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 6장: 하나님의 일꾼으로 사는 것

해설:

바울 사도는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않도록 하십시오”(1절)라고 권면합니다. 믿는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은혜를 받습니다. 그 은혜는 믿는 사람들을 은혜의 사람으로 변화시킵니다. 고린도 교인들 일부는 바울을 근거도 없이 비난하고 헐뜯음으로써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게 하고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무슨 일에 있어서나 하나님의 일꾼답게 처신”(1절, 4절)해 왔다고 자부합니다. 

하나님의 일꾼답게 처신한다는 것은 복음을 위해 고난을 감수한다는 뜻입니다(4-5절). 한 사람의 믿음의 수준은 그 사람이 복음을 위해 당한 고난의 무게와 비례합니다. 고난과 역경을 당하면 누구나 인간적인 수단을 동원하고 싶은 유혹을 받습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우직하게 “순결과 지식과 인내와 친절과 성령의 감화와 거짓 없는 사랑과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6-7절)만을 의지하여 복음을 전해 왔습니다. “영광을 받거나, 수치를 당하거나, 비난을 받거나, 칭찬을 받거나”(8절) 그의 태도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로 인해 그의 겉모습은 불행해 보였지만 그는 누구보다도 행복했습니다. 그에게는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니었고, 손에 만져지는 물질이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이 세상과는 비교할 수 없는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그는 알고 있었고, 이 세상에서 가질 수 있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영원한 생명을 맛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다음과 같은 유명한 고백을 남깁니다. “우리는 속이는 사람 같으나 진실하고, 이름 없는 사람 같으나 유명하고, 죽는 사람 같으나, 보십시오, 살아 있습니다. 징벌을 받는 사람 같으나 죽임을 당하는 데까지는 이르지 않고, 근심하는 사람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사람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사람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사람입니다”(8-10절).

여기까지 읽었을 때 고린도 교인들은 자신들이 바울을 오해하고 있었음을 자각하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바울의 외적 조건으로 그의 사도적 권위를 의심했기 때문입니다. 그럴 경우, 사람들은 두 가지 중 한 방향으로 반응합니다. 하나는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고 회개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의 잘못에 대해 수치심을 느끼고 더욱 공격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후자의 가능성을 생각하고 고린도 교인들에게 “마음을 넓히십시오”(13절)라고 권합니다. 자신도 지금까지 마음을 활짝 열고 속에 있는 말을 다 했기 때문입니다(11-12절).

이어서 사도는 “믿지 않는 사람들과 멍에를 함께 메지 마십시오”(14절)라고 권합니다. 고린도전서 5장에서 바울 사도는 “음행하는 사람들과 사귀지 말라”(9절)고 말하고는 그것이 “이 세상 밖으로 나가라”는 뜻이 아니라고 첨언한 적이 있습니다(10절). “믿지 않는 사람들과 멍에를 함께 메지 마십시오”라는 말도 믿지 않는 사람들과 상종하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멍에를 함께 메다”라는 말은 삶의 모든 것을 함께 한다는 뜻입니다. 말과 소를 하나의 멍에에 묶을 수 없듯,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은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함께 할 수 없습니다(15-18절). 이 말씀을 통해 바울 사도는, 믿는다는 것이 단지 영적인 문제가 아니라 삶 전체에 해당하는 문제임을 분명히 합니다. 또한 믿는 사람이 이 세상에서 얼마나 구별되게 살아야 하는지를 강조합니다. 믿는 사람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전”(16절)이기 때문입니다. 

묵상:

믿는다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세상을 보고 믿고 사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믿지 않는 사람과 삶의 방향과 방법과 태도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은 육신과 물질을 전부로 보기에 그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이 땅에서 안전하게 많은 것을 누리며 사는 것을 행복으로 여깁니다. 반면,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를 더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렇기에 그 나라를 위해서 물질의 손해와 육신의 고난을 기꺼이 견딥니다. 진정한 행복은 육신의 건강과 물질의 풍요에 있지 않고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습니다. 믿는 사람은 믿지 않는 사람이 알 수 없는 기쁨의 비밀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것이 믿는 사람이 믿지 않는 사람과 멍에를 같이 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멍에를 같이 한다”는 말은 같은 목표를 위해 같은 보조로 함께 걸어가는 말합니다.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은 보는 방향이 다릅니다. 한 사람은 하나님 나라를 보고 영원한 것을 추구하지만 다른 사람은 이 세상과 물질을 봅니다. 한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분별 하면서 성령의 인도를 따라 걷지만 다른 사람은 세상의 흐름을 따라 자신의 욕망을 성취하기 위해 삽니다. 바로 그런 까닭에 믿는 이들은 하나의 몸으로 연합하여 교회를 이룹니다. 교회란 멍에를 함께 진 사람들의 공동체입니다. 교회로 모여 하나님의 일꾼 답게 사는 방법을 연습하고 그 힘으로 세상에 나가 하나님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것이 우리의 삶의 방법입니다. 

2 thoughts on “고린도후서 6장: 하나님의 일꾼으로 사는 것

  1. 매일 묵상하며 글을 남기지만 올라가지 않고 사라진 묵상들이 제법 있는데 고린도후서에서 계속 떠오르는 생각은 “예수 믿는 사람은 달라야 한다”입니다. 새로와진 존재, 죽었다 다시 살아난 존재가 그 전과 같다는 것은 말이 안됩니다. 설령 겉으로는 예전과 다르지 않아 보여도 속까지도 예전과 같을 수는 없습니다. 마치 아침에 일어나니 같은 집이요, 거울에 비친 얼굴 또한 똑같은 내 얼굴이지만 오늘 아침의 나는 어제의 나와 똑같을 수는 없는 이치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뭐가 달라도 다른데 오늘 본문에서는 그 까닭을 말해줍니다. 나 가운데 살고, 다니는 하나님 때문입니다. 나의 하나님이 나를 다르게 하십니다. 이것을 기억하며 살기를 원합니다. 내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를 기억하며 그분이 마음껏 움직이실 수 있게 나를 열 수 있기를 원합니다. 죽었던 나사렛을 살리지고 그를 풀어주어 다니게 하라신 예수님의 말씀이 들립니다. 내 의지와 욕심으로 그리스도를 묶지 않고 그분이 움직이는대로 나도 같이 흔들리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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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싸이트에 뭔가 문제가 있는 것 같은데 원인을 알지 못합니다. 같은 문제를 겪으시는 분이 또 계십니다. 죄송합니다. 쓰신 글은 사라지지 않게 따로 보관하시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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