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 1장: 환난 가운데 만나는 하나님

해설: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여러 편의 편지를 써 보냈습니다. 그 중에 두 개만 우리에게 남겨져 있습니다. 

고린도전서를 써 보낸 후 사도 바울은 또 다시 편지를 써야 할 상황이 생겼습니다. 그는 먼저 당시 편지 양식에 따라 자신과 디모데가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와,  온 아가야에 있는 모든 성도에게”(1절) 써 보내는 편지임을 밝힙니다. 바울의 다른 편지도 마찬가지이지만, 그의 편지는 그 지역에 흩어져 있던 여러 교회에서 돌려 가며 읽도록 의도되었습니다. 이어서 사도는 그리스식 인사(“은혜”)와 히브리식 인사(“평화”)를 결합시켜 축복의 인사를 보냅니다(2절). 

바울 사도는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수신자들에 대해 감사하며 기도합니다(3-7절). 그는 하나님이 위로의 하나님이심을 강조합니다. 3절부터 7절까지 ‘위로’라는 말이 10번이나 등장합니다. ‘환난’이라는 단어도 3번이나 사용됩니다. 하나님은 온갖 어려움과 환난 가운데서 우리를 위로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바울은 자신이 당하는 고난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이며, 그 고난 가운데서 위로의 하나님께서 위로해 주신다고 말합니다(5절). 그가 하나님에게서 받는 위로도 역시 그리스도께서 받으신 위로와 같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 위로로써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을 위로하려고 이 편지를 쓰는 것입니다(6절). 사도는 고린도 교인들이 “고난에 동참하는 것과 같이, 위로에도 동참하고 있음”(7절)에 대해 칭찬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바울의 주된 관심이 환난에 있음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 당시 고린도 교회에는 바울이 많은 환난을 겪고 있다는 이유로 그의 사도적 권위를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사도라는 사람이 그렇게 고난을 많이 받을 수는 없으며, 그것은 그가 사도가 아니며 믿음에 결함이 있다는 증거라고 바울을 공격했습니다. 그렇기에 그는 먼저 자신이 당하는 환난은 그리스도 예수께서 당하신 고난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고린도 교인들도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고 있다고 말함으로써 환난은 믿음이 약하기 때문에 오는 것이 아님을 강조합니다.  

8절부터 바울은 본론을 시작합니다. 그는 아시아에서 극심한 환난을 당했습니다(8절). 살 희망도 잃었고 이미 죽은 몸이라고 여길 정도였습니다(9절). 하지만 그로 인해 그는 인간의 힘이 아니라 “죽은 사람을 살리는 하나님을 의지하게”(9절)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죽음의 위험에서 그를 건져 주셨고, 지금도 건져 주십니다(10절). 그렇기에 앞으로도 건져 주실 것임을 믿습니다. 그러면서 사도는 그들에게 자신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청합니다(11절).

12절부터 바울은 자신을 변호합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처신할 때에, 특히 여러분을 상대로 처신할 때에, 하나님께서 주신 순박함과 진실함으로 행하고, 세상의 지혜로 행하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로 행하였다”(12절)는 것이 그의 변호의 핵심입니다. 사도는 지금 고린도 교인들이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지만 마지막 날에는 그들이 자신의 진심을 알고 자랑스럽게 여길 것이라고 말합니다(13-14절). 고린도 교인들 중에 바울을 오해하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바울이 고린도를 방문할 계획을 세웠다가 변경한 데 있습니다(15-16절). 고린도 교인들 중에는 그것을 바울이 변덕을 부린 것으로 혹은 속셈을 감추고 거짓말 한 것으로 오해했습니다(17절). 바울은 정직하지 않다는 비판에 크게 상처를 받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믿는 하나님과 예수님은 두 말 하는 분들이 아니며 따라서 자신도 오직 한 가지 마음으로만 말하고 행동한다고 고백합니다(18-22절). 바울은 그의 방문 계획이 변경된 것은 “여러분을 아끼기 때문”(23절)이라고 말합니다.

