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 2장: 그리스도의 향기

해설:

고린도후서 2장과 7장의 행간을 읽어 보면 이 편지가 쓰여지기 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추측할 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를 써 보낸 후에 바울은 고린도를 방문했는데, “나를 기쁘게 해야 할 그 사람들”(3절) 즉 바울을 가까이 따랐던 사람들로부터 “마음 아픈 일”(3절)을 당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서둘러 고린도를 떠났고 얼마 후에 “많은 눈물을 흘리면서”(4절) 편지를 써 보냈습니다. 그들의 회개를 요청하는 편지였습니다. 그 편지는 보존되지 않았기에 성경에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디도 편에 그 편지를 보내 놓고는 그들이 그 편지를 읽고 회개했다는 소식이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그 소식이 오지 않았기에 바울은 고린도를 방문하지 않기로 마음 먹습니다. 그러자 그것을 두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사도는, 방문 계획을 연기한 것은 “여러분에게 또 다시 아픔을 주지 않아야 하겠기에”(1절) 그렇게 한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지난 번 방문 때에 자신에게 아픔을 주었던 사람들이 회개 하지 않았기에 자신의 방문이 오히려 고린도 교회에 아픔만을 더하게 해 줄 것을 염려한 것입니다(2-3절). 지난 번에 눈물로 써 보낸 편지는 누구를 아프게 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그들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표현하려는 것이었습니다(4절). 자신의 마음을 아프게 한 것은 곧 고린도 교인들 전부를 마음 아프게 한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5절). 공동체란 한 지체의 아픔을 모든 지체가 같이 아파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6절에 의하면, 바울에게 아픔을 주었던 사람들이 이미 고린도 교인들에 의해 징계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이제 그들을 용서 하라고 권합니다. 자신도 이미 그들을 용서했기 때문입니다(7-10절). 용서하지 못하는 것은 사탄의 속임수에 속아 넘어가는 것입니다(11절). 사탄의 속셈은 서로에 대한 미움을 이용하여 믿음의 공동체를 허무는 데 있습니다.

바울은 디도가 돌아오는 것이 늦어지자 에베소에서 드로아로 이동합니다(12절). 하나님의 은혜로 인해 드로아에서 많은 열매를 얻었으나, 디도가 돌아오지 않는 것으로 인해 “마음이 편치가 않아서”(13절) 바울은 마케도니아로 갔습니다. 할 수 있는 한 고린도 가까운 곳에서 소식을 듣고 싶었던 것입니다.

이 지점에서 사도는 자신의 사정에 대한 설명을 잠시 중단하고 복음을 전하는 일에 자신을 부르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는 복음 전하는 일을 “그리스도의 개선 행렬에 참여하는 것”(14절)이라고 묘사합니다. 또한 복음 전하는 일을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의 향기를 풍기게 하는 일”(14절)이라고 묘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이미 승리를 이루셨습니다. 그렇기에 복음 전하는 일은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승리의 행렬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복음 전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바치는 그리스도의 향기”(15절)입니다. 그는 구원 받을 사람들에게는 “생명의 향기”가 되고 멸망 받을 사람들에게는 “죽음의 냄새”(16절)가 됩니다. 그렇게 보면 복음을 전하는 일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요? 그래서 사도는 “이런 일을 누가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16절)라고 반문합니다.

복음 전하는 일은 함부로 해서는 안 될 일입니다. 잘못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팔아서 먹고 살아가는 장사꾼”(17절)이 되기 때문입니다. 복음 전하는 일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안다면, “하나님께서 보내신 일꾼답게, 진실한 마음으로”(18절) 일해야 합니다. 항상 “하나님이 보시는 앞에서”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묵상:

그리스도를 가진 사람은 모든 것을 가진 사람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반드시 소유해야 할 것은 그리스도 예수입니다. 예수 안에 생명이 있고 소망이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은 그 무엇보다 귀합니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 거하고 그리스도가 내 안에 거하실 때, 우리는 비로소 평안과 위로를 누릴 수 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 거할 때 우리는 또한 그리스도의 향기가 됩니다. 아직 예수를 모르는 세상을 향해서, 복음이 무엇인지, 은혜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세상을 향해 우리는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대사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섬기는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향기는 나 혼자 즐길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몸에 향수를 뿌리는 이유는 다른 사람의 기분을 좋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주어진 그리스도의 향기는 내 안에 갇혀 있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를 통해 주변으로 퍼져 나가야 합니다. 전도와 선교는 우리에게 있는 그리스도의 향기를 온 세상에 퍼지게 하려는 노력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 우리는 늘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그리스도 안에 머물러 살아가야 합니다. 

