 될 수 없습니다. 땅에 속한 몸도 있고 하늘에 속한 몸도 있다 (40절)는 바울의 말씀이 이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땅에서 사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천상의 시간을 예습하는 것이 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한번씩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봐야 하는지도 모릅니다. 야곱이 얍복강가에서 천사와 씨름을 한 일, 다리를 절뚝이는 지경까지 되도록 “복을 빌어 주소서” 붙들고 늘어진 일은 삶에 대한 그의 의지를 보여주지만 말년에 파라오 앞에서 그는 자기의 인생을 고통스러운 삶, 고달픈 인생, 험악한 세월이라고 표현합니다. “지금은 거울을 통해 보는 것같이 희미하게 보지만”이라는 바울의 표현은 땅에서 사는 우리네 삶을 정확하게 진단한 표현입니다.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시지만 특별히 하늘에 계시기를 원합니다. 눈을 들어 하늘을 볼 때 거기 계시기를 원합니다. 높은 나무, 높은 산, 높은 곳 어디에나 계시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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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피부 색갈에 연연치 않고 고난과 질병이 없는 새몸을 허락하시는 주님께
    영광을 드립니다. 진보냐 보수냐 따지지 않고 한 마음으로 살수있는 나라
    약육강식이 없고 편견이 없는 땅을 마련해주시는 주님께 이웃과 함께
    감사와 찬양을 드리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 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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