묵상:

예수를 믿어도 삶은 여전히 힘겨울 때가 많습니다. 믿는다는 것은 인생의 모든 문제와 고난, 삶의 무게로부터 벗어난다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 주님도 이 땅에 계시는 동안 말할 수 없는 고난을 당하셨고, 바울도 살 소망을 잃어버릴 정도까지 극심한 고통을 겪었습니다. 예수 믿는 삶의 축복은, 여전히 내 삶에 많은 문제와 어려움이 있지만, 더 이상 그 무거운 짐을 나홀로 감당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그 짐을 져 주신다는 데 있습니다.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께서 내가 지치고 쓰러질 때마다 손 잡아주시고 위로해 주신다는 데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에는 고난이 있습니다. 인간이면 누구나 다 당해야 하는 고난도 있고, 하나님 나라와 복음을 위해 자초하는 고난도 있습니다. 어떤 고난이든 고난 중에 있을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그 때 우리는 하나님을 새롭게 만나게 됩니다. 또한 우리의 고난은 허비되지 않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채우는 것이 될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리스도인은 고난을 피하지 않습니다. 고난 안에 보화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두려워할 것은 오히려 평안과 번영입니다. 그것은 필경 우리의 믿음을 부패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5 thoughts on “고린도후서 1장: 환난 가운데 만나는 하나님

  1. 우리가 시험받고 고난에 처할 때에도 늘 함께하시며 위로와 격려를 하시는 주님을 다시 그려봅니다, 어떤 어려움을 당할 때에도 그 어려움을 견디어 낼 힘을 주시고 또 피할 길을 열어주시며 끝까지 이겨낼 수 있게 함께하시며 격려와 위로를 아끼지 않는 하나님을 기억 합니다.
    늘 내 지혜와 세상의 지식으로 모든 문제들을 해결하려했던 지난 날들을 돌이켜 봅니더, 부족했던 믿음을 부끄러워 합니다, 이제 앞으로의 삶을 세상의 지혜가 아니고 하나님의 지혜와 은혜로 해결하는 굳건 한 믿음을 주시고 주님 안에서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기도합니다.
    오늘도 주님과 함께하는 하루로 은총 내려주십시요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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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그리스도의 고난을 생각하며 감사하는 태도를 원합니다.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여 부활의 기쁨을 맛보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신실하신 주님과 동행하며 이웃과 함께 구세주를 선포하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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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고난이 싫어 고난의 장소에서 곧잘 도망칩니다. 제 고난이 예수님의 고난에 더해지도록 제 마음에 사랑 더해달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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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다윗의 세계에서 바울의 세계로 건너왔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며 찬미하는 다윗의 시를 묵상할 때는 지나온 인생의 어느 한 지점이나 사건이 떠오르기 보다는 “지금까지 살아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는 찬송가사처럼 굴곡진 인생길에 대한 감사가 일어납니다. 바울의 편지를 읽으면서는 같은 감사지만 좀 더 구체적고, 앞뒤 연결점까지도 생각하게 됩니다. 도움이 어디서 누구를 통해 왔었는지, 마음의 평화를 어떻게 찾게 되었는지, 아! 하고 깨달으며 느낀 점이 무엇인지를 기억하게 됩니다. 사도로서 바울이 받았던 오해와 편견, 그가 견딘 낙심과 절망감은 하나님의 은혜를 더욱 풍성하게 하는 받침대였습니다. 제단 꽃꽂이를 생각해봅니다. 화병 밑에 흙과 돌을 많이, 깊이 담고 그 위로 높이 꽃과 나무가지를 세워 키를 높게 하고 부피를 크게 하여 멀리서도 잘 보이는 멋진 장식물이 되는 것을 마음에 그려봅니다. 바울 사도는 쉽게 된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잘 나가던 사람이었지만 예수님을 만난 다음부터는 고생의 연속이었습니다. 사람의 세상에서는 부러움이 아니라 연민의 대상이 되는 인생인데 성경의 세상에서는 다윗 못지않은 영향력을 끼치는 존경받는 인물입니다. 자신이 받은 환난도, 그 환난으로 부터 얻은 위로와 깨달음도 다 자신의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한 양식이 된다고 생각하는 그의 거룩한 낙천주의가존경스럽습니다. 자신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드러내는 도구일 뿐이라는 그의 신실한 겸손이 존경스럽습니다. 조금 잘 나가면 스스로 뭐나 된듯이, 조금 막히면 세상이 다 끝난 듯이 이리저리 흔들리고 소란스러운 우리의 삶은 제단 어느 구석에도 올려놓을 수가 없는데…..하나님 앞에 조용하게 서서 그리스도의 빛으로 마음이 채워지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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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마음이 분산되고 번잡스럽다.
    한주만에 대하는 사귐의소리 시편.
    그 끝날에 읽었던 시편의내용이 나의마음을 가라앉힌다. 나의마음을 분산시키고 번거롭게하던 그것이 무엇 때문이었는지 번뜩 깨닫는다. 나의 마음의 방향이 문제가 아니던가…
    하나님의 임재를 잊고있을때 나는 언제나 불안해 있으며, 걱정하고 있으며,
    미워하고있으며, 우울해하고있으며, 불행해하고 있다.
    매일의 삶속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연습하고 연습하고, 또 구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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