마지막 절에서 사도는 세 개의 전치사를 사용합니다. From God, Before God 그리고 In Christ. 우리는 하나님에게서 보냄 받은 존재들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라는 것이고, 언제나 하나님이 우리를 보고 계시다는 사실을 기억하라는 것이며, 그리스도 안에 머물러 살아가라는 뜻입니다. 그럴 때 우리에게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퍼져 나가게 될 것입니다. 

3 thoughts on “고린도후서 2장: 그리스도의 향기

  1.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원을 통해 이루어지는 주님의 생명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제자로 살아가기를 간구합니다, 내 안에 그리스도가 또 그리스도 안에 내가 하나님 앞에서 향기로 나타나는 주님의 사자가 되어 구원의 사업에 동참하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보내 신 일꾼답게 진실과 성실로 위로는 하나님 옆으로는 동료 성도들과 끝임없는 사귐을 통해 주님의 향기가 이웃에 퍼져나가기를 간구합니다.
    오늘도 주님의 향기가 이웃에 전파되는 하루로 은총내려주실 것을 간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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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주님안에서의 삶이란 주님이 주인이 되셔서 순종하며 사는것 이겠지요.
    마음에 상처를 받은 저희들이 무조건 용서하는 믿음을 원합니다.
    그리고 상처를 준 이웃으로부터 용서를 받기를 기도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님을 영혼에 깊이 각인하여 이웃과함께 주님의
    은혜의 향기를 풍기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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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바울의 마음을 무겁게한 “사연”이 있었군요. 성경에서 읽는 편지 말고도 많은 편지를 썼는데 남아있지 않으니 바울의 생각이나 입장을 다 알 수 없어 아쉽습니다. 바울처럼 분명하고 힘차게 복음을 전하고, 또 자신의 삶에 일어난 그리스도의 개입과 경험을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도 사람들 사이에서 마음에 상처를 입고 그 일로 방문계획도 수정하고, 관계가 망가질까 근심하며 기도하는 모습을 보며 사람 사이에 일어나는 크고 작은 마찰이 다 사람이기에 일어나고 감당해야 하는 일인 것을 확인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서 확인하는 또 한가지는 바울 시대에도 “많은 사람들”이 “돈을 벌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팔고 다니는” 일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한국에서 목사들이 교인들에게 하늘에 쌓아두는 저축이라고 말하며 빚을 내어 헌금하게 하고 그 헌금을 자기 주머니에 쓸어담은 일이 심심찮게 발각됩니다. 뉴스의 속성상 좋은 소식, 긍정적인 일은 뉴스가치가 약하고, 좀 더 쎄고 충격적인 일일수록 뉴스로서 빛이 나기 때문에 한 명의 부패한 목사를 보면 백 명의 양심적인 목사가 있음을 기억해야 하지만 바울도 하나님을 팔고 다니는 사람을 언급할 정도이니 사람들이 모여 사는 세상 물이 얼마나 혼탁한지요. 이런 세상을 사는 동안에 그리스도인은 그 이름에 맞게 그리스도의 향기를 내어 세상을 맑게 하라고 하십니다. 생명의 향기가 되라고 하십니다. 이제 어느 정도 나이를 먹고 나니 이 향기는 내가 임의로 만들어내는 상품성 있는 향수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 갑자기 만들어낼 수 없는, 확 다 바꾸어 새롭게 뿜어낼 수 있는 향내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사람 사이에서 주고받은 복의 향기, 깨진 꿈과 뜻밖에 얻은 선물, 아쉬워하며 보낸 이의 뒷모습과 전혀 새롭게 발견한 이웃의 모습이 다 녹아있는 내 인생의 냄새가 누군가에게 좋은 향이 되는지를 묵상하는 아침입니다. 얼굴에 책임을 지는 나이라는 말과도 통하는 것 같습니다. 얼굴을 만드신 분은 하나님이시지만 그 얼굴에 올리는 표정은 내 책임입니다. 예쁜데 미운 사람, 못 생겼는데 예쁜 사람이 있는 것은 다 표정과 분위기에 달렸습니다. 세상을 밝게 하는 얼굴, 세상을 맑게 하는 체취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기도처럼 살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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